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간증-43기 파송예배
정ㅈ 선교사(이0찬, 중동 A국)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10:14-15)
주님께서 열방에 나가는 선교사로 부르시면서 주셨던 약속의 말씀입니다. 선교사로 준비되기 위해 훈련받고, 함께 할 단체를 찾던 중에 주님은 여러 가지 사인을 통해 ‘바울선교회’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바울선교회’로 불러 주셨다는 것은 알겠는데, 훈련을 받는 저의 마음은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막 100일을 지난 어린 둘째 아이와 함께 훈련을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100일 된 아기를 키우면서 어떻게 새벽 4시 반 기도회를 나가지?, 어떻게 강의를 들으면서 아기를 먹이고, 재우지?’ 등등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언제나 먼저 계획하시고, 꼭 때에 맞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새로 태어난 둘째 아이는 정말 순한 아기라서 잘 먹고 잘 잤습니다. 둘째를 보는 사람마다 ‘주님이 훈련받을 수 있게 순한 애를 보내주셨다’고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6개월의 국내훈련을 돌이켜보면, ‘불편하게 살아가는 훈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매주 훈련이 시작될 때마다 일주일 치 짐을 한가득 싸서 안디옥교회로 들어왔던 일, 추운 겨울날 공동 샤워장에서 아이를 씻겼던 일, 외부 훈련이 있을 때면 두 아이와 커다란 트렁크를 가지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했던 일, 몸은 고되었지만 신기하게도 마음 가운데 기쁨이 있었습니다. 불편하게 사는 것은 저를 깨어있게 하고, 주님만 더욱 의지하게 해 주는 ‘안전장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언제나 크고 작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부요한 은혜를 내려 주셨습니다.
국내 훈련을 마치고 해외훈련센터인 필리핀으로 떠나며 내심 많은 것들을 기대했습니다. 우선 아이들을 베이비시터에게 맡기고 훈련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위안이었습니다. 결코 잊을 수 없다던 믿음여행도 꼭 경험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저희 43기 선교사님들을 주님나라에 꼭 맞는 선교사로 훈련시키기 위해 더 큰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모든 외부 일정이 취소되고 리더십 선교사님들, 43기 선교사님들, 외국인 선교사님들, MK들, 현지 스태프분들까지 모두 60여 명의 사람이 센터 안에서 주님의 집중훈련을 받았습니다. 또다시 훈련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온 열방에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도록 허락하신 주님, 또 이 때에 훈련을 받게 하신 주님의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때에도 주님은 우리를 훈련하시길 원하시고, 이때에도 선교를 멈추지 않으신다는 점이었습니다. 환경에서 눈을 돌려 주님을 바라보자, 저의 마음이 새로워졌습니다. 새벽마다 들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이 얼마나 달콤한지, 고된 하루를 넉넉하게 이기게 해 주었습니다. 먹고 입고 자는 것과 상관없이 나의 주님이 계신 이 곳이 가장 사랑스러운 처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감사한 시간을 보내던 중 한국에서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갑자기 아버지께서 소천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오랫동안 알코올 의존증을 앓고 있긴 하셨지만,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한 번 더 아버지께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고, 한 번 더 아버지를 안아드리고 싶었는데, 이제 아버지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슬퍼할 겨를도 없이, 한국으로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코로나 상황 때문에 필리핀에서 출국하면 다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가족 모두 한국으로 가게 되면 훈련을 중도 하차해야 한다는 것이 본부의 입장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이 좀 더 기뻐하시는 믿음인지, 어떤 선택이 덜 이기적인 건지, 정말 알기 어려웠습니다.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이 모든 상황을 다 아시고 우리 가정을 ‘훈련선교사’로 불러주셨다는 것을 붙들었습니다. 가장 지혜로우시고, 가장 선하신 주님을 믿고 저만 두 아이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아버지가 주님의 긍휼을 입었다는 마음을 주셔서 평안한 마음으로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많은 사람의 위로 가운데 아버지의 장례식을 잘 마치고 친정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필리핀에 있었는데, 갑자기 현실로 돌아온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오자 여러 가지 싸움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빈 자리, 혼자 두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것, 홀로 훈련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빨리 남편이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한 달이 지나고, 43기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왔습니다. 곧 남편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의 예상과는 달리, 남편은 코로나 양성반응이 나와 병원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이 일 앞에, 남편은 냅다 감사를 올려드렸지만, 제 마음은 남편의 마음과 달랐습니다.
‘주님, 왜요? 저 아빠가 없는 것이 아직 슬픈데, 왜 남편까지 이렇게 하셨어요?’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주님께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낙심하고 있는 나, 혼자서는 아이 양육도, 훈련생활도 잘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참 작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때에도 주님은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한번 수치와 희생을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연약한 죄인인 저를 위해 최선을 다해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한다, 내가 너와 영원히 함께하겠다’고 열심히 저를 설득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기도로 아무 후유증 없이 남편이 회복되고, 마지막 2주 국내 훈련까지 주님의 은혜로 마쳤습니다. 보너스로 주신 것 같은 2주 훈련 동안 주님은 무너져 있는 저의 마음을 만져주셨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살 수 없다는 것, 주님을 위해 전부를 내어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처음 고백을 다시 회복해 주셨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나면 좀 더 잘 준비된 선교사가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주님은 훈련을 통해 제 안에 숨겨져 있었던 교만함과 허영심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주님만 의지해야 하는 약하디약한 선교사의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섭니다. 질그릇 같은 저의 모습은 사라지고 오직 주님만 드러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14개월의 훈련을 마치고 드디어 파송예배를 주님 앞에 올려드립니다. 주님이 부르신 땅으로 나아가는 저의 마음속에 여전히 두려움이 있습니다. 무슬림 인구 97%인 나라, 코로나 상황,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하는 것, 선교지에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 재정 싸움. 이 모든 것들이 거대한 거인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만 가지고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또 저는 결코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희생과 헌신, 앞서 이 믿음의 길을 가신 선배 선교사님들의 걸음, 부족한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허비해주시는 지체들의 기도와 사랑을 입어 함께 나아갑니다. 사랑하는 나의 주님을 위해 후회 없이 열방을 섬기는 선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