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와티니 왕국(구 스와질랜드)
Kindom of eSwatini
김영섭 전영선 선교사 (에스와티니 주재 바울선교회 선교사)
위치 아프리카 남부
인구 143만 5,613명(2015년)
수도 음바바네
성격 국가
유형 지명/국가
면적 1만 7364㎢
언어 영어, 시스와티어
정부/의회형태 입헌군주제, 내각책임제, 양원제
종교 개신교, 가톨릭교, 이슬람교, 토착신앙
분야 정치·법제/외교
아프리카 남동부 스와질란드 왕국의 국왕 음스와티 3세가 국명을 에스와티니 왕국으로 바꾸겠다고 공표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4월 19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에스와티니는 스와질란드 언어인 스와티어로 ‘스와지인들의 땅’을 뜻한다.
음스와티 3세는 이날 만지니에서 공표식을 열고 스와질란드의 국명을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기 이전으로 되돌리겠다며, 독립 50주년과 그의 50번째 생일을 기념해 에스와티니로 국명을 바꾼다고 밝혔다.
음스와티 3세는 스와질란드가 종종 스위스(Switzerland)와 혼동되기도 했다고도 설명했다. 그는 “해외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스와질란드를 스위스로 착각한다”며 “나는 내 조국이 다른 국민과 동일시 할 수 있는 이름을 갖길 원했다”고 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반투어를 사용하는 스와지족은 16세기에 현재의 모잠비크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했는데, 스와지족의 한 부류가 떨어져 나와 팡골라와 그레이트우수투 강 사이에 정착했으나 줄루족의 압박을 받아 북쪽의 리틀우수투 강으로 옮겨갔다. 1836년 소부자 1세가 죽은 후 후계자였던 음스와지(음스와티) 2세는 자신의 이름을 따 부족의 이름을 지었다. 그 후 스와지족은 북쪽의 많은 부족을 정복했으나, 1846년에 크로커다일 강 북쪽의 스와질란드는 고립영토이기 때문에 바다까지 가기 위해서는 모잠비크의 철도를 이용해야 하고, 또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만, 경제는 균형 있게 발전하여 1980년대까지 계속 성장했다. 1982년 그 당시 세계 최장기집권 군주였던 소부자 2세가 83세의 나이로 죽은 뒤, 나이 어린 마코재티베 왕자가 후계자가 되어 그의 어머니인 은톰비 여왕이 섭정과 황태후(은들로푸카지)의 역할을 수행했다. 2018년 4월 18일 전제군주인 음스와티 3세가 독립 50주년 기념식에서 국명을 에스와티니 왕국(Kingdom of eSwatini)으로 변경했다. 에스와티니는 스와티어로 “스와지인들의 땅”이라는 의미이다. 영토권을 레이덴뷔르흐 공화국에 양보하게 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음스와지는 줄루족에게 맞서기 위해 영국의 원조를 청하기에 이르렀다.
1886년 유럽의 정착민에게 자치법이 허용되었고, 2년 후 스와지족은 영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스와지족 대표로 구성된 임시정부 설립에 동의했다. 스와지족은 1893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통치제안을 거절했으나, 이듬해 합병 없이 사실상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통치한다는 조약에 서명했다. 보어 전쟁과 1903년 영국이 트란스발을 통치하기 시작한 뒤 트란스발의 총독이 에스와티니에 대한 통치권과 포고에 의한 입법권을 갖게 되었으며, 1906년에는 이런 권한이 바수톨란드, 베추아날란드(보츠와나), 스와질란드(지금의 에스와티니) 등을 통치하는 고등판무관에게 넘어갔다. 1949년 영국은 남아프리카 연방의 스와질란드 통치 요구를 거부하기도 했다.
1963년 제한적 자치권을 인정하는 헌법이 공포되었으며, 1967년에는 스와질란드 왕국이 영국보호령으로 탄생했고, 이듬해 입헌군주국으로 완전히 독립했다. 스와질란드는 1970년대에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남아프리카 관세동맹(SACU)에 가입하여 무역균형을 이루는 데 커다란 효과를 보았다. 1973년과 1977년에 소부자 2세는 의회를 해산시키고 헌법을 폐지했지만, 2차례 모두 2년 뒤에 새로운 의회와 헌법이 수립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남아프리카에 위치한 내륙국이며,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모잠비크 사이에 있다. 행정 구역은 4개 구(호호 구, 루봄보 구, 만지니 구, 시셀웨니 구)로 구성되어 있다. 동부에는 사바나, 북서쪽에는 열대우림 등이 나타나며 다양한 풍경이 존재한다. 에스와티니에는 강이 많이 흘러가는데 대우수투 강(the Great Usuthu River)이 대표적이다.
지형은 서고동저의 형태를 띠고 있다. 다만 서부 고지대가 동부 저지대보다 인구가 많은데, 이유는 고도가 높아 날씨가 적당히 따뜻한 서부 고지대와 달리 동부 저지대는 날씨가 덥고 건조하기 때문이다. 최고봉은 서북쪽 끄트멈리의 엠렘베(Emlembe) 산으로 해발 1,862m이다. 기후는 서부와 동부의 날씨가 다른데, 서부 지방은 겨울에 15℃, 여름에 20℃ 정도의 괜찮은 날씨에 많게는 2,000mm에 이르는 풍부한 강수량을 가지고 있으나 동부 지방은 강수량도 500mm 정도로 적고 기온은 여름엔 40℃를 넘나든다.
세계에서 2번째로 크고 화성암으로는 세계에서 제일 큰 단일 화강암 바위인 시베베록(Sibebe Rock)이 이 나라에 있다.
AIDS 문제가 엄청나게 심각한 나라다. 세계 최고의 감염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성인의 26%가 감염자다. 4명당 1명이 넘는 비율이다. 2009년 CIA 보고서에 의한 수치인데, 이는 그나마 낮게 나온 것이다. 다른 자료에서는 더 높게 나온다. 국민의 약 60%가 하루 1.25달러 미만으로 생활해 나가고 있는 가난한 나라라 더 타격이 크다. 유엔개발계획에서는 현 추세대로 진행되면 국가 존립 자체가 위험하다고 평가했다. 에이즈는 갑자기 죽는 것이 아닌, 소모성 질병이라서, 발병률이 높아질수록 국가적으로 더 가난해지고, 가난해지니 예방대책 마련이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그 때문에 일시적으로 2011년에는 평균 수명이 남성 31.62세, 여성 32.15세로 세계 꼴찌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으로 2000년의 평균 수명은 61세였으며 2015년의 평균 수명은 통계에 따라 다르지만 50대 후반까지 올라온 상황이다. 이는 세계적 제약회사들이 180억 달러 규모의 AIDS 치료제를 무상 공급하는 등 AIDS 퇴치를 위한 엄청난 지원이 아프리카 전역에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 에이즈의 비율이 높은 이유는 일부다처제가 정식으로 허용된 나라이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3명의 아내가 허용되어 있지만, 신붓값을 지급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부인의 수를 제한하지 않고 부인을 받아들일 수 있다. 아내라는 개념을 벗어나 소유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경향이 있는데 요즘에는 일부다처제를 퇴치하자는 많은 계몽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약 3천 달러대로 아프리카에서 중위권은 가는 수준이고 남아공이나 모리셔스, 나미비아, 보츠와나, 셰이셜, 앙골라보다는 크게 낮기는 해도 콩고민주공화국, 짐바브웨, 탄자니아, 모잠비크, 레소토, 잠비아보다는 훨씬 높은 편이다. 지니계수는 무려 0.6에 달하며 실업률도 높다. 또한, 1인당 GDP가 아프리카에서 비교적 높은 편이 된 것도 어디까지나 남아공에 경제적으로 많이 의존하기 때문이다. 실제 대다수 국민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수준으로 빈곤하게 사는 경우가 많아 돈 벌려고 남아공으로 일하러 가는 사람들도 많다. 경제성장률은 형편없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데, 2000년대 경제성장률은 2.8%로 타 남아프리카 국가보다 2% 가까이 낮다. 그리고 2016년에는 0.5%를 찍었다. 인근 나라 남아공의 상황은 빈부격차도 극심해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0.2%를 점유하고 있고 하위 10%는 전체 소득의 1%를 차지하고 있다. 에스와티니는 수입의 95.6%를 남아공에 의존하고 있다. 농업 생산량은 강수량이 충분하지 않아 자급할 정도가 되지 못하나 에스와티니에서 생산되는 사탕수수는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여 코카콜라의 원료로도 사용된다. 옥수수가 주식 중 하나이며 방목되는 소가 많아 소고기 소비량도 많은 편이다.
에스와티니 GDP 40%가 코카콜라의 원액 생산 공장 하나에서 나온다고 한다. 공장이 큰 것이 아니라 이 나라 경제가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공장이 독재의 자금줄이 된다는 논란도 있지만, 왕의 재산은 1억 달러 수준이다.
부르키나파소와 함께 대만의 둘밖에 안 되는 아프리카 수교 국가이다. 그만큼 작고 가난한 데다 지하자원도 없어서 중국이 수교할 필요성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의 국력이 날로 막강해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남아있던 대만의 수교국들이 대만과의 국교 관계를 끊고 중국과의 수교를 택하고 있듯이 에스와티니도 대만과 국교를 단절하고 중국과 수교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대한민국과는 1968년에 수교하였고 아파르트헤이트로 남아공과 미수교 하던 시절 현지 공관이 있었으나 지금은 폐쇄 및 철수하여 주(駐) 남아프리카 공화국 한국대사관이 겸직하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보츠와나, 레소토, 라이베리아, 세네갈 등과 함께 한국인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 무비자로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6개국들 중 하나다. 체류 기간은 이웃 나라 남아공과 비슷하게 30일이다.
갈대 축제가 매년 8월경 1주일에 걸쳐 열리고 있는데 이날 행사에는 에스와티니의 많은 미혼여성이 참여하여 왕 앞에서 갈대를 들고 앞가슴을 내놓고 춤을 추며 자신을 알리고 이것을 지켜보는 왕은 그중에서 자신의 배우자를 비밀리에 지목한다. 지목된 여성은 일주일 이상의 기간을 통해 에이즈 등의 건강검사를 받게 되고 검사를 통과하게 되면 왕비로 간택된다. 그런데 진실한 기독교인들은 경건하지 못한 행사라고 여기에 참석하는 것을 꺼리며 목회자들은 자기 교인들이 이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막고 있다.
또한, 남성들만을 위한 은꽐라라는 축제가 12월 사이에서 1월 사이 어느 때에라도 날짜를 정하여 열리는 축제인데 이 축제에는 3주 동안 에스와티니의 많은 남성이 참여하여 춤을 추고 3주가 지난 마지막 날에는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참석할 수 있고 외국인도 참석할 수 있다. 원하는 사람은 참석할 수 있는데 그곳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은 반드시 춤을 추어야 한다고 한다.
개신교가 40%, 로마 가톨릭이 20%, 이슬람교가 10%를 차지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땅 에스와티니는 48년 전부터 미국 선교사가 들어와 현재 수많은 교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상과 조상숭배의 혼합종교로 전락하여 교회 회복이 절실한 나라다. 이 자그마한 나라에 무당 ‘인양아’의 수가 5,000명 정도 되며 왕의 어머니가 직접 거느리고 있는 무당의 수가 200명이라고 한다. 무당에게 예수님을 믿느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예수님을 믿는다고 대답을 한다. 성경책을 가지고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조상도 같이 섬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집단이 있으며, 또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아직도 소를 잡아 제사를 드리는 웃지 못할 기가 막힌 일들이 아직도 이 나라에 자리 잡고 있다. 심지어는 암암리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일도 행하여지고 있다고 한다. 이 나라 국왕의 신앙은 하나님도 섬기고 조상도 섬기는 종교이며 가끔 방송을 통해 설교도 하고 있다.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과 조상을 겸하여 섬기면서도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귀신을 섬기면서도 자칭 목사라고 하면서 목회를 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그들은 겉으로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실질적으로는 귀신을 섬기고 있다. 그들에게 왜 귀신을 섬긴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귀신을 섬긴다고 하면 누가 교회에 나오겠느냐고 반문한다.
160년간 충실히 뿌린 복음의 씨앗이 인구의 25%에 달하는 강력한 복음주의 공동체로 꽃을 피웠다. 명목주의가 혼합종교가 만연한 가운데도 이 나라에 소망이 있는 것은 이러한 복음에 대한 헌신과 열정이 있는 진실한 크리스천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는 귀한 나라가 되기를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기쁜 소식은 올해부터 이 나라의 모든 학교에서 기독교 외의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가르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을 하였다. 모든 학교에서 진정한 복음이 전해지기를 기도한다.
정리 및 보고
김영섭, 전영선 선교사
에스와티니(스와질랜드) 주재 바울선교회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