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아들보다 나은 며느리, 선교사
이동휘 목사(전주안디옥교회 선교목사, 사단법인 바울선교회 대표이사)
애절한 기도의 열매로 겨우 얻은 소중한 아들을 하나님께 냅다 바친 어머니가 있다. 그것도 젖을 떼자마자 드린 한나 여인의 애틋한 헌신이다. 젖 뗀 아이가 엄마 품을 가장 사모하는 법이거늘 그 철부지 첫아들을 품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심정, 어린 사무엘을 가슴에 떠올릴 때마다 얼마나 울먹였을까. 저녁 잠들기 전, 대소변도 제대로 가리지 못할 어린 피붙이가 안쓰러워 사무치게 흐느꼈을 것이고 아침상을 들 때는 어른거리는 천진한 모습에 하염없이 울컥거리며 눈물 적신 음식을 삼켰을 것이다. 엄마의 포근한 입맞춤이 가장 절실한, 그 여리고 어린 나이에, 엄마의 생명의 끈인 자식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떼어짐의 아픔, 선교는 이렇게 이루어진다.
룻기서를 보면 일곱 아들보다 귀한 며느리(룻 4:15)가 찬란하게 등장한다. 남편 잃고도 자기 고향 모압 땅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전혀 딴 종족인 시어머니를 뒤따라 이스라엘 땅으로 젊은 과부의 몸으로 들어간다. 한국의 고부간 갈등이 예사가 아니어서 친정어머니가 아프면 머리가 아프고 시어머니가 아프면 골치가 아프다는 묘한 표현을 생각한다면 충격을 주는 모험이다. 비록 며느리에 불과한 룻은 피를 이어받은 내 아들 내 종족 일곱보다 더 뛰어난 존재로 그 집안에 들보가 되고 하나님의 종족을 낳아주는 대단한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보아스를 남편으로 맞이하여 족보가 완전히 소멸할 뻔한 가정에 계보를 이어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족보에 가담하게 되어 메시야 가문으로 기록되는 영광까지 몰고 온 찬란한 며느리다. 룻의 효성의 근본은 무엇이었을까.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는”(룻 1:16) 그 땅 백성을 나의 백성으로 삼는 그 진한 사랑이, 든든한 선교의 기초를 이룬다. 고향과 가정에 대한 정을 미련 없이 끊고 전혀 딴 종족을 향하는 선교사는(남편 하나 보고 딴 가문에 시집가듯) 바로 며느리의 위치다. 그 나라의 생명을 공급하는 룻이어야 한다.
아도니람 저드슨은 미국 최초의 선교사로 미얀마에서(1813) 일생을 불사른 희생의 사람이다. 정부의 박해, 열대성 열병, 투옥생활로 극심한 고난을 숱하게 겪었다. 선교 6년 만에야 처음 개종자를 얻게 되는 지루한 싸움을 하였다. 정착 초기에, 천사처럼 예쁜 첫째 아기를 잃었고 얼마 후 그의 아내 낸시는 몹시도 병약한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동네에 돌아다니면서 동냥젖을 먹였던 어린 딸도 열병으로 결국 엄마 뒤를 따르고 말았다. 슬픔에 빠진 그는 하나님을 믿지만, 그분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졌다. 아픔이 여물어 가자 그는 다시 용기를 내어 활동을 시도하였고 재혼도 하여 눈부신 업적을 남겼다. 33년 만에 고국 미국 땅을 향하는 여행 중에 사랑하는 두 번째 아내가 병으로 또 죽었다. 1859년에는 저드슨 선교사도 병이 들어 치료를 받기 위해 배에 오른 여정 중에 62세의 나이로 부름을 받아 바다에 수장되었다.
그가 이룬 업적은 경이적이다. 37년간 미얀마(당시 버마)를 위해 모국어인 영어를 잊어버릴 정도로 미얀마 선교에 온몸을 소진했다. 성경을 버마어로 번역했고 버마 영어사전을 만들고 그의 말년에 7천 명의 교인과 163명의 선교사가 활동하였다. 미얀마 선교의 기초를 견고히 닦은 고난을 정복한 정품 선교사다.
선교사의 초심을 풀풀 살려라. 다음 한 세대를 불사르는 제2의 저드슨이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