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다가스카르(MADAGASCAR)
마다가스카르의 국기는 하양?빨강?초록의 3색기이며, 자유?애국?진보를 상징하고 있다. 하양과 빨강은 19세기에 이 지방을 지배하던 메리나(Merina) 왕국(또는 호바 왕국)의 기에서 유래하였는데, 예로부터 많은 말라가시인(人)들이 남동아시아로부터 이주한 것을 볼 때 아시아와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초록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던 동부 해안 주민들을 고려하여 추가하였다. 1959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때 제정하였다.
1. 국가 개요
아프리카 남동쪽 인도양에 있는 섬나라이다. 1811년 영국의 점령 이후 프랑스와 쟁탈전을 벌이다 1896년부터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고, 1957년 프랑스 공동체의 말라가시(Malagasy) 공화국으로 있다가 1960년 6월 26일 독립하였다.
위치/남부 아프리카에 있는 인도양의 섬, 모잠비크의 동쪽
경위도/동경 47° 00’, 남위 20° 00’
면적(㎢)/587,041
해안선(km)/4828
시간대/EAT (UTC+3)
수도/안타나나리보
종족구성/말레이-인도네시아족, 말레이-인도네시아-아프리카혼혈족, 프랑스인, 크리올 등
공용어/프랑스어, 마다가스카르어
종교/토착종교(55%), 기독교(40%), 이슬람교(5%)
건국일/1960년 06월 26일
국가원수, 국무총리/에리 라자우나리맘피아니나(Hery Rajaonarimampianina) 대통령(2014. 1. 취임)
국제전화/+261
정체/공화제
통화/말라가시 프랑(ariary, MGA)
인터넷도메인/.mg
홈페이지/www.madagascar.gov.mg
인구(명)/22,005,222(2012년)
평균수명(세)/62.52(2008년)
1인당 명목 GDP($)/448(2012년)
수출규모(억$)/13.94(2011년)
수입규모(억$)/37.65(2011년)
인구밀도(명/㎢)/35(2011년)
1인당 구매력평가기준 GDP(PPP)($)/953(2012년)
정식명칭은 마다가스카르 공화국(Republic of Madagascar)이다.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으로 모잠비크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의 모잠비크와 마주한다. 최초의 거주인은 인도네시아인이지만 인도양에 위치한 관계로 인도네시아와 아랍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90년부터 계속된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여, 1996년 이후 비동맹 중립을 표방한 좌경 일변도 정책에서 탈피하여 자유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는 등 정치와 경제적인 면에서 안정을 이루어가고 있다. 행정구역은 6개 주(faritany)로 이루어져 있다.
2. 마다가스카르의 자연
마다가스카르 섬은 세계에서 4번째 큰 섬으로 섬둘레가 5,800km이며, 남북(약 1,600km)으로 나란히 3개의 길쭉한 지대, 즉 동해안의 좁은 해안평야, 화성암으로 된 중앙 고원지대, 서해안의 넓은 평야로 나눌 수 있다. 동쪽의 해안평야는 너비 48km로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전개되며, 고원지대는 높이 650~1,400 km로 라테라이트로 뒤덮여 있다. 북부에는 최고봉 마로모코트로 산(2,876m)을 포함한 차라타나나 산지가 있으며, 중부에서 남부로 갈수록 해발고도는 낮아진다. 서해안의 넓은 평야는 너비 98~198km로 모잠비크 해협을 향하여 서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도중에 험준한 언덕이 있고 해협으로 유입되는 하천이 발달되어 있다. 기후는 다양하여 열대기후, 온대기후, 건조기후가 모두 나타난다. 우량(雨量)은 북서부 2,100㎜에서 서부 940㎜, 남서부 355㎜이며, 동해안 일대가 가장 많고 안통질만(灣)에서는 연간 약 3,500mm에 이른다. 주기적으로 사이클론이 찾아들어 큰 피해를 입는다. 전체 면적 중에서 경작 가능지는 5.03%, 농경지는 1.02%, 기타 93.95% (2005년)이며, 산림 황폐, 과도한 경작 등으로 인한 토양 침식, 사막화, 지표수의 오염, 섬 고유 생물 종의 감소 등의 환경 문제가 있다.
3. 마다가스카르의 주민
민족 구성은 약 18개 종족으로, 크게 보아 말레이-인도네시아족(메리나족, 베칠레오족), 말레이-인도네시아-아프리카 혼혈족(베츠미사라키족, 치미헤티족, 안타이사카족, 사칼라족)이 중심을 이루는데, 통틀어 마다가스카르인(人)이라 한다. 지역적으로 동해안 일대에는 베츠미사라카족(族), 아랍계의 안테모로족, 그밖에 피부가 검은 종족이 살고 있다. 고원지대에서는 메리나족이 주체를 이룬다. 남단부에는 아프리카계의 부족이 산다. 서쪽의 해안평야에서는 사칼라족이 가장 유명하며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의 자손도 있다.
언어는 1820년부터 영어, 프랑스어, 말라가시어가 공용어이다. 15세 이상 인구의 문맹율은 31.1%(2003년 추산)이다.
4. 마다가스카르의 역사
고대의 철기시대부터 인도네시아와 아프리카에서 항해해 온 사람들이 거주하였는데 서로 접촉이 없어 몇몇 종족이 오랫동안 고립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BC 2세기경 알렉산드리아의 지리학자 프톨레미가 ‘메누티아스(Menuthias)’라고 적은 것이 마다가스카르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후 이 섬에는 인도에서 온 항해자도 있었으며, 9세기에는 아랍계 사람들도 내항하였다. 1500년 포르투갈인(人) 디오고 디아스가 유럽인에게 처음 소개하여 17~18세기에는 프랑스가 동해안에 기지를 건설하였으며, 1811년에는 영국이 토아마시나(옛 타마타브)을 점령하였다. 그후 영국과 프랑스가 서로 이 섬을 쟁탈하였는데, 19세기 후반에 프랑스가 메리나 왕국에 간섭하여 1896년 식민지로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1947년경부터 반(反)프랑스 민족독립투쟁이 격렬히 일어났으며, 프랑스는 장기간 무력진압을 꾀하였으나, 1957년에는 프랑스 공동체 안의 자치공화국으로서 ‘말라가시공화국’이라는 국명을 갖게 되었다. 1958년 공화국을 선언하였고 1960년 6월 26일 필리베르트 치라나나를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해 독립하였다. 마다가스카르가 1960년 독립한 이후, 친(親)프랑스 정권인 대통령 치라나나는 1965년 재선되었으나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어 1972년 5월에 군총사령관 라마난초아에게 전권을 이양하였다. 국민투표로 신임을 얻은 라마난초아는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며, 프랑스권(圈)에서 이탈하고, 프랑스군을 철수시키고, 이스라엘과 단교하고, 아프리카-마다가스카르군 공동기구(OCAM)로부터 탈퇴하는 등 내정과 외교노선을 급전환하였다. 1974년 말 쿠데타 미수사건이 있은 뒤 라마난초아는 1975년 2월에 장군 라치만드라바에게 전권을 이양하였다. 그러나 라치만드라바는 1주일 후에 군 내부의 반대파에 의해 암살당했다. 1975년 국명을 마다가스카르민주공화국으로 개칭하였다. 같은 해 6월 최고혁명의회가 설립되었으며, 라마난초아 정권의 외상으로서 외교정책을 전환시킨 해군중령 라치라카(Ratsiraka)가 평의회 의장이 되었다가, 1976년 1월 대통령에 당선되어 1989년 3월 3선 대통령이 되었다.
1991년 6월 이후 민주화 시위가 계속되었고, 1993년 2월 야권의 자피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민주화를 추진하였으나 1996년 5월에 탄핵되었다. 11월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전 대통령 라치라카가 국민투표 50.7%의 지지율로 임기 5년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라치라카는 지난 대통령 재임 시절과는 달리 자유시장경제체제 도입 등 경제개발계획 선언으로 많은 서방국가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으며 2000년 12월 실시된 지방의회 선거에서도 전국적으로 60% 이상의 안정세력을 확보하여 정치적인 안정을 이루었다.
5. 마다가스카르의 정치
1992년 8월 19일 제정된 헌법에 따르면 마다가스카르는 의원내각제 공화국이다.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하며 수상이 내각의 수반이다. 임기 5년의 대통령으로 마크 라발로마나나(Marc Ravalomanana)가 2006년 12월 3일 국민의 직접 선거로 재선되었으며 2007년 1월 25일 찰스 라베마난자라 (Charles RABEMANANJARA)가 대통령에 의하여 수상으로 지명되었다.
2001년 5월에 상원을 설치하여 의회는 양원제를 이루는데, 하원인 국민의회는 127석, 상원은 100석으로 이루어진다. 상하양원 모두 임기는 4년으로 하원의원은 모두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하여 선출되며, 상원은 전체 의석의 2/3는 직접선거에 의하여 선출, 1/3은 대통령이 지명한다. 하원의 정당별 의석분포는 2007년 9월 23일 총선에서 마다가스카르를 사랑하는 정당(TIM) 106석, 파닐로당(Fanilo) 1석, 무소속 20석 등이었다.
외교적으로는 프랑스와의 관계에 역점을 두면서 국제협조와 비동맹국가와의 선린우호를 중시하고 잇다. 최근에는 특히 서구 제국과의 관계 강화에 힘쓰고 있다. 2006년 기준 군사예산은 GDP의 1%이며, 군인의 복무 연한은 18개월이다.
6. 마다가스카르의 경제
마다가스카르의 산업별 GDP 구성비율은 농업 27.3%, 제조업 15.8%, 서비스업 56.8% (2007년 추산)이다. 그러나 아직도 경제는 농업이 중심이며, 수출 최대 품목은 커피로 수출총액의 45% 정도(1997년)를 차지한다. 그밖의 수출품으로는 바닐라?설탕?쌀?새우?향료?목화 등이다.
수입품으로는 자본재 원유, 소비재 식품이 주종을 이룬다. 주요 수출국의 비중은 프랑스 32.1%, 미국 25.3%, 독일 6.1%, 이탈리아 5.1%, 영국 4.1% (2006년)이며, 수입국의 비중은 프랑스 13.9%, 중국 12%, 이란 9.3%, 모리셔스 5.6%, 홍콩 4.8% (2006년)이다. 물가상승율이 10%(2007년 추산)이며 절대빈곤층의 비율이 50% (2004년 추산)에 이른다.
라치라카 정권은 사회주의적 경제건설을 추진하여, 1978∼1980년 3개년 개발계획을 실시하였다. 1996년 9월 IBRD?IMF의 관리 아래 경제 구조조정을 펼쳐 1997년의 경제성장률이 1990년 이후 처음으로 인구증가율을 넘어섰고 국제수지도 20년만에 흑자를 기록하였다. 1999년 4월 IBRD과 제2차 구조조정 융자에 합의하였다.
공항은 104개소(2007년)이며 국제공항은 수도 안타나나리보와 마하장가에, 주요 지방공항은 토아마르를 비롯한 6개 도시에 있다. 대부분이 협궤인 철도는 854km(2006년)이며, 도로는 49,827 km 이지만 포장도로는 5,780km에 불과하다. 수로가 비교적 발달하여 총연장 600km(2006년), 토아마시나로부터 동해안의 해안선을 따라 팡갈란운하가 남하한다. 주요 항구는 앙트시라나나 (Antsiranana), 마하장가(Mahajanga), 토아마시나(Toamasina), 톨리아라(Toliara) 등으로 화물선 5척, 여객선 2척, 석유수송선 2척 등 다수의 선박을 보유하고 있다.
7. 마다가스카르의 사회
마다가스카르는 의무교육제(6∼14세)를 실시하고 있으며 아동의 취학률은 90% 정도이다. 고등교육기관으로는 마다가스카르대학이 있다. 15세 미만 문맹률은 20%이다(1990). 통신사는 ANTA가 있고 일간지는《마다가스카르 마탱》을 비롯하여 7종이 발행된다. 라디오 방송국은 23국, TV방송국은 1국이 있으며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는 3개사가 있다.
8. 마다가스카르의 문화
마다가스카르의 최초 거주인은 인도네시아인(人)이었으므로. 마다가스카르의 문화는 주로 인도네시아의 영향을 받았고 일부는 아랍과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았다. 가장 뛰어난 예술품은 건축물과 알로알로와 같은 건축장식으로, 알로알로는 구슬장식의 개인 장신구와 엔데벨레의 대담한 무늬의 벽화 등을 모두 말한다. 라피아 섬유는 인도네시아의 것과 비슷하다. 최근 피아나란트소아라는 시골마을은 일종의 문학적 수도로 발전했으며 많은 소설가와 작가들이 이곳에서 글을 쓰고 있다. 카바리(kabary)라는 전통웅변이 인기가 높다.
9. 마다가스카르의 종교
종교별 인구구성은 애니미즘 등 민간신앙을 믿는 사람이 55%, 그리스도교도가 40%, 이슬람교도가 5%이다.
1) 전통적인 토속신앙과 종교
마다가스카르 종교와 사회적 가치를 위한 기초가 되고 주요 기본적인 믿음의 구성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의 존재적인 믿음에 존재하고 있다. 모든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자나하리(zanahary 창조자) 혹은 안드리아마니트라(andriamanitra 향기, 주님)로 잘 알려져 있는 절대자 하나님의 존재를 전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죽은 자들은 이 절대자인 하나님과 인류 사이에서 친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선과 악을 위한 삶의 운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믿는다. 죽은 자들은 가끔은 “이 땅의 신들”이라고 묘사되며 가족의 구성원 중 가장 중요하고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며 산자들의 날마다의 삶에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동시에 라자나(razana 조상들)들은 삶의 힘의 원동력이고 말라가시 관습의 창조자들이며 삶의 방향의 근원이라고 여겨진다. 산자들은 죽은 자들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삶에서의 가장 큰 어려움과 문제는 죽은 자들을 무시하거나 거부한 결과로 믿고 있다.
마다가스카르의 모든 종교의 중요한 부분인 무덤에 묻는 의식은 말라가시의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주요한 일이다. 이것은 죽음의 우선순위를 반영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며 가정생계에 있어서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일이기도 하다. 가족무덤으로 형태지어지는 따닌드라자나(tanindeazana 조상들의 땅)는 빼앗길 수 없고 사회적이며 실제적인 경제활동이기도 하다.
다양한 종족들의 무덤들은 각기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메리나 종족의 무덤은 단단하고 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느 정도 아래가 땅에 묻혀있는 방이 있는 형태이며 조상들의 몸을 실크로 감싸서 선반에 보관하는 방식이다. 남서쪽 지방 마하팔리 부족의 전통적인 무덤은 돌로 지어졌으나 인간과 동물의 모양을 나무에 복잡한 모양으로 새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 최근의 부자가문에 의해 지어진 마하팔리 무덤들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져있고 유리로 된 창문과 밝은 페인트로 디자인 되어있고 비행기, 택시 혹은 현대적인 용품의 모양을 지붕에 새겨넣었다.
서쪽 해안에 무론다바 강 주위에 사는 사칼라바 부족 전통 무덤은 성행위를 묘사해 그려넣기도 한다. 이러한 그림들은 조상들이 생명을 주는 힘, 번영을 의미한다.
섬의 중앙에 살고 있는 메리나 부족과 베칠레오 부족 사이에서는 파마디아나(famadihana 죽음을 삶으로 돌리다)라는 관습이 있는데 삶과 죽음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 관습은 무덤에서 시체를 꺼내어 새로운 천으로 다시 싸는 행위로 이 의식은 굉장한 비용이 들어간다. 왜냐하면 이 의식에 참여한 굉장히 큰 수의 가족들과 손님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식은 죄나 수치를 경감하거나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경제적으로 이 의식을 행할 수 있음에도 파마디아나를 하지 않으면 심각한 범죄나 관습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진다.
파마디아나가 중앙지방인 메리나 부족과 베칠레오 부족 이외 다른 지방에서 발생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해 존중하는 생각은 마다가스카르 전역에서 일반적이다. 메리나 부족사이에서는 죽은 자들을 존중하는 것이 개개인의 성격과 행동을 결정 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최근에 죽은 자들의 영혼을 포함하고 있는 개념인 롤로(lolo)는 해를 끼치지 않는 개념이지만 옛 것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종종 나방이나 나비로 모습을 드러낸다고 믿고 있다. 신원불명의 귀신인 앙가트라(angatra)는 종종 밤에 나타나 악의를 가지고 사람들을 무섭게 위협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 속에 중요시하는 것은 사후의 세계나 귀신과 같은 죽은 영혼의 경험이나 천국,지옥의 개념이 아니라 삶과 함께하는 죽은 자들과의 관계와 권력과 권위의 전달자로서의 조상의 역할이다.
움비아시(ombiasy)와 파난드루(mpanandro)라 불리는 자들은 신적인 존재로 전통적인 치유자이며 점성술사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움비아시는 금기사항을 게을리함으로 인해 발생되는 실수들을 근절할 것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움비아시에게 병이나 죽음을 돌보아달라고 의뢰한다. 집안의 가장들은 특별히 농업을 시작할 때나 결혼할 때 할례를 행할 때 움비아시를 찾아간다. 메리나 가문들은 별을 보고 점을 치는 그들만의 개인적인 점성술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일정한 월급을 지불하고 있으며 추가비용과 부가적인 서비스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그들은 파마디아나(famadihana)를 위한 상서로운 날들을 정해주기도 한다. 높은 학위를 가진 메리나 부족이라 할지라도 집을 짓는 일을 시작할 때 시작일을 움비아시에게 물어보고 진행할 정도이다. 결혼을 고려할 때에도 양가의 부모들은 움비아시에게 배우자와 잘 화합할 수 있는지를 의뢰하기도 한다.
전통적인 믿음은 마다가스카르 종교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으며 점점 증가하고 있다. 대략적으로 전체국민의 55%가 전통종교를 숭배하고 있으며 40%가 기독교인데 이 비율도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가 포함된 비율이다. 그리고 나머지 5%가 무슬림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요즘에는 무슬림의 비율이 해안가를 중심으로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남부지역의 베칠레오 부족 사이에서 성행하고 있고 개신교는 수도 중앙의 메리나 부족의 대부분이 믿고 있으며 상위 계층의 사람들이 개신교를 지지하고 있다.
19세기에 기독교와 전통종교 사이의 갈등이 있었는데 이것은 라나발루나 1세 여왕이 외국인 선교사들을 추방시키고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라나발루나 여왕2세가 왕권을 잡으면서 개신교는 왕가의 종교가 되었다.
개신교 선교사들은 말라가시 개념의 절대자인 안드리아마니트라(andriamanitra)를 성경적인 하나님의 용어로 도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와 혼합한 믿음이 계속되어지고 있으며 말라가시 목사들도 전통적인 믿음과 개신교 사이에서 혼란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기독교인들은 옛 전통인 파마디아나를 하기 전에 죽은 자들을 축복해줄 것을 목사에게 요청하기도 하며 무덤의 꼭대기에 십자가를 놓기도 한다. 심지어 몇몇의 말라가시 기독교인들은 죽은 자들이 지금 자신이 되어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계속해서 선과 악을 주장하고 있다고 믿기도 한다.
2) 마다가스카르의 기독교
마다가스카르의 기독교는 섬 전체의 절반 이하의 수치를 나타내고 있으며 종종 전통적인 종교와 혼합된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개신교는 런던 선교사 협회에 의해 1818년도에 처음으로 마다가스카르에 소개되어졌다. 런던 선교사 협회는 라다마1세 왕의 요청에 의해 공립학교를 세우고 말라가시어로 된 성경을 통해 문자를 가르침으로 기독교를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여왕 라나발루나 1세때에는 기독교박해로 인해 개신교도로의 개종이 매우 낮았지만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들 라다마2세와 그의 아내 라수에리나 여왕 시절에는 더욱 엄격하게 기독교를 박해하는 정책을 펴기도 하였다.
1800년대 중반에 들어서서 메리나 부족의 상위 계층 사이에서 개신교가 전파되기 시작하였는데 라나발루나2세 여왕시대에 영국선교사들이 정책에 참여할 정도로 그 세력을 넓혀갔다. 1800년대 후반에는 전국에 걸쳐서 개신교로의 개종이 흔하게 일어나며 세력이 넓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1896년에 마다가스카르를 프랑스가 지배하면서19세기 중반에 들어서서 프랑스 주재원들과 선교사들을 통해서 로마 가톨릭이 소개되었지만 상징적인 개종자를 얻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정리 및 보고:이정무 박지은 선교사(마다가스카르 주재 바울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