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글
이동휘 목사(전주안디옥교회 선교목사, 바울선교회 대표이사)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은 기묘했다. 골리앗의 조국 블레셋은 강국이었고 이스라엘은 빈약한 약소국이었다. 이번도 분명 블레셋의 선제공격이다. 이스라엘 본진까지 쳐들어와서 위협을 했다. 골리앗은 매일 나타나 하나님과 이스라엘 왕을 모독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지라 능멸만 당한 채 40일이 지난 것이다. 일대일로 겨뤄보자는 오만의 연속이다. 이것이 큰 실수였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호기를 놓친 어리석은 작전이다. 왜냐하면 모든 일에는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신앙용어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이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다윗을 준비하셨다. 다윗이 나타나 의분을 품고 즉시 공격에 나섰다. 양치기 생활 속에 익숙한 물맷돌을 급히 모아 손에 쥐었다. 천하무적의 힘만 자랑하는 골리앗을 향하여 달려갔다.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독하는 이스라엘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 17:45) 달려가면서 물맷돌을 쏘아 골리앗의 이마를 뚫었고, 쓰러지자 달려가서 목을 베었다. 삽시간에 전세는 이스라엘의 승리로 바뀌었다. 번개 같은 속전속결(速戰速決)의 승리다. 북한이 한국을 침공할 때도 무방비상태에 있는 한밤중의 기습이었고 불과 며칠 만에 한국 강토를 거의 짓밟았다.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 공격도 순식간의 승리였지만, 저력이 강한 미국이라 역전할 수 있었다.
성경은 우리에게 지체함을 용납하지 않는다. “너희가 둘 사이에서 어느 때까지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아합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 18:21)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 위에서 결단을 촉구했다. 소돔성의 멸망의 날이 다가온 때였다. 때의 절박함을 모른 채 롯이 지체하자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창 19:16) 애굽을 탈출해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를 점령하고 아이성을 점령하자, 주변의 다섯 왕들은 연합하여 여호수아 군대를 상대로 총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들을 물리쳤고 여호수아는 외쳤다. “너희는 지체하지 말고 너희 대적의 뒤를 따라가 그 후군을 쳐서 그들이 자기들의 성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수 10:19) 이날의 전쟁은 우주적이었다. 적군을 섬멸하도록 태양이 하늘에서 내려가지 않았고 달은 제시간이 되자 공중에 떠올라 하늘에 해와 달이 같이 떠 있는 웅장한 연출이었다.(수 10:12) 마귀에 대한 우리 자세도 적극적이어야 함을 보여준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약 4:7-8)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열망도 대단하시다. 40일이 되면 파멸될 것을 보신 하나님은 다급하셨다. 자기의 신복 선지자 요나를 불러 니느웨 성으로 빨리 가라 명령을 내리셨다. 그러나 요나는 명을 어기고 다시스로 도망쳤다. 애국심이 강렬한 요나는 니느웨가 망하는 것이 최선의 애국인 것으로 알았다. 생명을 귀중하게 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싹둑 자른 것이다. 결국 억지로 보내어진 요나는 가서 외쳤다. 니느웨 성은 발칵 뒤집혔고 왕과 사람 심지어 짐승까지 통곡하고 금식하며 회개했다. 십이만여 명과 가축을 모두 살려냈다.(욘 4:10) 지금도 당신은 니느웨 성에 부담을 지연시키고 있는가? 어느 때까지 회피하려는가?
내 양을 치라는 명령을 받은 예수님의 제자인가? “리더는 길을 알고, 그 길을 직접 가고, 그 길을 보여주는 사람이다.”(존 C. 맥스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