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권역 | 차드  / Chad

차드(Republic of CHAD)
김인태, 유지현 선교사(차드 주재 바울선교회 선교사)

 


 

 

1. 차드(chad)

차드는 아프리카 북부 중앙에 위치한 내륙국이다. 수도는 은자메나(N'Djamena)이다. 국토면적이 1,284,000㎢(한반도의 약 6.5배)이고 인구는 11,852,464명(2016년)이다. 차드는 오랜 식민 지배와 내전, 이웃 국가에서 난민 이주 등으로 아프리카에서도 두드러지게 언어, 인종, 종교가 다양한 국가이다. 특히나 거의 반세기에 달하는 오랜 내전으로 아프리카 최대의 독재국가 중 하나로 꼽히는데 아프리카 사헬 사막지대에 위치해서 가장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차드는 5세 미만 영유아 사망률이 전 세계 3위일 정도로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심장쯤에 해당한 위치에 있는 차드를 빗대어 '아프리카의 죽음 심장'이라고 할 정도이다.


2. 개괄정보

차드.jpg⦁ 면적 - 1,284,000㎢
⦁ 인구 - 15,617,644명
⦁ 수도 - 은자메나
⦁ 국가 - 차드의 노래(La Tchadienne)
⦁ 공용어 - 프랑스어, 아랍어
⦁ 정부 형태 - 대통령 중심제, 공화국
⦁ 대통령 - 이드리스 데비 이노트
⦁ 총리 - 칼주베 파히미 두베
⦁ 민족구성 - 사라족, 아라베족, 마요케비이족외 토착민
⦁ 종교 - 이슬람교 51%, 기독교 35%, 정령숭배 그리고 토속종교
⦁ UN 가입연도 - 1960년 9월 20일
⦁ 남북 수교 현황 - 대한민국 1961년 8월 6일, 북한 1969년 5월 8일
⦁ 1인당 GDP - 명목 881$(2016), PPP 1,865$(2011)
⦁ 교민 수 - 20명
⦁ 여행경보 - 전 지역 철수 권고


3. 역사

차드에는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사하라 사막 교역로에 있었다. 차드 호수 주변의 왕국으로선 700년경 카넴 제국이 처음으로 들어섰으며, 이후 14세기의 보르누 제국 등이 차드에 나타났다. 이 외에도 와다이 왕국 등의 몇몇 왕국이 존재했다. 그러다가 수단의 노예상이자 군벌 라비흐 앗 주바이르가 19세기 말 차드 호수 주변에 세력을 구축하기도 했으나, 결국 프랑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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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투쟁을 통해 차드는 1960년 8월 아프리카의 해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했고, 초대 대통령 프랑수아 톰발라예(Francois Tombalbaye)는 일당 독재 국가를 구축했다. 그러나 정권을 놓고 기독교인인 남부의 흑인 주민과 무슬림인 북부 비 흑인 주민 간의 대립이 이어졌고 결국 이러한 대립은 결국 내전으로 이어졌다.
차드 북부의 이슬람교도 사이에서 남부 지역을 기반으로 한 반정부 운동이 일어났고, 1966년 차드 북부의 반정부 단체인 차드 민족 해방 전서(FROLINAT)세워짐으로써 그 악명높은 차드 내전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리비아의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이 내전을 부추기기 위해서 FROLINAT에 군사지원을 하자, 열세에 몰린 중앙정부는 프랑스에 파병을 요청해 이후 차드 내전은 리비아와 프랑스가 개입한 국제분쟁으로 발전했다.
사실상 2018년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차드 내전은 1960년 8월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여 민족해방이라는 공동목표 아래 뭉쳤던 여러 부족 지도자들이 패권쟁탈을 위하여 갈라진 것이 내전과 쿠데타로 이어져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한편 이렇게 내전이 계속되는 동안에 1975년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여 톰발바예 정부는 무너지고 그 또한 축출되어 사망하게 되는데, 이때 콤발바예는 총을 너무 많이 맞아 시신이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하게 살해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그렇게 톰발바예가 살해당하고 펠릭스 말롬(Felix Malloum)에 의한 군사정권이 세워졌으나 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나고 대통령 암살 사건이 있는 등 혼란이 계속되었다. 결국 1979년 인접 5개국이 중재에 나선 끝에, 남북은 휴전 협정을 체결해 북부가 주도하는 과도거국일치내각(GUNT)을 수립했다.
1979년 혼란의 끝에 군사정권 지도자였던 펠릭스 말롬(Felix Malloum)이 망명하고 선거가 치러졌다. 이에 따라 1979년 8월 FROLINAT의 구쿠니 우에데이(GouKouni Oueddei)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FROLINAT 내부에 대립이 발생해 인민군(FAP)과 북부군(FAN)으로 나뉘어 파벌 투쟁을 벌였다.

 

차드_02.jpg이런 혼란한 상황 속에 결국 1980년 3월 FROLINAT 안에서 우에데이와 후세인 하브레(Hissene Habre) 사이의 내분이 일어나 다시 내전이 재발했다. 1980년 우에데이를 지원하던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는 군대를 보내고 1981년 차드의 합병을 선언했다가 아프리카통일기구의 비난으로 철수했고 1982년 결국 내전에서 승리한 아프레가 다시 차드의 수도를 점거하고 대통령이 된다. 그렇게 1982년 FAN은 GUNT를 타도하고 6인 임시위원의 국가위원회가 이끄는 정부를 수립했다. 그러나 과거 GUNT를 구성했던 파벌들은 대부분 자체 군대를 유지하고 있어 정부 지배력은 일부 지방에 국한되었다. 이 와중에 리비아의 카다피가 또다시 FAP를 지원하고 미국이 중앙정부를 지원하면서 차드 내전은 또다시 국제분쟁으로 발전했다.


게다가 1983년 리비아가 침공해 토요타 전쟁이 일어난다. 1984년에 이르러 우에데이 파도 분열되어 내전이 더 심해졌다. 그러나 리비아가 아무리 지원을 해봐야 미 국의 지원을 이기기는 무리였고 결국 미국의 지원을 받은 1986년 차드 정부군은 미국의 지원으로 리바아군 주둔지와 우에데이 파 거점을 점령했다. 그렇게 1986년 리비아가 지원하던 우마르 파가 패망한 1987년 차드 정부군은 차드 전체를 통일한 것 같았고 1980년대 말까지 하부레(Habre)가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그의 세력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하브레는 대통령에 있으면서 일단 확인되는 사람만 약 4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살해하는 폭압적인 독재를 펴댔고 이에 차드 내의 여론도 점점 하브레에게 부정적으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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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브레에 대한 비난이 높아져가자 1990년 하브레의 군사 고문이었던 이드리스 데비 이트노 차드 현 대통령이 리비아의 지원으로 다시 애국구원운동단을 만들어 게릴라전을 통해 다시 수도를 점령하고 권력을 잡았다. 1993년 잠정 의회인 ‘고등 잠정 평의회’를 발족시켜 1993년 최고 국민회의를 개최하고 신헌법 채택 등 민주화 조치를 벌였다. 이후 1994년 민정이관을 결정하였고, 1996년 신헌법에 의해 이드리스 데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1998년 5월 남부 반군 FARF와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FARF를 합법 정당화하여 남부 지역의 내전을 종결시켰다. 그렇게 1998년 남부 반군과의 평화협정이 체결됨으로 내전이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1999년 다시 반군이 새롭게 일어났다. 1999년 11월 토고미가 이끄는 MDJT 반군이 새롭게 일어나 북부 티베치 지역을 공격하고 2000년 3월과 7월에 대규모 교전을 벌이기 시작했고, 남부 지역에서도 소규모 반군 활동을 벌여 차드는 막장 상황에 빠졌다. 이후 부정선거를 통해 2001년 9월 반군과 협상을 제의했으나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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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은 현재진행형인데 이드리스 데비의 장기집권에 대한 차드 국민들의 염증이 내전발발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차드 반군을 이끄는 지도자 중에는 마하마트 누리 전 국방장관 등 데비 대통령 휘하에서 일했던 고위 관료들이 많다. 이들은 데비 대통령의 장기 독재와 부정부패에 불만을 품고 반군에 합류했다.
지난 2003년 이후 수단에서 오마르 알 바시르가 다르푸르 학살을 자행하여 수단의 난민이 차드로 흘러들면서 국경에서의 분쟁이 빈발하자 수단 정부는 차드의 반군을 지원하고, 차드 정부는 이에 맞서 수단의 반군을 지원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2008년에는 반군 공세가 강화되면서 은자메나가 장악되어 대통령이 대통령궁 주변에서 산발적으로 교전을 벌였다.
반군은 쫓겨났지만 2009년에도 동부 지역에서 교전이 계속되었다. 이들 반군은 상당수가 수단 공화국에서 지원하거나 수단에 근거지를 둔 이유로 차드가 수단 몇몇 지역의 반군 거점을 폭격하는 등의 행동을 해 수단과의 외교 마찰도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차드 반군과 정부군이 소년병을 모집했다.
현재 차드는 휴전 협정을 맺고 내전이 일시적으로 멈춘 상태이지만, 내전의 후유증은 심각한 상태이다. 지금 차드는 데비 대통령의 통제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국제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반군들의 활동과 차드의 만성적인 가난으로 데비 대통령이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많다.
2015년에는 보코하람과 싸우기 위해서 나이지리아에 파병을 보냈다. 내전으로 쌓은 경험치 때문인지 보코하람을 압도적인 상황으로 격파하는 미친 전투력을 보여줬다고 한다. 이로 인해 보코하람이 차드의 수도에 보복성 테러를 감행하기도 했다.


4. 사회와 경제

차드에는 석유 자원 및 우라늄을 비롯한 광물 자원이 많기에 미국이나 유럽 강대국들과 이웃 나라 리비아가 내전을 지원하면서 오랫동안 전쟁에 시달려왔다. 막대한 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수익을 극소수와 강대국들이 집어삼키기에 가난에 시달리며 사막화로 그나마 농업 생활도 어려움에 빠지고 있는 데다가 2008년 수단 공화국과 무력 충돌로 국교 단교를 했으며, 나아가 남수단 내 난민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더더욱 가난에 시달리면서 몇 해 전 세계적인 논란이 된 개밥 지원 문제로 국제 뉴스로 언급될 정도로 식량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데 차드가 얼마나 가난한가 하면 차드 인구의 80%가 극 빈곤층일 정도다.

뉴질랜드의 개 사료 업체가 “개밥이라도 그냥 줄 테니까 먹을래?”라면서 지원한다고 밝혔다가 세계적으로 아주 사람을 개로 본다면서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고 그 업체 홈페이지는 비난 및 해킹으로 엉망이 되었으며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그 업체 정문 앞에서 계속 시위를 벌이며 비난했기에 결국 없던 일이 됐던 사건이 있는데, 정작 차드에서는 ‘먹을 게 하나도 없어서 그거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면’이라는 여론이 있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차드를 방문한 기자가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마을 아이 대부분이 먹을 것이 없어 영양실조에 걸려 소화기와 피부 등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라고 했으며, 아이 엄마들도 잘 먹지 못해 젖이 다 마른 상태일 정도로 영양실조가 심각하다. 심지어 보건소도 주민들과는 굉장히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서 가기도 힘든 데다가 설령 가더라도 의사가 영양실조로 아픈 아이는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다는 말밖에 하지 못해서 발길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그래서 2015년 10월 상황을 기준으로 차드에서 어린이 10명 중 1명이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고 있다고 확인되고 있다고 한다.


차드의 인프라는 매우 열악한 상태로 수도 은자메나를 제외하면 도로, 전기, 상하수도 등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대다수 차드 국민의 삶이 아직도 근대 이전의 생활 방식에 머물러 있으며 약 3만㎞ 정도인 도로 중에 포장도로 길이가 600㎞밖에 안 된다. 이는 국토가 훨씬 작은 적도 기니보다 포장도로 길이가 짧은 것이며 그나마 도로가 있는 수도에서도 포장도로는 많지 않은 상황이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도로는 포장이 되지 않은 상태라 모래 먼지와 독한 매연으로 뒤덮여 있어서 그곳만 지나다니면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눈과 코가 따끔거릴 정도이다. 심지어 사막 기후이다 보니 차드에서 한낮에 10분 정도만 햇볕을 쬐면 웬만한 사람들은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강렬하며 햇볕을 피해도 그냥 온도가 무지하게 높아서 밖에 서 있으면 약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이마에 땀이 흐르며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차드의 거리에는 뜨거운 차 한 잔을 따라주고 푼돈을 받는 소년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차드가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된 이유는 다른 수많은 아프리카 국가들과 매한가지로 오랜 내전 때문이다. 현재 차드에는 보건 및 위생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며 그나마 몇 개 안 되는 시설은 그동안 정권을 잡았던 남부지방에 집중되는 형편이다. 또한 대부분의 주민은 말라리아, 결핵, 파상풍은 물론 온갖 전염병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내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곳곳에서 출몰하는 무장집단이 구호단체의 구호품을 탈취해 가는 등 안전 보장이 확보되지 않아, 차드에서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차드 복음주의 연맹, 세계교회봉사회(ACT), 루터교 세계연합 등 기독교 단체들 대다수가 구호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현재 차드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활동을 벌이고 있는 아프리카 내륙선교(AIM)의 데비 웨젠버그 선교사는 “오랜 내전으로 황폐해진 차드는 현재 식량 공급을 전적으로 해외 구호에 의존할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물자가 부족한 상태이다”고 밝히기도 했다.


5. 인구와 인종

(1) 인구
차드의 인구분포는 고르지 못한 편이다. Saharan Borkou-Ennedi-Tibesti 지역의 인구밀도는 ㎢당 0.1명인 반면, Logone Occidental 지역의 인구밀도는 ㎢당 52.4명이다. 즉 차드 인구 전체의 반 정도는 영토의 1/5에 해당하는 남부 지역에 거주한다고 볼 수 있다.
도시 생활은 주민의 대부분이 상업에 종사하고 있는 수도 N'Jamena 지역에 국한되어 있다. 그리고 기타 주요한 도회지는 Sarh, Moundou, Abeche, Doba 등으로서 이들 지역은 최근 급속히 발전하여 수도 N'Jamena와 함께 경제성장을 이끌고 있다.
2003년 Darfur 사태 이후 23만 명의 수단 난민이 차드 동부 지역으로 유입되면서 17,200명의 차드 국내 유랑민 발생과 더불어 이러한 난민 유입사태는 차드 동부 지역의 긴장 상태가 고조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2) 인종
옛날부터 차드는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함께 살아왔다. 고대 술탄(Sultan)의 영지였던 북부와 중부의 주민은 대부분 무슬림이며 주로 유목 생활을 한다. 반면 남부는 반투니그로계의 농경민으로 기독교도가 대부분이며 정주 생활을 한다.
남부와 북부의 부족은 사회문화적 기반이 아주 달라 심각한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밖에 하우사족, 풀라니족, 카넴족 등의 상업민이 각지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취학률이 낮고 문맹률이 50%가 넘어 각각의 민족문화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다양성은 국민통합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차드에는 200개 이상의 서로 다른 종족 집단이 있어 다양한 사회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프랑스 식민정부 이래로 현재 차드 정부까지 통합된 국가 사회 형성을 위해 노력해 왔으나, 대부분의 차드인들에게는 여전히 특정 지역 또는 지방사회가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993년 총인구조사 결과 차드 당국은 12개의 종족 그룹이 전체 인구의 97.8%를 차지한다고 확인하였다. 그것은 Sara(27.7%), Arabic(12.3%), Mayo-kebbi(11.5%), kanem-Bornu(9%), Ouddai(8.7%), Hadjari(6.7%), Tandjile(6.5%), Goran(6.3%), Fitri Baths(4.7%), Fulani(2.4%), Baguirmien(1.5%), IROS(0.5%).


6. 종교

차드 헌법은 국가의 세속주의 원칙을 확인하고 국민들이 자신의 선택에 따른 종교를 믿을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이슬람이 11세기 차드에 유입되어 16세기부터 확산되었던 역사적 이유로 인해 인구의 대부분은 무슬림이며, 주로 북부와 중부 지역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슬람 원리주의자와는 거리가 멀다.
차드의 기독교는 프랑스 식민시절 유입되었으며 소수의 기독교도는 역사적으로 남부 지역에 생성되었다. 그리고 가톨릭과 개신교는 복음주의 운동에 의해 통합되었다.
차드에서는 상대방 종교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정착되어 있어서 종교적 긴장감이 거의 없다. 기독교와 무슬림은 서로 결혼도 해 가면서 평화롭게 같이 살아가고 있다. 또한 적지 않은 수의 정령주의자가 특히 남부지역에 많으며 이들은 때때로 기독교를 같이 믿기도 한다.
1993년 총인구조사에서 나타난 차드인들의 종교 분포는 이슬람교(53.1%), 가톨릭(20.1%), 개신교(14.2%), 정령신앙(7.3%), 기타 종교(0.5%), 무신론자(3.1%) 등의 순서였다.


7. 문화

(1) 문화
차드인 들은 활 하프 모양을 한 Kinde, 주석으로 된 긴 뿔 형태이 Kakaki, 호리병박을 증폭기로 사용하는 현악기 Hu hu 등의 악기를 연주하지만, 그것은 종족에 따라 다양한 악기를 조합하여 사용합니다. 최근에는 전자기타, 베이스 기타, 전자 피아노, 드럼 등 서양 악기들이 들어와 함께 연주를 한다.
특히 Chari Jazz라는 밴드는 1964년 결성되어 차드의 현대 음악 시대를 열었고, 그 후에는 African Melody와 International Chaalal 등 유명 밴드가 현대와 전통을 시도하였다.

 

(2) 음식
차드 전국에 걸쳐 수수가 주식으로서 둥글게 반죽으로 만들어 소스에 적셔 먹는데, 북부에서는 이 음식을 Alysh라고 하는데 남부에서는 Biya라고 한다. 그리고 민물 생선도 인기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햇볕에 말려서 약간 훈제한 Salanga나 훈제한 대형 생선 Banda로 판매되고 있다.
북부에서는 주류가 거의 생산되지 않으며, 적색 수수로 양조한 Billi-billi, 흰색 수수로 양조한 Coshate라고 부르는 수수 맥주가 남부지역에서 인기가 있다.

 

(3) 문학
다른 사헬지역 국가와 마찬가지로 정치,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적 빈곤 등으로 차드의 문학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대부분의 차드 작가들은 망명 또는 해외거주자 신분 상태에서 집필할 수밖에 없었으며, 주로 정치적 탄압 및 역사적 이야기에 관한 주제를 중심으로 문학작품을 서왔다.
1962년 이래 20명의 작가가 약 60편의 작품을 써왔으며, 그 가운데 Joseph Brahim Seid, Baba Moustapha, Antoine Bangui, Koulsy Lamko 등이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다.

 

(4) 스포츠
축구는 차드의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차드 국가대표 축구팀은 국제 경기대회에서 국민들의 큰 관심 대상이 되고 있으며, 프랑스 프로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차드 선수들도 있다. 그리고 농구와 레슬링도 많이 하고 있으며, 레슬링 선수들은 전통적인 동물 가죽을 쓰고 먼지를 뒤집어써 자신의 본래 모습을 숨기고 경기에 임한다.


8. 기독교 선교 역사

⦁1899년 ‘Kardal'이라는 선교사가 LeLe라는 지역에서 방문사역을 하였다. 그 후 1920년에 차드에 정착하여 사역하기 시작하였다.
⦁1924년 Holey(네덜란드), Gardj(영국)가 사역을 시작하였다(ACT).
⦁1926년 Vieary(캐나다)-SUM(Sudan United mission)에 의해 1962년에 EET라는 복음주의 교단이 탄생하였다.
⦁1925년 Mitzler(미국)에 의해서 Baptiste midmission이 차드에서 선교가 시작되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차드 교회가 급속히 성장했다. 하나님께서 남부 지역의 여러 선교사역에 복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1973년부터 1975년간에 정부는 이교도 풍속으로부터 돌이키는 것을 거부한 기독교인들을 심하게 핍박하여 수백 명이 순교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1980년대에 와서는 명목주의, 교육의 부재, 율법주의가 교회 내의 내적인 삶을 악화시켰기 때문에 교회의 성장이 둔화되었으며 전쟁, 기근 그리고 가난이 복음전도를 방해했다.
⦁2018년 현재 주변국 나이지리아와 카메룬에서 아프리카 현지 교회로부터 흘러들어온 교회들을 통틀어 복음주의 교단, 오순절 계통의 교단, 침례교단 그리고 루터교단을 포함해 약 20여 개의 교단이 존재하고 있다.
차드의 종교 현황은 대충 다음과 같이 보고되고 있다.
⦁이슬람 53.9%, 중부와 북부의 모든 아랍인과 사하라 종족들 차드 부족과 남부 차드 부족 중 일부
⦁로마 가톨릭교 20.3%(로마 가톨릭교회는 단일교단으로 그 교회의 숫자는 2.300개가 넘는다.)
⦁개신교는 최대 13.3%(그 가운데 복음주의자는 인구의 10% 미만이다)이고 성장률은 4.9%를 보이고 있다.
⦁아프리카 전통종교가 19.1%이고 많은 수단종족과 일부 남부 차드 종족 가운데서도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바하이교(이슬람의 한 종파) 0.2% 그리고 기타 0.1%


9. 기도 제목

  1. 말씀으로 제자 양육이 이뤄지며 아프리카 서부 불어권 무슬림들이 차드 영혼을 통해 전 세계로 복음이 확장되도록
  2. 차드 믿음의 선조들이 그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의 피를 흘린 이 땅에 명목적인 기독교인들이 사라지게 하시고 순수한 믿음을 가진 신앙인들이 일어나도록
  3. 현지 교회를 통해 믿지 않는 영혼들과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세워가고 말씀에 기초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차드 땅에 날마다 더하도록
  4. 복음이 시급한 차드 땅 가운데 복음을 든 선교사들을 더 많이 보내지도록
  5. 선교사 가정이 지역 사회를 위해 일하는 가운데 주님이 붙여주시는 돕는 자들과 동역자들이 날마다 더하도록
  6. 차드 대통령과 정치가들이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점점 악화되는 경제와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며 정부 기관과 사회 전반에 걸쳐있는 부정부패를 몰아내도록
  7. 차드에 있는 현지 목회자들이 말씀과 기도로 무장되어서 선교사들과 잘 협력하여 복음전파에 불타오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