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이야기  / Mission Story
[머리글]예수님처럼 지게 하소서 | 이동휘 대표이사
BY 관리자2012.09.01 15: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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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처럼 지게 하소서

 

이동휘 목사(전주안디옥교회 선교목사,사단법인 바울선교회 대표이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날은 하나님과 사탄의 운명적 싸움이었다. 우선 숫자적으로 예수님은 홀로였다. 반면 적들은 떼로 뭉쳤다. 저들은 창으로 찌르고 주먹으로 치고 녹슨 못으로 성체(聖體)에 못 박았지만 예수님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셨다. 저들은 꾸민 증인을 동원시켜 거짓말로 우겨댔으나 예수님은 꾹꾹 할 말만 하셨다. 뾰족한 손가락으로 삿대질하며 조롱했으나 예수님은 수욕을 고이 받아 하나님께 평가를 의뢰했다. 혈루병 여인을 고치신 향기로운 성의(聖衣)를 홀랑 벗겨 흔적을 소멸시키고 수치를 들쳐 냈으나 그날의 부끄러움이 인류구원의 보약임을 아시고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라고 눈물로 기도를 드렸다. 제자가 적군의 길 앞잡이가 되고 또 다른 아군은 스승을 저주하는 내부혼란까지 도래해(마 26:74) 우군의 지원군은 처음부터 아예 없었다. 요압의 살인키스(삼하 20:9)를 배운 가룟유다의 입맞춤이(마 26:49) 선전포고가 된 전쟁은 예수님의 참패로 끝났다. 의인들을 왕창 눈물짓게 했다. 그 후 3일간! 악인의 군사들은 축제판을 벌였다.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떨림 속에서, 얼얼해진 제자들은 추레한 거지꼴이 되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집안에서 초상이 난 것이다. 면류관을 받기 전까지는 의인들은 한결같이 이 길을 겪는 것 같다. 북한에서도, 중동에서도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가정과 교회에서도 십자가사건은 끊일 줄 모르고 살벌하게 벌어지고 있다. 사막을 건너는 것은 용맹한 사자가 아니라 못난 낙타인 줄 알면서도 뱃장 좋게 이기고 싶은 욕망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일 것이다.

 

그러나 제 삼일(호 6:2)에! 드디어 하나님께서 개입하셨다. "이러므로"(빌 2:9)의 진리대로 죽은 예수님을 살려내셨다. 하늘의 권세로 온통 판세를 바꾸셨다. 예수님을 하늘나라로 올리신 10일 후에는, 바람처럼! 불처럼! 성령님을 보내주셨다. 비겁한 겁쟁이 제자들이 천하제일의 장수가 되어 지구를 흔들기 시작했다. 악인들이 얻은 승리는 오아시스가 아니라 신기루에 홀린 것이었다.

 

이기기 원하는가? 예수님의 제자라면 지는 수련부터 받아야 한다. 사랑하면 약해지는 법이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에게서만은 약하다. 죄인을 사랑하셔서 지구에오신 예수님은 어떤 여인에게라도 돌봄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구유 속에 누인 여린 인간이 되셨다. 십자가는 친히(벧전 2:24) 결심하신 것이기에 그 여인이 가까이 서 있으면서도 어떤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 지듯(고후13:4) 바울 역시 약한 것을 기쁨으로 여겼다(고후 12:10). 강해지면 십자군이 되어, 거만 떨어 위협하며 횡포해지는 이치는 희한하다. 진 꽃은 또 피지만 꺾인 꽃은 다시 피지 못한다는 속담도 삭여야 될 교훈이다.

 

악인과의 싸움에는 지옥에 없는 무기를 써야 필승한다. 악한 것은 마귀나라에서 더 개발시켰다. 이기기 위해 악한 방법을 썼다면 이겼어도 진 것이다. 순결을 무장으로 기습해야 한다. 마귀나라는 겸손이 없다. 양보란 단어도 없다. 말씀도, 인내도 절제의 무기도 이름조차 거론된 바 없다. 가장 찬란한 원자력적인 무장은 감사다. 그리고 찬송이다. 그리고 저들에게 평강이 흘러넘치기를 간구하라. 그들이 받을 수 없다면 고스란히 내게 돌아올 터이니 이왕이면 원수 사랑을 박격포처럼 마구 퍼 부어라. 머리가 숯불에 타도록(롬 12:14) 복을 빌라. 무골호인이 되란 말인가? 깊이 찔린 창끝의 고통 속에서도 "다~이루었다!"(요 19;30) 승리선언을 포함한 일곱 마디의 핵심진리를 당당히 선포하신(가상칠언) 주님께서 굴욕 당하신 것일까. 사지에 몰린 궁지 속에서도 지옥 불에 떨어질 흉악범을 낙원으로 입성시켜(눅 23:43), 긴박한 순간에도 세상에 오신 사명을 거뜬히 성취하신 예수님의 청초함이 부럽지 않은가. 위급 상황이라 하여 겁 질려 복음전파를 소홀하면 직무유기가 아닐까. 초라한 죄수 신분인데도 감히 아그립바왕 앞에서 당신도 나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는 바울사도의 뱃심전도를 놓쳐서는 안 된다(행 26:29). 외유내강(外柔內剛)이다. 예수님의 생명이 내 안에 강 같이 흐르고 있는 이상, 지는 것으로(세상적으로) 이기는 천국전략을 즐겨야 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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