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글
분수에 지나치다
이동휘 목사
뱃심 좋게 이백오십 명의 유력한 족장을 포섭한 고라일당은 위협적인 세력으로 하나님의 신실한 종 모세를 향하여 반기를 들었다. 어찌하여 약속의 땅에 들여보내지 않고 살벌한 광야에 사십 년이나 방치해 둔 채 스스로 왕 노릇만 하느냐이다. 능력 없는 지도자는 두 말 말고 하야(下野)하라는 대반란이다. 저들의 교활한 야심을 모세가 모를 리 없었다. 분수(分數)에 지나친 그들을(민16:7) 질책하고 "레위 자손으로 ~작은 일이 아니거늘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민16:10) 여호와의 권위를 정면 대적하고 멸시한 중죄임을 선포함과 아울러 땅은 입을 벌려 간악한 무리들을 삼켜 버렸다. 우둔한 백성들은 그래도 깨닫지 못하고 모세를 원망만 했다. 왜 죽였느냐고. 뼈를 깎는 종살이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탈출시켜 주셨고 큰 바다 홍해를 메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시며 하늘에서 뚝뚝 떨어지는 하늘양식 만나를 풍요롭게 먹게 하신 하나님을! 감사는 커녕 열 번이나 반항하고 불평만 되뇌이는 분수를 잃은 자들이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을 품지 말라"(롬12:3)고 하셨는데도 푼수 빠진 자칭 유명인사들이 하늘나라 종족 가운데도 너무나 많은 것 같다. 한계를 넘어 제사까지 드리려다가 한센병 얻고 왕좌에서 쫓겨난 히스기야 임금의 안쓰러움, 비밀을 말하면 안 되는데도 분별력을 잃고 힘의 원천을 쾌락의 여인에게 누설했다가 눈 뽑히고 처참하게 죽은 세기의 용사 삼손 사사의 애석함이 너무나 억울하다. 극성파 꼴통 예수쟁이라는 사람들까지도, 종교전문가라는 성직자까지도 한계선을 살며시 넘어 정당한 위치에서 벗어나게 될 때마다 얼마나 많은 대적들의 훼방(빌1:28)과 공격을 받았던가. 선택된 자기 백성과 교회가 두 날개 추락되어 수치 당하는 처량한 몰골을 보실 때마다 주님은 가슴 조이시며 엉엉 울고 계시는 것만 같다.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잠4:27)는 철저한 당부도 식언(食言)해 버리고도 늠름한 태도다. 마음의 조절기계가 이미 고장 난 것 같다.
푼수데기들, 푼수 빠진 놈들!이라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던 옛 어른들의 우렁찬 고함이 들리는 것 같다. 왜 이렇게 교회와 부르심 받은 자들 가운데 분열이 그렇게도 많은가. 내 잘못이란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는가. 원한을 계속 품을 작정인가. 어찌하여 세상 명예를 그렇게도 좋아하는가. 예수님께서 내게 주신 영화는 하찮게 보이는가. 탐욕은 언제 멈출 것인가. 예배당 화려하고 살 집 넓고 소득 높아 누리고 살면 축복인가. 구제와 선교를 부담 없는 선에서 적당히 양심 치레하는 것으로 한계를 긋는 것이 과연 축복 받은 자의 체면인가. 세상은 교회를 향해 돌 던지는데, 하루에 굶어 죽는 사람들이 삼만 오천 명인데도 하나님 재산 헌금을 교회에서 거의 다 써 버리고도 마음이 정말 편한가.
본질로 돌아가자. 지금 세계 곳곳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 하나 때문에 살육을 당하고 선교사들은 추방을 당하고 좋은 직장은 절대로 가질 수 없을 뿐 아니라 분명 자기의 조국인데도 나그네처럼 박해받으며 애처롭게 사는 자들이 셀 수 없이 많다는 현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삶의 지침서다. 천국에 가서 살 사람들이여! 경계선을 넘었다면 원상 복귀하라. 중심(中心)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사람이 가진 그 독특한 향기로 본때를 보여라. 애물단지에서 보물단지로 변신하라. 내 생애의 남루를 지우라. 그 거룩함의 핵심에 접근하라. 실패자는 쓰셔도 포기자는 쓰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알라. 그냥 물에 잠길 것인가? 수영을 하여 앞으로 나갈 것인가.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