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글
이동휘 목사(바울선교회 대표이사, 전주안디옥교회 선교목사)
구원 얻는 자가 적습니까?(눅 13:23) 동행 중 한 사람이 궁금증을 예수님께 접수했다. 선교사들의 절통한 질문이기도 하다. 권능을 쏟아부으신 벳세다 마을이나(눅 10:13-15) 예수님께서 살고 계시는 가버나움 사람들이 회개치 않는 강퍅한 모습에 까칠한 의문이 돋았을 것이다. 주님의 답변은 적다 많다가 아니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란다. 자신의 구원문제를 끌어안으라 하신다. 문 닫힌 후에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베드로조차 자기의 최측근 요한의 장래가 궁금하여 이 사람은 어찌 되겠는가를 물었을 때,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남겨둔다 한들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냉철하게 일러 주었건만(요 21:22) 그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자기 해석으로 오해를 불러왔다. 그래서 비꼬는 말이 나왔나 보다. 너나 잘해~~
흥겨운 결혼예식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주인이 들어오자 한 사람을 특별히 지목하신다. 형제여! 왜 예복을 입지 않았는가 묻는다. 유구무언(有口無言)이다. 바로 축출명령이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바든 자는 적다" 하신다.(마 22:14)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교회 출입증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치심(인증)을 받아야 한다. 죄에서 벗어나는 삶만이 예복이다.(계22:14) 억울한 장면이 하나 또 있다.
종살이에 등이 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벅찬 감격으로 애굽을 훌렁 빠져나왔다. 그러나 약속의 땅에 들어간 자는 60만 중(20세 이상) 단 두 사람뿐이다. 복음을 교묘하게 거역한 결과다.(시 106:43) 뜨거운 낮엔 구름은 펴 덮개로 삼아주시고, 밤엔 불로 밝혀주신 극진한 사랑을 배신한 것이다.(시 105:39) 육체만 둥둥 떠 다녔을 뿐, 속내는 주를 따르지 않았다.(시 78:22) 이럴 수가!
네 종류의 밭에 씨가 흩어진다. 길에 뿌려진 씨, 가시덤불 속에, 돌 위에 떨어진 씨들은 열매를 포기한다. 단, 좋은 밭에 뿌려진 씨앗만이 100배의 수확이다. 나는 어떤 밭인가. 무딘 마음을 갈고 뒤엎어야 할 시급함만이 나의 선택이다.
밭에(하나님 나라) 곡식이 있고 틈 사이에 가라지가 숨어 자란다. 곡식 중에도 알곡이 있고 안타깝게도 쭉정이가 끼인다. 바리새인은 정통파 지도자인데, 십일조도 꼭꼭 바치고 금식도 정규(定規)적인데, 가식 때문에 쭉정이로 판정되었다. 외식하는 자로 낙인 찍혀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마 24:51) 너무나도 슬픈 사연이다. 예수님 오시는 날, 한 여자는 데려감을 당하고 한 여자는 버려진다. 밭에서 일하는 두 남자 중에 하나는 들림 받고 하나는 추락이다.(마 24:40-41)
1년 된 송아지는 팔지 않는다. 머지않아 성장하여 많은 값을 받을 수 있어서다. 그런데도 성경은 번제 희생물 가운데 1년 된 송아지를 바치라 하신다. 인생을 통째로 내놓으라는 일방적 통보다. 예수님께서 통째로 희생물이 되셨기 때문이다. 전체를 주님께 맡겨야 전체를 주시는 거래 방법이다. 바울 사도가 학문을 모조리 버렸으나 주님은 돌려주시어 로마서를 쓰게 하셨고 걸출한 사도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이 부요하신 이상 나는 더 가난할 수 없다.(버나드) 어느 여성이 자기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쏟아부었다. 그런데도 징계가 없다. 그의 직접 상관이 부하의 큰 실수를 자기 책임으로 돌려놓았기 때문이다. 왜요? 절박하게 물었다. 예수님께서 내 죄를 뒤집어쓰시고 나 대신 죽었음이 너무 감미로워 예수님처럼 하고 싶었단다. 그것뿐이란다. 그녀는 예수님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영생을 얻었다. 요한복음의 영생을 받았다는 말씀은 임신했다는 뜻이란다.(요 5:24)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듯이.
형제여! 예수님을 임신(영접)했는가. 구원! 확실한가.
다시 묻는다. 그 후, 변함은 없는가?
이동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