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United Republic of Tanzania
방인혜 선교사(탄자니아 주재 바울선교회 선교사)
탄자니아 합중국(United Republic of Tanzania)은 동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이며, 1961년에 독립한 탕가니카와 1963년에 독립한 잔지바르가 1964년에 통합하여 생긴 나라이다. 수도는 도도마이며, 흔히 탄자니아(Tanzania)라고 부른다.
19세기 초에 아랍 상인들이 탄자니아에서 노예무역을 수행하였다. 1880년대부터 1919년까지는 독일의 식민지였으며, 그 후 1961년까지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1960년에 줄리어스 니에레레가 영국령 탕가니카의 장관이 되었고, 그는 1961년에 독립국 탕가니카의 총리가 되었다. 탕가니카는 1963년에 독립한 잔지바르와 합병, 1964년 4월 26일에 탄자니아 공화국이 되었다.
니에레레는 정의와 평등을 '우자마'로 불리는 아프리카적인 마르크스주의를 도입하였으나, 집단 농장제의 실패로 경제는 파탄하고 식량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다. 현재는 시장경제 중심의 경제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1979년 우간다가 탄자니아 북부 지역을 침공하자, 탄자니아는 우간다에 선전 포고를 하고 반격하여, 우간다군을 격퇴하고 독재자 이디아민을 축출하였다. 니에레레는 1985년 알리 하산 음위니에게 권력을 넘겨주었으나, 집권당 의장직은 1990년까지 유지하였다. 1995년 10월에 일당제가 종식되고, 최초의 다당제 선거가 이루어져, 1995년 11월 23일 벤자민 음카파가 탄자니아 연방 공화국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현 대통령 존 마구푸리가 2015년에 취임했다.
탄자니아의 면적은 945,087㎢(한반도의 약 4배)로서 세계에서 31번째로 넓은 나라이다. 나이지리아의 크기와 비슷하며 이집트 다음가는 넓이이다. 북동부는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산을 비롯해 산악 지대가 주를 이루며, 북서쪽에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넓은 빅토리아호와 아프리카에서 가장 깊은 탕가니카호 등 호수 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중부 지방은 넓은 평원과 경작 지대가 펼쳐져 있다. 동쪽 해안 지대는 덥고 습하다. 잔지바르 섬은 바로 동쪽 해안에 접해 있다.
탄자니아에는 북쪽의 응고롱고로 분화구와 세렝게티 국립공원, 남쪽의 셀로우스 사냥 제한지역과 미쿠미 국립 공원 등을 포함해 생태학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광대한 규모의 야생 공원이 여럿 있다. 서쪽의 곰베 국립공원은 제인 구달 박사의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곳이다.
메루산 - 4556m
킬리만자로 - 5,896m(아프리카 대륙 최고봉)
탄자니아는 30개 주로 구성되어 있다. 바울선교사 5가정은 잔지바르 섬에 거주하고 있으며, 싱글 한 가정은 내륙의 은좀베 주에 거주하고 있다.
사바나 기후. 우기와 건기로 나뉘는데, 우리나라와 반대로 12월에서 4월까지는 우기로 따뜻한 편이고 5월부터 11월까지는 건기로 비교적 쌀쌀한 편이다. 대부분 농사를 우기에 짓고, 건기에는 건축이나 다른 일에 종사한다. 계절은 한국과 정반대로 생각하면 비슷하다.
탄자니아의 아프리카인 주민들은 120개가 넘는 여러 민족에 속한다. 이 가운데 수쿠마족, 하야족, 니아큐사족, 니암웨지족, 차가족은 그 수가 1백만이 넘는다. 수쿠마족과 니암웨지족을 비롯한 대부분의 탄자니아인은 반투족 계열이며 마사이족, 루오족 등 닐로트족 계열 민족도 있다. 이외에 코이산어족과 아프리카 아시아어족의 일파인 쿠시어군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도 있다. 또 남아시아인, 아랍인, 유럽인들을 포함한 비 아프리카인 주민들도 전체 인구의 1%를 차지한다. 잔지바르에는 아랍인과 인도 사람들도 다수 거주하고 방인혜 선교사가 사역하는 지역은 음베나족이 살고 있다. 농사를 짓고 비교적 부드러운 사람들이다.
민족마다 고유의 언어가 있다. 1984년 헌법엔 지정된 공용어는 없으나 각 민족 간 융합을 위하여 줄리어스 니에레레가 스와힐리어를 국민 언어로 육성하여서 국민 대다수가 스와힐리어를 쓴다. 모든 정부 업무는 스와힐리어로 집행되며 부처에 따라 스와힐리어와 영어가 동시에 사용되기도 한다. 초등학교의 교수 언어는 스와힐리어이고, 중등학교 이상에서는 영어가 대신한다. 공공 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말할 수 있다. 방인혜 선교사가 사는 지역 사람들은 키베나라는 종족 언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키스와힐리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은 점점 키베나를 잊어버린다.
토착 종교와 이슬람이 각각 35%, 기독교가 30%로 종교 다툼이 비교적 심하지 않은 나라이다. 기독교라 할지라도 가톨릭이 거의 30%를 차지하고 루터란과 성공회가 식민지의 영향으로 주를 이룬다.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이 성장하고 있으나 기적과 체험을 중시하는 반면 말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성도들의 삶의 변화가 더디다. 해안가와 잔지바르 등에는 이슬람교가 주를 이룬다.
탄자니아는 주로 농업에 기반을 둔 중앙계획 경제체제의 개발도상국이다. 2016년도 1인당 GDP가 842.37$이고 참고로 미국은 57,220$, 그리고 한국은 25,990$이다. 경작지가 극히 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인구의 4/5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생산량은 변동 폭이 상당히 크며, 가뭄과 연료, 기계류의 부족 때문에 심각한 부족 사태도 종종 발생한다. 정부는 커피, 잔지바르 섬에서 생산되는 정향, 목화, 사이잘삼, 캐슈나무 열매, 차, 담배 등 수익 작물 생산의 위축을 감수하면서까지 정책적으로 옥수수·카사바·수수·기장·벼·플랜틴 등의 식량 작물 재배를 장려하지만, 심각한 식량부족 상태는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다이아몬드 생산은 최근 급격한 감소추세에 있으며, 대신 금·소금·귀석류·석고·고령토 등이 생산된다. 석탄은 남서부 지방에서 채굴되며, 중국의 원조를 받아 석탄생산을 늘리고 철광산을 개발하려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거대한 광물 매장량과 관광 산업이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제조업은 주로 토산물의 가공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국영기업들이 주도한다. 식품가공업이 최대공업이며 그 밖에 직물·양조·담배 제조 분야가 발달해 있다. 전기는 주로 수력발전에 의존하며, 자주 정전이 일어난다. 시골 지역은 전기가 없어서 태양열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중국회사에서 탄자니아 전역에 도로를 건설하고 있다. 탄자니아에서 재료들을 자급하는 과정에서 환경을 파손하는 문제가 많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회사들이 많이 들어와 있고, 한국 회사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이 야생동물들을 밀렵하는 문제가 심각해서 공항에 이를 금지하는 큰 포스터들이 걸려있다.
휴대폰이 널리 보급되어 인구 대부분이 휴대폰을 소지하고 있으며 젊은이들은 스마트폰도 즐겨 사용한다. 인터넷은 모뎀을 사용하며 지역에 따라 속도의 차이가 있다. 초등학교 교사의 초봉은 원화 10만 원 정도에서 시작하며, 중고등학교의 교사 월급은 초봉 20만 원 정도에서 시작한다. 교사의 월급은 다른 직업에 비해 높은 편이며, 어린아이들에게 희망직업을 물으면, 의사, 변호사, 그리고 교사를 선호한다.
1999년도에만 해도 중등학교 교사의 월급이 5만 원 정도였는데, 18년 사이에 많은 인상이 있었던 것 같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노트북이나 컴퓨터를 사용하는 인구가 늘고 있는 반면, 여전히 가난을 벗어나지 못해서 하루에 한 끼조차 해결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교사의 경우 자동차를 소지한 사람들도 있으며, 많은 사람이 오토바이를 소유하고 있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자전거를 주로 운송수단으로 사용한다. 소를 이용하여 밭을 경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손으로 직접 일구는 사람들도 많고, 경운기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대부분 옥수수 농사를 짓고, 물이 많은 지역에서 벼농사를 지어 탄자니아 전역에 공급한다.
물 공급이 많이 열악하지만, 시골 지역에 1990년도에 공동 수도가 만들어져서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관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물 공급이 중단될 때가 많고 수질의 안정성은 매우 의문스럽다.
화폐단위: Tsh: 탄자니아 실링, 우리나라 원화의 약 1/2 가치
47,421,786명(2015년 어림) 어린아이를 많이 낳아서 노동 인력으로 사용하던 때와 달리 요즘 젊은이들은 2명에서 3명 정도로 만족한다. 아이들을 양육하는 비용이 부담된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젊은이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임신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낙태하기보다는 아이를 낳아 아버지 없이 기르는 경우가 많고 이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와 매우 다른 점이다.
1992년 일당 제도를 종식하고, 다당제 민주주의를 성립했다. 50년 동안 탄자니아는 문제가 많은 이 지역에서 안정을 유지해 왔다. 잔지바르는 내부적으로는 물론 본토와 결속하는 데도 문제가 많은 지역이다. 탄자니아는 1대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모두 10년을 통치했다. 2016년 제5대 대통령인 존 마구푸리가 당선되었다. 무슬림이었던 전 대통령과 달리 크리스천으로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뇌물과 비리를 없애기 위해 많은 정책을 펴고 있으며 많은 탄자니아 기독교인들이 그를 선호한다. 외부의 원조보다 탄자니아 경제의 힘을 강화하려고 힘쓰고 있다.
교육제도는 초등학교, 중등학교, 대학교 3단계로 되어 있으며, 초등교육은 무상, 의무로 실시되고 있다. 초등교육은 7학년까지 있으며, 시험에 합격하면 중등 4년제에 입학할 수 있다. 공부에 자신이 없거나 재정 형편이 되지 않는 학생들은 농업이나 그 밖의 기술을 배운다. 중등 4년제도 사립학교와 공립학교로 나뉘는데, 사립학교는 기숙사 학교가 많으며, 좋은 학교일수록 학비가 비싸서 가난한 사람들은 들어가기가 힘들다. 많은 탄자니아 부모들이 부부가 다른 지역에 살면서까지 일을 하는 이유도 자녀들은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함이다. 자녀들 역시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를 떠나 기숙사 학교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는 부유한 가정의 경우이고, 보통 사람들은 초등 7학년을 마치면 부모님을 돕다가 결혼을 한다. 고등 3년제만 마쳐도 상당한 교육을 받은 편이고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가는데, 다르에스 살람 대학이 명문이고 그 밖에 루터란 선교부에서 세운 사립대학도 점점 명문이 되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이 교육대학에 들어가서 선생님이 되기를 선호하는데, 요즘은 탄자니아 정부에 돈이 부족하여서 교사임용이 지연되고 있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춤과 노래를 좋아한다. 길가에서도 라디오를 들고 다니며 춤을 추고, 교회에서도 찬양 연습을 하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연습을 반복한다. 예전에는 소가죽으로 만든 드럼을 사용했으나 요즘은 키보드를 사용하는 교회가 많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옷을 잘 입는다. 영국 사람들이 자신들의 광물을 가져가고 옷이 없는 그들에게 옷을 가져왔다고 한다. 예전에는 포대를 의복으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헌옷 시장에서 저렴하게 구입하거나, 재봉사에게 직접 주문해서 자신의 스타일대로 옷을 지어 입는다.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아니면 결혼식 때도 어른에서 어린아이까지 모두 옷을 새로 지어 입는다. 일을 할 때는 허름하게 입지만, 시장에만 가려고 해도 깔끔하게 차려입는다. 여자들은 머리를 땋아서 기르기도 하고 가발을 쓰기도 하며 외모에 무척 신경을 쓴다. 화려한 색깔을 좋아해서 남자들도 울긋불긋한 의상을 즐겨 입는다. 여자들의 전통의상은 키탱게와 캉가인데, 큰 보자기 같은 천이다. 이것으로 치마를 두르기도 하고 추우면 상의에 걸쳐 입기도 한다. 머리에도 키탱게를 두르는 경우가 많다. 짧은 여성들의 머리에 두르면 매우 우아하게 보인다.
⦁주로 장작을 때서 밥을 지어 먹고, 도시에서는 숯이나 가스를 사용하기도 한다. 옥수숫가루로 죽을 쑤어 먹는데, 탄자니아의 대표 음식 '우갈리'라고 불린다. 채소를 잘게 썰어 기름과 함께 불에 볶아서 우갈리와 먹는 것이 탄자니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식사이다. 콩을 몇 시간 불에 삶아서 소금으로 간을 해 우갈리에 얹어 먹으면 이를 '마하라게'라고 부르며, 옥수수와 콩을 함께 섞어서 삶으면 이를 '칸데'라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많은 반찬을 곁들여 먹지 않고 주로 한가지 반찬으로 만족한다. 학교에서는 점심 급식이 나오는데, 항상 칸데가 나온다. 그래도 학생들은 불평하지 않고 맛있다고 한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하루에 세 끼를 다 챙겨 먹는 경우는 많지 않고, 아침에 차와 빵을 먹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대부분 오후 2시쯤 첫 식사를, 그리고 저녁 8시쯤 저녁을 먹는다. 고기를 좋아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자주 먹지는 않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먹는다. 집에서 기른 닭은 가격도 비싸고 맛있다. 다음으로 염소고기를 좋아하고 그다음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먹는다. 물은 끓여서 마시고, 학생들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뿌연 물을 그냥 마시기도 한다.
⦁탄자니아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은 말라리아와 장티푸스이다. 그래서 늘 화장실을 멀리 지어서 오염을 막으려 한다. 그 밖에 에이즈가 많아서 결혼을 앞둔 한 쌍은 에이즈 검사를 해야 한다. 혹 결과가 부정적이면 사랑하는 사이일지라도 거의 파혼한다.
⦁마을 단위로 보건소가 있어서 보건소에서 작은 병들은 치료를 받고, 특히 임신했거나 어린아이가 있는 엄마는 정기적으로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는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치아치료가 그냥 이를 뽑는 것 외에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치아가 빠지면서 나이가 점점 들어감을 느끼고 70세 정도에 다다르면 거의 모든 치아가 사라진다. 한국처럼 임플란트나 틀니를 보기는 정말 힘들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장례식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마을에 장례식이 있는 날이면 모두 일을 쉬어야 하고 가정에서 한 명씩은 장례식에 가야 한다. 교회 가까이에 있는 공동묘지에 묻히며, 우리나라처럼 화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혼식을 하는 커플은 매우 적으며, 대부분 그냥 혼인신고만 하고 함께 산다. 그 이유는 결혼식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신랑은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 신부의 아버지에게 돈을 주어야만 한다. 거의 200만 원 정도. 예전에는 소와 염소를 주었는데 요즘은 현금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혼인신고만 하고 사는 부부도 많지 않다. 젊은이들은 그냥 하룻밤 함께 자고 여자가 임신해서 남편 없이 아이를 기르는 경우가 많다. 결혼했느냐는 질문보다는, 아이가 몇이냐고 묻는다.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이곳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방인혜 선교사가 사는 지역에는 아내가 네 명 이상 되는 사람들도 있다. 무슬림들은 아내를 많이 가져도 되고, 추장들도 역시 그랬다. 예전에는 한 집에 모든 아내가 함께 사는 경우도 있었고, 같은 마을 다른 집에 사는 경우도 있었다. 아버지는 같고 어머니는 다른 아이들은 계모를 작은 엄마 또는 큰 엄마라고 부르며 별문제 없이 한 가족처럼 지내는 경우도 있지만 마음 내면 깊숙이 혼란스러워 한다. 아버지나 어머니에 대한 뚜렷한 개념이 없고, 배가 다른 형제와 계모, 계부와 어쩔 수 없이 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탄자니아 사람들은 쉽게 둘째 부인을 갖고 싶다는 농담을 하고, 심지어는 여자들까지도 내 남편 이혼해줄 테니 네가 결혼하라는 농담을 서슴없이 한다. 한 엄마, 한 아빠, 그리고 한 아내, 한 남편만 있는 가정에 사는 것은 매우 축복이며 그만큼 정상적인 가정을 찾기가 힘들다.
여자아이들은 중·고등학교나 대학교에 다니기 위해 부모와 멀리 떨어져 자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사이 유혹을 받아 임신하는 경우가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하는데, 남편이 한 명, 부인이 여러 명인 경우 모두 아버지 이름 아래 등록이 된다. 이곳은 자신의 이름과 아버지 이름과 성, 이렇게 세 가지 이름을 쓴다.
⦁이곳에는 마법사가 있다. 우리나라의 점쟁이 같은 사람들인데,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하고 병든 이들을 낫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들을 저주해 달라고 마법사를 찾는 이들이 있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남자의 역할과 여자의 역할을 크게 나누지 않는다. 남자들은 힘이 세고 일을 잘하는 여자들을 선호한다.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힘이 세고 농사를 잘 짓는 아내를 얻기를 소망한다. 우리나라처럼 여리고 손에 물도 묻혀보지 않은 어여쁜 여자 상과는 정 반대다. 남자들도 자신의 옷을 어렸을 때부터 빠는 경우가 많고, 여자들도 어렸을 적부터 밭일을 남자아이들처럼 돕는다. 남자들도 요리를 여자들처럼 잘하며, 굳이 아내가 식사를 준비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관공서에서도 여자들이 높은 자리에 있는 경우가 많고, 학교에서도 여자들이 더 뛰어나게 공부를 잘하여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도 많다.
⦁이곳 사람들은 머리에 물건을 이고 나르기를 좋아한다. 아이는 등에 업고 물건은 머리에 인다. 아주 익숙해서 무거운 장작도 쉽게 머리에 이고 나른다. 웬만한 물건은 손을 대지 않고도 중심을 잡아가며 마치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것처럼 걸어간다. 머리에 물건을 이는 것은 등을 곱게 하고 허리 건강에 좋은 것 같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손님들을 환영한다. 처음 본 사람에게도 우리 집에 오시라고 초청을 한다. 그래서 응접실에 좋은 의자를 들여놓기를 좋아한다. 음식을 대접하기를 좋아하고 식사하기 전에는 물을 가져와 손을 씻도록 도와준다. 손님이 오면 정성껏 대접하고 많은 손님이 와도 부담스러워하거나 꺼리지 않는다. 아이들의 친구가 오면 으레 함께 식사를 한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악수하며 인사를 한다. 길게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인사하기를 좋아한다. 교회에서 예배가 끝나도 악수를 하며 인사를 하고, 다시 또 한차례 악수를 한다. 인사를 짧게 하거나 악수를 안 하는 것은 상대방을 얕보거나 예의를 갖추지 않는 것이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검은색을 좋아한다. 마치 한국 사람들이 흰색이나 황토색을 좋아하듯 이 나라 사람들은 검은색을 좋아한다. 검은색 피부와 흰색 치아는 잘 어울려서 매우 건강하게 보인다. 대부분 다리가 길어서 옷을 입으면 쉽게 맵시가 난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거짓말을 쉽게 한다. 특히 장사하는 사람들은 물건을 팔기 위해서라면 온갖 거짓말을 서슴지않고 한다. 시장에는 가짜 상품이 많아서 진품을 사기가 정말 힘들다. 뭔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거래를 하다가 나중에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부끄러움이 별로 없다. 자신이 잘못해서 들통이 나도 부끄럽게 여기기보다는 웃음으로 넘겨버리고 만다. 간음해도, 이혼해도, 도적질해도, 거짓말을 해도, 별로 부끄럽지 않다. 외국인을 만나면 농담을 하기 좋아한다. 외국인이라고 꺼리고 피하기보다는 말을 시켜보고 싶어 하고 사적인 것에 관해 묻고 친구가 되려고 한다. 친구가 되려는 목적은 대부분 뭔가를 얻어 내려는 동기가 많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달라고 하기를 좋아한다. 한국 사람들은 배가 고파도 체면상 구걸을 싫어한다. 이곳 사람들은 체면이 별로 없는 듯하다. 무엇이든 보면 달라고 한다.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도 인사를 하고는 돈을 달라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선물이나 돈을 주면 절대 거절하지 않고 곧장 고맙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예의상 거절할 것을 기대하면 실망을 하게 된다. 선물을 자주 주면, 고맙게 생각하기보다는 더 큰 선물을 기대한다. 주고 싶어도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절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에 두 번째 가는 날 장로님이 나에게 교회 비품을 사려고 하는데 기부를 해 달라고 한다. 외국인이나 선교사는 그들에게 뭔가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처럼 보인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농담을 좋아한다. 키스와힐리어로 농담과 거짓말(쿠 당가냐)이 같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친구라고 부르며 농담하기를 좋아한다. 물론 진실된 크리스챤은 그렇지 않다.
⦁탄자니아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은 말라리아와 장티푸스이다. 그래서 늘 화장실을 멀리 지어서 오염을 막으려 한다. 그밖에 에이즈가 많아서 결혼을 앞둔 한 쌍은 에이즈 검사를 해야 한다. 혹 결과가 부정적이면 사랑하는 사이 일지라도 거의 파혼한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평화를 좋아한다. 다른 이들에 대해 나쁘게 말하기를 싫어한다. 증인이 되기도 싫어한다. 관계를 깨뜨리기 싫어하고 싸우기보다는 웬만하면 피해가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처럼 용감하게 불의에 맞서 올바른 말을 하는 사람도 적다.
⦁탄자니아에는 도둑이 많다. 우리나라 시골에서 살 때 거의 문을 잠그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래도 도둑을 맞은 적이 거의 없었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모든 물건에 이름을 쓴다. 그리고 시골집도 모든 문에 자물통을 달고 그것도 두 개, 세 개씩 다는 경우도 있다. 외국인은 경비를 세워도 도둑을 맞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가난한 현지인들도 물건을 도둑맞지 않기 위해 매우 조심한다. 시골에서는 닭이나 염소 도둑이 많고 심지어 태양열판과 전구까지도 도둑맞는다. 전화나 노트북 등은 도둑이 아주 좋아하는 물건이다. 빨래나 신발도 도둑맞는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 선교사로서 가장 힘든 부분 중 하나가 보안이다. 도둑을 맞아 경찰에 신고해도 감감무소식이고, 경찰서가 멀고, 보고하는 과정이 복잡해서 차라리 잊고 사는 것이 속 편할 때가 많다. 현지인들이 도둑질하다가 들키면,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와서 죽을 때까지 때린다. 혹 죽을지라도 괜찮다고 한다. 자신들도 도둑질하면서 도둑에게 잔인하게 대하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을 때가 많다.
탄자니아에는 유럽의 탐험자들이 식민지 통치와 함께 복음을 가지고 왔다. 그 역사가 한국보다 훨씬 오래되었으며, 유럽의 영향이 지배적이다. 유럽교회가 복음주의에서 벗어나 자유주의로 치달으면서 쇠퇴하듯, 탄자니아 교회도 꽃을 피워보지 못한 채 여전히 주는 교회가 아니라 받기만 하려는 어린아이 교회로 남아 있는 듯하다.
탄자니아에는 주로 개신교로는 루터란, 앵글리칸(성공회), 모라비안, 침례교, 안식교, 그리고 순복음교회가 지배적이고 이밖에 가톨릭도 많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가톨릭을 크리스천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침례교를 제외한 대부분 교회가 오래된 전통중심의 예배를 드리며, 조금씩 탄자니아인들의 찬양과 율동 그리고 교제를 겸하고 있다. 루터란, 성공회, 모라비안의 단점은 유아세례를 중요시 여겨서 유아세례를 받고 그 후에 입교하면 자동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종교적으로는 열심을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령님과 깊이 동행하는 크리스천을 만나보기는 힘들다. 방인혜 선교사가 참여하는 오순절 계통의 교회 담임목사님은 전에 루터란 교회 전도사였다. 형식적이고 예식적인 예배만 강조할 뿐 진정 성령으로 거듭나서 함께 성령안에서 교제하기를 갈급하던 중 마침내 전도사직을 그만두고 교회개척을 시작했다고 한다. 진지하고 경건하며, 말씀에 충실한 설교를 하는 것 같다. 전통적인 교회들이 예배형식에 치우쳐 성령의 임재가 부족한 반면, 극단적인 카리스마틱 교회들은 대중집회를 즐겨하며, 마이크로 큰 소리를 내며 병을 치유하고 귀신을 내어쫒는 집회를 많이 갖는다. 집회 때마다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만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병을 치유받고 물질적으로 더 풍성한 삶을 살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렇게 전통과 구복신앙적인 교회의 기류가 강한 반면, 말씀을 중요시 여기고 성령님과 동행하기를 즐겨하는 교회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루터란 성경학교에 오는 대부분 학생들의 최종학력은 초등졸업이다. 교육받은 사람들은 말씀을 전하는 주님의 일꾼이 되기를 사모하지는 않고 세상적인 출세와 고임금의 직업에 더 관심이 많은 듯하다. 목사나 전도사가 되어도, 자신들의 생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대부분 직업을 가지고 일하며, 순수하게 말씀 사역에만 전념하는 사역자를 보기는 힘들다. 성경학교에 오는 동기도, 주님의 사역자가 되려는 동기도 대부분 경제적인 이득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안식일교회는 좀 더 진지해 보인다. 옷도 더 단정하게 입고, 크리스챤 음악도 좀 더 절제하고 내용 있는 찬양곡들을 발표하고 노래해서 탄자니아 교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율법적이고 이단적인 이단성은 이곳에서는 큰 이슈로 등장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대부분 안식교 역시 크리스챤이라고 생각한다.
중·고등학생들의 가장 큰 기독학생회는 아마도 우쿠타(루터란 기독학생 연합회)일 것이다. 루터란 선교부는 많은 사립 중 · 고등학교를 세워서 이 나라에서도 명문으로 꼽힌다. 자연스럽게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이 연합회에 참석하며 나름대로 좋은 경험을 했다고들 말한다.
SU(스크립쳐 유니온, 성경연합회)는 중·고등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기도 하고 성경이나 묵상집을 보급하기도 한다. 리더쉽이 현지인에게 넘어가면서 재정적인 면에 발이 묶이고 이들의 사역에 큰 장애라고 말한다. 대학교에는 대학생 선교회를 비롯해 많은 크리스챤 학생 모임들이 있다. 안타깝게도 가장 큰 대학생 선교회 역시 간사들이 후원이 부족해 사역을 철수하는 경우가 있다. 사역이 좋고 부름을 받아서 간사의 길을 선택하기보다는, 기대 이상의 보상을 받지 못할 때 쉽게 철수하는 경우를 보는 것 같다.
탄자니아에는 많은 부족 언어가 있기 때문에 성경번역 선교사들이 많이 있다. 주로 SIL과 위클리프 선교사들이다. 이들은 다르에스 살람과 음베야 그리고 무완자를 중심으로 성경번역에 현지인들과 연합하여 애쓰고 있다.
탄자니아에는 한인 선교사들이 100가정 이상 있다. 1990년대 초에 들어와서 사역에 열매를 맺으며 이제 이양의 단계로 접어든 선임 선교사들이 많이 있고, 계속해서 신임선교사들이 들어오고 있는 추세이다. 많은 한인 선교사들이 학교를 설립하였고 설립하고 있으며, YWAM은 전도와 양육에 전념하고 있다. 잔지바르나 해안가의 미전도 종족에게 집중하여 사역하는 가정들도 있고, 북쪽의 마사이 미전도 종족에게 촛점을 맞추는 이들도 있다. 매년 한인 선교사 수련회가 있어서 함께 교제하며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반면 루터란, 앵글리칸, 침례교 서양선교사들은 거의 철수를 하여 성경번역 선교사들을 제외하고 외국선교사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침례교 선교사들은 더 큰 미전도 종족에게로 옮겨 갔으며, 탄자니아 교회가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말씀이나 재정적으로 연약하며 성숙하지 못하지만, 이제는 그들 스스로 서기를 기대하고 떠난 듯하다.
-참고 자료들-
https://ko.wikipedia.org/wiki/탄자니아
www.prayer24365.org/2011/.../prayer24365_wpi.php?...탄자니아
http://www.operationworld.org/tanz#prayer
정리 및 보고
방인혜 선교사
탄자니아 주재 바울선교회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