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단상
박용태 목사(전주제자교회 담임, 바울선교회 이사)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을 ‘자유’라 생각하고, 그렇게 할 때 행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힘을 ‘능력’이라고 여기고, 남다른 능력을 갖추려고 노력합니다. 자유에 대한 욕망, 행복에 대한 환상이 우리 삶을 무너뜨리고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지난 이백여 년 간 서양 사회에서는 ‘자유’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고, 정치와 특히 종교적 영역에서 과거의 권위에 대항하는 것을 사회적 진보라고 해석해 왔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증진시키는 과정을 가로막는 모든 것은 사회적 진보의 장애물로 치부되었습니다.
문제는 어디서 멈춰야 할지를 모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욕망을 정당화하는 사회 풍조가 점점 ‘이익 추구 활동의 자유’, ‘경쟁의 자유’, ‘권리 주장의 자유’, ‘소비의 자유’, ‘기업경영의 자유’ 등으로 확대 재생산되면서, 자본주의 물질문명은 화려하게 발달했지만, 작금의 코로나 상황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무한성장/무한이익을 추구하는 야수적 자본주의가 온 세상을 지배하면서 생태계의 질서가 무너졌습니다. 급격한 인구증가와 도시화, 산업화 과정에서 인간의 삶과 바이러스의 경계가 허물어져 버렸습니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 등 점점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점점 더 짧은 주기로 밀어닥치고 있습니다. 절제를 잃어버린 채, 모든 영역에서 ‘자유’를 추구한 근대서양문화가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코로나도 문제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자유에 대한 욕망’을 어떻게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통제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비대면/온라인 예배가 교회의 일상적인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비대면 영상 사역을 디지털 세대에 맞는 적절한 형태요, 참여하고 싶은 사람이 편리한 시간, 편리한 장소에서 언제든지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수용하자고 주장하는 온라인 대세론자들도 있습니다. 온라인 교회, 온라인 성찬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온라인 대세론이 퍼져가고 있는 오늘날, 상황 중심, 참여자 중심의 신앙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모든 우상종교는 사람이 중심에 서 있습니다. 우상숭배자가 자신이 섬길 우상을 택하고 어디서, 언제, 어떤 방법으로 섬길지를 선택하고 결정합니다. 우상숭배의 기본적인 동기는 자기 유익이며, 우상숭배의 목표는 우상숭배자의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 우상으로 표현되는 초월적인 존재를 통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신앙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철저하게 배격하시면서 예배를 드릴 때 장소, 시간, 예물을 드리는 방법 하나하나까지 일일이 구체적으로 정해 두십니다. <각기 소견대로>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신 12:8)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에는 분명한 기준이 있습니다.(요 4:23) 하나님을 섬길 때 가장 바람직한 열매는 하나님의 통제를 기꺼이 받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가장 훌륭한 예배자, 가장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자발적으로, 기꺼이 순복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진정한 자유는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갈 5:13)
참여자의 자유와 편의를 주장하는 온라인 대세론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비록 코로나 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영상/비대면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다 할지라도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영적으로 세상에 임재하신 것이 아니라 육체로 오신 분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현장성, 만남, 눈과 눈을 마주치고 손과 손을 맞잡으면서 서로를 끌어안고, 등 두드려 주는 사귐과 교제, 함께 먹고 마시는 일은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은혜의 방편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비대면이 아니라 반드시 대면해서 누려야 할, 대면함이 없이는 누릴 수 없는 은혜와 복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개인의 자유, 예배자의 편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정당한 영적 권위 아래서, 하나님의 통제를 받으면서, 권리 포기, 자기희생, 자기 부인의 영적 비밀을 아는 성도로 자라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자유’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우리 시대, ‘권위’, ‘순종’, ‘자기 부인’ 등은 인기 없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도 쉽게 ‘너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세상 풍조를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자녀들에게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최소한 사람이 추구해야 할 더 높은 수준의 대의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개인의 자유를 빌미로, 신앙생활에서도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려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다른 길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