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및 보고 김혜정 선교사(콜롬비아 주재 바울선교회 선교사)
1) 지정학적 위치 및 주요 도시들
콜롬비아는 중남미에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및 페루에 이어 다섯 번째로 큰 나라이며, 남미에서 유일하게 태평양과 카리브해에 함께 면해있는 나라이다. 콜롬비아의 영토는 본토에서 700km 북서쪽에 있는 카리브해의 산안드레스와 프로비덴시아 주를 포함하며, 전체 길이가 7,000km에 달하며 남미 대륙 서부지역을 관통하는 안데스산맥이 3개의 산맥(서부 산맥, 중부 산맥, 동부 산맥)으로 나누어져 있다.
콜롬비아의 수도인 동시에 쿤디나마르카주의 주 도시로서 정치, 행정의 중심지인 보고타, 콜롬비아 제2 도시로 세계적인 혁신도시로 알려진 메데진, 1536년에 설립된 미주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며, 콜롬비아의 제3 도시인 깔리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국제적인 휴양도시 까르타헤나 등의 도시들이 유명하다.
2) 역사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전 콜롬비아는 북중미와 남미대륙을 이어주는 유일한 육로이므로 북중미 대륙으로부터 온 이주자들이 남쪽으로 이동하는 길을 개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콜롬비아에는 약 12개 부족들이 독립된 형태로 존재하는데 광활한 지역을 지배했던 아즈텍 문명 및 잉카문명과는 대조적으로 이들은 안데스산맥과 태평양, 카리브해 지역에 분산되어 비교적 소규모로 자리 잡았으며, 다양하고 수준 높은 문화를 향유했음을 알 수 있고 특히 매우 높은 수준의 황금 및 도자기 유물들이 발굴되었으며, 황금 유물은 남미대륙에서 기술적, 예술적 가치가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황금과 에메랄드에 대한 환상과 기대로 진출한 스페인은 1564년 콜롬비아에 누에바 그라나다 지배체제를 구성했으며, 광산과 농장의 노동력을 위해 들여온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의 인구 비율도 높아지면서 콜롬비아는 유럽계 백인, 유럽계와 인디언 혼혈인 메스티조, 유럽계와 아프리카계 혼혈인 물라토, 아프리카계와 인디언 혼혈인 삼보 등의 다양한 인종 구성을 이루게 되었다.
신대륙에서의 스페인 제국의 팽창으로 1717년 새로운 행정구역이 생기게 되었으며, 보고타는 오늘날 콜롬비아, 파나마, 에콰도르 및 베네수엘라를 포함하는 누에바 그라나다의 수도가 되었다.
노예제와 무역 독점, 세금, 관세 등의 문제로 스페인의 식민통치에 항거를 일으키며 1812년 시몬 볼리바르가 독립투쟁의 영웅으로 등장하여 격렬한 항거 끝에 1819년 8월 7일 보쟈카에서의 결정적 전투의 승리를 쟁취하고 3일 후 보고타에 입성함으로써 콜롬비아를 독립시켜서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파나마 및 에콰도르로 구성된 그란 콜롬비아의 수립을 선포했다.
하지만 이 광대한 국가의 출발은 순탄치 못해서 결국 각 나라의 독립전쟁이 발발하고 그란 콜롬비아는 4개의 나라로 분리 독립되었고 현재의 콜롬비아 공화국이라는 국호는 1886년에 확립되어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3) 정치
중앙집권주의와 연방주의는 1849년 각각 보수당과 자유당을 창당하면서 19세기 내내 폭동과 내전으로 이어졌으며, 이러한 소요 속에 미국은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여 자신들의 관리하에 두기 위하여 당시 콜롬비아 영토에 속하던 파나마의 분리 운동을 조장, 1921년 콜롬비아가 파나마의 주권을 미국에 넘겨줌으로써 미국과의 분쟁을 종결지었다.
20세기의 콜롬비아 역시 시민전쟁과 폭력의 시대로 수많은 사상자를 냈으며, 여타 남미 국가들이 그렇듯이 워낙 부정부패가 많고 심각하다. 중앙정부부터가 여러 기업과 유착되어서 부정부패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을 들으며, 여기에 좌익 게릴라와 마약 카르텔뿐만 아니라 우익 민병대원들도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하다는 것을 이용해서, 각 지역별로 작은 사회를 구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비리나 추문이 많이 벌어진다. 정부군, 좌익 반정부단체, 우익 민병대, 마약 카르텔 간의 무력분쟁의 지속은 수많은 인명피해를 발생시켰을 뿐 아니라, 콜롬비아의 국가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4) 한국과의 관계
콜롬비아는 중남미에서 유일한 한국전 참전국으로 한국과의 혈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 우호 관계를 바탕으로 실질 협력관계를 강화해 가고 있다.
1) 영적 상황
가톨릭이 국교였던 콜롬비아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의 성장기를 맞고 있는 콜롬비아는 갖은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개척교회들과 지교회들이 많이 세워지고 있다. 하지만 교회론과 축복론에 대한 물질주의적 경향은 대형교회의 추구, 독립교단의 확산, 기복신앙과 이단의 성행을 낳고 있다.
오픈 도어즈의 세계선교 현황에 대한 보고(2021년)를 보면, 콜롬비아는 게릴라, 범죄 집단, 원주민 사회의 폭력과 세속적 편협함이 커지면서 기독교 박해 순위가 세계 30위를 점한다고 한다.
160년이 넘는 미 장로교단의 콜롬비아 선교역사를 시발로 각 교단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의 초창기 선교사역은 지형학적, 정치 사회적 어려움 속에서도 기독교의 뿌리를 내리고 있었으나, 시민전쟁과 게릴라, 마약의 문제들, 가톨릭의 박해 등의 상황 속에서 기독교는 국가와 사회에의 복음적 영향력을 크게 발휘하지 못했다.
오늘날도 기독교 복음화율이 점차 높아가고 있으나, 신학과 영성으로 준비된 목회자의 부족 문제, 바른 교리 및 성경적 신앙관 형성의 과제 등은 성장의 시대에 교회들이 각성하고 새롭게 정립해 가야 할 과제들이다.
2) 부단히 진행되어야 할 옥토화 작업의 선교 현장
가톨릭적 전통에 깊이 뿌리를 둔 나라이지만, LGBT 인구가 높은 콜롬비아는 중남미에서 4번째로 동성애 결혼이 합법화되고, 성 소수자 인권에 대해 정규학교 교육과정을 통해 그 권리와 자유를 가르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성 소수자들의 인권 문제에 대한 기독교의 태도는 확고하고 기독교 정치인들의 비성경적 사안들에 대한 강경한 대응 자세는 사회 전반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또한 수년 전부터 지속되고 있는 베네수엘라 난민의 자유로운 입출국은 난민들의 지원과 통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으며, 특히 팬데믹 상황에서 치안과 경제에 어려움을 일으키고 있다.
난민들은 자국의 부정부패와 경제적 폭망으로 고국과 인근 국가들을 오가며 생계와 안정을 위해 부단히 싸워야 하는 고통받는 이웃이기에 교회는 선한 사마리아인 되어서 이들을 돌보고 복음과 주님 사랑으로 세워나가야 할 축복의 시간을 맞고 있다. 부정부패뿐 아니라 여전한 게릴라 문제와 마약 등으로 불안정하고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의 회복, 질 좋은 교육의 부재와 비전의 부재로 방황하는 젊은 세대들의 영적 부흥, 흩어져 있는 많은 인디언 부족들의 복음화 등 할 일이 교회를 부르고 있다.
주님께서 옥토화 작업을 위해 부르시는 이 모든 분야의 일터는 이제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콜롬비아 교회들의 '아멘'을 통해 일꾼들이 세워지고 변화의 역사를 일으킬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땅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늘 새롭게 깨우치며 살아가기 위해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