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이야기  / Mission Story
[칼럼]은퇴선교사의 귀국 적응 경험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2) | 박춘하 선교사
BY 관리자2024.06.04 19: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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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바우리 사역 방향

은퇴선교사의 귀국 적응 경험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

박춘하 선교사

 

이 논문은 2024년도 박춘하 선교사 상담학 박사학위 논문을 요약한 것으로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Ⅲ. 연구 결과

본 연구에서 은퇴 선교사의 귀국 적응 경험을 Giorgi의 현상학적 방법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라 도출한 154개의 의미 단위, 32개의 하위 구성요소와 6개의 구성요소는 <표 2>와 같다.

 

<표 2> 은퇴선교사의 귀국 적응 경험의 구성요소

구성 본질

구성요소

하위 구성요소

1. 선교사로의 삶

1. 낯선 타국

환경에서의

새로운 만남과 혼란

*뜨겁게 부어진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  *새로운 타문화 선교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  *문맹인, 어린아이, 바보로서의 첫걸음마  *자녀 양육을 위해 새롭게 맞이하는 벽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한 충격

2. 시행착오와 

적응을 통한 

안정과 열매

*언어 습득을 통해 열리는 현지인들의 마음을 보는 창  *현지 문화와 생활에 익숙해지는 삶  *현지인과 깊은 만남과 쌓여가는 친밀감  *현지 아이들과 동화되는 자녀들  *늘어나는 영적 자녀 해산의 기쁨  *영적 사역의 든든한 후계자

2. 은퇴 준비

3. 어느덧 찾아오는

노화의 느낌과 

복합적인 심경

*날로 다가오는 은퇴의 그림자  *늘어가는 사역 마무리에 대한 걱정  *귀국 후 거처와 생활에 대한 고민  *동료 선교사들과 소통을 통해 얻는 위로와 조언 

4. 첫 번째 여행의

벅찬 마무리와 

아픈 이별

*역경 중 아름다운 완주에 대한 뿌듯함  *미안함과 아픔으로 전달되는 영적 가족들에 대한 이별 통보  *사역의 정리와 후임자에로의 이양  *삶의 터전의 주변 정리와 함께 피부로 와닿는 은퇴  *내 나라로의 귀환에 대한 기대감과 교차 하는 걱정

3. 귀국 후 

겪는 적응 경험

5. 고국에서의 

새로운 출발과 

낯설고 익숙한 만남

*엄마처럼 편안한 고국의 품  *살기에 편한 별세계로 변한 세상  *급변하는 세상에서의 역설적인 불편함  *새로운 삶의 터전 구축을 위한 압박  *지치고 연약해진 몸과 마음의 회복과 충전  *증폭되는 두고 온 영적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새롭게 만나고 적응해야 할 영적 공동체

6. 날로 익숙해지는

두 번째 여행

*점점 더 짙어지는 한국인의 냄새  *경제적 자립을 위한 몸부림과 적응  *한국 사회 일원으로서의 관계의 재정립  *지속되는 영혼 구원에 대한 부담과 열망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기도와 갈망

 

1. 연구 참여자 경험의 상황적 구조 진술

가. 낯선 타국 환경에서의 새로운 만남과 혼란

1) 뜨겁게 부어진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 

참여자들은 선교지로 나가기 전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영혼 구원하는 일에 드리기로 헌신했다. 성령 체험과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나는 사건은 이들의 인생을 영혼 구원하는 일에 자발적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이것은 이들이 모국의 안정적이고 편안한 삶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선교사로서 타 문화권으로 떠나는 결정적인 동기로 작용하였다. 

안디옥교회에서 선교사님들이 선교 보고를 하는데 갑자기 성령님께서 네가 선교사로 가라 그러시는 거예요. 근데 집에 오니 교회 걱정 때문에 마음이 허락이 안 돼. 그래서 교회에서 앉아서 밤새도록 기도를 하는 거죠. 밤 12시 경인가 못 자고 그냥 엎드려서 있는데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가슴에 훅 들어오더라고요. 사랑하는 종아! 빌립보서 4장 6절, 7절을 보라고. 그래서 성경을 열었어요. 그 말씀을 읽는데, 따르라! 기도만 해라!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엉엉 울면서 죄송합니다. 내가 믿음이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가겠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사임했지요. 그래서 제가 43세에 선교사로 떠난 거예요. <참여자 1>

 

2) 새로운 타문화 선교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

참여자들은 선교지로 나가기 전 선교지에서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감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원하지 않은 선교지 결정과 두고 떠나가는 교회에 대한 걱정, 그리고 선교지 언어를 잘 배울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동시에 느꼈다. 

훈련받을 때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 저는 영어도 모르고 따갈로그어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 말씀도 주셨어요. 너는 가만히 서서 내가 하는 일을 보라. 하나님, 그러면 저는 가서 서 있기만 하면 되네요? 그래, 하나님의 일은 거기 가서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하시는 거에요. <참여자 3>

 

3) 문맹인, 어린아이, 바보로서의 첫걸음마 

새로운 문화에 진입할 때 문화충격을 경험하는데 참여자들도 처음 접촉하는 선교지 문화에서 충격을 경험했다. 이것은 이들에게 무력감, 스트레스, 두려움, 놀라움 등의 부정적 정서 반응이 일어나게 했다. 

아침에 유치원 애들 차로 들어오면 교실에서 애들을 맞이하는데 말이 안 되니까 막 애들이 뭐라 그러면 못 알아듣고 웃기만 하니까 나중에는 날 보고 막 빠가야로 이러는 거야. 이 바보야 막 그러는 거야. 왜냐면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까 빠가야로지. 그리고 싱글싱글 웃기만 하고 있으니 빠가야로지. 그러면서 그거를 한동안 하는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내가 허리가 딱 아파서 못 일어나게 생겼더라고요. <참여자 2>

 

4) 자녀 양육을 위해 새롭게 맞이하는 벽

문화충격은 참여자들에게만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라 참여자들과 함께 선교지에 간 자녀들에게도 일어났다. 한국과 다른 학교 시스템으로 인해 난관에 봉착하기도 하고, 한국보다 물가가 비싼 선교지에서 재정 공급이 부족하여 영양실조에 걸리기도 하며, 선교지 언어를 알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사춘기 때 선교지 갔는데 힘들었지. 그 나라말도 못 하지, 학교는 가야 하지, 친구도 사귀어야 하지.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래서 안 좋은 애들하고도 어울렸어요. 또 하나 걔한테 안 좋았던 거는 그 또래 아이 중에 믿는 아이들이 없었다는 거. 그게 완전히 치명적이었어. 학교 가도 공산주의 무신론 교육받은 아이들하고 선생님하고 하루 종일 살다가 오잖아. 얘는 교회 가도 자기 혼자고 항상 우리는 어른 예배만 드렸어. 주일학교가 없었거든. <참여자 6>

 

5)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한 충격 

참여자들은 선교지 문화와 접촉하면서 관계 설정에서도 혼란을 경험했다. 한국과 다른 선교지의 시스템과 분위기는 이들이 현지 문화에 적응하는 부분에 있어서 어려움을 주는 요인이었다. 

처음에 이제 일본 온 내가 목사님과 같은 차원에서 사역하니까 성도들이 나를 막 소외시키려고 얼마나 작전을 짜는지, 우리 목사님한테 나를 이간질을 놓고 이러더라고. <참여자 2>

 

나. 시행착오와 적응을 통한 안정과 열매

1) 언어 습득을 통해 열리는 현지인들의 마음을 보는 창

선교지에 참여자들이 처음 도착했을 때는 언어를 알지 못하여 문맹인과 바보 같은 느낌을 받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현지인과 소통이 가능해지고 그들의 생각과 마음도 알 수 있었다. 

러시아어를 한 1년을 개인 교습을 받았거든요. 외국인들이 왜 우리 한국말 잘 모르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거랑 똑같은 것처럼 한국말 좀 틀리게 얘기해도 이 사람이 이런 얘기구나 하는 거 우리 알아듣잖아. 그런 것처럼 대화가 되더라고. 현지인들하고 대화하면서 그 사람들의 생각이나 마음도 알게 됐지. <참여자 6> 

 

2) 현지 문화와 생활에 익숙해지는 삶

이 단계는 초기의 문화충격에서 벗어나 현지의 문화와 생활에 동화한 단계로서 언어와 사람과 날씨와 주변 환경에 적응하여 더 이상 선교지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몇 년 지나고 나서부터는 시장 가면 재밌잖아. 시장의 아줌마들이랑은 서로 한국말도 가르쳐 주고 그 사람들은 따갈로그어도 가르쳐 주고 하면서 마음의 여유가 있게 지냈지. <참여자 4>

 

3) 현지인과의 깊은 만남과 쌓여가는 친밀감

참여자들은 사역에 뿌리를 내리고 현지인과의 접촉 방법도 습득하면서 그들과 깊은 만남을 통해 친밀감을 형성하였다. 

00상하고는 진짜 친구였죠. 나이가 동갑인데 나하고 만나면서 힐링도 일어나고 기도가 되니까 우리 교회를 선택했어. 성령께서 서로 교통하니까 우리 둘은 만나면 좋아. 그러니까 만나면 좋아한다고 다른 사람이 질투해. <참여자 2>

 

4) 현지 아이들과 동화되는 자녀들

참여자들을 따라 선교지로 함께 간 자녀들도 현지 문화의 접촉으로 인한 충격의 기간을 지나 현지 학교생활과 친구들과의 관계에 잘 적응하여 정서적 안정감을 가졌다. 

한 1년 정도 지나니까 적응 잘하더라고. 공부하지 말고 동네 애들하고 맨날 나가서 놀라고 그랬으니까. 학교에서는 학교 애들하고 어울리겠지만 집에 와서도 동네 애들하고 놀면서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오고 걔네 집으로도 가고 그래야지 안 그러면 걔가 어떻게 살아 못 살지. <참여자 6>

 

5) 늘어나는 영적 자녀 해산의 기쁨

참여자들은 영혼을 전도하여 구원받는 영적 부흥을 경험하였는데 이것은 성경 공부와 주일학교 성장, 교회 건축으로 나타났다. 

하나님께서 저를 보내시고 나서 축복을 해주시는데 선교에 대해서 막 부어주시는 거예요. 한 교회 개척하기도 어려운데 나는 하나님께서 다섯 교회를 개척하게 해주셨어요. 그것도 다 예배당 지었어요. <참여자 1>

 

6) 영적 사역의 든든한 후계자

참여자들은 날로 확장되는 사역 가운데 영적 지도자를 길러냄으로 재생산을 이루고 든든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저희는 한 교회에서 5년 이상 정착을 안 해요. 5년 동안에 사람을 기를 수가 있어요. 1903년에 개척된 러시아 현지 교회, 100년이 넘고 교인이 한 350명인 교회에 담임 목사 초청을 받아서 사역을 했었어요. 부목사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2년 동안 심방이라든가 훈련을 다 시켰어요. 그리고 거의 한 2년 일하고 교회 리더로 세워 놓고 넘겼죠. <참여자 5>

 

다. 어느덧 찾아오는 노화의 느낌과 복합적인 심경

1) 날로 다가오는 은퇴의 그림자 

참여자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이 예전과 같지 않아 더 이상 사역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들은 막막한 심정으로 어떻게 은퇴를 준비해야 할지 고민하였다. 

뭐 그렇게까지는 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지만, 점점 약해진다. 이제 우리는 늙어간다. 이제 우리의 미션은 다른 사람 영혼 구원이 아니라 우리가 노년을 잘 사는 미션이 이제 떨어졌구나. 이게 점점 나한테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우리의 열정도 이 나이에는 선교지에서 다시 일으키기에는 힘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참여자 2>

 

2) 늘어가는 사역 마무리에 대한 걱정

참여자들은 은퇴하여 고국에 귀국하기 전 현지 사역의 마무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우리가 000선교사님하고 같이 도시 빈민가 사역을 했잖아요. 000선교사님 혼자 놓고 오려니까 진짜 마음이 안 좋았지. <참여자 4>

 

3) 귀국 후 거처와 생활에 대한 고민

참여자들은 본격적인 귀국을 앞두고 한국에서 어디에 정착하고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구체적인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어디로 갈까 오만 군데를 이제 다 찾아봤죠. 이 생각을 좀 많이 하면서 지나는 중에 1년이 지나 00선교회가 00으로 온 거야. 이건 나에게는 하나님의 메시지였어. 나의 꽃 가꾸는 재능을 내 집만이 아니라 본부를 아름답게 가꾸는 데 쓰고 싶다. <참여자 2>

 

4) 동료 선교사들과 소통을 통해 얻는 위로와 조언

참여자들은 먼저 은퇴한 선교사 동료들의 경험을 들으며 자신들의 은퇴 후의 모습에 대해 미리 생각하였고, 선교회 본부와 소통을 통해 귀국을 결정하였다. 

우리도 이제 당하지 않으면 모르는데 000목사님이 몇 년 더 일찍 은퇴를 했잖아요. 그분이 이제 나한테 하는 얘기가 본인들이 은퇴하고 나서 얼마나 막막하고 낙심이 됐는지 모른다는 거야. 은퇴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완전히 다 무너지는 거 같대. <참여자 2> 

 

라. 첫 번째 여행의 벅찬 마무리와 아픈 이별

1) 역경 중 아름다운 완주에 대한 뿌듯함

참여자들은 은퇴를 앞두고 선교지에서의 삶을 돌아보며 어려움과 힘든 일들도 있었고, 선교사로 부족하고 부끄러운 면도 있었으나 선교사의 삶을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감사와 뿌듯함, 기쁨의 감정을 느꼈다.

어쨌든 선교사 이름으로 훈련을 받고 그곳에 선교사 이름으로 갔는데 하나님 앞에 이렇게 부족하지만 쓰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뿌듯하고 감사하죠. 나는 부족해서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 부끄러운 거 많았을지라도 내가 최선을 다해서 했기 때문에 뿌듯했죠. <참여자 4>

 

2) 미안함과 아픔으로 전달되는 영적 가족들에 대한 이별 통보

참여자들은 귀국을 앞두고 미안하고 아픈 마음으로 영적 가족들에 이별을 통보하였다.

000교회 교인들도 되게 아쉬워하고 정이 많이 들었지. 이제는 다시 못 볼 거라는 걸 아니까 인사할 때 그렇게 얘기했어요. 하늘나라에서 만나자고. 그런 인사가 어디 있냐고 하늘나라에서 만나자고... <참여자 6>

 

3) 사역의 정리와 후임자에로의 이양

참여자들은 본격적인 귀국을 앞두고 사역을 정리하고 후임자에게 이양하는 과정 중에 한국 파송 선교 단체나 현지 노회에 필요한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때 내가 권역장이었던 때인데 권역장들이 호텔에서 모였었어요. 모여서 권역장 보고를 하는 시간을 이사들이 다 들어준다고 온다고 그래가지고 제가 통계를 준비했어요. 우리가 은퇴를 하면은 일본 선교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일본 선교할 사람들을 빨리 파송해야 됩니다. 그걸 만들어 가지고 다 써서 제출을 했더니 이사들이 깜짝 놀라는 거예요. 그러더니 그다음부터 파송했어요. <참여자 1>

 

4) 삶의 터전의 주변 정리와 함께 피부로 와닿는 은퇴

참여자들이 본국으로 귀국한다는 것은 단지 몸만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살고 있는 생활 터전을 전부 정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를 위해 참여자들은 실제적인 주변 정리에 돌입하였다.

우리도 이제 당하지 않으면 모르는데 000목사님이 몇 년 더 일찍 은퇴를 했잖아요. 그분이 이제 나한테 하는 얘기가 본인들이 은퇴하고 나서 얼마나 막막하고 낙심이 됐는지 모른다는 거야. 은퇴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완전히 다 무너지는 거 같대. <참여자 2> 

 

5) 내 나라로의 귀환에 대한 기대감과 교차되는 걱정

참여자들은 고국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설렘과 기대감이 있으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한국에서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걱정이 공존하였다.

현지에서는 그럭저럭 하나님 일을 한다고 주기적으로 계획된 대로 살았는데 한국에 가면 뭐 하지? 그러면서도 나는 그래도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야 돼. 이 다짐을 했지. <참여자 4>

 

마. 고국에서의 새로운 출발과 낯설고 익숙한 만남

1) 엄마처럼 편안한 고국의 품

참여자들은 귀국 후 내 나라에 왔다는 사실 자체에 기쁨과 편안함을 느꼈고 선교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고 공항을 통과할 때마다 있었던 스트레스가 더 이상 없어서 마음이 매우 홀가분하였다. 

일단은 선교에 대한 책임이라는 것이 벗어졌잖아. 그리고 두 번째로는 개인적인 마음인데 보따리 싸 갖고 공항 다니는 그것이 없어지니까 마음이 너무 홀가분해. 공항 통과할 때마다 사람들이 조사하고 돈 내놓으라고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었거든요. <참여자 4>

 

2) 살기에 편한 별세계로 변한 세상

한국에 오랜만에 귀국한 참여자들은 자신들이 선교지로 출발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하고 변한 한국 사회와 문화에 충격을 경험하였다.

한국이 완전히 별세계야. 놀랄 만한 일들이 너무 많아. 문화 충격받았잖아. 이렇게 좋은 나라가 어디 있어요? 추운 겨울인데 버스 기다리면서 정류장에 내가 앉았거든. 궁둥이가 따뜻한 게 세상에 왜 그런 걸 해주지? 국가에서 왜 궁둥이를 따뜻하게 해주지? 그리고 여름 되니까 햇빛 뜨겁다고 세상에 사람들 쓰러진다고 신호등 기다리는데 큰 파라솔을 해놨더라고. 버스 정류장에 오는 버스, 가는 버스 시간도 다 알려주잖아. 은행에서 일 보는 데도 얼마나 친절한지 갑질도 안 하고 말이에요. 은행원도 입구에서 인사를 여섯 번이나 하는 거야. 근데 그걸 누리는 사람은 모르는데 우리처럼 고생하고 온 사람은 신세계야, 신세계더라고. <참여자 6>

 

3) 급변하는 세상에서의 역설적인 불편함

참여자들은 말이 통하고 외모도 같은 고국의 품에 안겨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선교지와 다른 한국 사람들의 태도와 습관 그리고 디지털 사회로 변한 고국에서 불편함을 경험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같은 거 잘 못하는 부분이 아쉽지. 주위에 젊은 사람들이 없잖아. 그러니까 배울 기회도 없고 답답했지. 그러니까 이제 멀리 있는 자녀들한테 부탁하지. <참여자 4>

 

4) 새로운 삶의 터전 구축을 위한 압박

한국으로 귀국한 참여자들은 선교지에서 모아둔 자금도 부족하고 은퇴 후 후원금이 중단되어 주택 마련과 생활비 해결을 위해 경제적인 압박을 크게 받았다. 

한국에 딱 나오니까 진짜 은행 돈 이만큼도 얻을 수가 없는 거야.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거야. 부동산도 없고 뭐도 없고 이제까지 은행 거래를 통해서 쌓아놓은 신용도 없는 거야. 그리고 은퇴한다 하니까 모든 줄이 끊어져. 후원하던 사람들 다 끊어져. 그냥 은퇴했다는 걸로 끝나는 거야. 그분들은 어떻게 살까 생각을 안 해 봐. 근데 당하는 자는 충격인 거야. 선물 꾸러미, 라면 넣고 뭐 넣고 이런 거까지도 은퇴했다고 안 오더라고. 하여튼 딱 현실적으로 경제가 아닌 거야. <참여자 2>

 

5) 지치고 연약해진 몸과 마음의 회복과 충전

참여자들은 선교지에서 잘 돌볼 수 없었던 육체적 건강을 돌보고 치료를 받으며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선교지에서는 바쁜 사역으로 인해 자신을 꾸미거나 가꿀 시간도 없었던 자신을 꾸미고 가꾸며 정서적인 회복과 충전도 경험하였다.

어느 교회에서 나도 이제 목회자가 아닌 하나의 멤버로서 청년 때 섬기던 그 순수함, 설렘 그게 맛보고 싶은 거야. 왜냐하면 목회할 때 그냥 깨끗한 옷 입고 앞치마 두르고 음식 장만하고 청소하고 나면 사람들 몰려오면은 맞아 드리고 나면 나는 덜렁덜렁 가서 앉아서 예배드리고 또 부엌데기. 그게 30년이었어요. 나를 가꿀 틈이 없어. 요즘 유난히 더 얼마나 아침이 기쁜지 몰라. 아침에 충분히 샤워하고 다 페인트칠(화장)도 하고 막 드라이 넣고 나를 이렇게 보고 뒷머리 보고 앞머리 보고 옷도 뭐 입지? 막 해가지고 옷을 입고 가는 거예요. 너무 신나는 일이야. 여자로서의 뭔가 있잖아요. 내가 이렇게 사치는 안 하는데 매칭하는 센스가 있어요. <참여자 2>

 

6) 증폭되는 두고 온 영적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참여자들은 은퇴로 인해 선교지를 떠나 한국에 있지만 여전히 그곳에 있는 영적 가족들을 그리워하였고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면 방문하길 원했다.

선교사역이라는 것이 끝이 없는 것 같다 생각이 들어. 끝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과 동역해야겠다. 선교사는 하나님 오실 때까지 해야지 끝이 없어. 이제 직접적으로 하지 못하고 또 많이 적극적으로 열성적으로 하지 못해도 마음은 항상 있어. 일반 직장은 내가 이제 돈 받고 일하고 끝나면 끝나는 건데 이거는 사랑으로 연결되는 거라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 은퇴는 해서 몸은 왔지만, 마음은 끝까지 거기에 남는 거지. 코로나 때문에 묶였다는 핑계도 있지만 이제 또 하나님께서 기회 주시면 가야죠. <참여자 4>

 

7) 새롭게 만나고 적응해야 할 영적 공동체

참여자들은 새롭게 만나는 영적 공동체에서 지도자에서 교회 멤버로의 지위의 변화로 역할 변화에 대해 적응이 필요했다. 또한 영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교회를 찾아 자발적으로 이동하기도 하였다.

근데 지금도 교회 가면 좀 이상하다. 사모들은 아침부터 바쁘잖아. 목사님은 목사님대로 설교 준비하겠지만 사모는 사모로서 교회 전체적인 걸 여기 보고 저기 보고 여기 갔다가 저기 갔다가 하고 예배드릴 때도 뒤에서 다 또 이렇게 보잖아요. 그런 걸 안 하니까 조금 좀 이상하더라고. 편한 면은 있는데 조금 이상해. <참여자 6>

 

바. 날로 익숙해지는 두 번째 여행

1) 점점 더 짙어지는 한국인의 냄새

참여자들은 처음에는 익숙하지만 낯선 나라였던 고국이 점점 시간이 지나며 익숙한 나라로 느꼈다.

일본에서는 관공서를 찾아가면 직원이 앉았다가도 서서 이야기를 해주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정말 손님 대접하듯 그렇게 해주거든요. 근데 여기 읍사무소에 처음에 갔을 때 직원이 앉아가지고 얼굴도 안 쳐다보면서 무슨 말 하면 손을 가리키면서 저쪽으로 가세요. 저 사람들이 우리를 무시하나 그런 생각도 들고 해서 가기가 싫었었어. 그런데 지금은 익숙해졌죠. <참여자 2> 

 

2) 경제적 자립을 위한 몸부림과 적응

참여자들은 경제적 자립을 위해 식당이나 공장에서 일을 하며 수입을 창출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공장 일도 하고 아주 힘들긴 해요. 어쩔 때는 월요일 되면 가기 싫다니까. 일은 하긴 해야 되는데 내 나이가 지금 이제 만 75세니까 언제까지 일하겠느냐 하는 염려와 불안이 있죠. 한편 마음으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데까지 일하자. 그렇게 넘어가고 그 이후에는 하나님이 또 다른 방법으로 채워주지 않겠느냐 하면서 미리 걱정하지 않고 튕겨버리죠. <참여자 5>

 

3) 한국 사회 일원으로서의 관계의 재정립

참여자들은 한국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해 가는데 그들과 공통 분모가 없어 소통에 어려움을 경험하고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꼈다.

한국 사모님들 만나면 너무 달라갖고 나도 할 말이 없어. 몰라서 말을 못 하겠더라고. 이제 평신도들도, 성도들도 그래. 그 나라는 그렇군요. 이 나라는 그렇군요. 그러면 이해를 하면 되거든. 그냥 그이들 만나면 말을 안 하게 돼. 그래서 좀 외로워. <참여자 6>

 

4) 지속되는 영혼 구원에 대한 부담과 열망 

참여자들은 행정적으로 선교 사직에서 은퇴하였으나 선교사라는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고 국내에서도 전도에 힘쓰고 있었다.

한국에 나와서도 그 선교사라는 것은 항상 꼬리를 물고 다니잖아요. 우리가 세계에 나가서 활동은 못 하지만 이 아파트 돌아다니면서라도 어떻게 전도를 좀 해봤으면서 좋겠어요. <참여자 3>

 

5)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기도와 갈망

참여자들은 인생의 황혼기에 있는 이들로서 인생의 마무리를 아름답고 의미 있게 하고자 하는 기도와 갈망이 있었다.

내가 예수님 앞에 신부로 서기까지 나를 더 영성화, 발전시켜 나가야 돼. 사역 중심으로 다른 사람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지마는 이제는 나도 아름다운 신앙의 모델로 내 영을 키우고 싶어. <참여자 2>

 

 

2. 연구 참여자 경험의 일반적 구조 진술

연구 참여자들은 귀국 후 4가지 영역인 경제적 영역, 사회 · 문화적 영역, 영적 영역, 정서적 영역에서 선교사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삶을 유지하는 선교사로 나아가는 것으로 정립되었다. 이러한 귀국 적응 경험을 [그림 1]에서 제시하고 있다.

 



 

[그림 1] 연구참여자 경험의 일반적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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