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순례자
이동휘 목사
※ 이용도 목사의 눈물(정재헌: 이용도 목사 평전, 이용도 목사 365묵상집)
1. 오직 기도의 사람이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 1월 첫 임지 강원도 통천교회에 부임해 갔다. 냉랭한 가슴의 한계를 통감하고 기도에 열중하는 박재봉과 같이 산 기도에 들어갔다. 금강산 기슭의 험산에서 기도를 시작하였다. 이용도는 박재봉에게 내가 일어날 때까지는 누가 찾아오더라도 깨우지 말라는 당부를 단단히 하고 기도에 들어갔다. 기도는 열기가 더해 일주일을 넘어 10일까지 계속되어 불식불음(不食不飮) 의 기막힌 기도를 두 사람은 마쳤다. 그는 완전히 다른 새 사람으로 변신되었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피도수 선교사는(Victor Wellington Peters) 1928년 8월에 한국에 선교사로 입국하여 이용도 목사와 절친한 관계에 있으면서 형제처럼 지냈다. 90세가 된 어느 날 이용도 목사에 대한 회고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90평생을 살았지만, 이용도 목사같이 짧지만 그렇게 굵게 산 사람을 본적이 없다. 100년에 하나 나타날 수 있는 크리스천이다. 피도수 선교사가 이용도 목사와 같이 지내던 때였다. 전국부흥집회를 미치고 집에 와서도 쉬지 않고 다시 기도하러 산으로 가는 때가 많았다. 피곤한 안색으로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던 날, 형님, 너무 무리하면 죽어요, 좀 쉬어요 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애써 땀 흘리시면서 일하고 계시는데 어떻게 쉴 수 있어요. 머지않아 죽으면 주님과 같이 하늘나라에서 쉴 수 있을 터인데. 그날도 산으로 오르는 것이다. 집회 마치고 오면 산으로 가서 집회 다시 갈 때까지 기도 할 뿐 아니라,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기도하는 것이 예사였다. 어느 날 마음 단단히 먹고 다시 간청했다. 이러면 죽어요. 반듯이 쉬어야 합니다. 역시, “죽으면 기도할 필요가 없으니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기도해야지요. 죽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 받도록 전도하는 것이 먹고 자는 것 보다 더 중요합니다. 기도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배가 고파서 슬픈 것이 아니고 가난해서 슬픈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괴롭고 슬픕니다.”
어느 추운 겨울밤이었다. 그날도 산으로 기도하러 간 사이 눈이 수북이 내렸다. 아침까지도 집에 오지 않아 급히 옷을 챙겨 올라갔다. 눈만 쌓였을 뿐 발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목청 높여 이 목사님! 이 목사님 계속 불렀다. 무언가 눈 속에서 부스스 일어나는 것이 있다. 바로 이 목사다. 눈이 내리는 중에도 그 자리에서 눈을 쓰고 밤새워 기도한 것이다. 이용도 목사 집회가 지나간 도시에는 으레 기도단이 조성되어 기도의 열기가 곳곳에 산불처럼 일어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기도는 곧 나의 기쁨이요 나의 의미요 나의 일입니다. 기도가 없으면 나의 기쁨도 없고 나의 존재도 없고 나의 생명도 없습니다. 기도보다 더 큰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종종 기도를 못 할 때가 있습니다. 아! 기도 못 하는 나의 슬픔. 나의 영의 가련함. 밥을 굶는 것보다 더 가련하고 옷을 벗은 꼴보다 더 불쌍한 것입니다. 오! 하나님, 기도를 주시옵소서. 기도를 못하므로 신랑과 만나는 밀실을 갖지 못하고 쫓겨난 신부와 같습니다. 마귀는 나의 기쁨을 빼앗으려 하지 않습니다. 열심이나 신앙도, 선도 빼앗으려 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어리석지 않습니다. 단 내 기도를 빼앗으려 합니다. 마귀는 나의 기도를 무너뜨리는 일을 가장 큰 일로 삼습니다. 마귀의 간계를 타파하고 나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기도, 기도, 오 나의 그리운 기도, 나의 생은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마치게 하옵소서.”
2. 대 부흥을 일으키다.
1929년이 되면서 이목사의 인도로 원산지방을 휩쓴 성령의 역사가 열기로 가득했다. 신년벽두부터 부흥회를 열었고 20여 교회 곳곳에 불이 떨어지고 교회가 회개하고 갱생하였다. 원산 대 부흥은 2년간 계속 되었고 전국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죄를 떠나자” “주의 손목을 붙잡자“ 외쳤다. 용도의 눈에는 성령의 불로 죄인을 태워 죽이는 환상이 보였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며칠씩 가는 부흥회, 하루 한두 시간만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한두 시간만 자고 어둠을 밝히는 기도, 성령의 역사를 중단할 수 없어서 집회를 연장하는 집회였다. 1930년 되면서 서울에 있는 조선 주일학교 연합회로 발령받으면서 강원도 인천 경기도 서울등지에서 집회에 초대 받았다.
1920년대 평북 선천을 기독교국이라면 황해도 재령은 기독교 천하라 불렀다. 복음이 전국에서 가장 왕성한 곳이다. 황해도 재령동부교회집회 때 모습이다. 교인들은 대부분 가게 문을 닫고 부흥회로 몰려들었다. 성경학교 학생들은 학교를 빠져 집회 참석했다가 야단을 맞았다. 어느 중학생은 은혜를 받고 기숙사에 가서 밤을 새워 기도하다가 사감에게 들켜 퇴학을 당할 뻔했다. 사회의 운동가들이나 유지들도 눈물을 흘리며 기도로 밤을 새웠다. 악명 높은 건달도 통곡하며 새길 걸었다. 꼭꼭 가둬 두었던 예배당이 집회 후에는 새벽 두 시까지 기도소리가 끊이지 아니했다. 조용하던 재령교인들이 기도와 찬송으로 온 한국을 구원할 기세였다. 놀라운 날들이 계속되었고 오랫동안 젖어있던 구습을 떨쳐버렸다. 평양에서의 집회에서는 지칠 대로 지친 몸이지만 한번에 5~6,000명이 모이는 열광이었다.
3. 불같은 8가지 역사(피도수 증언)
① 가까운 사람들을 전도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났고 부정적인 사람, 게으른 사람들이 담대하게 되고 기적적인 치유가 일어나고 성령의 불길이 일어났다.
② 지역전도에 대한 조직이 구성되어 천 명의 원산지방 교인들이 전도대 운영을 위해 1년에 1원씩 헌금하기로 하고 각 지역으로 조직이 확산 되어갔다.
③ 지방 내 청년들이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었으나 그 기세가 꺾였다.
④ 거듭남의 역사가 넓게 확산되었다. 원산지방에는 아이들 천 명이 등록되고 전도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왔다.
⑤ 통천교회에서 파벌이 사라졌다. 등 돌렸던 자들이 같이 벗이 되고 같이 새벽기도를 드렸다.
⑥ 불신자들도 와서 회개하고 신자가 되었다. 교회당 건축을 위해 100원을 지금까지 모았는데 그날 밤에 건축비로 1,500원이 헌금되었고 불신자도 헌금했다. 헌금한 그는, “나는 이 돈 때문에 지옥가게 되었었는데 이렇게 처분하게 되니 정말 좋다”란 고백을 했다. 집회 때마다 예배당이 넘쳐 밖에서 드리는 자가 많았다.
⑦ 새 신발 갖는 것이 소원인 아이가 있었다. 아버지가 준 신발값을 헌금으로 드렸다.
⑧ 병든 아이가 교회에 와서 은혜를 받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교회 종소리와 찬송을 듣고 싶다고 했다. 임종에 환한 기쁨의 얼굴을 보자 부모는 예수님을 영접했고 이 이야기가 퍼지자 교인들이 교회로 몰려 왔고 그날 밤 다시 성령의 불길이 임했다.
은혜 받은 자의 간증이다. “말씀하시는 십자가의 설명은 사람의 간장을 끊어내는 것이었다. 빌라도의 심판을 말씀할 때 내 곁에 있는 변호사가 너무나 울어 민망했다. 천여 명의 군중은 그저 울음이다. 수천의 눈은 그저 눈물이다. 나도 울었다. 그저 울고 울었다. 얼굴을 드니 강단에 선 이 목사는 보이지 않고 공중에 있는 십자가와 거기에 달린 주님만이 보인다. 그리고 한 음성이 내 귀에 들려왔다. 나는 이렇게 달리는데 너는 무엇 하느냐, 이 말만 들리는 것이었다. 옆에 있는 변호사가 마루 창을 치며 떼굴떼굴 구르는 광경이 나타났다.”
4. 시기와 공격을 사랑으로 녹여냈다.
원산지역의 대 부흥은 성령의 기쁨으로 춤추게 하는 사건이지만 시기하는 무리들의 분노는 비방을 키워 나갔다. 그는 고요히 아뢴다. “오! 사랑의 주시여 주께서 저를 보시나이까. 하루 종일 욕을 먹고 질책을 당하여 내 작은 마음은 상하여 피가 흐르고 내 연약한 눈에는 눈물이 흘렀나이다. 종일 단련을 받되 말이 없이 참게 하셨으니 이는 모두 주의 은혜나이다.”
하루 종일 욕을 받았음에도 그의 호처럼 시 무언(是無言)이었다. 변명할 줄 몰랐다. “저들에게 쫓길 때마다 주님의 품으로 도망친다. 거기는 제일 좋음과 가장 좋음이 있는 곳이다. 주님의 자비는 상처받은 이들을 위하여 좋으신 품을 늘 열어놓아 두신다.” “사람이 있어 나를 욕하고 또 사람이 있어 나를 칭찬하나이다.” 원산지방의 대 부흥으로 심령이 살고 교회의 대 부흥으로 이어 졌으나 안수도 받지 않은 애송이가 뒤 흔든 꼴로 본 것이다. 자존심은 마귀의 부촉을 받아 비난과 모함으로 공격에 나섰다. “나는 오늘 종일 단련을 받고 풀이 죽어 돌아 왔습니다. 욕을 당하고 구박을 당하였습니다. 나의 마음은 상하였고 나의 눈은 젖었습니다. 내가 종일 욕을 당하매 저녁에는 주께서 나를 위로하시나이다. 그러나 모든 죄과를 다 내가 쓰려 하노라. 저희를 용서하려 하노라. 불쌍한 저희들, 잠잠한 양과 같이, 털 깎이는 양과 같이 저희의 모든 짐을 내가 지게 하소서. 이것이 주의 뜻에 합하나이다. 저희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망하여야 하겠나이다. 오 주여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내가 아니라, 용도를 통해 은혜 받았다는 그것을 못 견디어 추방운동을 벌인 것이다. 서울로 와서도 그를 가만둘 리가 없었다. 서울에서 주일학교 지도자 강습회가 열려 이용도도 강사로 갔다. 교사들이 용도 교실로만 몰리고 용도 시간으로만 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 책임자는 이용도에게 다른 교사를 위해 나오지 말라는 부탁을 하였고 그래서 그만두었다. 겸손한 마음으로 떠났는데도 이 때문에 오히려 문제가 되었고 그는 그가 속한 감리교회에서 경성지방의 순회목사로 파송시켜, 전국이 모자라는 그의 발을 묶었다. 그는 그저 엎드렸다. 기도를 통해서 주님이 주는 명령만 따르기로 하였다. 이러다보니 제멋대로 하는 사람으로 오해 받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은혜 받아서 들끓고 한 쪽에서는 미워서 들끓었다.
황해노회소속 모든 장로교회가 이용도 목사를 초청하지말자는 결의를 했다. 그것도 용도의 고향인 황해도에서 금족령을 받은 것이다. 그의 집회를 통해 교회들이 그렇게도 하나님사랑에 감격했던 곳이었는데. 견디기 힘든 서글픔 속에 고요히 들리는 주님의 음성을 받았다.
“오! 나의 소자야, 너는 세상이 버린다 하여 너는 슬퍼하느냐? 그럼 너는 세상의 환영을 받아 거기서 영생을 얻을 줄 생각하느냐? 네가 세상에서 버림을 당할 때에 그것이야 세상이 악하여 그리했든지, 네가 악하여 그리하였든지, 나는 너를 찾는 것이 아니냐. 나는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러 온 구주임을 너는 알지 못하느냐. 너는 너에게서 떠나 내게로 와서 내 생각을 묻고 내 설계를 배울 것이니라. 나는 너를 위한 꾀함이 이미 있었고 베풂이 벌써 있었던 것이 아니냐. 너는 너의 육과 육의 생각의 포로에서 뛰쳐나와 나에게 와서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요 너의 구주로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때에 필요한 은혜를 망설이심이 없이 베푸시나니, 하나님은 아픔을 겪지 않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이길 수 있게 하셨다. 외적현실은 잔인해졌지만 내적현실은 강인해져 갔다. 복된 선택을 할지어다. 세상에서는 잠깐 어느 쪽이 이기는 것 같을지라도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는 세상에서의 승자가 하늘나라에서는 패자가 되고 세상에서 패자로 낙인찍혔을 지라도 하늘나라에서 승자가 되는 십자가의 법칙을 명심해야 하리라.
드디어 평양노회에서 기도단을 해산시키더니 노회지경 안에 들이지 않기로 가결했다. 1933년 그가 소속하고 있는 감리교 중부연회에서는 휴직처분이 떨어졌다. 강제 절연시킨 것이다. 목사직을 중지시킨 것이다. 안주 노회에서도 이용도 목사를 매장하기로 결의 하였다. 1933년 9월 22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이단으로 결의 하였다. 1999년 감리교 중부연회에서 복권하기까지 실로 66년간이었다. “오! 나의 입술아 너는 삼가 자중하라. 가벼이 사람을 이름 짖지 말자. 주 일찍이 누구를 헤아려 이름 짖지 아니 하였느니라. 오! 나의 혼아 네 누구인데 사람을 판단하느냐. 완전한 판단 자는 다만 한분이 계실뿐이니라” 어느 원수를 만나든지 사랑과 겸비와 인내를 버리지 않는 이상, 원수는 우리를 이길 길이 없는 영원한 원리를 그는 붙잡고 있었다. 자기를 비난 하는 자 앞에서는 바보로 보이리만치 인내하며 대꾸하지 안했다. 이용도 목사를 사랑하는 목회자는 모든 교회에서 쫓겨나고 교인들도 축출 당했다. 그들을 이끌어주는 일도 역시 주신 사명이라는 권면을 받은 그는 예수교회라는 새 이름을 걸고 양들을 돌보았다.
5. 교회의 개혁을 부르짖다.
그는 설교와 일기를 통해 절규했다. 현대의 교회는 괴이한 예수를 요구한다. 참 예수는 죽였구나. 마귀를 예수로 가장하여 선전하는구나. 교회가 예수를 쫓아내어 예수실종사건을 일으켰다. 목사는 강단에 올라 예수의 허락도 없이 그런 예수를 제조하여 강단 밑으로 던져준다. 서로 필요로 하는 종교를 만들어 낸다. 강단에서 참 예수 아닌 예수를 전할 때마다 예수는 매질당하고 계신다. 예수는 맛이 쓰기에 마귀에게 옷을 입혀서 달콤한 맛이 나는 예수로 만든 이 교회는 재앙을 받을 것이다. 저희가 요구하는 예수는 육의 예수, 영광의 예수, 부유한 예수, 고상한 예수였고, 예수의 예수는 영의 예수, 천한 예수, 가난한 예수, 겸비한 예수였다. 머리 둘 곳이 없이 지나시다가 벌거벗은 몸으로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지 않고, 그를 따른다 하면서도 그가 따르지 않았던 세상의 영광과 높음을 추구하는 조선교회를 질타했다. 인간들이 만든 예수 앞에 절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아들인 성경의 예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예수님은 강단에서 피살된 것이다. 그분이 아닌 것을 그분이라고 알려주는 방식은 교묘한 타협이었다. 예수의 살해자는 교회가 되었다. 예수를 강단에서 끌어내고 인조예수와 예수의 탈을 쓴 마귀를 강단위에 세워놓고 절하는 위태함에 처했다. “예수는 죽이고 그 옷만 나누는 현대교회여! 예수의 피도 버리고 살도 버리고 그 형식만 취하는 현대 교회여! 예수를 믿는 본의가 어디에 있는가. 인조 예수를 전하므로 자기가 이득을 취하고 힘을 얻고 자랑스러운 가운데 소위 성공목사로 살아가다니. 교회는 예수를 위하여 희생으로 바치는가, 아니면 예수를 희생하여 자기의 힘을 기르고 옷 술을 늘어뜨리는가. 이들은 예수의 오심을 싫어할 것이고 혹 예수가 슬쩍 와보셨다가 걸리시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은혜를 사모하면서도 받지 못하는 것은 교만 때문이다. 직분자는 평신도보다 더 겸비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니 화 받을 자들이다. 목사, 장로, 집사들이 중한 심판을 받을 자들이다. 아주 낮아져서 겸비해야 한다. 하나님을 볼 눈은 겸비의 눈뿐이다. 정성스러운 말씀의 꼴로 먹이지 않으면서도 영원한 아비행사를 하는 부류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폭탄을 던졌다.
6. 불붙는 설교
그의 기도는 불을 퍼 붓는 듯 뜨거웠고 설교는 폭포같이 쏟아져 나왔다. 설교에 원고도 시간관념도 없었다. 설교가 시작되자 말자 기관총을 쏘아대듯이 보통사람의 3~4배 빠른 속도로 불을 뿜어냈다. 1시간이 되고 두 시간이 되어도 누구하나 지루하게 여기지 아니했다. 얼빠진 듯이 황홀하게 빨려 들어갔다. 어느 사람은 하늘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기까지는 전혀 그런 설교를 들을 길이 없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구경꾼으로 온 사람이나 불신자까지도 사람의 말 같지 않다고 놀랬다. “이 목사는 육에서 떠난 분” “신의 말이요, 신의 기도요, 신의 동작이다” “그는 예수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등의 말들을 하였다. 천군이 호령하는 뇌성이었다. 청중은 울었고 떨었고 다시 울면서 가슴이 시원함을 느꼈다. 태울 것은 태우고 씻을 것은 씻고 쨀 것은 째고 싸맬 것은 싸매며 아프고도 시원한 맛을 주었다. 현대교회가 기도가 없는 것을 책망하고 가슴에 피로 받아야 할 신앙을 두뇌로 따져 받으려고 철없이 덤비는 오늘의 상태를 꾸짖었다. 집회가 끝나면 거의 한 시간 안수기도를 해 주었다. 교역자들에게는 머리의 부분으로만 따지고 꾸며 교회를 먹이려 하지 말고 피를 쏟아 생명으로 먹이라고, 교제에 동분서주 하지 말고 먼저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당부했다. 어느 집회나 제대로 먹지도 않고 설교가 끝나면 또 기도, 예배가 끝나면 다시 기도, 그렇게 밤을 지새우며 싸움을 해냈다. 삐쩍 마른 몸이 설교 내내 땀과 눈물이 쏟아졌다. 어찌 많이 땀이 나던지 솜옷 겉으로 배어나올 정도였다. 집회 때마다 수건 4-5개가 필요했다. 성령님의 허락이 없어서 설교를 할 수 없겠다면서 찬송과 기도로만 집회를 마치는 때도 많았다. 간도에서는 삼이형제(三李. 이호빈, 이환신, 이용도)라 부르는 의형제의 맏형이라 볼 수 있는 이호빈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집회 하는 중이었다. 한 번도 3일 동안 성령의 감화가 없어서 설교를 하지 못하고 떠났다. 그가 떠난 후로 담임목사는 자기 때문에 부흥사가 설교를 못했다고 통곡하며 자체부흥이 크게 일어났다. 그가 가는 곳마다 불이 떨어져 기도폭염경보가 봄부터 겨울까지 발령되어 들끓었다.
7. 사랑의 사람
“어떤 사람에게 하나의 선과 99개의 악이 있다 할지라도 그 한 개의 선 때문에 나는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겠노라. 즐겨 사람의 악을 말하는 자는 악인이다. 즐겨 사람의 선을 말하는 자는 선인이다. 즐겨 사람의 악한 일을 듣는 자는 악인이다. 즐겨 사람의 선한 일을 듣는 자는 선인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그 사람에게 99가지의 선이 있을지라도 한가지의 허물을 발견하면 등을 돌린다. 이용도는 수많은 정죄를 받고도 억울함으로 눈물짓는 약함을 보이지 않았다. 주님께 맡기고 마음에서 지웠다. 적극적으로 사랑을 베풀었다. 이 목사만큼 예수님의 말씀대로 산 사람도 없다. 어느 날 거지가 집에 오자 안에 들어오도록 하고 밥을 차려 주었다. 용도가 먹을 밥이었다. 그는 굶었다. 다음 같은 일기를 본다. “오늘은 내가 큰 축복을 받은 날이다. 한 걸인과 같이 조반을 먹었는데 마치 사랑하는 주님을 옆에 모시고 조반을 먹는 것 같이 내 마음이 기뻤다.” 집에 쌀이 떨어져 쌀가게로 간 날이다. 빈손으로 돌아왔다. 형님! 쌀은 어디 있느냐 하니 쌀을 사서 지게꾼에게 지고 오다가 마침 며칠 굶은 어느 부인 생각이 나서 그 집으로 쌀을 보내고 빈손으로 온 것이다. 성탄절을 며칠 앞둔 매서운 추위가 있는 날 방에 이불을 덮고 있다가 돌돌 몰아가지고 보자기에 싸가지고 나간다. 피도선 선교사가 따라나섰다. 종로 쪽 으슥한 골목으로 가더니 아무개 있느냐 부르니 예하고 한 아이가 나왔다. 이걸 덮고 자면 얼어 죽지 않을 거다 하면서 품에 안고 기도한 후 건네주고 온다. 송창근이 미국으로 떠날 때 양복이 없어서 입었던 양복을 뜯어 고쳐 입게 했다. 미국유학을 떠나고자 하나 여비가 없자 선교사가 용도를 위해 마련해준 집을 팔아 유학비용에 쓰라고 내어주었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참지 못하고 그냥 털어 주었다. 타지에 나와 농노처럼 고생하는 동포들을 생각할 때 울음을 그치지 못하였다. 헐벗고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향해 늘 아픈 마음을 안고 살았다. 그 때문에 울고 그 때문에 피를 쏟은 사람이다.
8. 예수님께 미친 사람
“아버지여 나의 혼을 빼어버리소서. 그리고 예수님에게 아주 미처 버릴 혼을 넣어 주소서. 예수님에게 미쳐야 하겠나이다. 예수님에게 미치기 전에는 주를 온전히 따를 수 없고 또한 마귀와 싸워 이기지 못하겠나이다.” 마귀와 결사적으로 싸운 후 그는 힘을 얻었다. 심령에 엄청난 능력과 권세가 있었다. 이 세상에 속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고 하늘의 사람처럼 보였다. 영적체험도 많았다. 그리스도에게 취하고 미친 사람이었다.
바울사도의 정신으로 무장되기를 바랐다. 교회가 승리하는 길은 믿음의 군병으로 고생을 참아내는 것이라 믿었다. 죽음까지도 각오하니 고생에도 덤덤했다. 아끼는 것도 주장하는 것도 없다. 고생을 회피할 때 영혼붕괴가 오고 교회공동체 붕괴까지 온다. 목사의 목사 됨을 망가뜨리고 공동체를 해치는 숨은 함정을 그는 알아 대비했다. 결사각오를 결단한 그였기에 거침이 없었다. 그대로 있으면 그냥 그렇게 되어버리는 교만의 넓은 길이 아니라, 겸손의 좁고 험악한 길로 어떻게 갈 수 있는가를 배웠다. “사람들이 나를 욕하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 그 욕을 먹겠습니다. 나를 못났다하며 핍박하여도 말없이 그냥 받겠습니다. 혹 나를 죽이려 한다 해도 대항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맞아 죽으렵니다. 희생이 되려하나이다. 그의 잘못을 내가 가릴 바 아니나이다. 아벨의 피같이, 이삭같이, 예수 우리 주님 같이, 털 깎이는 양 같이.”
당시 교회가 400여 년 전 루터가 개혁하기 전과 같은 상황에 와 있음을 보았다. 형태만 남아있을 뿐 초기의 생명과 힘은 잃어버린 기독교회의 암흑시대를 보았다. 그 상태로서는 세계를 정복할 수 없음을 보았다. 불신앙이 공연히 개가를 부르고 있었다. 오늘의 현실에는 폭탄복음이 필요함을 느꼈다. 사도행전과 같은 활발한 성령의 역사하심을 사모했다. 나는 안전하다는 교인들의 종교적 안전감에 망치를 들었다. 종교적 자존심을 건드린 언사였다. 분명히 믿는데 왜 바뀐 것이 없을까. 성령께서 나를 재창조해 주셨는데 왜 나는 그대로일까.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고작 이 정도일까. 이것이 구원받은 자들일까. 그래서 그는 목청 터지라고 중생을 외쳤다. 종교적 자부심을 의지하지 말고, 그것들에 속지 말고 진정 회개 하였는가 다그쳤다. 오늘의 썩은 교회는 구원의 통로가 아니라 구원의 샛길에 불과하다. 오래 믿은 자들에게나 심신이 빳빳한 이들에게는 불편하게 들렸을 것이다.
용도는 자기의 피가 마르고 살이 깎이는 것보다 한 영혼이 새로 태어나 살이 돋는 것을 가치 있게 여겼다. 심지어 제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리하셨다는 것이다. 그는 무언(無言), 겸비(謙卑), 기도(祈禱)를 꼭 붙잡았다. 통째로 얻은 그 몸, 통째로 바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했다. 극도의 빈혈증이 있어서 의사들은 그렇게 피도 없이 어떻게 사느냐 했다. 오직 예수로 뭉쳐졌다. 생시에도 예수, 꿈에도 예수 그리고 잠꼬대도 예수다. 먹어도 예수요 입어도 예수요 잠자도 예수, 일하여도 예수다. 그저 생명의 초점은 예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