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France)
최득신 송수연 선교사
(의미 : 순서대로 자유, 평등, 박애)
1. 일반정보1)
• 국명 : 프랑스공화국
• 정치형태 : 사회주의 국가. 대통령 중심제(5년 중임제)
• 면적2) : 551,695㎢(한반도의 2.5배)
• 인구3) : 6,680만
• 언어 : 프랑스어
• 기후 : 서안 해양성 기후(춥고 습한 겨울, 비교적 시원하고 건조한 여름)
• 종교 : 가톨릭 63~66%, 이슬람교 7~9%, 기독교 2%, 유대교 0.5~0.7%, 불교 0.5~0.7%, 무종교 23~28% 등
• 1인당 국민소득 : 41,200달러
• 산업별 국민총생산 분포 : 농업 1.7%, 산업 19.3%, 서비스업 79%
• 수입, 수출4) : 수입 5,390억 불, 수출 5,091억 불
• 우리나라와의 관계5) : 1886년 6월 4일, 한국과 프랑스 간에 우호 통상조약이 체결
한국전쟁 당시 파병 국가(3,200명 파병, 270명 사망), 2004년, 21세기를 위한 포괄적 동반자 관계 수립
1) 역사, 정치
프랑스 생성과 관련된 역사로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로마 가톨릭의 바탕 위에서 생성된 역사이다. 서로마 제국과 연결이 된다. 6)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7)게르만 민족은 서로마 지역으로 대거 이주하고 8)프랑크 왕국을 세운다. 프랑크 왕국의 카를대제가 9)신성로마 제국 황제의 관을 받음으로 신성로마제국의 맥을 잇게 되고, 후에 프랑크 왕국은 10)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3개 국가로 나뉘게 된다. 이 역사에 따르면 프랑스는 로마 가톨릭의 바탕 위에서 형성된 나라다.
다른 하나는 기독교의 바탕 위에서 생성된 역사이다. 서로마 멸망 후 프랑크족은 클로비스 1세가 메로빙거 왕조를 만들며 왕국을 수립하게 된다. 클로비스는 기독교로 개종한 왕으로 프랑크의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는데, 이 클로비스 때를 프랑스 역사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 역사에 따르면 프랑스는 기독교의 바탕 위에서 형성된 나라다.
일반적으로 전반부의 역사를 인정하지만, 어떤 역사가 프랑스의 생성인지 정확히 가리기가 힘들지 않을까? 역사에 따라 기독교로 시작된 나라인지, 가톨릭으로 시작된 나라인지 갈려질 것이다.
프랑스의 역사에서 가톨릭과 기독교의 갈등에서 비롯되는 사건이 매우 많다. 가장 큰 사건은 나라의 정치구조가 절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는 11)시민혁명이라 할 수 있다. 유럽 전역을 전쟁으로 몰아넣고, 결국 유럽의 새로운 시기를 열게 하는 이 시민혁명은 위그노(프로테스탄트) 핍박에서 시작이 된다.
유럽에서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12)300여년 동안의 오스트리아와의 갈등, 가톨릭에 대한 개혁으로 일어난 위그노의 대학살과 핍박, 그로 인하여 일어난 13)기독교인 중산층의 대 이주, 그리고 시민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공화국으로 정착이 되어가는 과정을 볼 때, 프랑스의 역사에서 프로테스탄트(위그노)의 영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2) 사회환경 및 경제
프랑스는 농업 국가이다, 우리나라의 2.5배에 달하는 면적을 가졌고, 많은 14)농업면적을 가지고 있다. 조상부터 내려오는 농업을 이어받아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수입은 웬만한 직장인보다 훨씬 높다. 15)치즈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관광산업을 통한 수입이 매우 크다. 그러나, 테러 이후 관광수입은 크게 줄어들고 있다. 프랑스가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을 지탱하는 것은, 관광산업 이외에도, 고부가가치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핵, 로켓, 비행기 제조, 의약품, 고속열차, 게임개발, 금융 등 사치품산업(패션, 화장품 등)은 전 세계에서 탑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3) 문화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문화가 발달하여 있는 국가로 인정한다. 음악과 미술(그림, 조각, 건축 등)의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배출했고, 많은 명작과 건축물들이 현지에 남겨져 있다. 그 작품들은 지금도 세계적인 관광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예술을 사랑하는 국민 정서가 있어서, 많은 극장에서는 항상 예술 공연들이 공연되고 있고, 지금도 여전히 예술인들에 대한 보호와 대우가 가장 좋은 국가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프랑스 빵 문화를 대표하는 바게트, 요리, 언어 등의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민족이다. 국가의 관문인 공항에 세계 공용어인 영어가 없는 나라, 영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는 많지 않을 것인데, 프랑스는 그 문제도 신경 쓰지 않는다.
프랑스 국민의 특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대화를 즐긴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의견을 존중하며, 어떤 생각을 하든 개인의 가치로 존중하는 것은 학교 교육 때부터 시작된다. 16세기에 칼뱅, 로욜라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16)같은 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러나 그들의 색깔은 너무 달랐고 유럽사회에 서로 다른 영향을 미쳤다. 칼뱅은 가톨릭에 대한 종교개혁자로, 로욜라는 가톨릭을 옹호하고 칼빈과 같은 개혁자를 처단하는 예수회 창시자가 된다.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이혼을 했든, 동성애자든 대통령의 사생활일 뿐 나라의 수장과는 연결하지 않는다. 필자가 프랑스에 거주한 지는 10개월이 되어 간다. 지내는 동안 느끼게 된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다. 아파트나 지하철 출입문을 닫을 때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하여 문을 잡아주는 것은 습관처럼 배어 있다. 프랑스의 음식 문화는 격식이 많다. 초대를 받을 때 음식은 8가지 순서를 거치면서 아주 천천히 즐긴다. 저녁 8시부터 시작하면, 새벽에 끝나는 경우가 많다. 대중음식점에서도 전식, 본식, 후식은 일반적인 순서이다.
2. 종교
앞에서 기술했던 것처럼, 유럽이 현재와 같은 국가로 형성된 것은 가톨릭과 기독교의 종교적 영향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는 전통적인 17)가톨릭 국가이다. 유럽은 종교와 정치의 일치된 구조에서 국가 간의 견제와 수많은 전쟁의 기간을 지나며, 흡수와 독립을 통해 현재의 유럽이 만들어졌다. 서로마가 멸망한 이후 18)프랑크 왕국의 왕이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까지 겸하게 함으로 명목상 로마제국의 정통성을 어어 받게 된다. 현대의 유럽 국가가 형성되기 전, 힘이 있는 국가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전수되지만, 그것이 현재의 유럽이 형성되는 데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고, 반면에 가톨릭과 기독교의 전쟁이 지금의 유럽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알아야 할 사항은, 유럽에서 기독교가 가장 왕성하게 일어난 국가가 프랑스였으며, 프랑스에서 기독교가 미친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과, 그 역사의 현장에서 크리스천들이 감당해야 했던 희생이 너무 컸고, 그 희생으로 인하여 프랑스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19)시민혁명이 이루어지며, 시민혁명은 오늘날의 프랑스로 만들어지게 되는 정신이 되었다. 필자는 프랑스를 알기 위하여 역사를 연구하며 이 나라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여전히 기독교에는 매우 적대적으로 대적하고 있는 나라임을 알게 되었다. 반면, 이러한 환경에서 현재 프랑스 안에서의 기독교회는 크게 성장하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1) 역사 가운데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 안에서의 기독교의 위치
20)▲생 제르만 데 프레 성당
프랑스의 종교현황을 언급하기 전에 프랑스역사 가운데 기독교가 어떤 역할을 했으며, 어떤 역사의 현장을 남겼는지를 보아야 프랑스를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는 16C 초부터 가톨릭 내부에서 개혁운동이 일어났으며, 프로테스탄트는 16C 후반에 칼빈의 영향 아래에 세워졌다. 이를 따르는 사람들을 위그노라고 불렀다. 21)독일을 시작으로 가톨릭에 대한 개혁운동이 일어나며, 유럽의 각 나라는 가톨릭과 기독교와의 대립이 일어났다. 종교분쟁은 국가 내의 내전에서 국가 간의 전쟁으로 확산되었으며, 가톨릭 국가와 기독교 국가와의 대표적인 싸움인 22)30년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일부의 국가는 서로를 인정하며 공존하기도 하였지만, 일부의 나라는 기독교만을 인정하게 되는 나라들도 있었다.
프랑스는 다른 유럽국가에 비하여 기독교가 상당히 부흥했었고, 국가 내의 세력이 가톨릭 세력과 기독교 세력으로 2분화 될 정도로 세력이 왕성했다. 기독교의 세력이 왕성한 만큼 갈등의 폭도 컸고 갈등은 유럽 전역에서 볼 수 없었던 대학살로 이어졌다. 23)바시에서 시작된 기독교인 대학살은 약 24)40년간의 위그노 전쟁으로 이어졌고, 국왕의 승인하에 이루어진 25)성바돌로매 축일의 대학살은 프랑스 전역의 기독교인들이 학살당하는 역사의 절정을 이루었다.
▲성 바돌로매 축일의 대학살의 시작의 종을 울렸던생제르망록스루와(Saint-Germain-l'Auxerrois)성당
▲산 자와 죽은 자를 세느강에 투척한 후 학살하는 장면. 세느강은 관광 명소이기 전에 순교의 장소이다.
파리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루브르 박물관, 노트르담 대성당, 보주 광장이 그 현장이며, 죽인 시체들은 세느강에 버려졌다. 전국적으로 약 7만~10만여 명(당시 파리 인구의 20%)의 기독교인들이 학살당한 역사 후에 26)낭트칙령(1598년)을 통하여 기독교를 인정하였지만, 그 후 약 90년 후에 27)퐁텐블루 칙령(1685년)으로 다시 기독교인들에 대한 매우 강력한 핍박이 이어지고, 수십만의 기독교인들은 핍박으로 인하여 영국, 스위스, 네덜란드 등 주변국으로 이동하였다. 그 결과 28)영국과 스위스의 산업은 크게 일어나고, 프랑스는 국가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고, 귀족들의 생활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된 많은 세금을 일반 서민이 떠안아야 했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왕과 왕비, 귀족들이 단두대에서 죽게 되는 유명한 시민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기독교가 받아들여지기 직전에서 기독교사에서 가장 비참한 사건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는 위그노 대학살을 통하여 프랑스에서 기독교라는 나무는 밑동이 잘려 버렸다. 유럽의 개혁을 주도한 칼뱅이 태어난 프랑스는, 유럽의 국가 중 기독교가 가장 왕성하게 일어났지만, 가톨릭과의 갈등 속에서 학살과 강한 핍박으로 죽음과 이주를 해야 했던 역사가 프랑스의 기독교 역사이다. 위그노 선조들의 순교 역사 위에 현재의 프랑스 기독교가 서 있다.
2) 종교현황
프랑스는 1872년 이후 인종이나 종교적인 데이터 수집을 법으로 금지해 오고 있다. 공식 석상이나 일반적인 모임에서는 종교적인 대화를 금기시하고 있다. 역사의 아픔과 개인적인 프라이버시에 대한 no touch 때문인 것 같다. 국가 안에서 정교 분리법이 통과된 것은 1905년이다. 국가적으로 종교적인 데이터 수집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인구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가를 산출한다는 것은 대략적이고 일반적인 데이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의 종교 현황은 29)가톨릭 85%, 이슬람 10%, 기독교 2%, 불교 1%, 유대교 1%, 기타 1%이다.
30)프랑수아즈 뒤부아위그노 대학살
3) 31)기독교 선교현황
프랑스에서는 1905년 전까지 정치와 종교가 하나였다. 종교 분리법이 발효된 1905년 이후 기독교 교회들을 대표하는 단체로 32)FPF(프랑스 프로테스탄트 연맹)를 국가가 조직하였다. 이 연맹이 기독교의 모든 것을 대표한다.
FPF가 국가에 의한 기독교의 대표 단체인 반면에, 복음주의 교회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33)CNEF(복음주의 협의회)가 있다.
(1) 프랑스의 기독교 현황.
가. 교단 현황 : 2012년 현재 30개 교단, 80 협회, 500 교회와 선교단체가 FPF에 가입이 되어있고, CENF에는(2016년 기준) 30여 개의 교단이 가입되어 있다. 약 10여 개의 교단은 double membership을 가지고 있다.
현재 프랑스의 교단 상황은 하나님의 성회가 가장 부흥을 하고 있고, 가장 많은 교회가 소속되어 있다. 장로교는 감소하는 추세이며, 침례교도 중요한 교단으로 인정받고 있다.
필자가 하나님의 성회에서 가장 크게 부흥하고 있는 교회와 일반 장로교회, 침례교회에서 일정한 기간 예배를 드린 적이 있다. 부흥하고 있는 하나님의 성회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60~70% 정도 차지하고 있고, 예배의 형식도 찬양 40분(찬양 마지막 부분에서 성찬, 성찬은 매주 시행), 광고, 메시지 40분으로 매우 단순화되어 있고, 장로교회나 침례교회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교회의 예배순서와 비슷하지만(앉고 일어서는 것도 비슷), 일부 교회는 찬양과 순서가 가톨릭의 미사와 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이런 교회들은 프랑스 현지인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나. 교회 상황 : 2012년 기준으로 현재 34)프랑스 본토에는 2,112개의 교회가 있다. 1970년대 이후 2012년까지 1,343개의 교회가 생겼다. 이 기간에 생긴 교회의 수는 매10일 마다 1개의 교회가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시기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교회가 확장된 시기와 비슷한 시기이다. 교회가 늘어나는 숫자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숫자는 미세하게 줄어들고 있다.
현재, 파리에 71개의 교회가 있고, 대부분의 35)지역에 20여 개 정도의 교회가 있다. 교회가 전혀 없는 지역도 일부 있다. 10,000명을 기준으로 교회 숫자를 보면, 파리가 0.8~1개, 그 외의 지역은 0.01~0.2 가 대부분이다.)
<1970년부터 2012년 사이의 교회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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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
2012 |
42년간의 증가 |
매년 증가 수 |
교회수 |
769 |
2,112 |
1,343 |
31 |
다. 성도 상황 : 2016년 현재 기독교인의 수는 170만 명 정도로 예상한다. 이 중 70만 정도가 규칙적으로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데, 이는 프랑스 인구의 1% 정도 되는 숫자다.
1950년에서 2012년 사이 프랑스에서 주일 성수를 하는 교인의 증가 상황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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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
2012년 |
62년간의 증가 |
매년 증가 수 |
교회수 |
249 |
2,112 |
1,863 |
34 |
성도수(주일성수) |
50,000 |
460,000 |
410,000 |
6,613 |
프랑스에서 교회의 상황과 성도의 상황의 통계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교회의 출생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고, 매 주일을 지키며, 경건하게 보내는 성도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프랑스의 개신교회의 미래가 매우 희망적으로 진행될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많은 국가의 교회가 매물에 놓이고 모스크로 변하기도 하고 술집과 극장으로 변하고 있다. 프랑스는 교회 수가 부족해서 한 예배당에 3~4개의 다른 민족의 예배들이 두시간 단위로 시간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부흥하는 교회는 장소가 부족하여 다른 건물을 임대하여 예배를 드리는 교회도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 유럽국가와 미국 등 기독교 국가의 교회 상황이 매우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에서 프랑스의 통계는 매우 인상적이다. 프랑스 안에서 펼치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으실 것 같다.
4) 프랑스의 선교과제
프랑스는 현재 기독교가 꾸준히 성장해 가고 있는 추세이다. 프랑스는 다민족국가이다. 전체 인구의 10%가 무슬림이며, 프랑스에서 가장 크게 증가하고 있는 인구가 바로 이 무슬림들이다. 또한, 기독교 배경의 아프리카 사람들도 아주 많이 들어와 있다. 이들에 대한 퍼센트는 공식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
(1) 프랑스 내부에 거주하고 있는 무슬림들에 대한 선교는 36)북부아프리카 선교에 있어서 중요하다. 북부아프리카는 선교사들의 사역이 매우 제한되는 나라들이며, 국가들은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비개방 지역으로 강한 이슬람 국가들이다. 이들의 원주민은 베르베르족이지만, 국민의 50~70%가 아랍인이다. 대부분 아랍어, 불어, 베르베르족 언어를 사용한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은 대부분 북부아프리카 사람들이다. 폐쇄적인 자신들의 국가를 떠나 복음을 만나기에 열린 환경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미 프랑스의 자유적인 문화를 경험한 사람들이고,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들이다. 무슬림들의 생각과 정서가 쉽게 변하지 않겠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이 복음을 듣고 훈련된다면 자신들의 국가에 좋은 일꾼이 될 수 있다.
(2) 프랑스국가 내의 교회들이 강해져야 한다.
전 세계에서 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가 50개 국이며, 아프리카의 52개 국가 중 25개 국가가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아프리카에서 불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은 이슬람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불어를 자유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들어가야 하는 나라들이다. 특히 이런 나라들은 프랑스와 프랑스 국민들에 대한 동경이 있다.
프랑스의 복음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선교사가 필요한 이유는 불어권 국가의 선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선교사가 이러한 나라들에 들어갈 때, 더 효과적인 선교를 기대할 수 있다. 미국이 기독교 국가로서 세계 선교에 큰 영향을 미친 것처럼, 프랑스도 상황적으로 불어권 국가에 그러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국가이다.
프랑스는 선진국이다. 교회는 부흥하고 있지만, 재정적으로 매우 열악하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외국의 도움에 의지한다. 프랑스가 불어권 국가에 복음의 기지가 되기 위해서는 프랑스 내의 교회가 강해져야 한다. 이것이 프랑스를 불어권 선교의 기지로 사용되는데, 가장 중요한 과제인 것 같다.
대부분의 유럽국가의 교회들이 숫자가 줄어들고, 은퇴하고 나이가 드신 분들이 대부분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프랑스는 좀 다른 것 같다. 필자가 예배를 드렸던 프랑스 개신교회 들은 다양한 연령층의 성도들이 있었고, 주일학교도 상당히 많은 숫자였다. 물론 필자가 다녔던 교회는 모두 파리와 파리 주변에 있는 교회들이다. 시골의 교회들 상황은 다를 수 있다. 이들이 헌신할 수 있다면, 프랑스교회는 충분한 가망성이 있을 것 같다.
(3) 프랑스에는 선교사가 필요하다.
세계 어떤 나라가 선교사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현재 세계적으로 선교사가 없는 국가 중의 하나가 바로 프랑스다. 한인교회도 가장 적은 나라 중의 하나이다. 수도인 파리에 한인교회의 수가 14개이다. 유럽의 다른 국가의 중소 도시와 비교해봐도 아마 가장 적은 수일 것이다. 이유는 불어권이고 재정적인 부담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불어를 사용하는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도 선교사들의 수는 적다.
(4) 현재 프랑스의 이슈
프랑스의 정신은 ‘자유’ ‘평등’ ‘박애’다. 절대군주제에 대한 반동으로 시민혁명이 일어나면서 생겨난 정신이다. 왕과 귀족에게만 주어진 권리를 평민들도 동일하게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종과 민족을 초월하여 전 세계의 사람들이 프랑스에 입국하여 프랑스 사람들과 동일한 혜택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이 정신 때문이다. ‘박애’는 우리말로 표현한 것이지만, 오히려 ‘관용’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모든 사람에 대한 포용, 즉 외국인도 자국인도 동일한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이 정신에 대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벌어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37)테러로 국민의 정서가 바뀌기 시작하고 있다. 프랑스의 근본정신이 변해가고 있다. 모든 외국인에 대한 포용과 관용에 대한 거부감을 갖기 시작하고 있다.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이슬람의 테러를 프랑스 국민들이 직접 몸으로 경험하면서, 프랑스 정신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공식적으로 차기 대통령으로 출마를 공식화한 38)사르코지는 외국인 범죄 위험자는 자국으로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막대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미 프랑스 인구의 10%가 39)무슬림들이다. 프랑스 전역에 걸쳐서 합법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무슬림 중에 어디에 얼마나 테러 용의자들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또한, 이슬람국가인 시리아 난민들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를 막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프랑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고, 프랑스가 어떻게 변해갈지 모르겠다.
기도제목
1. 프랑스 기도제목
- 프랑스에 테러가 없어지고, 안정되도록.
- 프랑스 땅에 있는 교회들과 사역자들을 위하여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교회들이 더욱 성장하도록,
사역자들이 성령충만하고, 순수한 복음으로 서도록)
- 700만 무슬림들을 위하여
(무슬림의 복음화를 위하여, 무슬림들을 위한 사역자들이 많아지도록,
무슬림들이 복음으로 제자화 되고, 복음을 전하는 통로되도록)
2. 개인 기도제목
- 후원교회와 개인 후원자들에게 은혜와 기쁨을 주시고, 이들의 헌신이 열매로 나오도록.
- 선교사로서 기본에 충실하고, 하나님의 뜻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과 기도의 삶을 지속하도록)
- 정착과정을 잘 마무리 하도록
- 건강을 위하여
(송수연 선교사의 골다공증과 무릎과 손 마디의 관절염이 치료되도록,
최득신 선교사의 눈이 건강해 지도록)
- 성민이와 성경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도록.
성민이의 진로를 인도해 주시고, 필요한 지혜와 지식을 주시도록
- 필요한 재정을 공급하여 주시고, 삶과 사역에서 은혜와 기쁨이 충만하도록
- 기도의 300 용사를 주시옵소서.
1) The World Factbook(CIA, 2016.6)
2) 5곳의 해외 영토를 포함한 총면적은 643,801㎢
3) 연령층 분포 : 0~14세(18.59%). 15~24세(11.8%). 25~54세(38.04%). 55~64(12.44%)
65세 이상(19.12%). 평균연령 41.2세(남성 39.5세. 여성 42.9세).
인구증가율 : 0.41% (1,000명 기준-12.3명 출생, 9.3명 사망)
4) 2015년 기준. 주요수입은 기계와 장비, 자동차, 원유 등. 주요수출은 기계와 운송 장비, 비행기, 화학물질, 의료 약품.
5) 2015년 9월~2016년 8월 : 프랑스에서 한국의 해로, 2016년 3월~2016년 12월 : 한국에서 프랑스의 해
6) 서로마는 AD 476년에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멸망. 게르만 민족은 라인강 주변에 살았던 여러 부족들(반달족, 서고트족등..)의 명칭.
7) AD 481년 클로비스가 메로빙거 왕조를 열면서 프랑크 왕국 설립.
8) 프랑스라는 뜻은‘프랑크 인의 땅’
9) AD 800년 12월 25일에 칼빈의 고향인 느와용의 성당에서 황제 즉위식.
10) AD 843년 베르댕 조약.
11) 왕실의 사치와 대외 전쟁, 위그노의 이주로 국가 재정이 어려워지고 과도한 세금으로 인한 평민의 불만이 고조되자 루이 16세는 삼부회(평민이 성직자, 귀족과 함께 모이는 최초의 회의)를 소집하나 결렬되고 평민은 국민의회를 결성한다. 루이 16세가 국민회의를 해산하려 하였고 평민들은 폭정의 상징인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고 혁명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국민의회는 프랑스 인권선언(특권폐지, 자유, 평등, 국민주권)을 발표한다. 시민혁명은 크게 1789년 7월 14일부터 1794년 7월 28일에 걸쳐 시민들에 의하여 일어난 혁명을 의미.
12)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는 오스트리아 왕,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스페인 왕을 겸하고 있었고, 유럽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왕조였다. 이탈리아 점령을 놓고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긴 싸움이 시작된다. 당시 프랑스는 동쪽에는 오스트리아, 서쪽에는 스페인과 접하고 있어서 남쪽과 접하고 있는 이탈리아까지 오스트리아에 빼앗기면, 프랑스로서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되기에 국운을 건 전쟁이 300년 동안 벌어진다.
13) 프랑스의 기독교의 시작인 위그노(프로테스탄트)는 기술자와 상업인, 학자, 법률가 등 중산층이었고, 이들은 프랑스 내 경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4) 프랑스의 농업인구는 전체 인구대비 3%이나, 고부가가치의 농산물을 생산함으로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15) 프랑스 치즈의 역사는 AD 800년부터 시작이 되며, 현재 약 360여 개 종류의 치즈를 생산한다. 치즈는 포도주와 함께 프랑스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식품이다.
16) 몽테귀 컬리지
17) 16세기 가톨릭에서 개혁운동이 일어난 후 17세 초까지는 갈등과 화해의 시도가 있었으나. 루이 14세 통치(1638~1715) 이후부터는 완전한 가톨릭 국가로 전환되었다
18) 프랑크 왕국은 지금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전신이다.
19) 1789년~1794년에 시민들에 의해 일어난 혁명으로 봉건체제의 다른 유럽국가에 영향을 미쳤다. 혁명의 구호로 내걸었던 자유·평등·박애의 이념이 지금의 프랑스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20) 파리 최초의 성당 생제르만 데 프레 성당(Eglise Saint Germain des Pres) 1400년경 개혁운동이 있었으며, 성모마리아 상을 우상이라 하여 땅속에 파묻었다.
21) 프랑스에서의 종교개혁은 가톨릭 교회 안에서 자체적으로 시작이 되었다. 파리의 최초의 성당인 생제르만 데 프레 성당에서는 유럽의 종교개혁의 불씨를 댕긴 독일의 루터 이전 약 100년 전인 1400년경 성모마리아 상을 우상이라고 하여, 땅에 묻었었고, 개혁적인 사재들이 이단으로 정죄를 받기도 했다(생제르망 데 프레 성당 주변 정리를 하던 중, 오랜 기간 땅에 묻혀있었던 마리아상을 발견하고, 현재는 다시 성당에 놓여 있다).
22) 30년 전쟁 : 1618~1648. 독일에서 일어난 유럽의 가톨릭 국가와 기독교 국가 간의 전쟁.
23) 1562년 바시에서 가톨릭의 고위관료가 창고에서 예배드리던 기독교인들을 학살한 사건
24) 1562년~1598년(바시대학살~낭트칙령). 에스파냐는 가톨릭을, 영국은 프로테스탄트를 각각 원조하여 국제전으로 변모하다가 앙리 4세가 낭트 칙령을 발표(1598년)하여 프로테스탄트에게 신앙의 자유를 인정함으로써 끝났다.
25) 1572.8.24. 새벽 1시 30분에 루브르 박물관 근처의 생제르망 룩세루아 성당의 종소리를 신호로 기독교인들에 대한 학살과 약탈이 시작됐다. 7일 동안 프랑스 전역에 걸쳐 7만~10만 명의 위그노(프랑스 개신교도)들이 가톨릭교도들에게 학살당했다. 로마교황청에서는 위그노들을 죽인 이 날을 축제일로 지정하여 기쁨에 도취하였고, 영광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1572년 위그노들의 학살”이라고 적힌 기념 주화를 만들었다. 이 역사는 기독교사에서 가장 비참한 사건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고, 이 역사 때문에 현재 프랑스는 8월 24일 모든 성당의 종을 울리지 않고 있다.
바돌로매 축일: 프랑스는 성인들을 위한 날들을 지정하여 성인들을 기념하는데 8월 24일은 예수님의 제자 바돌로메를 기념하는 날
26) 앙리 4세는 개신교회 편에 선 첫 왕으로 낭트칙령을 발표. 낭트칙령은 유럽에서 최초로 개인의 종교 자유를 인정한 칙령.“모든 이에게 믿고 싶은 종교를 믿을 자유를 부여하노라. 누구도 종교를 이유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아니 된다.”
27) 절대군주, 태양왕으로 불렸던 루이 14세에 의해 반포“가톨릭 외에는 어떤 종교도 인정하지 않는다.”종교자유 박탈로 프랑스는 로마 가톨릭으고 되돌아가고, 유능한 개신교들은 외국으로 이주한다.
28) 초기 프랑스의 기독교인들은 법관, 상공인, 기술자 등 중산층의 사람들이 토대를 이루고 있어서 이들의 집단 이주는 국가 간의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29) 프랑스에서 무종교가 25% 정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들도 가톨릭의 범주 안에 둔다. 프랑스가 전통적으로 가톨릭 국가이고, 나라의 행정과 국경일이 가톨릭과 연계되어 있다.
30) 프랑수아즈 뒤부아위그노 대학살(1572.8.24. 성 바돌로메 축일) 스위스 로잔 미술관.
31) 출처 : 2016년 6월 28일-7월 1일. 파리. 사하라 선교대회(박종호 목사).
32) la F d ration protestante de France.
33) Le Conseil National des Evang liques de France (CNEF 프랑스 복음주의 협의회)
1960년대에 CEIA(Centre Evang lique d’Information et d’Action 복음주의 연구와 활동기구)의 책임자들이 프랑스 인근의 노정 신학교에서 만남을 갖고, 프랑스의 복음주의 교회의 공식적인 연합회 창설에 의견을 모았다. 그 결과 1969년에 FEF(la F d ration vang lique de France 프랑스 복음주의 연맹)가 만들어졌다. 그의 임무는 복음주의 연맹의 일을 병행하며 복음주의 운동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그러나 FEF에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이 등록이 안 된 이유로 2010년도에 CNEF를 다시 만들게 됐고, FEF가 지금도 존재하고 있지만, 이제는 CNEF가 거의 모든(70%) 복음주의 교회들을 대표하고 있다.
34) 프랑스 본토에 포함되지 않은, 그러나 프랑스국가에 포함된 섬 등에 있는 교회는 통계에서 제외되었음.
35) 1956년 이후 프랑스의 행정구역은 27개의 지역으로 나누어 졌고, 2016년 1월 1일부터 18개 지역으로 통합되었다.
36) 북부아프리카 국가는 이집트,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모리타니아이다. 프랑스에는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37) 2015년 1월 샤를리 에브도와 유대인 식료품점 테러-17명 사망
2015년 11월 13일 바스티유 바타클랑 극장을 중심으로 한 7곳 동시 테러 -130명 사망, 356명 중상
2016년 6월 13일 경찰 부부 테러.
7월 14일 니스 트럭 테러- 40명 사망. 100여 명 중상
7월 27일 86세의 성당 신부 테러
9월 초. 노트르담 가스폭발 테러 미수(테러 기도자 여성3인 체포)
38) 2007년 5월 16일부터 2012년까지 프랑스 공화국의 대통령을 역임했던 사람.
39)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의 호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