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죄를 끊어 버림(사막교부들의 금언 집: 빨라지오와 요한 엮음)
① 아르센 교부는 손노동을 하기 위해 앉아 있을 때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무릎 위에 천을 덮어 두고 있었다.
② 에바그리오 교부의 말이다. 독방에서 자신을 성찰해 보도록 하여라. 이 세상의 헛됨을 진절머리나는 것으로 여겨라. 마음속으로 지옥에 있는 자들을 생각해 보고 영적 눈물을 흘려라. 죄인들의 당황함을 생각해 보아라.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지옥의 암흑, 그러한 형벌에 떨어지지 않도록 영혼의 슬픔을 지녀라. 동시에 의인들에게 예정되어 있는 상급을 생각하면서 기뻐하라.
③ 빠스톨교부는 약속의 땅에 도달하자 묘지를 하나 샀다. 그 덕분에 땅을 상속받았다. 묘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그것은 눈물과 애통이 있는 것이라 했다.
④ 알렉산드리아에 온 팜보 교부는 여자 희극배우를 보자 울기 시작했다. 이유를 묻자 저 여자의 멸망 때문이요 또 하나는 타락한 남자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열성을 발휘하는데 나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만한 열성도 가지지 못하다는 점일세.
⑤ 어느 날 실베스텔 교부가 신비 상태에 들어갔다가 울면서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인가의 물음에 나는 심판 장소까지 이끌려갔었는데 수도복을 입은 많은 사람이 형벌 받는 곳으로 가는 것을 보았소. 반면 속인들은 천국에 들어가고 있었어. 이후부터 그는 독방에서 나오지 아니했다. 식사도 거르면서 아무 쪽에도 쓸모없는 자라고 탄식하였다.
⑥ 히페레키오 교부: 밤에 깨어 있는 수도자는 그 열심의 기도로 밤을 낮으로 변형시킨다. 가슴을 배는 슬픔을 지닌 수도사는 눈물이 솟게 하여 하늘의 자비를 끌어당긴다.
⑦ 수도자들이 펠릭스 교부에게 여러 번 교훈을 주시라 해도 듣지 않다가 할 수 없이 입을 떼었다. “지금으로써는 할 말이 없네. 옛날에는 영감을 주셔서 말했네. 지금은 수도자들이 들은 바를 실천하지 않으므로 그 은사를 거두셨네. 듣고 실천할 자가 하나도 없으니까.” 수사들은 탄식하며 사부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소서 통곡했다.
⑧ 밭에서 수확하던 수도사가 밀 이삭 하나를 먹고 싶어 주인에게 “이삭 하나만 먹게 해 주십시오.” 말했다. 주인은 몹시도 감탄하여 “사부님, 이 밭을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그런 걸 다 청하십니까?” 했다. 그 정도로 그 수사는 섬세했다.
⑨ 이시도로의 교부에게 악마들이 “어째서 그토록 당신을 두려워합니까?” 하고 물었다. 교부는 “내가 수도사가 된 이래 분노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일을 절대 허락한 일이 없도록 하였다.”고 말했다. 화내는 것을 태양이 본 적이 없었다는 요한 교부의 수준과 같았다.
⑩ 마카리오 교부: 어떤 사람을 나무라면서, 자네가 화를 낸다면 자네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이 된다. 이웃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멸망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⑪ 빠스똘 교부: 연기가 꿀벌들을 쫓아내고 그들의 만든 꿀을 없애 버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육체의 편안함은 영혼에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몰아내고 선행을 앗아간다.
⑫ 히페레키오 교부: *순결한 수도사는 땅에서 존경을 받을 것이며 하늘에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씌워 주시는 관을 받을 것이다. *화났을 때 자기 혀를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육욕이 닥쳐올 때도 억제하지 못할 것이다. *헐뜯음으로 형제들의 살을 먹기보다는 차라리 술을 마시는 것이 났다. *뱀은 속삭임으로서 낙원의 하와를 쫓아냈다. 이웃을 쑥덕거리는 자는 그 뱀과 같다. 그는 자기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을 망칠 뿐 아니라 자신의 영혼도 구하지 못한다.
⑬ 어느 원로가 병이 걸려 오랫동안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원기를 회복할 수 있는 음식을 드릴 것을 허락받고 밀가루로 죽을 쑤었다. 꿀을 섞어 드린다는 것이 옆에 있는 악취 나는 등불 켜는 기름을 넣었다. 원로는 말없이 먹었다. 더 먹도록 권하여 또 먹었다. 세 번째 죽을 권하자 더 못 먹겠다고 사양했다. 사부님! 저도 들겠다고 하면서 맛을 보자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깨닫고 이마를 땅에 대고 사죄했다. 원로는 “만약 하나님께서 꿀을 먹기를 원하셨다면 자네가 죽 속에 꿀을 넣었을 것 아닌가.”라고 태연히 대답하는 것이었다.
⑭ 어느 원로는 오이를 몹시 먹고 싶었다. 오이를 갖게 되자 그는 그것을 우선 눈앞에 매달아 놓았다. 자신의 욕망에 지지 않으려는 의지와 과도하게 먹고자 한 것에 대한 회개였다.
⑮ 한 수사가 어느 수도원에서 앓고 있는 누나를 찾아갔다. 그 수녀는 규칙을 아주 잘 지키는 사람이어서 남자를 만나는 것을 동의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 때문에 동생이 여자들 가운데 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말을 전했다. “물러가거라, 얘야. 그리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려무나. 그리스도의 은총이 있다면 너를 천국에서 만나리라.”
① 빠스톨 교부: 왕의 곁에 서서 모든 우발사태에 대비하는 호위병처럼 영혼도 항상 부정의 악마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② 수녀원장 사라는 부정한 악마가 어느 때보다 격렬히 그녀를 공격했다. 세속적인 허영들을 생각나게 했다. 그녀는 기도하기 위해 테라스로 올라가서 금욕에 대한 몰두와 간절함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부정한 악마가 그 모습을 드러내며 “네가 나를 이겼다! 사라” 한다. “아니다. 너를 이긴 것은 나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대답했다.
③ 한 수사가 부정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그 투쟁은 마치 밤낮으로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은 채 줄기차게 싸웠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유혹은 사라졌다. 그러자 곧 하나님의 평강이 그의 마음 안에 흘러들어오는 것이었다.
④ 한 수사도 부정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그는 밤에 일어나서 어느 원로를 찾아갔다. 유혹의 생각을 털어놓자 격려해 주었다. 힘을 얻은 수사는 다시 독방으로 돌아오자 다시 유혹이 밀려왔다. 그 밤에 11번이나 찾아갔고 원로는 겸손히 지도해 주었다. 원로는 말했다. “악마에게 지지 말게. 되어가는 대로 자신을 버려두지 말고 그 반대로 하게. 악마가 공격할 때마다 나를 찾아오게. 부정한 영은 죄를 자백하는 것을 질색으로 여기거든. 반면에 제 생각을 숨겨 두는 것이어야 말로 그놈이 가장 즐겨하는 것이거든.”
⑤ 부정의 악마 때문에 시달리는 수사가 위대한 스승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기도해 주었는데 다시 찾아왔다. 하나님께 청했는데 왜 물리침을 받지 못했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의 상태를 보여 주시기를 청했다. 부정의 악마 옆에서 그가 함께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 천사는 화가 나 있었다. 기도하는 모습이 아니라 불순한 생각들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채 같이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자네는 그 생각들에 동의하고 있구먼.” 대항하는 방법을 가르쳤고 진정되어 안식을 얻었다.
⑥ 한 수도자에게 원수가 옛날의 예쁜 여자를 상기시키며 괴롭혔다. 여행자가 들러서 대화하는 중에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그 여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는 외투를 걸치고 그녀가 매장되었다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무덤을 헤치고 시체가 썩어 흐르는 물을 외투에 묻혀 돌아왔다. 악취가 나는 외투를 방에 놓고 냄새를 맡으면서 자신의 생각과 싸웠다. “내가 탐내던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네가 그걸 소유하고 있구나. 실컷 냄새 맡으라.” 끔찍한 악취를 맡으면서 부정한 생각을 몰아냈다.
⑦ 이교도 제관의 아들이 자기 아버지가 사원에 가서 제사 드리는 것을 보는 중에 사탄의 나라 광경을 보았다. 대장 사탄이 앉아서 보고를 받고 있었다. 한 곳에서 온 악마가 그 지방에 전쟁을 일으켜 피가 흘러넘치게 하였다는 보고다. 그 일을 하는데 얼마만 한 시간이 걸렸느냐고 묻는다. 30일 정도 걸렸고 답하니 그까짓 일을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냈느냐 하면서 회초리로 때리라 명령했다. 다른 악마는 바다에 태풍을 일으켜 많은 선박을 침몰시키고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보고다. 20일 동안 걸렸다 하니 역시 회초리를 명했다. 세 번째 악마가 경배하며 보고한다. 결혼식장에서 싸움을 일으켜 난장판을 피우고 신랑도 죽었단다. 이틀 동안 했다는 말을 듣고 역시 혹독한 매질을 당했다. 다른 악마가 와서 40년 동안 수도사와 싸웠는데 드디어 어젯밤에 음행에 빠뜨리는 데 성공했다는 보고다. 그러자 사탄이 일어나서 그 악마를 포옹하고 면류관을 씌워주고 어좌에 앉도록 했다. 이를 본 그는 “수도자라는 신분은 정말로 굉장한 것인가 봐!” 했다.
2. 영성으로 죄를 이긴다(이반 홈즈: 영성의 역사)
모든 사람은 마음 안에 두 마차 주인 사이에서 경주가 벌어지는 것 같다. 한 마차는 마음인데 이성의 지배로 움직인다. 다른 하나는 사탄의 마차이다. 사탄과 성령은 각자의 우승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② 이삭은 영성 생활에서 눈물을 필수로 꼽았다.
성령은 우리를 웃게 한다는 신념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대가 눈물의 영역에 이르지 못하는 한, 눈물은 그대 안에 숨어있고 그대는 여전히 세상을 섬기는 것이다. 그대는 여전히 세속적인 삶에 끌려서 겉 사람으로만 하나님의 일을 한다. 반면에 속사람은 메말라 있다. 왜냐하면, 그대의 열매는 눈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머리를 떠나 가슴을 지녀라. 그리고 온 가슴으로 믿어라.”가 그의 신학이다. 그의 가르침은 감미로웠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아빠였다. 성령은 엄마였고 예수님은 형제 또는 어린양이었다. 그가 쓴 2천 개의 찬송가는 피 냄새가 나는 듯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피에 심취해 있었다. 모든 남편은 사실은 대리 남편이라고 가르쳤다. 참 남편은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추종자들이 어린아이들처럼 되기를 원했다. 그리스도와 가까워짐으로 죄를 떠나고 죄를 멸하는 순서로 이어졌다.
3. 지옥의 진노에서 피하라(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여있는 죄인들: 조나단 에드워드설교)
① 하나님은 언제라도 악한 자들을 지옥에 던져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인간이 아무리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대적할 수는 없으며 하나님의 손에서 죄인을 건져낼 수 있는 구원자도 없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요새나 방어진지는 없다. 대적들이 손에 손을 잡고 벌떼처럼 결합한다 해도 그들은 오히려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그들은 회오리바람 앞에 티끌 같으며 삼키려는 불길 앞에 놓은 마른 검불과도 같다. 우리는 그의 꾸짖음에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날아가는, 그분 앞에 서 있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
② 패역한 자들은 지옥에 던져져야 마땅하다. 하나님의 공의는 언제나 살아있으므로 그들을 멸망시킨다 해도 반대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공의는 패역한 자들의 죄에 대한 응징을 큰 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악의 도시 소돔과 같은 열매를 맺지 못한 나무를 향해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눅 13:7)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공의의 칼은 패역한 자들의 머리 위에서 늘 움직이고 있다. 하나님의 자비와 선하신 의지만이 그 칼을 도로 칼집에 꽂도록 하실 것이다. 지옥의 불구덩이는 이미 마련되어있다. 용광로는 이제 뜨겁게 달아 있으며 그들을 받아드릴 준비가 완료되었다.
③ 부패한 본성들이 악한 자들을 지배하고 장악하고 있다. 그것들은 지옥의 원료가 되고 고통의 토대가 될 것이다. 그것들을 눌러 억제하는 하나님의 팔이 없다면 그들은 즉시 파멸될 것이다. 이 부패한 본성은 파멸 받은 영혼을 더욱 부채질한다. 인간 마음의 부패는 그 간악성에 있어 끝이 없다. 죄악을 억제하지 못한다면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④ 우연한 사고로 저세상으로 갈 가능성이 없다고 해서, 그리고 그의 주변에는 눈에 띄는 위험이 없다고 해서 육적인 안전성을 보장해 주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생각지 않았던 방법으로 세상에서 사라지는 경우는 상상할 수 없이도 많다. 회개치 않은 사람은 지옥 구덩이를 덮고 있는 연약한 뚜껑 위를 걷고 있으며 그 뚜껑에는 그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무너져 내릴 지점이 아주 많다. 죽음의 화살은 대낮에도 보이지 않게 돌아다니며 악한 자들은 그 화살이 자기에게 정 조준하고 있음도 알지 못한다.
⑤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악한 인간으로 남아 있으면서 지옥에서 빠져나오려는 간사한 계략은 절대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의기양양한 짓거리로 지금 하고 있는 더러운 일을 지속하고 있으면서 지옥의 문에서 빠져나오려는 상상은 불쌍하게도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그들의 신뢰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살다가 죽은 사람은 다 지옥에 갔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사람들보다 지혜가 부족해서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다. 그 방향으로 죽음이 찾아오리라고는 생각지 않는 처지에서 죽음이 도둑같이 임했기 때문이다. 죽음이 그들보다 한 수 위에 있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말할 때 저를 덮친 것이다.
⑥ 죄 속에 사는 육적인 인간들은 불타오르는 구덩이에 들어가야 할 마땅한 자들일 뿐 아니라 판결은 이미 선고되었다. 그들에게는 피난처가 없다. 육적인 인간들의 종교적 열심히 어찌하든지 간에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 전에는 어떤 탈출구는 없다. 악마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으며 지옥문은 활짝 열려만 있다. 그들은 지옥의 불꽃으로 타고 있었으며 중보자에 대해서 관심도 없었던 자들이었다. 그리스도밖에 사람들에 대한 경고가 당신에게는 해당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⑦ 하나님의 진노는 당분간 억제되고 있는 많은 물과 같다. 그 물의 양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높아가고 있다. 그 쌓인 물이 터졌을 때의 속도와 세력은 격렬하게 쏟아져 당신을 덮칠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물이 쏟아지지 않게 붙들고 계실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화살은 힘껏 잡아당길 준비가 다 된 것이다. 신앙의 자세를 가다듬고 진노하시는 손안에서 벗어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할 때 파멸로부터 구출될 것이다.
⑧ 하나님의 눈은 지극히 순결하다. 그분이 보실 때 우리가 징그러운 뱀을 볼 때처럼 몇천 배 더 가증스럽게 그분 눈에 보일 것이다. 엄청난 반역을 늘 저질러온 우리들이다. 그럼에도 불 속에 집어 던지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다. 당신이 지난밤에 지옥에 가지 않고 오늘 아침 다시 깨어 일어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손이 당신을 도와주시고 계셨기 때문이다. 죄인들이여! 당신이 처해 있는 위험한 상황을 살펴보라.
⑨ 자! 지금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긍휼을 베푸실 준비를 하고 계시는 순간이다. 지금은 자비의 때이며 부르짖을 수 있는 때이다. 이때가 지나가면 처참한 울부짖음도 아무 쓸데가 없게 된다. 당신의 행복과 함께 당신의 전 존재가 파멸되고 말 것이다. 어떠한 동정심도 없이 진노를 맹렬히 쏟아 부으실 것이다. 영원한 암흑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볼지라도 당신에게 어떠한 연민도 느끼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무서운 진노의 폭풍을 가라앉히지 않을 것이며 자비도 베풀지 않으실 것이다. 당신이 받을 고통을 지켜 주시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 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그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모든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잠 1:24-30)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 자비를 호소한다 할지라도 당신의 처지를 도무지 동정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발아래 짓밟힐 것이다. 아무런 긍휼을 받지 못한 채 밟아 부서뜨릴 것이다. 마치 길바닥의 진흙처럼 될 것이다.
⑩ 그날에는 고통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얼마나 사랑이 큰 것임을 보여 주신 것과 같이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 줄 것이다. 다른 것이 첨가되지 않고 억제되지 않은 진노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인지 분노의 맹렬하심을 보여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과 장엄한 주권을 온 우주는 볼 것이고 그 권세의 위대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그 날이 될 것이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경배치 않은 죄의 심각성을 그날에 밝혀낼 것이다.
⑪ 그 진노가 영원하다는 것 또 역시 심각한 것이다. 잠시 겪는 것도 무시무시한데 거기엔 구원자도 없고 완화됨도 없고 휴식도 없이 절망만이 끝없이 계속되는 지옥인 것이다. 영원한 천국이 있음을 단호히 거절하고 영원한 절망만 있는 지옥의 처절함을 늦게 깨닫게 되는 어리석음도 영원할 것이다.
⑫ 당신은 특별한 기회를 지금 붙잡고 있는 행운아다. 그리스도께서 은혜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시고 큰소리로 외치시며 불쌍한 영혼들을 부르고 계신다. 지금은 그리스도의 날개 아래 모인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로 밀려들어 가는 때이다. 그분의 사랑을 가슴에 채우고 행복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함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소망으로 춤추고 있다. 이런 때에 뒤에 남겨진다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당신은 야위어 있는 동안에 수많은 사람이 잔치를 베풀고 있는 것은 얼마나 엇갈린 일인가. 영원히!
① 모슬렘이 개종하여 기독교인으로 회심했다. 살벌한 위험상황에서 친구들이 마지막 권면하기 위해 그 친구를 찾아왔다. 개종의 이유를 물었다. 그 친구의 답은 명확했다. 길가다가 갈림길이 나왔을 때 누구에게 길을 묻겠는가. 산 사람에게 묻겠느냐 죽은 사람에게 묻겠는가. 살아계신 하나님께 묻기만 하면 죄에서 해방되고 지옥의 문을 탈출하게 되리라.
② 천사는 욥의 식구들에게 황급히 재촉한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 하심이더라.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창 19:16-17) 보혜사 성령님의 권면을 들을 수 있는 이 시점을 꼭 붙잡아야 한다.
③ 지옥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편을 택함으로 가게 된다. 하나님의 은총에 반항하고 거부함으로다. 그러므로 지옥에 가는 것은 하나님은 그들의 뜻을 비준하여 단죄하는 것뿐이다. 누구의 뜻이 아니고 자기의 뜻이다.
④ 우리에게는 예수님이라는 중보자를 통하여 죄 사함과 구원의 길을 성취한다.
이슬람 세계는 매년 한 달 동안 라마단 금식기도를 하고, 하루 다섯 차례 가까운 모스크나 메카 방향을 행해 기도하고 구제를 의무적으로 하고, 일생 성지를 순례하는 대단한 업적을 쌓았어도 구원은 그날에 가서 알라의 뜻으로 되어 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이상 무서움 속에서 착실한 의무만 행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내 죄를 전부 껴안고 대신 죽으신 구속주가 계신다. 그 은혜로 이 형벌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지만 않으면 된다. 불교는 철저한 무신론이다. 석가가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存)이라고 외쳤다. 자신 홀로 선 존재다. 신도 만물의 창조자도 관리자도 없다. 불교는 철학이고 심리학이라는 점에서 엄밀히 신의 존재를 인정치 않는 무신론이지만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부처를 신으로 생각하는 보살사상이 들어오고 종교의 형태를 갖추었다. 인간을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아미타 보살과 인간의 모든 기도를 들어준다는 관세음보살을 의지한다.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이 두보살을 연속적으로 부른다. 주문을 많이 할수록 그 어려움을 도와준다는 것이다.
힌두교는 문자 그대로는 ‘인도의 종교’를 뜻하며, 세계에서 가장 오랜 종교의 하나로 특정한 교주나 교리, 중앙집권적 권위나 위계조직이 없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신앙형태가 융합된 종교여서 간단히 정의하기가 어렵다. 힌두교 안에는 원시적인 물신숭배, 애니 미즘, 정령숭배로부터 주술, 제식, 다신교, 일신교, 고행주의, 신비주의 그리고 고도로 발달된 사변적 체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형태의 종교가 발견된다. 힌두교는 하나의 종교일 뿐 아니라 힌두의 사회, 관습, 전통 등 모든 것을 포괄하는 말로 힌두의 생활방식이자 힌두 문화의 총체이다. 범신론이면서 다신교로 그들이 섬기는 신은 3억 3천3백이나 된다. 많은 신을 섬기는 것을 자랑으로 알고 있으나 역시 그들을 위해 사랑으로 죽으신 중보자는 없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히 9:13~15)
⑤ 이런 기막힌 은혜를 주셨는데도 아직도 죄와 관계를 끊지 못하고 은밀히 품고 산다는 것은 무서운 반란이다. 미적거리지 말고 죄와 담판을 내어라. 눈을 뽑는 심정으로 죄를 처단하라. 손목 자르는 아픔으로 죄와 결별하라(마 18:8). 그렇지 않으면 니느웨 사람들이 심판 날에 일어서서 불리한 증인이 되어 정죄하리라(마 12:41). “우리는 못난 요나의 전도를 듣고도 금식하면서 회개하고 죄를 잘랐는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그 피의 진리를 짓밟은 자들이 어찌 무서운 형벌을 받지 않겠느냐”. 무섭도다! 심판의 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