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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열망하는 선교사가 ‘하나님은 선교에 필요한 전체를 빠짐없이 주실 것’을 믿는 확신으로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성령의 창의성’,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권세와 능력’이 삶과 사역의 현장에서 생동감 있게 구현되는 선교 원리이다.
바울선교회는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기에 물질이나 명성을 가진 자들의 이름을 앞세우지 않고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하는 믿음 선교로 출발했다.
믿음으로 선교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부르셨으니, 하나님이 책임 지시고 공급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 절대 구원의 확신
유명한 신학자 가운데도 예수를 믿지 않는 자가 있다는 기괴한 이야기를 듣는다. “당신, 구원 받았습니까?” 하는 원색적인 물음을 성직자에게 묻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사실 구원받지 못한 목사와 선교사가 있다면 통탄할 일이다. 구원에 감격하고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는 절규 속에서 우리는 선교해야 한다. “구원에 감격하고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 때문에 내가 산다!” 라고 고백해야 한다.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선교사로 나서는 것이다.
2) 절대 소명
하나님이 나를 ‘오로지 선교사’로 부르셨음을 확인 받아야 한다. 소명이 뚜렷하지 못하면 사명에 충실할 수 없다. 인내할 수 없다. 바울은 어머니 태에서부터 택함 받았다는 확실한 입장을 취했다. 들뜬 마음으로 선교와 더불어 얻은 이익 때문에 이 일을 택하면 하나님을 시기하는 것이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 자들의 다툼만 일어날 뿐이다.
3) 절대 기도
선교사는 기도학교 학생이어야 한다. 예수님도 지상에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드렸다.(히 5:7) 마틴 루터는 하루 두 시간씩 기도했다. 돈, 선교비는 입 밖에도 내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거절하신 일이 없기 때문이다.
4) 절대 감사
“무릎 꿇고 기도했거든 휘파람을 불면서 일어나라”는 말이 있다. 구한 것은 받은 줄로 알기 때문이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다. 불평, 원망, 짜증은 마귀의 산물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주님께 모든 염려 맡기고 하루 일곱번씩 주님께 찬양하며 감사하자.
5) 절대 복종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 2장) 성경은 복종이란 말을 많이 사용했다. 종이 상전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그리스도인이 주께 복종하라고 가르쳤다. 주는 왕이니 우리는 복종해야 한다. 감미로운 이론을 중단하고 복종의 새 질서를 배우자. 하나님께 철저히 복종한 자 만이 역사의 등불이 되었다. 하나님께, 질서에, 지도자에게 복종하는 성서적인 법을 배우자. 사랑의 질서엔 복종이 자발적이다.
6) 절대 헌신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뼈를 묻을 각오를 해야 한다. 예수님도 그의 선교지, 지구에서 죽었다. 지금까지 바울선교회원 모두가 자기 주머니를 털어 선교한 이유도 헌신 정신 때문이다. 교통비, 사례비도 임원 및 회원에게는 없었다. 그저 받았으니 그저 주라는 주님 말씀대로 오직 희생 정신으로 주의 은혜에 감사하자.
7) 절대 사랑
마음 중심이 불 붙는 것 같아 뛰쳐나가서 외친 예레미야의 사랑을 가지자. 사랑 없는 선교는 일반 사무원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사무원이 아니요, 전도자요, 선교사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는도다”라고 바울처럼 말하자.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을 배우자. 미운 사람 하나 없이 누구나 사랑하자. 사랑! 지극한 사랑만이 선교를 승리로 이끌 것이다.
묵상이 없이는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에게 머물지 않을 것이다.
묵상은 마음속에 진리를 각인시키고 고정시킨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라 하셨다. 우리의 새벽 묵상을 하나님께서 쓰시도록 하자. 축복의 이슬은 아침 일찍이 내린다. 그 때는 하나님과 교제하기에 가장 알맞은 시간이다. 우리의 마음이 점점 뜨거워질 때까지 묵상하자.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신다. 먼저 이 자세부터 갖춰야 한다.
하나님 닮아 그 영성을 질그릇 속에 담아보려고 몸부림을 친 분들이 수도사들이기에 수도사적인 선교사로 조각되어야 한다.
수도사란 첫째, 예수의 마음을 품은 자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나 우리들의 마음은 더럽혀졌다. 음심, 정심, 탐심을 품었다. 예수 사랑에 침몰되어 세계를 가슴에 안고 예수의 피로 세계가 물들여질 때까지 울어야 한다. 예수의 울먹이는 눈으로 세계를 봐야 한다.
둘째, 환경을 사막화하는 자다. 하나님 한 분과의 교통을 중요시해야 한다. 경건생활에 장애되는 모든 일을 다 잘라야 한다. 예수에 대한 외줄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모든 것의 모든 것(All in All)’ 되신 하나님께 매달리는 자가 가장 현명한 자다. 골방 밀실에서 하나님의 신임을 받도록 하자.
셋째, 현재에 감사하는 자다. 살을 찌르는 가시를 뽑아달라는 바울의 기도에 내 능력은 약한 데서 강해진다는 주의 음성이 있었다. 그리고 바울은 그 때부터 고난을 사모했다. 신앙의 최상 경지는 감사다. 수도의 최고 목표는 성덕을 닦아서 그리스도를 본받고 성화된 인격 완성을 이루는데 있음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