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칼럼
가정으로 선교한다
여·경·지·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잠 9:10)
(허은영 선교사)
어릴 적, 어머니는 저녁마다 상을 펴 놓고 우리 4남매를 둘러앉히고 가정예배를 드리셨다. 아버지를 제외한 우리는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찬양을 외워 부르기도 했다. 예배가 마치면 그 당시 관주로 된 성경을 펴고 같은 글씨나 단어를 찾으며 게임을 하기도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많이 불렀던 찬송은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나의 사랑하는 책’ 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앙을 반대하시는 아버지와 희미한 등불 등 모든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어머니의 가정예배와 새벽기도는 절대적이었다.
오늘날, 기독교 신앙이 부모에서 자녀로 이어지는 것이 채 20%를 넘지 못한다는 보도가 있다. 나의 경우만 보더라도 신앙 2대째인 어머니는 가정에서 확실하게 신앙을 전수해 주셨다. 어릴 적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찬양을 부르며 이미 선교사의 꿈을 키웠는지도 모른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찾아가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겠다는 고백을 눈물 흘리며 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사역자가 되고 첫아이는 한국에서, 둘째 아이는 필리핀에서 출산하고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자녀들을 양육하며 가정에서 얼마나 철저한 신앙훈련을 시켰는지 뒤돌아보면 후회가 더 많다.
나는 십 대들을 상담하면서 복음에 대해 냉랭한 태도를 취하는 청소년들의 주된 문제 중 하나가 자기들에게 복음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점임을 알게 되었다. 부모들의 높은 신앙 수준에 비해 자녀들은 방황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가정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교회 안의 현실이다. 1700년대 독일에서 내부선교가 일어났듯이 지금 우리도 수도원 운동처럼 기독교 문화 안에 문제들을 새롭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신 4:10. 네가 호렙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주어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리라 하시매]
언약 백성들에게 예배를 통해 말씀하시고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명확하다.
예배자가 되어 예배자를 가르치라는 말씀이다. 원어에 ‘가르치며 배우다’의 뜻이다. “좋은 학생이 좋은 선생이 된다” 즉 주일에 예배드린 것을 가정에서 다시 나누며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전수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의 언약을 지속하는 것이다.
신명기 6장은 4장의 반복으로 시작된다. 그러므로 신앙전수의 가장 기본은 가정이며 그 키는 부모인 것이다. 인구절벽을 맞이하는 노령화 시대에 살고 있다. 가정이라는 언약공동체를 살려야 한다. 성경적으로 회복해야 한다.
장신대 박상진 교수는 자신이 수행한 교회학교 위기 요인 진단 분석연구에 의하면, 교회학교 위기의 일차적 원인 제공자는 '부모'라고 지적했다. 그는 "부모를 신앙의 교사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단지 교회 다니는 부모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크리스천 부모'가 되도록 부모를 세워서, 가정에서 가정예배를 드리고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담당하는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창 13:4-5.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아브람과 조카 롯이 서로 거주할 땅을 선택하는 장면이다. 아브람에 대해서는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 즉 가정 예배드린 것을 명시해준다. 이와는 상반되는 롯은 ‘소와 양과 장막이 있으므로’ 세상이 복으로 여기는 것을 쫓아가게 된다.
이 두 가정의 선택은 우리 크리스천 가정들이 무엇을 중심으로 선택하고 가정을 운영하는지를 보여준다. 세상이 복이라고 말하는 ‘소와 양과 장막’을 우리도 쉽게 선택하고 자녀들도 그 선택을 칭찬하고 있지는 않은가? 결국 패망의 길로 가는 데도 그 길을 기뻐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주일도 반납하고 예배시간도 아껴서 잘사는 법을 배우러 달려간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단 쌓았던 곳을 지킴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된 땅을 소유할뿐더러 신앙의 대를 잇는 자리를 지켜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한 것은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라고 한 것이 아닐까? 이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이야말로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신앙의 원조가 되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는 것이 말씀묵상이라면 하나님의 마음으로 통곡하는 것은 기도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게 하는 것은 가정예배에서 시작된다.
우리 가정의 가보 제1호인 자녀를 최고 스승인 예수님께 맡기고 인격자로 키워야 한다.(선교 위임)
사랑과 영성의 흐름은 가정에서 흡수해야 한다.(선교 책임)
신앙의 위력을 부모의 삶에서 채취해야 한다.(선교 능력)
날마다 드리는 가정예배가 계승될 가문의 전통으로 삼을 때(이동휘: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74p)
가정이 가정이 되고, 교회가 교회 되며, 선교가 선교가 되는 세상이 올 것이다.(선교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