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글
시작이 미약하다고 비웃는 자가 누구냐
이동휘 목사
손바닥만 한 ‘구름 한 장’(왕상 18:44. 공동)이 떠오른다. 갈멜산 절벽에서 바라보는 광활한 바다에 보일락 말락 숨죽여 솟는 가냘픈 흰 구름! 관심 두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무릎 사이에 고개를 깊숙이 박고 애절하게 허리 굽혀 기도한 엘리야 선지자에게는 하나님의 시퍼런 신호였고 우렁찬 응답이었다. 왔다! 응답이 왔다! 3년 반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던 삭막한 이스라엘 들판에 폭우가 쏟아지는 기적의 징조다. 바알 선지자 450명을 수장시키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명한 직후다. 작은 구름이 천지를 덮는 신비다.
화려하고도 웅대한 솔로몬의 옛 성전을 보았던 노인들은 바벨론 포로 후에 쌓아 올리는 성전의 초라한 모습에 미소를 잃었다.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스 3:12) 하나님의 태도는 정반대다. “시작이 미약하다고 비웃는 자가 누구냐?”(슥 4:10. 표준) 꾸짖는다. 스룹바벨의 성전이라고 부르는 두 번째 성전건축의 의미는 심오하고 우주적이었다. 성전 자체이신 예수님 스스로가 하늘과 땅 온 인류의 구원자로 강림하심에 스가랴 선지자는 깜짝 놀란다. 한참 생명이 부대낄 때, 온 누리가 이 성전에 와서 생명수를 마시는 메시야의 오심을 나팔 부는 개막이었다. 가냘픈 순으로 싹이 돋아 피어오를 것도(슥 6:12), 어린 나귀를 타실 것도(슥 9:9), 삼십의 노예 값으로 토기장이 밭을 사서 나그네 묘지를 만들 것도(슥 11:13), 찌른 자를 보고 통곡하며 가슴 두드릴 것도(슥 12:10), 힘으로 능으로 아니되나 오직 성령으로 될 것도(슥 4:6) 모조리 선포하신다. 두메산골 작은 교회도 무시하면 안 될 충분한 이유다. 툭 터진 하늘 영광을 보아서다.
1806년 월리암스 칼리지의 밀즈는 영적 부흥을 애타게 갈망하는 더운 가슴들과 기도 모임을 열었다. 강변에 모여 기도하다가 소나기가 쏟아져 근처 건초더미 속으로 피해 기도하는 중 성령이 임하며 해외 선교에 대한 비전을 가졌다. ‘형제회’를 조직하여 그들 5명은 졸업하자 이웃 대학들에 다시 들어가서 세계 선교 모임을 만들었다. 교단 총회를 찾아가 자기들을 해외선교사로 파송해 주기를 요청했고 1810년 최초로 해외선교회가 탄생되었다. 처음 5명이 파송되고 50년간 1,25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며 선교 미국을 불붙였다. 건초더미 기도 운동의 창시자 밀즈를 가슴에 담은 어머니는, 일찍이 어린 아들을 선교사역에 써 달라고 주님께 엮어 놓았었다.
한국교회의 보석은 새벽기도회다. 세계교회가 하지 못하는 새벽기도 제단을 한국교회는 오롯이 쌓았다. 누가 감히 이 기도 습관을 멸시하랴! 이 보석 같은 시간에 세계를 둘둘 말아 거룩한 제단에 올려놓고 홍해 바다가 갈라진 기적의 새벽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신비한 새벽에, 한국교회 전체가 일어나 벌 떼처럼 소리 질러 부르짖고 싶어서다. 한 달 31일로 쪼개어 매일 기도 제목을 올려놓고 지구 한 바퀴를 한 달씩 돌고 싶다. 그래서 오대양 육대주를 예수님의 품에 푹 안겨 드리고 싶구나. 예수님의 뜨거운 가슴에 세계가 녹아내릴 것이다. 여리고 성은 무너질 것이다. 사탄은 질식할 것이다. 마귀의 포로 된 골목에 환희가 올 것이다. 구원이 올 것이다.(매일 기도 내용은 본 바울선교지 48면에) 말씀 전하기 전, 2분간의 합심 기도로도 넉넉할 것이다. 개인은 집에서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 세계를 기도의 새 타작 기계에 넣어(사 41:15) 악의 세력을 조각조각 분쇄하고 싶어서다. 아이를 낳고자 하나 해산할 힘이 없었던 히스기야 왕의 애절함으로(왕하 19:3) 앗수르 군사를 진멸해야만 승리의 면류관을 얻기 때문이다.
2024년이 찾아왔다! 새해는 분명 우리 편이다. 기도로 탱크처럼 밀고 나가자. 할렐루야!
이동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