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권역 | 피지  / Fiji

피지 공화국/Republic of FIJI

■ 정리 및 보고

이기순 선교사(피지 주재 바울선교회 선교사)

 


 

 

피지는 약 330여개의 화산섬으로 이루어진 남 태평양상 남위 15°~22°, 동경 177°~175°에 위치하고 있는 섬이다. 총 면적 18,376km²로 바누아투와 통가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는 남태평양 도서국가들의 허브와 같은 곳으로 교통의 요지로 볼 수 있다. 피지에 있는 330여개의 섬 중에서, 1/3은 무인도이다. 피지에서 가장 높은 곳은 비티레부 섬에 있는 토마니비 산으로서 높이는 해발 1,324m이다.

 

1. 개관

∙ 국가명 : 피지 공화국 (The Republic of Fiji)
∙ 면적 : 18,376㎢
∙ 위치 : 남태평양의 일자변경선(남위 15-22)에 위치, 북아메리카와 호주, 뉴질랜드 사이를 잇는 교통요충지로 동쪽은 통가제도, 서쪽은 산타쿠르스 제도, 남쪽은 뉴질랜드, 북쪽은 투발루로 이어지는 대양상에 있다.
∙ 인구 : 약 896,445명(2020)
∙ 1인당 GDP : 5,750$(2018)
∙ 종교 분포 : 기독교(61%) 힌두교(31%) 이슬람교(6.5%) 기타 (1,5%)
∙ 민족 구성 : 피지원주민 52%, 인도계 피지인 36.7% 기타11%
∙ 수도 : 수바
∙ 정치체제 : 의원 내각제
∙ 대통령 : 지오지 코노우시 콘로테
∙ 총리 : 초세이아 보렝게 바이니마라마
∙ 대한수교현황 : 남한 수교(1971~)  북한 수교(1975~1988, 2002~)

 

2. 인구와 인종

피지의 총인구는 2020년 기준 896,445명이었다. 인구증가율은 0.74%이며 1995년 이후 1% 미만의 낮은 증가율을 지속하고 있다. 인구밀도는 44.8명/㎢이며 세계 평균인 56.5명/㎢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며 전체 인구의 53.7%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중위연령은 27.6세이며 노인인구비율이 5.83%로 아직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기 전 상태이다. 인구 증가는 주로 본섬(Viti Levu)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며, 북섬(Vanua Leva)에서는 사탕수수밭의 계약 종료로 인해 인구가 크게 감소하고 있다. 2007년 자료에 따르면, 20세 이하 인구가 39%로, 향후 10년간 지속적으로 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렇게 먼 남태평양에 인도인들이 왜 이리도 많을까' 하고 놀랄 정도로 인도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얼마 전만해도 피지 원주민과 인도인계 피지인의 비율이 반반일 정도였으나 기술 이민으로 지식층의 인도인들이 많이 떠나서 현재는 약 36.7%를 이루고 있다. 대부분의 인도계는 1879년과 1916년 사이 영국과 노역계약을 맺고 입국한 노동자들의 후손이다. 영국은 자기들이 추진하고 있었던 사탕수수 개발을 위해 게으른 피지인보다는 부지런하고 물질의 축척에 욕심이 많은 인도인들이 더 필요했다. 그 외에도 주변국인 통가나 사모아 및 기타 폴리네시아계인들 그리시아계인들이 점유하고 있다.


3. 역 사 

피지에는 기원전 약 1600년부터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며, AD 1000년경에는 통가(Tonga), 사모아(Samoa)등 폴리네시아인들로부터 침입을 겪으면서 커다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도 했다.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 풍습이 일반적으로 행해졌고, 권력 세습식의 일부 다처제를 통한 족장의 강력 통치가 이루어 졌다. 부족간 결혼은 집단간을 잇는 주요한 방식이었지만 서로간 분쟁과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내부 족벌 전쟁으로 가족끼리 싸움을 하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

 

1) 피지 전통사회의 확립

①피지 원주민들은 토지를 공유하는 친족 중심의 사회구조를 발전시켰다. 피지 원주민 공동체는 절대적 권위를 갖는 추장(chief)을 정점으로 구성원들이 각각의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2) 유럽인들의 방문 및 이주

①1643년 네덜란드인 아벨 타스만(Abel Tasman)이 유럽인으로서 처음으로 피지 근해를 항해하였으며, 1774년 및 1789년에는 영국인 제임스 쿡(James Cook) 및 윌리엄 블라이(William Bligh)가 피지의 일부 섬들을 목격하였다. 이 가운데 쿡 선장은 통가인들이 피지를 ‘Viti'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Fiji'로 명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②19세기 이래에는 향나무(sandalwood)와 해삼 무역업자, 포경선 등 유럽인들의 방문이 있었으며, 1860년대 이후에는 면화 재배를 위한 유럽인들의 피지 이주가 본격화 되어 레부카(Levuka)가 중심지로 발달하였다.
③한편, 1835년 웨슬리교단 선교사인 윌리엄 크로스(William Cross)와 데이비드 카길(David Cargill)이 피지에 도착하여 선교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점차로 피지인들의 기독교 개종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3) 바우(Bau)섬 추장 다콤바우(Cakobau)의 부상과 영국으로의 주권 이양

①유럽인들의 방문시까지 피지는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여러 부족장의 지배하에 나뉘어 있었으나, 1830년 이래 Bau섬이 점차 세력권을 확장해나갔으며, 추장인 세루 다콤바우(Seru Cakobau)는 피지 국왕(Tui Viti - King of Fiji)으로 인정받고자 하였다.
②미국 정부의 자국 영사 자택 방화사건에 대한 배상요구와 경쟁세력(Ma'afu) 강화 등 대내외적 어려움에 직면한 다콤바우(Cakobau) 추장은 1858년 영국 영사 W.T 프리처드(W.T. Pritchard)에게 피지를 영국에 이양하겠다고 제안하였다.
③1862년 영국 정부는 동 제안을 거부하였으나 이후 입장을 바꿔 1874.10.10 레부카(Levuka)에서 이양문서(Deed of Cession)에 서명하였으며, 피지는 이로써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4) 영국의 지배와 유산

①피지의 초대 총독(Governor)으로 부임한 아더 고든(Sir Arthur Gordon)은 피지 원주민들은 전통 관습에 따라 통치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피지의 전통적 지배구조를 반영한 위계적 통치체제를 확립하였다. 식민지 편입 이전까지 유럽인들이 취득한 토지(freehold land), 원주민 공동체 소유 토지(native land - 매매 불가) 및 정부 토지(crown land)로 토지를 구분하는 토지 제도가 이때 확립되었다.
②한편, 영국 식민 정부는 1879~1920년간 피지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할 6만 명이 넘는 계약노동자들을 피지에 받아들였다. 동 제도가 폐지된 이후 많은 인도인 노동자들이 피지에 정착하게 됨에 따라 1970년 독립 당시 피지는 다 인종 사회를 구성하게 되었으며 인구 절반 이상을 인도계 피지인들이 차지했다. 이러한 인구 구성은 향후 피지의 정치·사회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5) 1970년 피지 독립 및 민주주의로의 이행

①20세기 이후 피지 식민의회는 점차로 임명직 멤버보다 선출직 멤버수를, 유럽인보다 피지 원주민 및 인도인 멤버 수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자치권 및 민주주의 강화를 지향해왔다. 그러나 보통투표제(Common Roll)가 아닌 인종별로 후보들에게 투표하는 인종별 투표(Communal Roll) 방식이 고수되었으며, 독립 이후에도 인종별로 하원 의원 수를 배분하는 제도가 유지되었다.
②1966년 제정된 헌법에 따라 실시된 총선에서 NAP(National Alliance Party)가 과반수를 획득, 라투 카미세세 마라(Ratu Kamisese Mara) NAP 당수가 수석장관(Chief Minister)으로 취임하였으며, 피지는 1970.10.10 일자로 독립하였다.


4. 정 치

1970년 피지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고 피지 자치령이 출범되었다. 독립한 피지는 경제권을 잡은 인도인 대 정치권을 잡은 피지인의 세력다툼이 이어지고 있다. 1987년에 두 차례, 2000년 그리고 2006년 총 4차례의 쿠데타가 있었다.

 

1) 1987년 쿠데타

①독립 이후 피지 원주민 주도하는 국민 동맹당(National Alliance Party)과 인도계 피지인이 주도하는 국민연합당(National Federation Party)간 양당체제하에서 라투 카미세세 마라(Ratu Kamisese Mara) 총리가 이끄는 동맹당이 장기간 집권해왔으나, 1987.4.12 선거에서 국민 동맹당이 패배하고, 인도계의 지지를 받는 바바드라(Bavadra)가 승리하게 되자, 이에 따라 인도계의 정권 장악을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시티베니 람부카(Sitiveni Rabuka) 중령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②인도계가 주도하는 연합군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한 군사 쿠데타로 인해 인종 차별을 당한 인도계 출신의 수천 명의 사람들이 피지를 떠나게 되었다.

 

2) 2000년 쿠데타

①1999년 총선에서 시티베니 람부카 총리가 이끄는 집권당인 피지 정치1당이 패배하고 피지 노동당 승리한 후 인도계 피지인 마헨드라 처우도리가 수상이 되자, 기업가인 죠지 스페이트(George Speight)는 인도인에 의한 정권 장악을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②동 쿠데타는 바이니마라마(Bainimarama)군 사령관에 의하여 진압됨으로써 실패로 끝났으나, 이후 과도정부 체제를 거쳐 2001년 실시된 총선에서 피지 원주민 가라세(Qarase) 총리가 집권함으로써 피지 원주민 측이 정권을 재 획득하게 되었다.

 

3) 2006년 쿠데타

①가라세(Qarase) 총리의 피지 원주민 우대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며 대립해오던 바이니마라마(Bainimarama)군 사령관은 2006.12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하였으며, 2012년까지 피지에는 군사 정부 체제가 지속되었다.
②2013년 9월 신 헌법을 제정, 2014년 9월 민주적 총선 실시가 공표되었다.
③2014년 9월 17일 민주적 총선 실시, 바이니마라마, 과도정부 총리가 이끄는 Fiji First 당이 총 50석 중 32석을 획득(득표율 59.5%), 재집권하게 되었다.
④1987년과 2000년에 일어난 쿠데타는 국민투표로 선출된 인도계 정부의 기반을 악화시키려는 종족 간 이해관계가 원인이었다면, 2006년 쿠데타는 부패를 막고 고질적인 인종차별적(反인도계) 정책에 대한 반대를 명분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쿠데타와 대조적이다.

 

5. 경제 및 사회

피지는 태평양의 수많은 도서 국가 중에서는 가장 경제가 발달한 나라이지만, 여전히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상태다.


①피지의 2대 주요 산업은 관광산업 및 사탕수수(설탕)경작 으로, 이외 생수, 금, 수산업, 농업 등이 있다. 2011년도 피지 방문객은 약 67만명이었고, 관광객이 증가하여 2017년엔 85만 명이 피지를 방문했다. 정부는 2012년 피지 관광청 리브랜딩 작업 추진, 국적 기 항공사명 변경(Air Pacific -> Fiji Airways) 및 신형기종 구매 등 관광산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②전통적 기간산업인 사탕수수는 EU의 특혜가격 철폐, 설비 노후화 등으로 인한 지속적 생산량 감소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
③피지는 수입 초과로 인한 무역적자를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해외로부터의 송금 등으로 일부 보전되고 있다.
④피지국민은 피지 원주민과 영국식민지 시대부터 주로 사탕수수 재배를 위한 노동자로 이민 온 인도계로 양분되어 있으며, 이들 양 민족간 결혼은 거의 없다.
⑤피지 원주민은 각자가 귀속하는 친족의 토지를 공유, 관혼 상제 시 상호협동 및 부조하고 있다.
⑥최근, 도시화•서구화 경향 유입으로 개인주의 성향 확대, 빈부차심화, 인구의 도시집중 등으로 전통적 사회양식이 변모하고, 치안이 점차 악화되고 있으며, 임금 노동에 기초한 가족중심 생활 및 도시 중심 생활에 차츰 익숙해지고 있다.
⑦피지 원주민은 서구적인 합리주의, 개인주의 문화보다는 동양적인 정서주의, 집단주의 성향이 더 강하다.  스포츠로서 '럭비'가 크게 유행하여, 7인제 럭비는 세계 최상급이다.
⑧식민지 시대부터 전통적인 토지소유자인 피지계에 대한 보호정책으로 인도계의 토지소유가 극히 제한되어 있어 인도계의 불만이 형성되어 있다.
⑨인도계 국민은 피지 원주민처럼 강한 상호부조정신은 갖고 있지 못하나, 실용적인 성격으로 부지런하고 자녀교육 등에 헌신적이어서, 피지의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다.

 

■문제점

피지 경제 상태를 어렵게 하는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인 혼란이다. 피지는 크게 인도계와 피지 원주민 두 민족이 공존하고 있는데 인도계가 경제를 장악한 상태라 원주민들의 불만이 매우 컸고, 결국 이것이 수 차례의 쿠데타로 인한 정치적인 혼란을 불러왔다. 이후 원주민 정권은 극단적인 원주민 우대 정책을 펼치며 인도계의 경제 장악을 막으려 했으나 이로 인해 7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피지를 떠나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피지를 떠난 대부분의 국민들이 부유하고 교육을 잘 받은 인도계였던 것이다. 쿠데타 이후 200억 달러 이상의 돈이 인도계와 함께 호주나 뉴질랜드로 빠져나가 버리며 경제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또 피지는 영연방 회원국으로 쿠데타 발생 이전까지 유리한 조건으로 영연방 회원국들에게 사탕수수와 설탕을 수출해오며 외화를 벌어들였으나, 쿠데타 발생 이후 영연방을 탈퇴했고 이후에 재가입했지만 수 차례에 걸쳐 자격이 정지되면서 피지의 주 산업이었던 설탕 및 사탕수수 산업이 큰 피해를 입으며 피지 경제에서의 비중이 크게 축소되었다.


최근에는 지나치게 관광업에 의존하고 있는 게 문제이다. 쿠데타가 일어날 때마다 관광객이 급감하는데 이 때마다 피지의 경제도 크게 위축되는 편이다. 한편 사이클론이 자주 오는 편으로 사이클론이 올 때마다 피지의 경제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2016 년 2 월 20 일, 피지는 전국에 상륙 한 유일한 카테고리 5 열대성 저기압인 사이클론 윈스턴(Winston)의 전폭적인 공격을 받았다. 윈스턴은 섬 전체에 있는 수만 채의 집을 파괴하여 44 명이 사망하고 약 20억 FJ(미화 10 억 달러)의 피해를 입혔다.


6. 문화

피지의 문화는 피지 원주민, 인도계 피지인, 아시아 및 유럽 전통의 풍부한 모자이크로 사회적 정체, 언어, 음식(주로 바다에서 나옴), 카사바, 달로(타로) 및 기타 야채, 의상, 신념 체계, 건축, 예술, 공예, 음악, 무용 및 스포츠가 있다.


토착 피지 문화와 전통은 매우 활기차고 피지 인구 대다수의 일상 생활의 필수 구성 요소이지만 피지 사회는 지난 세기 동안 인도와 중국과 같은 전통과 유럽과 피지의 중요한 영향을 도입하면서 발전해 왔다. 태평양 지역, 특히 통가와 사모아를 따라서 피지의 다양한 문화가 함께 모여 독특한 다문화 국가 정체성을 만들었다. 

 

피지 선교의 약사 및 배경

①웨슬리안 선교사 협회(Methodist)의 1835년에 윌리엄 크로스(William Cross)와 데이비드 카길(David Cargill)이 피지에 도착하여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②이후 점차로 피지인들의 기독교 개종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③1854년 통가 왕의 영향을 받아 다콤바우 추장이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의 개종으로 많은 유명한 피지 수장이 기독교인이 되었다.
④1874년 피지에서 영국의 통치가 확립되었을 때, 정부는 감리교회와 협력, 한 세기 반 동안 피지에 있는 감리 교회는 정부와 전반적으로 아주 긴밀하게 협력을 했다.
⑤1964년 피지에 있는 감리 교회는 자치적이 되었고, 1986년에는 피지 원주민 인구의 거의 75 %가 감리 교회에 속해 있었지만, 인도 감리교인은 전체 교회 회원의 약 1.5 %를 차지했다.
⑥1987년 두 차례의 군사 쿠데타는 국가의 정치 역사에 전환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감리 교회 안에도 분열과 정체성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⑦2000년 쿠데타 이후, 피지 & 로투마의 감리 교회는 피지 기독교 교회 회의(ACCF)라고 하는 또 다른 기독교 조직의 형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대부분 복음주의 오순절 교회로 ACCF 회원 교회 안에는 단합과 치유 그리고 변화를 위한 강한 사명감이 있다.
⑧부족국가의 특성상 추장이 믿게 되면 부족 전체가 개종하는 ‘위로부터의 개종’ 결과 170년이 지난 지금 피지원주민들의 76%가 감리교인이라는 믿어지지 않는 통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현재 피지의 감리교회는 초기에 선교사가 전해준 뜨거운 복음의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전통과 조직에 의존하고 있을 뿐,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을 상실했다. 교회의 타락은 사회의 타락을 가져왔으니 범죄 증가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에 반해 1879년부터 이주해온 인도인들은 현재 힌두교인들이 76%, 무슬림들이 16%로서 100여년이 넘는 동안이나 인도 본토에서 가져온 그들의 전통종교와 문화를 고수해 오고 있다. 특별히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화의 확산이 빠르게 진행 되어지는 추세에 있고, 남태평양의 중심국가인 피지가 남태평양 전역을 모슬렘화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어서 이에 대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기도 제목

  1. 영국 식민지 시대 영향으로 피지 원주민과 인도계 피지인간 인종 차별과 그로 인한 경쟁적 민족성과 분열이 복음 안에서 무너지고 용서와 화해가 일어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2. 지난 20년 동안 4차례의 쿠테타로 인해 정권이 계속 교체되면서, 정치적 진보를 방해하고 나라를 불안정하게 했다. 정의로운 사회, 법으로 다스려지는 사회 그리고 민주 선거로 세운 정권이 유지 되어 지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3. 감리교회 안에 새로운 복음의 생명력이 싹터서 전통과 형식에 메인 명목상 그리스도인에서 벗어나 올바른 믿음을 가진 신앙인으로 회복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4. 복음주의 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말씀의 진리 위에 견고히 서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복음 전파에 힘쓰도록 기도해주십시오.
  5. 태평양에서 가장 큰 비기독교 집단인 피지 인도인들(힌두교인, 무슬림)이 복음에 반응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6. 전도협회(CEF)를 통해 어린이 전도가 활성화 되고 교사 교육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예수전도단(YWAM) 및 청소년 사역을 통하여 헌신된 젊은 일꾼들이 세워지도록 기도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