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연방공화국
이00 이00 선교사
1. 미얀마 국기
현 미얀마 국기는 국명을 미얀마연방(Union of Myanmar)에서 미얀마연방공화국(The 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으로 새롭게 제정(2010년 10월 21일)하면서 채택되었다. 국기 가로줄의 노란색은 결속, 초록색은 평화, 빨간색은 용기를 의미하며 가운데에 위치한 흰 별은 단일성을 상징하고 있다.
2. 국가 개요
국 명: 미얀마연방공화국(The 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
위 치: 인도차이나 동쪽, 태국의 동쪽
수 도: 내피도(Nay Pyi Taw: 92만 명)
국경일: 1. 4.(1948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기념일)
유엔가입일: 1948. 4. 19.
인 구: 5,750만(2008년) 지방의 미출생신고자를 포함하면 6,500만이 넘음
인구증가율: 2.02%(2005년)
면 적: 678,675 ㎢(한반도의 약 3배)
겨 울: 11월초 ~ 2월 중순(한국의 초가을 날씨와 유사)
민 족: 버마족 70%, 소수족 25%(카친, 카렌, 친, 샨, 꺼야, 몬, 라카인), 기타 5%(중국 인도계 등) 135종족(공보부 발표)(1983년 조사기준. 2014. 3. 29 - 4. 10까지 전국적인 인구조사실시)
언 어: 미얀마어(공용어), 통용가능어(영어: 대도시, 중국어: 중국 접경지역, 태국어 : 태국 접경 일부지역) 222개 언어(공보부 발표)
종 교: 불교 89.4%, 기독교 4.9%, 이슬람교 3.9%, 토속신앙 1.2%, 힌두교 0.5% 등
주요도시: Yangon(632만), Mandalay(100만), Mawlamyine(30만), Bago(20만), Pathein(17만), Taunggyi(14만) (이상 추정치)
화폐단위: 짜트(Kyat, 2014년 3월 현재, 공식환율 1달러에 960짯)
국내총생산: US$ 227억(2008년)
1인당 국민소득: US$ 444(2008년) UN이 최빈국으로 지정
경제성장율: 0.9%(2008년)
인플레이션: 27.1%(2008년)
외환보유고: US$ 22.6억(2008년)
무역고: US$ 90억(수입 $ 56억, 수출 $ 34억) (2008년)
외 채: US$ 66억(2006년)
시 차: 한국이 2시간 30분 빠름
주요자원: 쌀, 티크, 원유, 천연가스, 동, 연, 아연, 텅스텐, 다이아몬드, 루비 등 자원 풍부
군 사: 45만 5천 명(육군 43만, 해군 1만 6천, 공군 9천) - 지원병제
3. 미얀마 역사
미얀마인들은 역사에 대해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1) 고대(BC 5세기 - AD 11세기 중반)
티베트 방면에서 티베트 및 버마어를 사용하는 제부족들이 남하하여 1044년까지 거주하였다. BC 480년경 미얀마에 진출한 몬족은 BC 3세기에 첫번째 왕국인 수반나부미(황금의 땅) 건설하였다.
※몬족 : 중앙아시아로부터 미얀마에 이주한 최초의 종족으로 언어상 '몬-크메르어족'에 속하며 현재 태국과 캄보디아 근처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2) 바간(Bagan) 왕조(1056-1287)
1056년 아노야타(Anawrahta) 왕(1044-1077)이 몬족을 정복하고 중부 미얀마를 장악하여 바간왕국을 창건함으로서 버마족에 의한 최초의 통일을 하였다. 아노야타 왕은 Theravada 불교(상좌부불교)로 개종하여 미얀마 불교의 기틀을 완성하였다.
※몬족의 불교는 Theravada 불교라 하여 미얀마 불교의 주류를 형성함
3) 몽고의 침공과 분열(1287-1531)
1287년 쿠빌라이칸의 몽고군 침공으로 바간 왕조가 붕괴되었다. 몽고군은 1299년 퇴각하였다. 이후 200년간 샨, 버마, 몬족 등 각 소수민족 국가가 병존하면서 패권쟁탈을 위한 각축전을 벌였다.
※몬족과 샨족 간 40년 전쟁(1385-1425) 등
4) 토옹구(Toungoo) 왕조(1531-1752)
1531년 따빈슈웨티(Tabinshwehti)가 페구에 토옹구 왕조를 건립하여 두 번째 버마족의 제패를 기록했다. 1752년 프랑스의 무력지원을 받은 몬족에 패망했다.
5) 꼰바웅(Konbaung) 왕조(1758-1886)
1758년 알라웅페야(Alaungpaya) 왕이 다시 몬족을 격퇴, 슈에보에 꼰바웅 왕조를 건립했다. 이는 제 3차 버마족의 패권쟁탈로 미얀마 역사상 최대의 세력을 확장한 시기이다.
6) 영국·일본 식민시대(1886-1948)
꼰바웅 왕조의 세력 확장은 결과적으로 당시 인도 내 영국 세력과 충돌, 제1차(1824-26), 2차(1852), 3차 전쟁(1885)을 거치면서 1886년 영국령 인도에 편입되었다. 1937년 4월 영국 의회가 개정한 버마통치법을 통과시킴에 따라 버마는 인도에서 분리되어 직할식민지와 자치령의 중간적 법적 지위를 획득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일본은 남기관(南機關)을 설치하여 '아웅산'을 중심으로 한 '30인의 동지'를 지원하였고, 버마 독립의용군을 조직하여 1942년 3월 양곤을 점령한 후 1945년 8월 연합군에 항복할 때까지 버마를 지배했다. 버마 독립을 위해 영국군 및 일본군과의 무장투쟁 과정 중 영웅이 된 아웅산 장군이 1947년 7월 각료회의 중 암살된 후 우누가 임시정부의 총리로 등장했다. 1947년 12월 영국 의회의 '버마 독립 법안' 가결로 독립기반을 형성했다.
7) 버마 독립과 우누의 사회주의(1948-1962)
1948년 1월 4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버마는 영국 연방에서도 탈퇴하였다. 우누의 AFPFL(반파시스트 인민자유연맹)이 집권(대내적으로는 사회주의를, 대외적으로는 엄정중립주의 표방)하였다. 우누 총리는 1962년 3월 네윈 총사령관의 쿠데타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날 때까지 10여 년간 재임하면서 신생국의 기반을 닦기 위해 노력했으나 공산당과 소수민족의 반란에 따른 내전 등으로 집권 기간 중 많은 어려움에 봉착했다.
8) 버마식 사회주의(1962~1988)
1962년 3월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네윈은 1963년 1월 마르크스주의와 불교적 정신가치를 접목시킨 이론인 ‘인간과 환경의 상호관계’를 발표하여 ‘버마식 사회주의’ 체제의 기본 이념으로 정립했다. 버마식 사회주의 개혁 작업의 핵심은 국유화 추진이었으나 생산·서비스 등 전 경제분야에 걸친 국유화 추진은 기업 운영의 효율성 저하 및 민간부문의 활력 감소를 초래함으로써 경제 침체가 심각,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다. 버마식 사회주의 경제의 실패 등에 따른 국민적 불만은 1988년 3월부터 수 개월간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유발하였고, 군·민 충돌로 다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무정부 상태를 초래함으로서 네윈은 1988년 7월 사임했다.
9)민주화 운동과 현 군사정부(SLORC→?SPDC)의 등장(1988-2002)
1988년 3월부터 9월까지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민중의 반정부 시위와 네윈의 사임, 시위대와 군의 충돌로 인한 유혈사태, 그후의 군부 쿠데타에 이르는 일련의 민주화 진통 기간을 일명 '랑군의 봄'이라 명명하였다. 1988년 4월 아웅산 수지 여사는 모친 간병 차 귀국하였다가 반정부 민주화 운동 전면에 나서게 되었고 버마의 독립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딸이라는 배경 등에 힘입어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
1988년 9월 18일 네윈의 막후 조종에 의한 소몽(Saw Maung) 국방장관 겸 총사령관 주도의 친위 쿠데타 발생으로 SLORC(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 군사정부가 등장했다. SLORC은 모든 통치기구를 해체, 입법, 사법, 행정 등 모든 국가권력 장악, 사회주의 포기 및 자본주의 시장경제 도입을 천명했고 1989년 6월 국호를 '미얀마 연방'으로 변경하였다. 미얀마는 '결속'을 의미한다.
1990년 5월 27일 실시된 다당제 총선에서 야당인 민주국민연맹(NLD)이 압승(전체 의석의 82%를 차지)을 거두었음에도 군정은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1991년 2월 4일 소몽 SLORC 의장은 민주국민연맹(NLD)에 정권 이양 의사가 없음을 표명했다.
1991년 10월 14일 아웅산 수지 여사는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만 군정은 아웅산 수지 여사에 대해 2010. 11월까지 수차에 걸쳐 가택연금 조치를 취했다.
1992년 4월 23일 딴쉐(Than Shwe) 국방부장관 겸 SLORC 부의장이 SLORC 의장직을 계승(소몽 의장은 건강상 이유로 모든 공직 사임)하였다. 1997년 11월 15일 SLORC을 해체하고 SPDC를 출범하였다. 1997년 7월 제30차 ASEAN 외교장관회의(말레이시아)에서 캄보디아, 라오스 등과 함께 ASEAN에 가입하였다. 2002년 12월 네윈이 사망했다.
10) 군사정부의 민주화 7단계 로드맵 추진(2003~2011. 3. 완료)
2003년 8월 딴쉐 SPDC 의장은 겸직하던 총리직을 사임하고 킨윤 SPDC 제1서기를 후임으로 임명하였으며 킨윤 총리는 2003년 8월 민주화 7단계 로드맵을 발표하고 2004년 5월 로드맵에 따른 국민회의(National Convention) 1차 회의를 개최(각 민족, 각계 계층 참석자 1천여 명 대부분을 정부가 지명)하였다.
※국민회의는 2007년 7-9월 제5차 회의에서 신헌법 기본원칙 채택 후 폐회
2004년 10월 킨윤 총리가 축출되고 SPDC 제1서기 소윈(Soe Win)이 총리직에 취임했다. 2005년 11월 내피도 행정수도 이전을 시작하여 2006년 2월 완료 했다. 2007년 9-10월 군정의 유가 대폭인상 조치로 인해 승려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촉발하였다. 이때 군정 유혈진압으로 최소 1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2007년 10월 소윈 총리가 지병으로 사망했고 떼인 세인 SPDC 1서기가 총리로 취임하였다. 2008년 5월 사이클론 나르기스 재해로 13만 8천여 명의 인명 손실이 있었으며 2008년 5월 국민투표(투표율 98.12%, 찬성율 92.48%)를 통해 신헌법이 채택되었다. 2010년 11월 총선을 통해 의회 (연방의회, 지방의회)가 구성되고 2011년 2월 연방의회를 개원하여 3명의 부통령을 선출하였으며, 하원 출신 부통령인 떼인 세인 현 총리겸 USDP 당수를 민선 정부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2011년 3월 군정 통치기구 SPDC의 마지막 행정명령을 통해 모든 권한을 민선 정부에 이양하고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2011년 3월 신정부 주요 인사를 확정하는 일련의 대통령령을 공표함으로 본격적인 신정부 활동이 개시 되었다. 이 나라의 다수민족인 버마족은 버마인과 몽족, 태국계 중국인 등의 후손이며 거의 대부분이 불교인들이다.
미얀마 정치 체제는 대통령 중심제이다.
2008년 5월 국민투표에 의해 채택된 신헌법에 따라 2010년 11월 7일 총선이 실시되었으며 2011년 1월 31일 의회가 개원된 바, 연방 합동의회는 상하원 및 군부에 의해 각각 추천된 3명의 부통령 중 하원 추천 부통령인 U Thein Sein 전 수상을 임기 5년의 대통령으로 2011년 2월 4일 선출되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2명의 부통령을 유지하고 있다(Thiha Thura U Tin Aung Myint Oo 부통령-군출신 의원단 추천. Dr. Sai Mauk Kham 부통령-상원 추천). 기존의 군정 통치 기구인 국가 평화발전 위원회(SPDC : State Peace and Development Council)는 3월 30일 신정부 출범을 계기로 신정부에 모든 권한을 이양하고 해체되었다.
4. 산업동향
현재 미얀마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주력산업은 농업, 광업, 임업 등 1차 산업이며, 특히 해상천연가스전 개발이 활성화되면서 자원개발 분야가 전통적인 농수산업, 임업 등과 함께 미얀마 전체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산업별 GDP비중은 농업이 54.6%, 제조업·광업 13%, 서비스업이 32.4%를 차지하여 제조업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
5. 자연 지리
가. 위치
동경 92。-102。, 북위 10。-2。도에 위치한 미얀마는 동으로 태국, 라오스, 중국과 북으로 중국, 인도와 서로 인도 및 방글라데시와 총연장 3,826 마일의 국경을 이루고 있으며 남으로 안다만해, 마타반만과 남서로 벵갈만 접견하고 있다. 국토 총면적은 약 67만 8천 평방 킬로미터로 한반도의 약 3.5배에 이른다.
나. 지세
일반적으로 北高南低의 지세로 북부에는 샨 고원, 북서부에는 아라칸 산맥이 있으며 미얀마 최고봉인 Khakaborazi(6,432미터)가 북부 카친주에 위치해 있다. 남부는 세계적인 미곡산지로 알려진 델타지대가 발달했다(이라와디 1,980 ㎞, 샬윈 1,274 ㎞, 싯단강 하류). 또한 국토의 66%가 산림지대로서 티크, 갱목 등 풍부한 임산자원을 제공한다.
다. 기후
국토의 종단길이는 2,040 킬로미터에 달하고 있어 열대, 아열대에 위치(전반적으로 고온다습한 열대 몬순기후)하고 있고, 건·우기가 확실히 구분되며 우기는 벵갈만에서 남서 몬순이 시작되는 5월 하순~10월 중순으로 이 기간 중 강우량은 양곤지방 평균 2,500 밀리리터에 달한다. 건기 중 가장 시원한 계절인 11월~2월 기간 중 평균 최저기온은 17℃이나 3월~5월 기간중 평균 최고기온은 40℃를 상회한다.
6. 사회 풍속
가. 가족 제도
남자가 결혼하면 처가에 가서 장인 장모와 함께 사는 대가족제도가 일반적이다. 어른을 공경하는 관습이 강하고 젊은이들이 어른 앞을 지나갈 때는 허리를 구부리고 통과한다. 경제활동의 어려움으로 부부 맞벌이가 많으며 정부 및 국영기업의 하부 직원들 중에는 여성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나. 출생 및 생일 행사
인구 부족으로 가족계획은 장려하지 않으며 임신 중절 수술은 불법이다. 대다수 미얀마인들은 생일에 불교사원에 가서 헌금 및 기도를 올리고 사원에 못 가는 경우에는 집에서 기도와 좌선을 한다.
다. 복장
더운 기후로 인하여 주요행사나 모임이 아닌 경우에는 정장을 입지 않으며 년 중 기온변화가 그다지 심하지 않기 때문에 계절별 복장 준비는 필요가 없다.
외국인 중 남성은 가벼운 하복싱글에 넥타이, 여성은 원피스 드레스를 입고, 간소복은 남성은 반소매 남방 셔츠도 무방하며 여성은 평상복으로 주로 홈드레스를 입는다. 고산지역 여행시는 긴팔셔츠가 필요하다.
미얀마인의 남성의 정장은 상의로 Stiff Collared Shirt Jacket을, 하의는 론지(Longyi)를 착용하며 예복은 강방(GaungBaung)이라는 실크 터번을 머리에 두르며 여성은 긴소매 자켓에 숄을 두르고 론지를 입는다. 간소복으로는 남성은 백색셔츠 및 론지, 여성은 다양한 색상의 셔츠와 론지를 입는다. 론지는 남녀 공용으로 착용되며 허리에서 발목까지 덮는 통치마로 남녀가 끈 매는 방법이 다르다. 특히 구두를 신지 않고 맨발에 슬리퍼만 사용한다.
라. 축제
미얀마는 축제의 나라라고 할 만큼 축제가 미얀마인 생활의 일부다. 대부분의 축제는 불교와 깊은 연관이 있다.
축제 명칭과 내용
?Tabodwe(민속, 2월-3월): 풍년을 기원하는 뜻에서 기름진 쌀과 참기름, 땅콩, 생강, 코코낫 등을 섞어 음식을 만든 후 친지 및 이웃사람을 초청하여 대접한다.
?Tabaung(법정휴일, 3월): 승려 및 사원에 시주하며 사찰 단위로 성대한 석탑축제가 열리고 승려용 옷감 경연대회 등을 개최한다.
?Thingyan(Water Festival, 법정휴일, 4월 중순): 미얀마 최대의 물축제로 미얀마 신년 직전에 시작하며 집집마다 봉안된 부처상의 얼굴을 향기나는 물로 씻고 행인들에게 행운을 기원하는 뜻에서 물을 뿌린다.
?Kason(법정휴일 5월): 석가가 탄생하고 득도하고 열반한 삼대주요사가 5월 중에 있는 것을 기념하는 축제로 여성들은 신성시되고 있는 보리수에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가서 뿌려주는 풍습이 있다.
?Waso(법정휴일 7월): 석가가 첫번째 설교한 것을 기념하는 뜻에서 청소년들은 꽃을 따서 부처상 앞에 바치며 수도승들은 더욱 수도에 전념할 것을 다짐한다. 이 기간 중에는 불교도들은 결혼 및 이사하기를 기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