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글
이동휘 목사(바울선교회 대표이사, 전주안디옥교회 선교목사)
내가 다녔던 구정교회는 우리 집에서 약 2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어머니께서 임신했을 때부터 출입했으니까 내가 목회 현장으로 나간 스물여덟 살 때까지 발이 닳도록 뛰어다닌 고샅(골목길)이다. 대문을 나서서 두 번 왼쪽의 방향으로 꺾어 느슨한 언덕으로 올라서면 정든 교회당이 산자락 끝에 듬직하게 서 있다. 만 번인지 십만 번인지는 모르지만, 새벽기도회를 비롯하여 주일 낮과 밤, 수요예배와 교회당 청소, 종치기 등 마르고 닳도록 밟은 땅이다. 그 길은 나를 예수님을 알게 했고 충성을 가르쳤고 신학교에 떠밀어 보낸 어머니 품속 같은 시골 예배당이다. 신학 졸업 후 2년 반 초년목회자로 이 고향교회를 섬기기도 했다. 이 길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신앙의 뼈대를 세운 의로운 처소요 거룩한 산성(렘 31:23)이었다.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고 곳곳에 새길을 넓게 만들었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새로운 길이라 하여 신작로(新作路)라고 불렀다. 박정희 대통령은 고속도로를 전국에 뚫었고 광주 시내의 무진대로는 한국에서 가장 넓은 왕복 16차선의 도로로 그 폭을 자랑했다. 전국 어디를 가든 질주하는 교통길이 훤칠하게 뚫어졌다. 도로 왕국이라 할 것이다. 중국은 일대일로라는 야망을 피워 세계를 주름잡고자 억지 길을 만들려는 것 같다. 교통망은 사통오달(四通五達) 쭉쭉 깔려있어 하늘의 공중 길, 바다의 배길, 육지의 도로, 어떠한 미로도 영악하게 찾아가는 세상이다. GPS만 켜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목도 척척 열려 통과시킨다. 깜깜한 흑암이 짙어도, 소나기가 퍼부어도 용케도 발굴해 내는 지혜로운 그 여자의 안내 혜택이다.
그러나 천국 길은 좁디좁은 미로인가? 이 길을 아직도 못 찾고 평생을 헤매는 인류로 가득하다. 찾았으나 중단된 길 잃은 양도 많다. 가나안 성도라고 애칭을 부친다. 하나님을 등진 유대 백성은 길을 잃은 채 흑암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예레미야는 하소연을 거듭한다. “옛적 길, 곧 그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렘 6:16) 밤낮으로 울었다. 당신은 어떤가? 방황하면서 애처롭게 서 있는 가련한 신세는 아닌가? 한번 가던 길을 잃은 채 헤매기 지금 몇 해인가? 인생의 궤도수정이 반드시 있어야 함에도 하나님의 문 두드림에 지금까지 오직 침묵 일관인가? 심판의 때가 아직도 길게 남았다고 생각하는가? 유대인 저들은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앙탈을 부리다가(렘 6:16) 나라까지 송두리째 빼앗겨 자지러지게 통곡했다.
절묘하게 찾아오셨던 주님! 미담을 나눴던 시절을 새록새록 되살려내라. 웬만하면 그 추억은 가슴속에 고여 있는 법이다. 순전했던 그 시절, 예수님의 사랑에 흠뻑 젖어 충성에 땀을 흘렸던 황금 같은 그 순간들, 십자가 사랑에 매료되어 짜릿한 감격으로 울컥거렸던 바로 그 시절! 살려내라.
신앙을 중단한 것이 상처가 커서였던가? 앞길을 막는 절벽이 주님의 외면으로 보였기 때문인가? 그래서 목욕탕 물이 더럽다고 그 속의 아기까지 홧김에 버렸단 말인가? 예수님은 비천한 우리를 살리시려고 죽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신가? 위험한 낭떠러지에 서 있는 모습 같아서 다급해지는구나! 마음이 서러워진다. 핵심을 짚는 그 길을 되찾아라. 복원하라. 인생은 오직 두길 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의 저주의 길과 하나님을 찾아가는 자의 올곧은 길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이동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