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권역 | 우간다  / Uganda
푸른 적도의 나라 우간다
최도영 이경옥 선교사(우간다)

 


 

1. 일반적 소개
국명 : 우간다 공화국(Republic of Uganda)
위치 : 아프리카 중부 내륙, 5개국과 접경(동쪽-케냐, 서쪽-콩고민주공화국, 남쪽-르완다/탄자니아, 북쪽-남수단)
면적 : 241,000㎢(남한의 2.4배)
인구 : 3,610만 명(2012년 집계) - 세계에서 36번째, 아프리카에서 9번째
수도 : 캄팔라(Kampala)
인구 : 160만 명
해발고도 : 1,200m
시간대 : UTC/GMT +3 시간(우리나라보다 6시간 느림)
언어 : 영어(공용어), 루간다어, 스와힐리어, 기타 부족 언어 등
종교 : 성공회 42%, 가톨릭 41.9%, 이슬람 12.1%, 기타 3.1%(2002 census)
독립일 : 1962년 10월 9일(국경일)
정부형태 : 대통령 중심제(5년 임기)
국가원수 : 무세베니 대통령(H.E. Yoweri Museveni)

 

2. 우간다 역사
가. 독립 이전

16세기 중엽 에티오피아 지역에서 남하한 인종이 분뇨로 부간다 등 왕국 건립
19세기 부간다 왕국 득세
1844~1870년 인도양 연안에서 진출해온 아랍 노예상인, 빅토리아호 근처 진출
수단 지역의 노예 사냥꾼 등 이집트 세력 침투, 우간다 지역 지배권 주장
1862년 영국 탐험가 J.H.스피크와 J.A.그랜트가 부간다 왕국 방문
1889년 영국 동아프리카회사 진출
1890년 독일령 동아프리카와의 경계 확정, 대위 F.D. 루가드가 통치자로 군림
1894년 영국, 부간다 왕국과 보호령 협정 체결
1896년 영국, 기타 우간다 지역 세력과 보호령 협정 체결
1900년 영국, 부간다 왕국에 자치권을 부여하고 기독교인 족장에 의한 입헌군주제로 전환
1901년 동케냐 빅토리아 호 내 키수무항과 인도령 연안의 몸바사항간 철도 개통
1902년 우간다 동부지역이 케냐로 분리
1921년 우간다 입법기관 설치. 그러나 1945년까지 우간다인 참여불가

 

나. 독립 이후
1962년 10월 9일 영국으로부터 독립
1963년 10월 오랜 기간 갈등을 빚어왔던 남북 지역 간의 화해를 위해 남부 Buganda 왕 Mutesa를 초대 대통령으로, 북부인인 Obote를 총리로 하는 초대 정부 출범
1966년 Obote, Mutesa대통령을 축출하고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여 우간다 내 모든 왕국 폐지. Mutesa 영국으로 망명
1966-71년 Obote 집권
1971-79년 Idi Amin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Obote를 축출하고 집권
1972년 당시 제조업과 무역 분야 등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던 6만 명에 달하는 아시아계(주로 인도계) 추방으로 인해 경제는 극심한 파탄상태에 빠짐
1979년. 탄자니아군과 합세한 우간다 게릴라군에 의해 Idi Amin 축출
1979-80년. Yusuf Lule, Godfrey Binaisa, Paulo Muwanga가 연달아 대통령 임명되었으나 단기간에 그침
1980년 5월. Obote가 전국적 선거를 통해 재집권, Museveni가 조직한 국제저항군 (NRA: National Resistance Army) 및 이를 지원하는 그룹들을 무자비하게 탄압
1980년 5월. 결국, Obote 정권은 Tito Okello가 이끈 군사쿠데타에 의해 전복
1986년 1월. Museveni가 이끄는 NRA(National Resistance Army)가 권력을 장악하였으며, NRM(National Resistance Movement) 의장인 Museveni가 대통령으로 취임
1996년 5월. Museveni, 우간다 전통왕국을 부활시키나 정치적 개입은 금지
1996년 5월. 집권 10년 이후 최초의 대선에서 Museveni가 76%의 지지를 획득하여 대통령에 당선
2000년. 1986년부터 금지된 다당제(multi-party system) 금지 여부와 NRM의 대중(grass roots) 민주주의 지속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
2001년 1월. 동아프리카 공동체(EAC: East African Community),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 간 공용 여권 및 국기, 경제?금융통합 논의 시작
2001년 3월. 우간다, 2000년 전 동맹국인 르완다가 콩고 내전에 가담한 것을 두고 적대국(hostile nation)으로 지정
2003년 5월.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동부로부터 남은 군대 철수. 수 만 명의 콩고 난민이 우간다로 이주
2004년. LRA (Lord’s Resistance Army)의 민간인 학살이 지속적으로 자행되는 가운데, LRA-정부 간 첫 번째 직접 협상이 이뤄졌으나 구체적 합의 없이 결렬됨
2005년 7월. 다당제 복귀, 대통령 3선 제한을 폐지하는 헌법 개정안 통과
2005년 10월. 2004년 7월부터 LRA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조사가 시작되어, 2005년 10월 Joseph Kony 등 반군지도자 4인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2005년 11월. 야당 대표인 Kizza Besigye,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하자마자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테러리즘 및 불법무기 소지혐의로 수감되었으나 2006년 1월 보석으로 석방
2006년 2월. Museveni 대통령이 3선(59% 득표, 야당 Besigye 후보는 37% 득표)에 성공하고, 여당 NRM이 국회에서 2/3 이상 의석 확보
2006년 8월. 정부와 LRA간의 적대행위 종식협정(cessation of hostility)체결
2010년 8월. 소말리아 이슬람 테러단체인 Al Shabab, 캄팔라 시내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월드컵 경기를 시청하고 있는 민간인에 대해 폭탄테러를 자행해 최소 74명 사망
2010년 10월. 나이로비에서 캄팔라행 버스에 대한 폭탄 테러로 세 명 사망
2011년 2월. Museveni 대통령, 야당과 여당 지지자들의 충돌 속에 치러진 대선에서 압승, 4선에 성공 (Museveni 68%, Besigye 26% 득표)
2012년 10월. 독립 50주년 기념일 (10. 9) Museveni 대통령, 향후 50년 내 우간다의 선진국 진입 비전 2025 발표
2013년 4월. Museveni 대통령 국가경제발전 Vision 2040 발표. Vision 2040은 2040년까지 우간다 경제를 1인당 국민소득 9,500$ 수준으로 향상시켜 중상위권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계획

 

3. 자연환경

1) 지형

우간다는 중부 아프리카 내륙국으로, 동경 32°, 북위 1° 사이에 위치 동쪽으로는 케냐, 서쪽으로는 콩고민주공화국, 남서쪽으로는 르완다, 북쪽으로는 남수단, 남쪽으로는 탄자니아에 접해 있다.
우간다는 동아프리카 평원 지대에 위치(평균 고도: 1000m-1200m) 하고 있으며 호수와 강이 많다. 특히 케냐와 탄자니아 국경 지역에 있는 빅토리아 호(Victoria Nyanza)는 면적 6만 9485Km2, 최대수심 82m, 호안선 길이 3,440km에 이르는 아프리카 제1의 호수이자 담수호로는 세계 제2의 큰 호수이다.
국토이용(2011) - 농지: 27.94%, 영년생 작물 경지(커피, 고무 등): 9.11%, 기타: 62.95%, 관개지 면적: 144.2 sq km (2010) 최근 환경 이슈: 농지 확장을 위한 습지 개간, 산림 벌채, 가축 방목에 따른 토지오염, 밀렵 등

 

2) 기후

고온 건조한 열대성 기후로, 평균 해발 1,000m-1,200m의 고원지대에 위치하여 한국의 초가을 날씨처럼 낮에만 덥고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편이다.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지 않으나 대체로 건기는 12~2월, 6~8월이다. 규칙적으로 비가 내리는 편으로 농업활동에 비교적 적합하다.
가장 더운 달은 1월로 18~28°, 가장 추운 달은 7월로 17~25°, 가장 건조한 달은 7월로 평균 강우량 46mm, 가장 습한 달은 4월로 평균 강우량 175mm이다.

 

4. 우간다 최근 정치 및 외교동향

1) 정세 개관

2011년 5월 Museveni 대통령은 4선에 성공하여 대통령직을 연임하게 되었으나, 제1야당인 FDC(Forum for Democratic Change)의 시위 등을 통한 민주화 요구가 증가하는 속에서 정치 및 경제의 안정화를 우선순위로 두어왔다. 2012년에는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목적으로 인프라 건설 및 전력 확충, 석유개발과 에너지 자원개발 등 각종 경제 과제에 주력하였으며, 대외적으로는 지역 평화, 역내 통합 활동 관련 적극적인 역할을 계속 수행해 오고 있다.
또한 대호수국제회의(ICGLR, International Conference on the Great Lakes Region), 동남아프리카 공동시장(COMESA, Common Market for Eastern and Southern Africa), 동아프리카공동체(EAC. East African Community)의 의장직을 겸직하면서 아프리카 내 정치,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대외적으로 동아프리카 DR 콩고-M23 반군 간 중재역할을 맡아 동아프리카 내 평화유지를 도모하고 소말리아 AMISOM (African Union Mission In Somalia)에 만 명 이상의 군인을 파병하여 소말리아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등, 지역 내 외교, 정치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2) 정치 동향

Museveni 대통령은 지난 2013년 4월 19일 주재국 장기 국가개발계획인 VISION 2040을 발표했다. 이는 작년 독립 50주년에 발표한 VISION 2025를 기반으로 한 장기 계획으로 2040년까지 우간다 경제를 일 인당 국민소득 9,500불 수준으로 향상시켜 중상위권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2012년에 정부 내 부정부패 사건이 연이어 밝혀짐에 따라 국제 사회 내 우간다 정부의 신뢰성은 큰 타격을 입은 바 있으며, 이로 인한 원조공여국의 예산 지원 잠정 중단으로 국가 예산 부족에 따른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반면 이러한 최근 동향은 정부 내 감사를 통해 각종 부정부패사건이 계속 파헤쳐지고 언론에 공개됨에 따라 정부에 대한 국내의 압력의 가중되어 역설적으로 주재국 정부의 투명성 및 부패척결 제고노력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2012년 국회와 행정부 사이 갈등이 고조되는 정치적 사건들(석유 법안 통과 논란, 반대파 여당의원의 갑작스러운 사망, 연이은 부정부패 사건)이 잇따랐으며 이에 야당뿐 아니라 여당 내 국회의원 사이에서 Museveni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우려를 표하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Museveni 대통령은 2월에 열린 주재국 여당 NRM 수련회(Retreat)에서 국회 내 혼란이 계속될 경우 군부가 나라를 장악할 수 있다고 발언하여 논란이 되었다. 본 발언이 논란이 되자 대통령실 대변인은 동 발언은 일부 국회의원들이 나라의 국정 운영을 방해하고 정치적 혼란을 야기하는 것에 강력 대응하겠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2016년 대통령 선거에 Museveni 대통령은 재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바도 있어 본 발언은 우간다 정치의 유동성을 내포하고 있다.

 

3) 외교관계

가. 서방 국가와의 관계

과거 비동맹, 반식민주의 표방에 따라 중국, 쿠바, 북한, 리비아, 알제리, 탄자니아 등 사회주의 성향의 국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Amin, Obote, Museveni 대통령 등 독립 이후 지도자들은 국내 권력기반 강화를 목적으로 이전 정권과의 완전히 단절된 급진적 외교정책을 추진하였으며, 특히 급진성향의 국가 및 주장 등에 대한 공개적 지지를 나타냈다. 과거 비동맹 노선의 추구 및 오랜 군사독재로 인해 서구 공여국 등과 긴장관계를 유지하기도 했으나, 경제성장 우선 정책에 따라 2005년에는 공여국들의 다당제 도입 요구를 받아들이고 2007년 11월에는 영연방 정상회의(CHOGM: Commonwealth Heads of Government Meeting)를 캄팔라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 영연방 및 서구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 중이다.
우간다 정부는 2010년 발생한 소말리아 이슬람 테러단체인 Al Shabab의 캄팔라 폭탄테러에 대해 강력 대응하는 동시에 소말리아 임시정부 지원을 위해 소말리아 주둔 평화유지군 병력을 늘려나갈 것을 약속했다. 서구 공여국들은 우간다 정부에 부패척결 및 투명성 제고, 민주주의 시스템의 확산 등을 요구하며 거버넌스(governance) 향상에 주력하고 있으나, 최근 고위급 관료들의 비리, 부패 스캔들이 연이어 불거져 나오면서 그 실효성에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의 대아프리카 투자 및 원조가 크게 증가하면서 우간다에 대한 중국의 정치, 군사, 경제 영역에서의 영향력 또한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나. 아프리카 국가 및 인접국과의 관계

우간다는 케냐, 탄자니아, 남수단, 콩고민주공화국 등으로 둘러싸인 내륙국으로 인도양으로 통하는 개방된 무역 루트를 확보하는 것을 주요 외교 목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특히, 케냐 몸바사 항을 통한 운송로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축소하기 위해 탄자니아와의 관계개선을 중시하여 일시적으로 케냐와 다소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으나, 1998년 Museveni 대통령의 케냐 Moi 대통령 취임식 참석 등을 계기로 케냐와의 관계 개선을 모색(케냐와 국경분쟁 아직 있음)하고 있다.
케냐, 탄자니아, 부룬디, 르완다와 동아프리카 공동체(EAC; East African Community)를 결성하여 정치?경제 통합을 목적으로 주변국과의 협력 강화 모색(1996년 논의 시작, 1999년 서명)하고 있다. EAC 회원국 간 상호의존도가 증대하면서 외교분쟁 가능성은 크게 줄고 있다. 2011년 8월 Museveni 대통령의 르완다 방문은 양국 간 외교관계가 호전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EAC는 단기적으로 공동시장, 중장기적으로 화폐동맹 및 정치연합을 추진하고 현재 Museveni 대통령이 EAC의 의장을 맡고 있다.
Museveni 대통령은 1986년 정권장악 이래 아프리카 역내 분쟁해결 및 협력을 위한 지역 문제에서 중심적 역할을 추구하고 있으며, 특히 2007년에는 소말리아에 대한 AU 차원의 평화유지군 파병에 동참하는 등 동부아프리카의 주도적 국가로서의 위상확립을 위해 노력 중이다. 특히, 2010년 발생한 Al Shabab(소말리아 이슬람 테러단체)의 캄팔라 폭탄테러에 대해 강력 대응하는 동시에 소말리아 주둔 평화유지군 병력 증강을 약속했다.
우간다 북부반군인 LRA(Lord’s Resistance Army)에 대한 수단 정부의 지원과 수단 남부 반군 SPLA(Sudan People’s Liberation Army)에 대한 우간다 정부의 지원을 둘러싼 갈등으로 1995년 4월 우간다-수단 양국관계가 단절된 적도 있으나, 2003년 이래 양측이 반군에 대한 지원중단 등에 합의하는 등 관계를 개선 중이다. 2011년 남수단이 독립함으로써, 양국 간 경제협력 및 무역량이 향후 크게 증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DRC 반군에 대한 우간다측의 무기 공급, 국경지대인 DRC 동부지역의 권력공백으로 인한 LRA의 활동 등으로 인해 우간다-콩고민주공화국 양국 간 긴장이 이어지기도 했지만, 2007년 9월 양국 대통령이 회동하여 반군에 대한 군사협력 및 석유개발에 대한 협력에 합의했다. 2007년 12월 콩고민주공화국은 LRA에 맞서 우간다를 지지 선언했고 LRA 토벌을 위해 콩고민주공화국 영토 진입에 동의하는 등 급속한 관계개선을 보이고 있다.

 

다. 다자관계

2009년 1월에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2009 -2010) 수임

 

5. 경제 일반 상황

GDP: 226억$(2013년)예상
GDP: 226억$(2013년)예상
산업별 비중: 농업(22.5%), 산업(26.5%), 서비스업(50.9%)
1인당 GDP(PPP): 1,616$(2013년 예상, EIU)
경제성장률: 5.7%(2013년 예상, EIU)
물가상승률: 13%(2009년), 4%(2010년), 18.7%(2011년), 14% (2012년)
산업별 인구 종사 비율(2012년): 농업 82%, 산업 5%, 서비스업13%
수출: 27.3억$ (2012)- 주요 수출품: 커피, 차, 시멘트, 쌀, 원예, 면화, 담배, 옥수수, 설탕, 어류
- 주요 수출국: 케냐(11.6%), 르완다(9.7%), UAE(9.0%), DR콩고(8.9%) 수입: 54.9억$ (2012)
- 주요 수입품: 기계장비, 차량 및 부품, 화학제품, 석유제품
- 주요 수입국: 케냐(14.8%), UAE(13.9%), 인도(11.0%), 중국(9.2%)

 

6. 우간다 주요산업 동향
1) 농업 및 어업

농업은 우간다의 주요 산업으로 2011년도 GDP의 20%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국민의 80% 이상이 농업에 종사 중(국토 9%가 경작지)이다. 커피는 1950년대 면화를 제친 이래 우간다의 주요 생산품으로 한때 전체 수출의 90% 이상을 기록한 바도 있으나, 최근에는 수출품목 다변화로 2007년도에는 수출의 18%를 차지하고 있다. 주요 생산물은 커피, 차, 면화, 담배, 타피오카, 감자, 옥수수 등이 있다.
내륙국임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이후 생선 및 생선가공품이 우간다의 주요수출품이 되었으며, 특히 빅토리아 호수 등에서 생산되는 Nile Perch가 주요 수출어종이다. 어류의 주요 수출국은 EU로 수송수단은 항공운송이다.

 

2) 에너지 및 광업
①광물 : 우간다는 인산염, 백금, 베릴륨, 창연, 다이아몬드, 금, 석면, 점토, 석회암 등 다양한 희귀자원과 비 희귀자원 등 산업용 광물이 매장된 것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이에 3개의 회사가 카트웨 및 부랑가 지역(주재국 서부, Rift Valley 지역임)에서 광물 탐사권을 발급받아 탐사 중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국토 대부분이 미개발 상태이며 종합적인 탐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어 효율적인 광물 개발을 위해 자료를 하나로 집결할 수 있는 One Stop Centre 개설과 컴퓨터화된 광물 토지대장과 등록 시스템을 준비 중에 있다.
②전력 : 우간다의 현재 전력 생산량은 501.5MW이며(814MW 생산설비 보유) 주재국 국가개발계획(2010-2015)은 2015년까지 3,500MW, 국가발전계획 Vision 2040은 2040년까지 42,000MW 전력 생산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전력 생산 관련, 우간다는 수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는데 2012년 나일강 상류에 250MW 부자갈리댐 수력발전소를 완공함에 따라 주재국의 전력 부족 문제가 대폭 완화되었으며 카루마댐 수력발전소 (600MW), 아야고댐 수력발전소(600MW), 이심바 수력발전소 (180MW)도 추진 중이다.
③석유 : 주재국 내 석유 매장량은 35억 배럴 규모로 추정되며 석유생산이 본격화 될 시 하루 125,000배럴의 석유 (최대 200,000배럴)가 생산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동 생산량은 석유 생산국 중 중위권에 속하는 규모이며 가봉, 콩고 공화국, 차드, 트리니나드 토바고와 유사한 규모이다. 매장량은 석유 보유국 중 세계 40위에 속한다.
? 현재 주재국 내 석유 탐사가 40% 정도 진행되었으며 탐사가 100% 진행될 시 총 매장 추정량은 최대 80억 배럴로 추정하고 있다(우간다의 현재 석유 탐사 성공률은 90% 내외로 매우 높은 편임). 석유생산이 본격화될 경우 향후 20년간 매년 20억 불의 수입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우간다 정부의 한 해 수입 (2012-2013)이 46 억불인 것을 감안할 때(OECD 추정) 석유생산으로 인한 수입은 국가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우간다는 2006년 석유를 발견하였으며 2016년 첫 생산을 예측하고 있다. 석유 생산이 늦어진 이유는 ①정부/석유회사의 석유개발방식에 대한 이견(정부는 정유시설 선호), ②과세 문제, ③석유 생산 분배 협정 지연으로 인한 것이며 동 지연으로 인해 투자 기업의 손실 등 부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석유개발 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사회, 경제적 문제점을 예방, 사전 대비 할 수 있는 준비 기간을 확보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원유 시추개발 관련 현재 3개의 국제석유회사 (Tullow, Total, CNOOC)가 개발권을 갖고 탐사중이며 추가 시추지역에 대한 개발권도 국제 입찰 예정이다.
원유시추개발 외에 정유, 송유, 저장 및 분배 등 석유화학 관련시설 투자를 위한 입법안이 국회 통과 및 대통령 인준을 마친 상태로 이에 주재국 정부는 향후 관련 산업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할 계획이다.
?서부 호이마 지역 29평방 킬로미터 부지에 6만 배럴 생산 규모의 정유시설 설비건설을 계획 중이며 정유시설과 함께 송유관 및 석유화학 제품 저장창고, 제반시설 설립을 통해 석유화학단지를 조성 계획 중이다.

 

3) 우간다 원유 매장 및 개발 현황
우간다에서 최초의 시추작업은 1990년대 중반에 이뤘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2005년 이후 콩고민주공화국 접경지역인 우간다 서부 Albert 호수 지역에 대한 집중 탐사와 시추작업을 통해 해당 지역 유전의 경제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진행된 탐사작업 결과 매장 예상량이 35억 배럴 수준이며, Albert 호수 지역의 탐사작업이 마무리될 향후 80억 배럴 이상의 매장량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매장량은 향후 25~30년 동안 시추 가능한 규모이며, 우간다 정부는 연간 약 20억 달러의 부가가치 창출을 기대한다. 무세베니 대통령은 “석유로 인해 우간다는 발전의 차세대 동력을 얻게 됐다(push Uganda into the next phase of development)”고 선언할 만큼 우간다 정부는 원유 개발에 기대가 크다.
현재 우간다 유전개발은 Tullow, CNOOC, Total 3사에 의해 이루어짐. 이중 특히, Tullow 사의 성과가 두드러지며, Tullow사는 우간다 뿐만 아니라 서부 아프리카, 특히 가나 유전개발도 성공해 신흥 산유국의 석유 비즈니스 분야에서 명성을 높이고 있다.

 

※ Albert호 주변 유전개발지역

 

Tullow사가 주로 개발을 추진한 Block 2의 유전에서 주로 원유가 발견되며, Block 3에서도 초기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원유 매장량이 확인되고 있다고 Tullow 관계자는 언급했다.
향후에도 Tullow사가 우간다 원유 개발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며, 일부 이탈리아 기업이 개발 시장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4) 제조업
국내 소비를 위한 식품, 담배, 음료 등은 대규모 생산되고 있으며, 의류, 설탕, 옥수수 등은 상대적으로 소규모로 생산된다.
경쟁력이 취약한 우간다 제조업자들은 2010년도 EAC의 역내 관세철폐로 인한 케냐 제조업자들과의 경쟁에 대해 우려를 표명해왔으며, 이로 인해 개방 시기를 두고 회원국 간 이견을 보인 바 있다.
 
7. 우간다의 기독교 현황 및 전망

1) 현재의 종교 분포

분포 : 성공회(Church of Uganda) 42%, 가톨릭 41.9%, 이슬람 12.1%, 기타 3.1% (2002 census)
개신교(Pentecostal)분포 : 성공회(Church of Uganda)-35.9% (영국 식민지의 영향), 오순절(Pentecostal)-4.6% 그 외 제7일 안식교1.5%

 
2) 우간다 (Buganda 왕국)에 복음이 전해진 역사

1873년 4월 30일. David Livingstone이 죽은 뒤, Henry Stanley는 아프리카 내지를 더 탐험하려는 의지로 불타올랐다.
1874년 Lake Victoria 목적으로 탐험하다가 호수 북쪽 Buganda 왕국의 Mutesa 왕을 만났다.
Stanley는 선교사는 아니지만, 기독교 메시지를 전했고, 통역했던 Dallington Muftaa에 의해 계속해서 기독교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1876년 6월, 이 project를 위해 8명의 CMS 선교사들이 동아프리카에 도착하나 도중에서 여러명이 피살당했다.
이 때 Alexander MacKay는 동료들이 Ukerewe 섬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Buganda를 향해 출발하여 훌륭한 교사이자 설교가로 주일마다 왕에게 노예, 주술, 일부다처의 부당성에 대해 담대하게 전했다. 이때 왕은 프랑스 카톨릭 선교사도 함께 거주하여 사역할 것을 허락하였는데, 이 결정은 개신교와의 선교 경쟁을 낳게 했고 많은 사람들이 죽게되는 원인을 제공하였으며, 복음 전파가 더디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Alexander MacKay가 복음을 전하게 되는 1877을 우간다 개신교 선교의 출발점으로 본다.

 

3) 우간다 기독교 상황과 진단

(1) 선교 배경

1877년 시작된 우간다 개신교 선교는 한국의 1884년 보다 7년이 빠르다. 비슷한 시기에 가톨릭도 포교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우간다 왕의 분열 조장으로 인해 개신교는 기존의 이슬람 세력이나 토속 종교와의 긴장뿐 아니라 가톨릭과의 충돌을 거치며 성장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1886년에는 기독교 신앙을 고수한 성공회와 가톨릭 신자들을 화형에 처하는 대박해가 있었고, 이날을 기념하여 6월 3일을 국경일 (‘순교자의 날’)로 정했다.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아온 우간다는 종교에 있어서도 영국의 영향력을 받았다. 특별히 가톨릭과 더불어 영국 성공회가 이곳에서 널리 확산되었는데 그 주된 이유는 이디 아민이 아랍권과 결탁해서 우간다를 이슬람화하려는 시도에서였다. 그는 가톨릭, 성공회, 동방 정교회 외의 모든 종교는 강제로 내어 쫓았고, 그 결과 위의 통계에서 보듯 복음주의적인 교회와 교단의 활동이 미약한 상태에 있다. 로마 가톨릭을 포함해서 대다수의 기독교인도 이름만 신자인 명목상의 크리스천일 뿐이다. 이러한 거품 신자는 밀려오는 이슬람 세력에 의해서 단시일에 모슬렘으로 개종하는 경우가 허다한 실정이다.
이디 아민 때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이슬람은 아랍권의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주요한 거점에 땅을 확보하고 각종 이슬람 센터(고아원, 어린이 센터, 젊은이 집, 초·중고, 대학교, 여성 센터, 기술 학교…)를 지어 포교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08년 4월에는 시내 중심부에 거대한 모스크가 리비아의 카다피 대통령 후원으로 완공되었으며, 카다피가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준공식을 한 적이 있다.

 

(2) 우간다가 왜 이슬람의 선교 교두보인가?

이슬람의 아프리카 선교 남하 정책은 수단 남부와 우간다 북부에서 막혀있다. 우간다의 북쪽 국경과 맞닿은 수단은 이슬람(북)과 기독교(남) 간의 종교 갈등으로 오랫동안 심각한 전쟁이 있었다. 기독교 선교사가 뿌려온 남부 수단의 복음이 싹이 나서 북부의 이슬람이 내려오는 것을 막는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이슬람은 남하 정책을 일부 수정해, 해안 지역으로 집중 침투를 하고 있다. 케냐의 동쪽 해안 지역은 인도양을 통해 들어온 이슬람의 영향이 매우 강하다.
해안과 거리가 먼 우간다는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에서 이슬람이 확장되고 있을 때 비교적 보호를 받고 있었는데, 이디 아민이 이슬람화를 위한 자금을 끌어들여 적지 않은 수의 모슬렘이 정착되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이런 면에서 우간다 선교와 복음화는 우간다뿐 아니라 아프리카 중남부의 이슬람화를 막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간다를 거치지 않고는 케냐의 동부 해안에서 들여온 물건들과 기름이 인접해 있는 나라로 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우간다의 이런 지리적인 이점으로 이슬람 확장의 방패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최근 들어 급성장하는 모슬렘 세력이 곳곳에 이슬람 사원과 유치원, 학교, 병원들을 세워서 어린이들로부터 시작해서 한 마을 전체를 이슬람화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어 기독교 선교사들에게 크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오일 달러와 정치적 지원을 배경으로 이슬람 세력이 전국에 급속히 확산되어 가는 것을 주목해 볼 때, 온 세계 교회가 힘을 합하여 남하하는 이슬람의 공략으로부터 아프리카를 방어해야 할 책임이 막중함을 깨닫는다.

 

(3) 이단의 급증

1979년 이디 아민의 실각 이후,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되자 많은 개신교 선교사들과 망명 중이던 기독교 지도자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굳어진 명목상의 기독교로 인해 이 물결은 선교의 많은 지장을 받아왔다. 그러나 유독 오순절 계통의 교단만큼은 아프리카인의 기호에 맞는 노래와 춤 등으로 무장하여 젊은 층에서 많은 호응을 얻게 되었다. 이 틈을 타서 오순절 혹은 순복음과 비슷한 흉내를 내면서 갖가지 사이비 성령 운동이 독버섯처럼 자라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이름들은 Miracle Centre, Palace of Prayer, Shower of Blessings, Redeemed church, Apotle Church, Holy Fire Ministries 등이다. 개중에는 건전한 독립교단도 있지만, 대부분은 비복음적인 은사 중심의 분위기로 신자들을 유혹하고 한국의 금요 철야와 구역 예배등을 본따서 포교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편, 전통적으로 이단으로 인식되어온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그리고 최근에는 통일교까지 가세해 포교활동이 우간다에서 활발해지면서 복음적 선교활동의 각성이 매우 커지고 있다. 식민주의의 착취와 거짓 종교의 유린으로 인해 영·육이 고통받는 아프리카의 영혼들을 참 구원과 사랑의 복음으로 건져내야 할 시대적 책임이 우리 앞에 놓여 있으며, 이는 이 시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비상한 헌신을 요청하고 있다.

 

(4) 훈련받은 목회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우간다는 대다수 아프리카 나라들과 동일하게 백수십 년(1877) 전에 복음이 전해졌지만, 영국의 식민 통치하에서 형식적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구원의 참 생명력을 체험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그 결과 “아프리카의 기독교는 1마일의 넓이를 가졌지만, 그 깊이는 1인치도 못 미친다“ (A mile wide, an inch deep)는 것이 선교학자들의 분석이다. 복음에 대한 정확한 가르침과 제자 훈련이 전무한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오늘날 이슬람이나 이단 종교들이 아프리카 전역에서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불행한 현상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아프리카 선교의 최대 과제는 성경적인 제자훈련과 현지인 지도자 양성 사역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겠다.
현재 우간다 내에 자리 잡은 기독교는 주로 가톨릭과 성공회로서 형식적이고 제도적인 교회 속성 때문에 생명력 있는 복음 사역이 힘든 상태다. 우간다가 필요로 하는 참된 영적 변화와 성경적인 교회의 설립을 위해서는 보다 전략적이고 효과적인 복음 사역들이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실정이다. 특별히 복음적인 신앙과 신학으로 훈련된 자국인 지도자들을 폭넓게 양성함으로써 장차 미전도 종족과 모슬렘들을 향하여 자체적인 선교 운동을 주도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라고 하겠다. 아프리카의 미래 선교는 장기적으로 이들 자국인의 노력으로 완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4) 우간다의 기독교 교육

(1) 신학교 사역 (School of Theology)

우간다 교회 목회자의 90% 이상이 신학 훈련을 받지 못하고 목회를 하기 때문에 건강한 강단, 건전한 지도력의 부재로 말미암아 미자립과 혼란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입각하여 올바르게 목회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지도자를 훈련하는 일이 가장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신학 공부를 원하는 사람들은 케냐나 미국, 유럽 등지의 외국으로 유학을 가야만 했는데 대다수가 공부 후에도 부유한 외국에 그대로 정착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었다. 이로 인해 우간다의 지도자 공백 현상이 심화되었고 우간다의 복음화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간다 교회를 깨울 수 있는 건전한 지도자를 육성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하고도 필요한 사역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우간다의 인재들이 국제적인 수준의 복음적인 신학 교육과 견실한 영성 훈련을 바탕으로 헌신된 영적 지도자들로 성장하여 아프리카를 위한 새로운 영적, 도덕적 갱신과 선교 운동을 일으키는 주역들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2) 기독교 유아 교육 학교 (School of Early Childhood)

아프리카의 미전도 지역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유치원 사역이 갖는 효과가 놀라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반적인 전도와 교회 개척에 대해서는 극히 배타적인 지역들일지라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치원 사역에 대해서는 문호를 쉽게 개방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례로 주목된다. 그래서 특히 미전도 지역을 목표할 때는 어린이 사역의 전략적 개발이 매우 의미심장한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유치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 어린이들을 통해서 쉽게 그 부모들에 접근할 기회가 열리고 마을 전체에 관심과 호의를 살 수 있게 된다. 또 미개한 지역들에서는 유치원 건물이 그 마을 활동의 중심 센터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아서 주민들의 전체 분위기를 쉽게 주도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우간다는 이디 아민 통치 이후로 크고 작은 내란이 그치지 않은 극심한 혼란의 결과로 에이즈를 비롯한 수많은 질병이 확산되었으며, 이 때문에 고아들이 대량 발생하여 거리를 배회하고 환각제를 복용하며 갖가지 범죄를 저지르는 등 커다란 사회적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슬람교에서 우간다 내 도처에 고아원과 학교들을 설립하여 아이들을 이슬람화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는 사실이다. 우간다와 아프리카의 미래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심각한 영적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우간다 선교의 중요한 한 과제는 이들 어린이를 영적으로 잘 양육함으로써 우간다와 아프리카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역이다.

 

(3) 유치원 사역(Nursery School)

유치원은 모든 교회 개척 사역에서 요청되는 효과적인 동반 사역으로서 폭넓은 호응을 받아 왔다. 주일학교 아이들 교육을 포함해서 주 중의 어린이 사역 등으로 유치원은 어렵지 않게 복음 전도의 좋은 창구 구실을 해주었다. 새로운 지역과의 자연스러운 접촉점을 만드는 데 있어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치원 사역은 마을 전도에 가장 효과적인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지역 복음화 사역을 진행할 때에는 훈련된 유치원 교사들이 개척 팀의 일원으로 파송됨으로써 이 방면의 사역을 효율적으로 전담할 수 있을 것이다.

 

(4) 음악 학교 (School of Music)

아프리카 사람들의 가장 큰 재능은 음악적인 리듬 감각으로서 대부분 기본적인 자질을 타고난다. 그러나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과정이 전혀 없기 때문에, 누구나 할 것 없이 악보를 보는 법과 악기 사용 등을 비롯한 기초 음악을 배우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고 환영한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큰 효력을 갖는 음악을 잘 활용하여 영적 무기로 개발하고, 복음 전도와 예배 인도를 주도해갈 음악 사역자들을 양성하는 것은 중요한 선교 사역의 일부다. 특별히 모슬렘 화 된 지역들에서는 직접적인 전도나 교회 개척의 방법보다는 음악 교육 등을 통한 보다 간접적인 선교 전략이 훨씬 효과적이다.

 

(5) 교회 지도자 훈련 (Christian Leadership Training)

현재 우간다에서 목회하고 있는 대다수 목사는 신학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회중들에 의해 자체적으로 세움을 입었기 때문에 이들을 재교육시키는 훈련 프로그램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교회에 비해 목사의 수가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에 평신도들이 교회를 돌보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을 훈련하여 효과적인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세우는 사역도 중요하다. 대다수 시골 지역 교회에서는 재정적인 부담 때문에 신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인 것을 고려할 때 선교사가 이들이 사는 지역으로 들어가 성경 교육 및 지도자 훈련을 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또한, 이들이 자기 지역에서 우편을 통하여 통신으로 기본적인 성경과 목회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6) 언어(영어) 학교 (School of Language)

우간다는 아프리카 중동부의 가운데 위치하면서 6개 나라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대부분이 비영어권인 이 나라의(케냐, 탄자니아, 르완다, 부룬디, 콩고 민주 공화국, 수단) 지도자들과 인재들을 훈련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영어를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필수적이다. 특별히 전쟁과 혼란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 주변 나라들에서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정규적인 신학 훈련을 받기를 원하는데 이들을 위한 영어 과정이 특별히 요청되고 있다. 우간다 내에서도 시골 지역의 목회자들은 영어가 서툰 관계로 의사소통과 교육에 어려움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아프리카 중동부 지역의 복음화를 촉진하고 지도자 양성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영어 훈련 교육이 필요하다.

 

(7) 영성 훈련원 (기도원 사역) (Spritual Revival)

선교사들의 중요한 목표 중에 하나가 우간다 교회의 영적 부흥과 갱신임을 고려할 때에 가장 중시되어야 할 측면이 바로 교회 지도자들과 인재들을 위한 영성 훈련이다. 한국의 기도원이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미친 결정적인 공헌을 고려할 때에 우간다 교회에 영적 생명력과 능력을 공급해 줄 수 있는 영적인 수련 도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곳에서 금식과 철야, 중보기도, 영적 전쟁, 성경 통독과 암송, 영성 재충전과 회복 등에 관해 집중적으로 훈련함으로써 우간다의 영적 부흥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8) 현지인 선교사 훈련 사역 (Native Missionary Traning)

가르치고 훈련한 현지인 사역자들을 자국 내 미전도 부족들과 인접 국가에 선교사로 내 보내는 일이 아프리카의 미래 복음화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전략임과 동시에 선교 사역의 궁극의 목표이기도 하다. 특히 우간다 주변의 나라들인 콩고, 르완다, 부룬디, 탄자니아, 수단, 소말리아 등은 불어나 스와힐리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어서 한국인 선교사들이 선교하는데 기본적인 언어 장벽이 큰 셈이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탁월한 장점들(언어, 체력 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북쪽의 수단에서 이슬람 정부의 핍박을 받아 우간다에 내려와 있는 수많은 피난민을 위한 사역이나, 우간다 내에 있는 많은 회교 공동체들을 위한 현지인 선교사들의 훈련과 파송이 필요하다.
또한, 우간다 오지나 깊숙한 밀림 지역까지 외국인 선교사가 접근하는 데는 상당한 애로가 있다. 현지 풍토나 문화에 적응해야 할뿐더러 그 부족 말까지 익혀야 하는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장애를 극복하고 접근할 수 있는 전략이 현지인에 의한 전도 혹은 선교 전략이다. 아프리카인들은 대부분 그들 고유의 문자가 없고 언어를 익힐 때 듣고 말하면서 익히기 때문에 약 6개월이면 다른 부족의 말이라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들의 잠재력을 활용하면 아프리카 오지나 미전도 지역의 선교에 새로운 장이 열릴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가 키우고 훈련한 현지 지도자들이 자국 교회의 지도자뿐 아니라 인근 나라나 부족에 선교사가 되어 나갈 수 있기까지 훈련하고 사명을 깨우는 역할이 선교사들에게 있다고 하겠다.

 

5) 최도영 이경옥 선교사의 사역 내용과 비전

①사역 내용 : 선교 현지에서 훈련과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현지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을 위하여 현지 교단이나 교회 연합체와의 협력과 연합 사역을 통해 이들을 참된 영적인 지도자들로 세우는 사역이다.
②사역의 과제와 비전 : 선교 현지에서 정식으로 신학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체적으로 세워진 현지 교회 목회자들과 합당한 영적 훈련을 통해 검증의 단계를 거치지 못하고 세워진 교회 지도자들을 훈련하기 위하여 필요한 과제는 먼저 현지 교단이나 현지 교회들과 연합하여 함께 협력 사역을 통해 현지 목회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을 훈련하는 사역을 하는 것이다. 이 사역은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 Team Ministry가 되어야 더욱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기에 같이 협력할 수 있는 사역팀을 구성하는 것이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역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비전은 지도자 훈련 과정을 통하여 현지 목회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와 그들이 속한 지역 공동체와 사회 속에서 참된 지도자들로 세워져 그리스도의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다.

 

기도해 주세요

1. 말씀과 기도 그리고 찬양 가운데 하나님과 더 깊은 친밀함으로 매일의 삶을 인도 받도록
2. 목회자, 교회 지도자 훈련 사역과 신학교 사역 가운데 성령의 충만함을 입게 하시고 복음 전도의 열정과 능력을 계속해서 부어주시도록
3. 총기 강도 사건을 경험한 민주와 예주의 영적, 정서적, 육적 건강과 위기를 기회로 바뀔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구원자 되신 아버지가 민주 예주의 아버지가 되시도록, 학교생활 가운데 학생으로써 즐거움으로 배우고 익히며 최선의 노력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민주, 예주, 하영이가 되도록
4. 물질과 기도의 동역자들과 후원자들 그리고 후원 교회들과의 교제가 열리며 파송 교회가 연결되도록
5. 우간다 목회자들이 아버지의 마음으로 목회하며 이들을 통하여 구원받는 자가 많아지고 목회자들의 생활을 아버지가 책임져 주심을 경험하도록

 

 

정리 및 보고 : 최도영 이경옥 선교사(우간다 주재 바울선교회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