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이야기  / Mission Story
[선교자료]거룩한 순례자의 길, 같이 걷겠습니다 - 7.절제의 순례자
BY 관리자2013.12.07 09: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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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의 순례자

 

이동휘 목사

 

 

 

황혼에 목욕하는 여인을 보는 그 순간 바로, 절제의 은혜가 내렸다면 우리의 성군 다윗이 추악한 간음과 살인 그리고 자식들의 반란도 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청아한 인생에 오점이 뚝 박히는 안타까운 시점이었다. 솔로몬이 그렇게도 존경한 아버지 다윗의 절절한 부탁을 철심 뚝심을 품고 명심했더라면 향락의 덫에 몰락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원통함도 가진다. 비록 패역한 무리들이 은혜를 깡그리 무시하고 마치 벌떼처럼 달려들어 핏발을 올리는 파렴치한 망나니짓을 했을지라도 모세는 그의 온유의 특기(민 12:3)를 번쩍 올려 그 긴박한 고비를 참고 반석을 황급히 치지만 않았다면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가나안 땅을 밟아보고 본향에 갔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을 버릴 수 없다. 나아만 장군과 비밀 접촉하여 두 자루 가득히 은 보화를 챙겨 넣고 문명국 아람나라의 번쩍거리는 두 벌 옷을 쌍불 켜고 탐낸 대가가 대체 무엇이었던가? 몸에 걸치지도 못한 채 나병에 걸려 밖의 세상과 담을 쌓아야하는 처참한 수렁에 빠지고야 말았던 것이다!(왕하 5:27) 당시 세계 제일의 선지자 엘리야의 수제자 게하시의 경우다. 순간의 판단! 정말 무섭다. 요셉의 절제(창 39:9)가 말세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돋보이는 미덕으로 향기를 풍기고 있다. 그것도 10대 청소년의 나이에 엄청난 무게의 시험을 거뜬히 이긴 그 절제의 경건을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성령의 아름다운 9가지 열매 중에 하나인 절제는 갈급히 사모해야 할 덕목이다(갈 5:23).

 

 

 

 

 

※수도원 생활과 성무일과(이성희: 수도원영성의 향기: 이집트 수도원 체험기)

 

▶음식: 수도사들에게 음식은 즐기는 것이 아니고 생존을 위한 수단이다. 가공하지 않은 제1의 원초적인 소금의 맛 그대로다. 각종 양념을 넣은 제2의 맛은 아예 찾을 수 없고 발효식품의 제3의 맛을 기대하는 현대인의 미적 감각은 그들에게는 아주 멀다. 과식함으로 마음이 둔해지는 일이 없도록(눅 21:34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공동) 주의한다. 고기도 이들에게는 제외식품이다. 수도사들은 매일 두 끼 식사를 한다. 점심 식사만이 함께하는 공동식사다. 축제의 즐거운 시간이고 친교의 목적으로 같이 한번 만나는 순간이다. 저녁 식사는 본인 뜻대로 식당에 와서 자유롭게 한다. 그래서 한 끼만 하는 수도자도 많다. 먹는 것을 탐하지 않고 식사에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는다. 두 가지 요리로 대부분 식탁을 채운다.

 

 

 

▶옷: 수도사의 옷은 검다. 그러나 1년 미만 된 자는 파란색이다. 2년 미만의 수도사는 갈색 옷이다. 그리고 대부분 둥근 모자를 쓴다. 순진과 단순함의 표시다. 화려함보다 단순한 마음을 가지려는 의도다. 옷은 항상 인간의 염려꺼리였다. 사치의 표상이 되었다. 무엇을 입을까(마 6:28)하는 근심은 신앙을 좀 먹는다. 수도사들에게 있어서 옷은 시장에 버려져서 삼 일 동안 아무도 가져가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 이 한 벌의 옷을 걸치고 모든 것을 감내하면서 유유히 긴 인생을 살아간다. “아르센은 궁전에 있을 때 누구보다 좋은 옷을 입었다. 수도자가 되자 또 누구보다도 나쁜 옷을 입었다.”

 

 

 

▶노동: 아침 기도회가 마치면 그 후에 노동을 하고 오후 1시에 함께 모여 점심식사를 한다. 이때 한 시간 가량 휴식을 한다. 그 후에 자신의 일이 끝나지 않은 자는 일터로 가고 끝난 자는 독서를 한다. 다양한 일을 한다. 어떤 사람은 채소를 가꾸고 또는 나무와 화초를 가꾸기도 하고 책을 출판하는 사람, 집을 짓고 고치는 일, 건강치료 하는 사람 등이다. 잡념을 없이 하고 수도에 집중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많이 가진다. “한가함은 영혼의 원수다. 그러므로 형제들은 정해진 시간에 육체노동을 하고 성독(聖讀)을 할 것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다. 잡념과 소란한 대화 가운데의 노동은 아무 의미가 없다. 홀로 기도하면서 일한다. 기도가 없는 노동은 문자 그대로 노동에 불과하다. 대가를 노리는 노동은 노동자가 된다. 기도를 기대하는 노동을 하면 기도자가 된다.

 

 

 

▶수면: 이들은 잠자는 것까지도 훈련으로 삼는다. 잠은 반드시 자야 하지만 영혼은 잠들지 않고 깨어 있어야 한다. 수도사들은 건강에 따라 잠을 조정한다. 수면 절제를 고행으로 삼는 자도 있다. 로마황실의 가정교사였다가 수도사가 된 알세니우스는 “하루에 한 시간의 잠이면 족하지 않느냐” 말했다. 어떤 수도사는 14일 동안 서서 기도했다. 졸지 않기 위해 가시나무를 둘러쳤다. 졸다가 흔들리면 가시에 찔려 다시 깨어나게 한 것이다.

 

 

 

▶침묵과 명상: 수도사들은 기도와 명상에 장애 되는 일과 생각을 피하고 단순하게 이어 간다. 사막 너머로 해가 지면 자기 독방으로 돌아간다. 고독이 몰려오는 깜깜한 밤은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아무 것도 없는 사막이기에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모한다. 거룩한 고독이다. 이때에 사람은 성숙한다. 이 밤에 또 사막을 걷는다. 홀로 걷는다. 어디론가 사라지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다. 땅은 어둡고 무섭지만 하늘을 쳐다보면 별들이 총총 빛나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소망을 노래한다. 사막의 별은 금방 머리에 쏟아질 것처럼 춤추고 있다. 자기 방에 들어와서도 긴 침묵을 계속한다. 성 베네딕트는 “내 길을 지키어 내 혀로 죄 짓지 않으리라. 나는 내 입에다 파수꾼을 두었고, 벙어리가 되어 낮추었으며 좋은 일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노라” 재잘거림은 영성의 방해자다. 하나님의 임재를 막는 담이다. 고독과 침묵은 인간을 성장하게 하는 에너지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영혼을 더럽힌다.

 

 

 

▶일과: 하루 성무일과는 기도와 학습과 노동이다. 새벽 4시경에 종소리와 함께 깨어 일어나 아침 기도회를 서서 두 시간을 가진다. 개인 기도까지 7시까지 계속된다. 아침기도회 시간을 ‘살무스’라고 하는데 ‘시편’이란 뜻이다. 아침 기도회는 시편 낭송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먼저 출애굽 사건 후 부른 노래로 출애굽기 15장을 찬양한다. 그 다음은 시편 135편으로 창조와 구원을 송축하는 노래다. 그 다음은 다니엘 세 친구가 풀무불에서 나온 찬송을 부른다. 넷째 부분은 시편 138편, 149편, 150편을 낭송한다. 베네딕트 수도 규칙에는 시편 150편 전체를 한 주 동안에 다 암송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루에 20편 넘게 암송하는 편이다. 수도사들은 시편을 모두 암송하는 것 같다. 이런 기도는 하루에 7번 반복된다. 아침기도, 제1시 기도, 제3시 기도, 제6시 기도, 제9시 기도, 저녁기도, 끝기도이다. 아침기도 외에는 그리 길지 않다. 예배당에 모여 기도하고 일터에서 일하고 독방에서 묵상하고 독서하다 보면 하루가 길지 않게 지나간다. 기도는 영적전쟁이라 노동처럼 한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치열한 기도 싸움을 한다. 평생 서원을 반복하기도 한다. “우리 수도사들이 영적 힘이 떨어지면 교회가 힘을 잃습니다. 우리 수도사들이 영적 힘을 가져야 교회가 힘을 얻습니다.” 수도사의 말이다.

 

 

 

 

 

※ 분노에 대한 성경의 특별단속을 깊숙이 새기자(표준성경)

 

평생 제어하기 어려운 것이 말과 성냄이다. 자기에게 조절할 기회를 주지 않고 번개보다 빠르게 표출되어 평생 후회스런 과오를 일으키는 내 속에 잠복한 적수다.

 

▶분노를 불끈 폭발하는 조급성에서 일단 탈피해야만 한다. 이 순간을 이기면 다 이기는 것이다. “미련한 사람은 쉽게 화를 내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모욕을 참는다”(잠 12:16). “나의 사랑하는 신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 두십시오.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노하기도 더디 하십시오. 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약 1:19-20). “노여움을 버려라. 격분을 가라앉혀라. 안달하지 말라. 이런 것들은 자신에게 해로울 뿐이다”(시 37:8). “화를 잘 내는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기를 잘하는 사람은 죄를 많이 짓는다”(잠 29:22). “화를 쉽게 내는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지만, 성을 더디 내는 사람은 싸움을 그치게 한다”(잠 15:18). “너는 급하게 소송하지 말라. 훗날에 너의 이웃이 너를 이겨 부끄럽게 만들 때에, 네가 어떻게 할지가 염려된다”(잠 25:8).

 

▶지도자는 분노를 절대적으로 조절해야만 한다. 큰 계획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 “사실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흠잡을 데가 없으며, 자기 고집대로 하지 않으며, 쉽게 성내지 않으며, 술을 즐기지 않으며, 폭행을 하지 않으며, 부정한 이득을 탐하지 않아야 합니다”(딛 1:7). “주님의 종은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하고, 잘 가르치고, 참을성이 있어야 하고”(딤후 2:24) “주께서는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하고 책망하셨다”(욘 4:4). 지도자가 화를 자주 낼 때에 그 인격이 파손됨을 알아야 한다.

 

▶위기가 몰아치는 순간 지혜로운 말로 분위기를 바꾸는 묘책을 찾아야 한다. 우선 음성부터 낮추어야 한다. “부드러운 대답은 분노를 가라앉히지만, 거친 말은 화를 돋운다”(잠 15:1). “함부로 말하는 사람의 말은 비수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아픈 곳을 낫게 하는 약이다”(잠 12:18).

 

▶비록 화를 낼지라도 바로 진화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해 지기 전에 풀면 죄로 연결되지 않는다. “화를 내더라도 죄는 짓지 마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엡 4:26-27).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어 나오는 것 같으니, 싸움은 일어나기 전에 그만 두어라”(잠 17:14).

 

 

 

 

 

※ 수도사들의 절제생활을 따르렵니다(빨라지오와 요한 엮음: 사막교부들의 금언집)

 

▣ 자신을 제어함에 대해

 

▶안토니오 교부: “우리에게는 삶과 죽음이 이웃 사람에게서 옵니다. 우리의 형제를 얻게 되면 하나님을 얻을 것이며 우리의 형제를 분노하게 만들면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항하여 죄를 짓는 것입니다.”

 

▶무기력하거나 건방진 수사가 있어서 다시 돌려보내고 싶어지면 스케데의 사제인 이시도로 교부는 “그를 내게로 데려오시오” 라고 말했다. 그 형제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인내의 힘으로 그 영혼을 고쳐주는 것이었다.

 

▶아가톤 교부: “성질 사나운 사람은 설사 그가 죽은 자들을 되살린다 하더라도 그 분노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 형제에게 모욕당한 수사가 테베의 시소에스 교부를 찾아가 보복하고 싶다 말했다. 하나님께 맡기고 보복하지 말라 경고해도 보복하지 않고는 마음이 편치 않다 하면서 고집을 부렸다. 기도하세! 하면서 이렇게 기도했다. “오 하나님! 우리는 이제 당신의 돌보심이 필요 없나이다. 우리 스스로 보복할 테니까요.” 그 수사는 원로의 발치에 꿇어 엎드렸다. “제발 그 형제와 다투지 않겠습니다. 부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어느 수도사는 자기를 모욕하며 화를 돋우는 사람들을 도리어 더 찾아다니곤 했다.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런 사람들은 완덕을 구하는 사람들을 고쳐주기 위해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실 완덕을 구하는 사람들을 좋게 말해주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영혼을 괴롭히는 일이 됩니다.”

 

▶한 원로가 사는 집 옆에 양치기 아이들이 와서 늘 떠들고 있었다. 수도사들이 방문하여 왜 이들을 떠들지 말라고 말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생각을 고쳤다 한다. “내가 이일을 참아내지 못한다면 더 큰 시련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에 어떻게 그것을 참아낼 수 있겠는가. 무슨 일이 있을 때 익숙하게 참아 견디기 위해서지.”

 

▶한 원로가 소년을 데리고 있었다. 아무것에도 쓸모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딱 한번 그렇게 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듣지 않자 그 아이의 잘못을 가리는 재판장이 되지 않기로 했다. 한번은 빵을 넣어두는 방을 잠그고 사라져 사흘 동안을 굶었다. 이웃이 그 사실을 알고 창문으로 죽을 넣어 주었다. 그 아이가 무엇을 하느라고 늦는가 하는 물음에 “오고 싶을 때 오겠지요” 말할 뿐이었다.

 

 

 

▣ 유혹의 덫에서 벗어나려면

 

▶염치없는 한 여자가 제자들 앞에서 유명한 수도승을 타락시키겠다고 장담했다. 어느 날 저녁 길을 잃은 것처럼 수도승의 암자에 나타났다. 그는 그녀를 안으로 들게 했다. 악령이 이 여자를 통하여 자기를 유혹하려는 것을 알고는 등불을 켜고 불꽃 위에 손가락을 하나씩 갖다 댔다. 이튿날 아침에는 손가락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여자는 충격을 받아 죽었다. 잠시 후 제자들이 그 문란한 여자의 업적을 알아보기 위해 독수도승에게 와서 물었다. “어제 저녁에 한 여자가 오지 않았습니까.” “저기 누워있네.” 그녀의 죽음을 발견했다. 원로는 자기의 손을 보여 주며 말했다. “자, 저 악령의 딸이 나에게 행한 것일세. 하지만 성경에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쓰여 있네.” 그는 기도하여 그녀를 다시 살렸다. 그는 떠나갔고 그때부터 정숙하게 살았다.

 

▶어느 원로: 50년 동안 빵을 먹지 않았고 물조차 수월히 마시지 않았다. 부정(不貞), 인색, 헛된 영광을 자기는 말살시켰다고 말했다. 아브라함 교부가 그 말을 듣고 그의 집에 가 보았다. 사실임을 확인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당신 방에 들어 가다가 돗자리에 여자가 누워있는 것을 본다면 그게 여자라는 것을 생각 안 할 수 있겠소.” “그럴 순 없겠지요. 그러나 내 생각과 싸워 그 여자에게 손을 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욕정이 살아있는 한 당신은 부정을 말살한 것이 아니요. 단지 욕정을 묶고 있을 뿐이오. 만일 당신이 길을 가다가 황금을 본다면 황금을 돌로 간주할 수 있겠소.” “그럴 순 없겠지요. 그러나 내 생각과 싸워 그걸 줍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의 욕심은 아직 살아 있는 것이오. 단지 묶여 있을 따름이지요.” 아브라함 교부는 덧붙였다. “당신이 두 형제에 대한 말을 들었다 합시다. 한 사람은 당신을 사랑하여 당신의 장점에 대해서 말하고 또 한 사람은 당신을 미워하여 헐뜯는 말을 한다는 것 말입니다. 그 두 사람이 당신을 만나러 온다면 같은 태도로 맞아들이겠습니까?” “그럴 순 없겠지요. 허나 나는 자제하여 나를 사랑하는 자와 마찬가지로 미워하는 자를 도와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욕망들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단지 성인들이 그것들을 묶고 있을 뿐입니다.” 자만하지 말 것을 일러 주었다. 영원히 정신 차려 깨어 있어야만 하는 죄인들이다.

 

 

 

▣ 준비된 영성은 방어요 공격무기다

 

▶다니엘 교부: “몸이 비대해질수록 영혼은 메마른다. 몸이 메마를수록 영혼은 살이 찐다. 몸을 돌볼수록 영혼은 약해질 것이고 몸이 약해질수록 영혼을 보게 된다.”

 

▶아가톤 교부의 제자인 아브라함 교부가 빠스톨 교부에게 물었다. “악마들이 저를 그토록 공격해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빠스톨 교부는 그에게 말했다. “악마들이 자네를 공격한다고? 우리가 우리 멋대로 할 때는 악마들이 실은 우리를 공격하지 않아. 그럴 때는 우리의 의지가 악마들의 것이 되었으니까. 악마의 의지가 되어버린 그 의지가 우리를 들볶아대는 거지. 제 의지대로 성취하기 위해서 말이야. 그놈들이 실제로 어떤 사람들과 싸움을 하는지 알고 싶나? 모세 교부와 그와 비슷한 사람들이야.”

 

▶신클레틱 성녀: “극단적인 고행은 악마의 사주에서 오는 수가 있습니다. 악마의 추종자들이 그렇게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폭군인 악마가 불러일으키는 고행과 왕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고행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고행은 절도가 있는 것입니다. 나흘이나 닷새나 계속 단식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연후에 푸짐한 식사를 하다보면 그대의 덕을 상실하게 마련이고 그것이 악마를 기쁘게 해주는 일입니다. 절도가 없는 것은 항상 위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대가 무장 해제되어 싸움에서 쉽사리 나포되길 원치 않는다면 그대의 모든 무기를 단번에 탕진하지 마십시오. 무기는 우리 몸이며 영혼은 전투원입니다. 모든 우발사태에 대비해서 그 양자를 돌보십시오.”

 

▶어느 원로: “예언자들은 책을 썼고 그들 뒤에 온 우리 교부들은 그 책들에 관해 연구를 했다. 그 후 그들의 후계자들은 그것을 암기했다. 마침내 현대라는 하나의 세대가 왔는데 그들은 종이와 양피지에 그 모든 것을 써서 쓸모없이 벽장 안에 방치해 두었다.”

 

▶어느 원로: “우리의 두견은 순결을 상징하고 어깨와 목을 둘러싸는 스카풀라리오는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우리의 허리띠는 힘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몫에 맞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그리고 모든 일을 열렬히 행합시다. 그래야 빌린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빠스톨 교부는 볼일이 있어 외출준비를 할 때 먼저 자신의 생각을 정돈하려고 한 시간 가량 외로이 떨어져 앉아 있었다. 연후에 그는 외출을 했다.

 

▶실베스뗄 교부에게 어떤 방식을 따랐기에 그토록 훌륭한 신중함을 얻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나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생각이 내 마음 안에 머물도록 한 적이 결코 없네.”

 

▶세라피온 교부: “황제 앞에 서 있는 병사들은 오른쪽도 왼편도 살피지 않는다. 수도자에게 있어서도 그와 마찬가지다. 하나님 대전에 서서 계속 쉼 없이 그분을 경외하노라면 원수의 어떤 공갈도 그를 겁나게 할 수 없지.”

 

▶성녀 신클레틱: “경계를 게을리하지 맙시다. 강도들은 우리가 원치 않을 때에도 우리 오관을 통해 침투해 들어옵니다. 창문이 열려 있는 집이 있다면 밖에서 올라오는 연기가 그 집으로 쏠려 집이 시꺼멓게 되지 않겠습니까.”

 

“악마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안팎이 모두 무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밖에서는 악마들이 공격해오고 안에서는 그놈들이 날뛰기 때문입니다. 우리 영혼이 느끼기로는 그것이 어떤 때는 밖의 거대한 파도에 밀리는 선박 같고 어떤 때는 화물창에 새어 들어오는 물의 무게 때문에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선박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때는 외부적으로 볼 때 악한 행실을 범함으로써 멸망하고 어떤 때는 내부적으로 볼 때 악한 생각들을 함으로써 황폐해지곤 합니다. 그러므로 추잡한 영들의 외적 공격을 경계할 뿐 아니라 내부에서 생기는 고약한 생각들도 몰아내도록 하십시오.”

 

▶히페레키오 교부: “항상 마음속에 하늘나라를 지녀라. 그러면 너는 아주 빨리 그것을 상속 받을 것이다. 수도자의 생활은 죄를 불태워 없애버림으로 천사들의 생활을 닮아가야 한다.”

 

▶어느 원로가 수사에게 말했다. “악마는 원수이고 그대는 집이오. 원수는 구할 수 있는 모든 더러운 것을 계속 그대에게 던져 모든 쓰레기를 계속 그대의 영혼에 부어 넣습니다. 그대의 작업은 그놈이 던진 것을 정신 차려 제거하는 일이지오. 만일 그런 것에 괘념하지 않는다면 그대의 집은 온통 쓰레기투성이어서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이오. 반대로 처음부터 던지는 족족 없애 버리십시오. 그러면 그대의 집은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깨끗함을 보존 할 것이오.”

 

▶아가톤 교부를 시험하려고 일부러 질문을 사납게 했다. “그대가 아가톤이오? 방탕하고 교만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소.” “예, 사실입니다.” 다시 모욕적인 말을 했다. “그대가 수다스러운 욕쟁이 아가톤이오?” “그렇습니다.” 여전히 겸손의 자태를 아름답게 지탱해 간다. 그러나 “그대가 이단자 아가톤이오?” 하는 말에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 처음의 공격적인 말들은 다 영혼에 유익이 되지만 하나님과 분리를 의미하는 이단자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티라 교부는 시나이 산의 은거지에 살고 있을 때는 육체적인 고행보다는 온건하게 살았다. 그러나 파란의 주교가 되자 오히려 더 엄격한 고행을 하기 시작했다. 제자가 그에게 물었다. “사부님! 우리가 사막에 있을 때는 그렇게 고행을 하지 않으셨는데요.” 원로는 ‘이 사람아’ 하면서 대답한다. “거기서는 고독과 평안과 가난이 있었어. 그 때문에 내 몸을 상함 없이 확실하게 지배하길 갈망했고 그렇게 되었지. 하지만 여긴 모든 것이 풍성하여 모든 방책이 다 있는 세속이거든. 내가 병에 걸려 보게. 많은 사람들이 나를 구하러 올 것이 아니겠는가.” 지위가 올라가고 생활이 유족할 때 타락하게 됨을 방지하기 위해 절제의 무기를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유명해 질수록 나태해 지는 길을 막아야 하리라.

 

▶빠스톨 교부는 이렇게 말하였다.

 

“자네의 고통이 그 무엇이든 간에 그 고통에 대한 승리는 침묵을 지키는데 있네.”

 

“악이 악을 내 쫓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그런즉 만일 어떤 이가 네게 나쁜 짓을 한다면 너의 선행으로 그의 악랄함을 파괴하도록 그를 도와주어라.”

 

“불평을 일삼는 것은 수도자로서 할 바가 아니다. 악을 악으로 갚음과 분노함도 수도자로서 할 바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토록 도끼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나무 한 그루도 베어 넘길 수 없다. 그러나 나무를 벨 줄 아는 사람은 나무를 치지 않아도 충분히 그것을 넘어뜨릴 수 있다. 그 도끼가 바로 자신을 삼가는 일이다.”

 

 

 

※ 승리자의 고고한 모습

 

▶어느 수도자가 어김없이 말씀의 법도를 따르며 성숙한 신앙으로 악마들을 무찌르며 승리하는 것을 보고 악마가 나타나 노골적인 악담을 했다. “너 때문에 우리가 여간 안달하고 있지 않아.” 대체 왜 그런가? 물었다. “우리가 너를 들어 올려 주면 너는 겸손 속으로 내려가 잠기고 너를 깔아뭉개면 네 스스로 꼭대기에 올라가 있으니 말이다.”

 

 

 

▶악마가 마카리오 교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를 넘어뜨릴 수 없으니 너 때문에 고생만 한다. 네가 하는 일을 나도 무엇이나 다 한다. 네가 단식하면 나도 결코 먹지 않고 네가 잠자지 않으면 나도 자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점에 있어서만 네가 나를 앞지르고 있다.” “그게 뭐니?” “내가 너를 쳐부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바로 너의 겸손이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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