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순례자
이동휘 목사
※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10가지 증거(루우벤 아쳐 토레이: 25편의 명설교⑯)
루우벤 아쳐 토에이는(Ruben Archer Torrey, 1856-1928) 무디의 영향을 받았고 목사가 된 후 무디 성경학교의 교장이 되어 시카고에서 학생들을 위한 운동을 시행했고 부흥사 무디사역에 적극적인 협력자로 큰 역할을 하였다. 1년 내에 2000명의 회심 자를 얻기도 했다. 세계로 퍼져나가는 복음전도십자군을 지휘했고 많은 열매를 얻었다. 설교자로, 교육자로, 성령논의 대가로 열정의 사람이다. 한국에서 사역했던 예수원의 대천덕신부의 조부이기도 하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권위를 받아 드린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경전체를 받아 드린다. 그리스도의 권위를 받아 드린다면 그의 성경전체의 권위도 받아 드려야 한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저술임을 증거 하셨기 때문이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7) 또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예수님을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 져야 하리라 하셨다(44)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지리라”(마5:18) 하신 예수님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선언하신 것이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 하거니와 이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 구약이나 신약 모두가 예수님에 관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어떤 부정을 말하겠는가.
2. 성경에 기록된 예언들이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의 예언에는 두 종류가 있다.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의 예언이고 또 하나는 모형론적인 예언이다. 문자적인 예언으론 이사야 53장의 메시아의 고난의 종, 미가5장, 다니엘서의(9:25~27) 경우다. 탄생 수 백 년 전인데도 그의 탄생과 방법, 사람들에게 받게 될 고난, 일생의 종결, 죽음과 부활 등이 정확하게 기록 되었다. 당시엔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사건들이지만 하나님만이 그 장래를 아셨기 때문에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모형론적인 것은 더 신비롭다. 제사장직과 대 제사장직, 레위인들, 예언자들, 왕들 모두가 다 예언들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대속과 부활, 오순절과 교회의 전 역사를 함축하고 있다. 신약성경에 있는 기본적인 교회들이 구약의 제도와 직분 속에 명백하게 암시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 각본을 만드신 분이 바로 그 저자이고 하나님이시다.
3. 성경은 통일성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66권에, 30명 이상의 제자들에 의해, 1500년의 기간에 걸쳐, 4개의 다른 언어로 기록되었으며 여러 나라에서 사회적 신분이(목사, 어부, 하찮은 정치가, 권좌에 이르는 왕)다른 다양한 환경 아래서 기록된 책이다. 마치 한 건물을 짓는데 여러 나라에서, 제각기 다른 채석장에서 옮겨온 돌들과 모양도 크기도 용도도 전혀 다른 것들이 아름다운 건축물이 되었다면 한 건축 설계자에 의해 고안된 작품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와 같이 성경이라고 부르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진리의 성전배후에는 이것들을 기록한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지배하고 감독한 고도의 사상이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4. 성경의 가르침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공자, 조로아스터 기타 많은 사람의 저술을 비교하여 세 가지 결론을 내렸다.
첫째, 성경에는 오직 진리만이 기록 되었지만 그들의 글 속에는 진리와 오류가 섞여 있다.
둘째, 성경에는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주제들이 총 망라되었다. 성경에 발견할 수 없는 진리를 다른 책에서는 발견할 수가 있다는 사람은 아직 없다.
셋째, 성경이 다른 모든 책들을 다 합쳐 놓은 것 보다 더 많은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 성경은 작은 책이지만 인류의 전 역사를 통해서 인류가 산출해 낸 여타의 모든 책들에 들어있는 것보다 더 많은 진리가 들어 있다. 하나님의 책이기 때문이다.
5. 성경에 대한 수많은 공격에도 승리의 역사가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나오자 마자 미움을 받기 시작했다. 이 책을 짓밟으려고 했다. 자신의 천재성으로, 자신의 심오한 철학으로 짓밟았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했다. 과학으로, 이성으로 거짓임을 입증하려 했다. 성경을 세상에 몰아내려고 온갖 정성을 다 쏟았다. 사람의 책이라면 벌써 섬멸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전보다 더 견고하게 세상에 자리를 잡았다.
6. 성경을 받아드리는 사람과 거절하는 사람의 성품의 차이를 보고 알 수 있다.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삶을 사는 사람, 주저하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히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사람일 것이다. 반면에 탐욕스럽고 욕정에 빠져 있는 사람, 영적인 자만심을 가지고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이 있다면 성경의 신적인 권위를 부정하는 사람일 것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접근해 있는 사람일수록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을 강하게 가지고 반대로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일수록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더 굳게 믿고 있다.
7. 성경의 영향력을 보고 알 수 있다.
인간을 구원하고 정결케 하고 기쁨을 주며 삶을 아름답게 해주는 데에 이 작은 책은 세상의 모든 책들을 함께 모아 놓은 것 보다 더 큰 능력이 있다. 인간을 하나님께 올려 주는데도 큰 능력이 있다. 술의 완전한 노예로 살았던 한 사람을 기억한다. 죄의 힘에 의해 정신은 점점 멍해 있었고 성격은 포악해 졌고 악마처럼 변해 가고 있었다. 그가 주님의 은혜를 받은 이후 가장 겸손하고 부드러우며 고상한 사람으로 변했다. 성경의 힘 아니고는 안 될 일이다.
8. 성경이 가진 무한한 깊이 때문이다.
2,000년을 지내오는 동안 이 책에는 아무것도 첨가된 것이 없다. 그럼에도 훌륭한 성경 연구가도 이 책을 완전히 연구하지 못했다. 죠지 뮬러는 100번 이상 성경을 읽었는데 그때마다 새로웠다고 말했다. 사람이 만든 책이라면 사람이 철저하게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한 가지 평가만이 있을 수 있다. 이 책 안에는 지혜와 지식이 무한정으로 무진장하게 숨겨져 있다는 말이다.
9. 아는 것과 성결함이 성장해 갈수록 성경과 점점 일치해 지기 때문이다.
성경을 처음 연구하기 시작할 때 성경에서 자기가 동의 할 수 없는 많은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신앙이 성장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함에 따라 성경에 더 가까워지고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 점점 적어진다. 우리가 하나님이 계신 곳에 서게 되면 우리와 성경이 만나게 된다는 결론이 된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기록된 책이라는 사실을 믿게 해 준다. 저자도 성경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흔들렸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이성적인 판단을 했을 때 마흔 번 이상 갈림길에 놓였고 그러나 그때마다 매번 내 생각이 틀렸음을 발견하였다. 이성적인 판단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감각을 가져야 한다.
10.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성령은 모든 믿는 자들의 영혼 속에 성경으로 신적인 권위에 대한 도장을 찍으신다. 성경이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양은 그 목자의 음성을 듣기 때문이다(요 10:3)는 말씀이 그것이다. 성경의 매 장면마다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어진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 7:17)하였다. 하나님의 양이면 하나님의 음성을 분간하도록 되어있다.
간증: 저자가 설교를 끝내자 청중 중에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와서 말한다. “선생님 실례가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선생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들이 저의 경험들과는 모순이 됩니다.” 는 말을 하였다. 같이 걸으면서 급히 서약서 하나를 작성했다. “저는 옳은 것과 틀 린 것 사이에는 절대적인 차이가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옳은 것 위에 서서 그것이 저를 데리고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저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열심히 찾을 것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발견하면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나의 구주임을 세상 앞에서 고백할 것을 약속 합니다”서약서에 서명하도록 하고 다음과 같이 기도 드리기를 부탁했다. “하나님,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저희 기도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아들인지 아닌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리고 만일 그가 당신의 아들이라면 저의 구주로 영접하고 저의 구주라는 사실을 세상 앞에서 고백하겠습니다.” 그는 동의했고 요한복음을 매일 한 번에 몇 절식만 읽고 빛을 비춰달라고 기도할 것을 요청했다. 그는 실행할 것을 답변했다. 얼마 후 그 신사를 만나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이전에는 왜 그렇게 이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과거의 어리석음을 후회했고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고전 2:14)”말씀같이 과거 어리석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하나님 앞에 올바른 자리에 자기를 갖다 놓았을 때 모든 진리가 명백해 진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성령의 진리를 받아드릴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 성경을 사모함에 대하여(토마스 아 캠피스: 그리스도를 본 받아)
금언 명구를 찾으려 함보다 성경에서 진리를 찾아야 한다. 성경은 그것이 기록된 본래의 정신을 이해하도록 읽어야 한다. 그러므로 거기서는 연설의 교묘함을 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을 위한 양식을 찾아야 한다. 이 책은 고상하고도 심오한 것을 가진 단순하고도 경건한 책인 줄 알고 읽어야 한다. 누가 썼는가 하는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지 말고 크고 작은 진리를 배우는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순수한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만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누가 이 말을 했는가 하는 물음보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집중해야 한다. 주의 말씀만 세세토록 있기 때문이다(사 40:8)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여러 가지 방법을 쓰시었고 사람의 외모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을 쓰지 않으셨다. 그러나 인간은 여러 가지 호기심으로 단순하게 받아 드릴 것도 지나치게 살피고 논란에 치중하고 있다. 성경을 유익하게 읽으려면 무엇보다 겸손한 마음과 단순한 생각, 그리고 신앙을 가지고 읽어야 하고 지식에 대하여는 너무 관심 가지지 말아야 한다. 묻기를 자유롭게 하나 기자들이 무슨 뜻으로 썼는지 고요한 가운데 인내심을 가지고 그 모든 말씀을 들어야 한다. 성경을 쓸 때 까닭 없이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나의 아들아! 나의 말을 들어라. 아름다움이 뛰어나고 이 세상 철인과 지혜인의 모든 지식보다 더 나은 것이 내 말에 있느니라. 내 말은 영이요 또 생명이다. 사람의 이해력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로다. 내 말은 다만 침묵에서 들을 수 있고 겸손과 사랑을 가진 마음이 이 말을 받을 수 있느니라.
제자:
오호 주님! 당신의 가르침을 받고 당신의 율법에서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날마다 새롭게 하시오니 땅에서 황폐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나는 이 세상 처음부터 예언자들을 가르쳤고 오늘날도 모든 사람에게 말하기를 쉬지 아니 하노라.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그 마음을 굳게 하고 내 말에는 귀머거리가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이 세상에 귀를 더 기울이며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 보다, 육체의 욕망을 더 따르고 있도다. 세상은 지나가버리는 작은 가치의 물건을 상으로 줌에도 불구하고 큰 열심을 내어 이를 구하고 있으나 나는 영원하고도 풍성한 상을 주기로 약속해 주었건만 여러 사람이 내 말에는 등한이 하고 있도다. 세상과 그 법을 섬기고 따름같이 큰 경건 심을 갖고 나를 따르는 사람이 누구인가. “오오! 시돈이여 부끄러워하라”(사 23:4) 이렇게 바다는 부르짖는다. 만일 그 이유를 듣고자 하거든 그 까닭을 들어 보라. 적은 보수를 위하여 사람은 먼 여행에 분주히 다니나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서는 한 발자국도 옮겨 놓기를 싫어한다. 사람들은 사소한 유익을 위하여 분주하고 한 푼의 유익을 위하여 창피한 싸움을 하고 있다.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약속 때문에 밤낮으로 피곤하게 수고한다. 아!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고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상과 가장 높은 명예와 끝없는 영광을 위해서는 저들은 조그마 한 수고도 바치려 하지 않는다. 오호! 게으르고 불평만 말하는 종아! 너 자신의 구원 문제보다도 멸망에 관한 일에 더 관심과 주목을 하고 있는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라. 너희들은 헛된 일에 전심전력을 다 하나 진리에 대하여는 열을 내지 않고 있다. 너희들은 종종 자기들의 희망으로 속임을 당하고 있지만 아직도 어느 한 사람도 나의 약속에 속아 본 일이 없으며, 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한 번도 그대로 돌려보내지 아니 하였노라. 나는 약속한 일은 반드시 주며 내가 말한 것은 반드시 성취시키며 끝 날까지 내 사랑에 충성스럽게 거하도록 한다. 난 모든 선한 사람을 그대로 갚아 주며 모든 충성스런 사람을 강하게 변호해 주는 자이다.
내 말을 그대 마음에 기록하라. 그리고 열심히 그것을 묵상하라. 그리하면 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도움을 줄 것이다. 읽는 중에 알 수 없는 것이 무엇이냐. 내가 장차 오는 날에 다 알 수 있으리라. 나는 내가 택한 사람을 찾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즉 환난을 주는 일과 위로를 주는 일이다. 날마다 그들을 두 가지 모양으로 가르친다. 하나는 그들이 실수를 고치는 일로, 또 다른 하나는 그들로 하여금 더욱 나아가도록 권고 함이다.
※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말씀 하신다(잭 디어: 놀라운 하나님의 음성)
성경의 권위는 영원하다.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생활과 나아가 성화까지도 성경에서 그 비결이 숨겨 있음을 밝혔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십자가에 처형되신 예수님의 처참하심을 목격한 두 제자는 두목을 잃은 패잔병의 모습으로 엠마오로 낙향 길에 들어섰다. 여자들이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았다는 소문도 도무지 미끼지 않을 뿐이었다. 절망의 눈물로 적셔진 그들은 중간에 낀 나그네 예수님의 얼굴도 분별치 못했다(눅 24:16). 그 분의 성경해석을 듣자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저물녘이 되면서 나그네를 자기식탁에 모시고 축사하시는 순간 예수님이신 것이 발견되고 부활하신 주님의 감동적인 증인이 되었다. 절망적인가. 뜨거움을 잃었는가. 말씀의 회복뿐이다.
사도행전의 사건은 성경의 성취라고 사도들은 해석했다. 하나님께서 죽으신 예수님을 살리신 것도 성경 예언대로(시 16:10) 된 것이라 증언한다. 가룟 유다 대신 맛디아 선택도 성경대로(시 109:8)이다. 성령 강림 역시 성경약속대로라고 증거를 댄다(욜 2:28-32)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란 말씀대로(수 1:6) 그는 무명의 군인이 천하를 점령하는 대 장군이 되었다. 내가(하나님) 너와 함께 하리라는 하나님 한분 바로 그분의 말씀 권세가 그를 강한 자가 되게 했다. 그 말씀에 사로잡히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주야로 묵상하고 지켜 행하라 명령을 내렸다(수 1:8) “성경은 하나의 주제에 대하여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한분에게 열중하는 데 있다”(C.S.루이스)
※ 성경을 이해 할 수 있는 사람(노튼 스테렐: 성경해석의 원리)
셩경 해석의 열쇠는 영적인 데에 있다. 영적 자질을 갖추지 못하면 성경을 도무지 이해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알고 또 듣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주어진다.
•새 마음 - 하나님과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은 성경을 보아도 진리를 놓치게 된다. 성경의 여러 사건을 기억하고 전문적인 언어의 훈련이나 성경과 그 역사, 민족, 가르침에 상당한 지식을 습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영적 생명을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깨달을 수 있는 필수적인 자질을 상실한 셈이다.
•갈급한 심령 - 성경의 보화는 심심풀이로 읽거나 이따금씩 읽어서는 얻어질 수 없다. 해변 가에 깔려있는 여러 색깔의 돌처럼 내가 줍고 싶을 때 그냥 주울 수 있는 경우가 아니다. 그 보다는 금광에 묻힌 값진 광석을 캐냄과 같다. 이것은 본인이 얻고자하는 결의가 서 있을 때에만 발견할 수 있다. 이 같은 결의는 내가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생겨난다. 갈급한 마음이 없으면 성경의 진리에 이르지 못한다.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순종하는 마음 - 성경은 응답을 원하지 분석을 원하지 않는다. 불순종의 마음은 이해의 문을 닫는다. 배움과 순종은 불가분리의 관계다. 쌀이나 보리의 내용물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건강을 주는 비타민은 숨겨져 있다. 그냥 씹어 먹으므로 대단한 힘을 낸다. 매 발자국마다 순종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은 더 이상 공급되지 않는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림으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모든 노인보다 나으니이다.”(시119:99~100)
•꾸준한 마음 - 찾으면 찾으리라 말씀하셨지 우연하게, 혹은 한두 번 들추어보면 찾게 되리라 말씀하시지 아니했다. 가끔 성경이 신이 날 정도로 재미가 있을 때가 있고 때로는 새로운 진리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때도 있지만 지루하기도 하고 그 뜻이 애매하여 흥미를 빼앗아 가는 경우도 연거푸 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도 굴하지 않고 말씀에 침몰되게 될 때 진리는 쌓이게 되고 말씀의 사람이 된다. 문을 두드리게 될 때 열릴 것을 약속하신 주님은 말씀의 이치도 그와 같다.
•겸손한 마음 - 항상 더 배우고 져 하는 겸손한 자세는 갈수록 보배로운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가진 것으로 자만하거나 비판하게 된다면 그의 성장은 끝이 날 것이다. 또 이미 가진 지식도 보완 하거나 수정될 것도 많다. 진리를 사모하는 겸손한 자세는 나의 진리를 더욱 견고케, 그리고 완전케 하는 힘이 될 것이다.
※ 천국에 가서야 성경의 비밀들이 밝혀진다(존 번연: 천국과 지옥. 천국에 먼저 간 사람의 간증)
“아래세상의 내로라하는 신학자들도 성경의 몇 부분들은 자신들이 사모하되 그 뜻을 가눔 할 길이 없노라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시인했지. 모든 대범한 비평가들과 주석가들이 설명 하려고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던 성경의 난해한 본문들을 이곳에는 나는 다 이해하는 큰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네. 아직 아래 세상에서는 그 본문들이 해석되지 않은 채 비밀로 남아 있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성경의 여러 부분들이 전지하신 저자께서 가장 정확하게 사용하시려고 의도하신 다양한 시간들과 인물들과 사건들에 얼마나 정교하게 들어맞는지 세상 사람들은 식별할 수 없기 때문이지. 이곳의 우리들에게는 분명하다네. 그 결과 우리는 아래 세상이라면 모순처럼 보이는 본문들이 실은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지 아래 땅에 거할 때 하나님을 부정하라고 유혹하던 부조리한 현실이 오히려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자료가 된다네. 기막히게 탁월한 하나님의 섭리에 압도되어 할 말을 잊게 되지”.
※ 이세종의 성경읽기(엄두섭: 호세아를 닮은 성자)
도암의 성자라 불리는 이세종 선생이 성경을 읽으며 탐구할 때 남들이 엿들어 보면 혼자말로 자문자답하고 있었다, “예! 그렇습니까?”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공이 하나님과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경을 연구 하는 태도는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 했다. 자기 나름대로 연구하고 해석하는 것이지만 그는 성령으로 남을 감동을 주는 신기한 점을 깨달아 해석을 했다. 인근 마을의 젊은 남녀들이 매일 와서 성경을 배웠다. 멀리 지방에서도 전도사나 목사들이 와서 성경을 배웠다. 이세종은 신학적 공부나 교회에서 배운 일도 없다. 성경을 연구하고 명상하는 동안 자기를 잊어버리고 시절이 바뀌는 것도 잊어버리고 음식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성경연구에 집중했다. 어디를 가든지 성경을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말 한 마디를 해도 성경이요 하루 종일 이야기를 해도 성경테두리 안에서 말했다. “파라! 파라! 깊이 파라. 얕게 파면 너 죽는다. 깊이 파고 깊이 깨닫고 깊이 믿으라. 어설프게 파면 의심밖에 나는 것이 없다. 나무뿌리도 생명의 물줄기 찾아서 깊이 파고들어야 사는 것이다.” 성경말씀을 깊이 파라고 강조했다. 성경을 거의 통달할 정도다. 낮이면 거의 성경을 읽고 밤에는 암송을 했다. 성경요절은 밤을 새워가며 암송하고 요지를 표해 놓는다. 아침이 되면 또 필기하고 읽고 하기를 해 넘어가기까지 했다. 제자들 앞에서 손가락을 펴 들고 “성경을 통달한 사람이라야 비로소 손가락 사이로 세상을 내다보는 정도다.” 하면서 암송을 강조했다. 제자들이 이세종에게 배운 것을 어디서 가르칠 때 이공께 들은 것이 아니라 개천 산 돌 틈에서 들었다 하라 했다. 배운 바를 책으로 내면 어떻겠느냐 하니 그러면 성경이 파묻힌다고 반대했다. 그는 성경은 최고의 약이라고 말했다. 말씀을 지키는 것이 위생이다 말했다. “성경은 그 사람의 믿음의 정도로 밖에 안 보이는 법이다. 사람들이 성경이 이렇고 저렇고 하지만 성경을 들고 말 하는 것 만 가지고는 다 모른다.” 오로지 성경만 읽었고 제자들에게도 다른 책은 읽지 말라 했다.
누가 질문을 한다든지 무슨 이야기를 들으면 곧 성경을 찾아봅시다 한다. 제자들 생각에는 이공 안에서 신이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숨길 수 있는 일이 없는 듯싶었다. 평소의 음성은 조용하지만 성경을 들고 강해할 때는 얼굴에 홍조가 되고 큰 목소리로 하다가 끝날 때는 다시 조용한 음성으로 끝낸다. 성경연구는 연구를 위한 것이 아니고 한번 읽고 실천하려는 주의였다. 성경과 실제생활의 일치를 실천했다. 광주중앙교회에서 저녁예배설교를 부탁했다. 사양하다가 허락은 했으나 높은 강대 위는 올라갈 수 없다 하여 성가대 지휘대 앞에서 설교했다. 외모는 거지 중에 상거지였다. 마을의 대 학자 박참봉이 찾아와 까다로운 질문공세를 하였다, 한자풀이와 주역으로 하는 질문에 성경으로 대답했다. 탄복한 참봉은 예수님을 믿었고 마을에 교회를 세웠다. 다시는 주역을 보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 교회는 이세종을 외면했으나 그는 교회에 대해 비방하지 않았고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도 구원의 자녀들을 나게 하신다고 말했다. 강의를 필기한 제자들이 출판하려 했지만 절대 허락하지 않아 기록이 전혀 없다. 두 사람의 손을 거치면 벌써 딴 이야기가 된다 했다. 사진 한 장도 남기지 않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