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글
이동휘 목사(바울선교회 대표이사, 전주안디옥교회 선교목사)
전주안디옥교회를 선교로 설립하시려는 하나님의 설계를 깊숙이 품고, 삶의 방식 두 가지를 성도들에게 부탁했다. ‘불편하게 삽시다’와 ‘우리는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다’이다. 목사인 나부터 ‘평신도 원칙’이란 것을 적어놓고 일반 교인처럼 묵묵히 이 길을 걸었다. 세월은 뛰고 달리어 교회설립 7주년에 당도했을 때이다. 야곱의 울먹한 심정이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는 까닭에 7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창 29:20) 광야에서 짐승을 먹이는 고된 목동의 일이었지만, 야곱에게는 사랑하는 ‘그 님’을 위한 땀 흘림이었기에 7년이 며칠처럼 훌쩍 지나간 것이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인 것처럼(느 8:10) 전주안디옥교회는 나의 목회 여정에 다섯 번째 섬기는 교회였지만 사도행전의 다락방에서 갓 튀어나온 사람들처럼 흥분된 목회였다. 온 교우가 앞을 달리며 선교에 강한 깃발을 올렸다. 불편한 교회였지만 권리 찾는 소리는 아예 없었다. 당면한 의무에만 정신을 쏟았다. 권리 포기의 영광을 톡톡히 누렸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영접한 후 엄청난 권리가 자기에게 주어졌음을 발견했다. 누추한 죄인이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왕자) 특권을 얻은 것이다. 권세 있는 성령님이 아예 자기 안에 주둔하시면서 보호하시는 은총을 얻었다. 셋째하늘 천국에 가서 영광의 찬란함을 친히 보았고 죄수의 두목(악당의 수령)이 예수님의 옆 좌석에 앉는 신분이 되었다.(계 3:21) 더 이상의 권리는 필요 없기에 세상의 영화는 쓰레기통에 모조리 버렸다. 고린도전서 9장에서 자기도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조건임을 알았다.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고전 9:1)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전 9:14) 그러나, 그 권리를 쓰지 않는 이유를 두 가지로 밝혔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라.”(고전 9:12) 복음전진에 혹시 방해될까 해서다. 또 하나는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고전 9:14) 권리포기로 하늘의 상을 더 받겠다는 영특한 계산이다. 권리 행세를 다 하면 하늘에서 상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모세의 부르심도 특이하다. 하나님은 그의 자랑스러운 특권부터 해체시켰다. 신발을 벗으란다.(출 3:5) 노예는 신발을 신지 않는다. 세계 제일의 애굽 왕자의 신분을 벗기시고 노예로 강등하신다. 지팡이로 뱀을 만드신 후 뱀의 꼬리를 잡으란다.(출 4:4) 광야에는 독사가 많다. 40년간 광야를 누비던 모세는 뱀의 성품을 잘 안다. 뱀은 머리 부분을 잡아야 안전하다. 꼬리를 잡으면 날쌘 뱀은 그를 물어 독을 쏜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식을 무시한 가혹한 훈령을 내리셨다. 고(高)강도의 시험을 치르신 후 하나님은 모세를 향하여 드디어 “그에게 하나님같이, 바로에게 신같이”(출 4:16, 7:1) 되게 하셨다. 예수님의 권리 포기 역시 파격적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 2:6) 창조자가 피조물 인간이 되시고 처절한 십자가를 지셨다. 예수님을 닮은 마음, 겸비를 키워라. 가득가득 담아라.
대쪽같이 곧기만 하다면 삶은 춥고, 뻣뻣하기만 하다. 고집과 자기주장은 예수님을 밀쳐 내는 법이다. 거역할 수 없는 힘에 밀려, 세상을 구원하는 엄숙한 선교명령을(막 16:15) 하달받은 하나님의 측근들이 바로 당신과 나다. 권리 포기가 바로 십자가다. 하나님의 종들아! 당신은 사명에 있어 언제나 종이다. 예수님을 두목으로, 왕으로 모시는 종이다. 예수를 믿으라가 아니다. “주(主), 예수를 믿으라”(행 16:31)이다. 왕의 면전에서 감히 권리주장을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