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버케어 칼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 11:11~12)
광야wilderness는 ‘황폐해지다’be desolate, ASV, ‘파멸되다’ruin, RSV 뜻을 가지며, 파생어는 ‘황폐’, ‘폐허’, ‘사막’, ‘황무지’이다. 히브리어로는 ‘미드바르’라고 하는데 이곳은 하나님의 말씀이 나온 곳, 하나님의 백성들이 연단 받는 훈련의 장소이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한 곳이다. 아무것도 없는 곳이기에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강인함을 갖게 되는 곳,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곳이며 많은 광야 수도원들이 세워져 수도사들이 절제와 경건의 훈련을 하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유다 광야는 예수님을 묵상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광야의 건기는 황무지이지만, 우기에는 푸른 초장으로 바뀐다. 이때 양떼들은 이슬 한 모금을 머금고 풀을 뜯고 작은 오솔길을 따라간다. 목동들은 지팡이와 막대기를 들고 언덕에서 양떼들을 주목한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99마리 양을 내려놓고 온 광야를 찾도록 찾으시는 예수님의 참 목자의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실제로 광야에는 많은 짐승이 살고 있으며, 낮과 밤의 기온의 차이 때문에 양은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같은 광야에서 여호와가 우리의 목자 되시니(시편 23편)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한편 “광야와 40”이란 숫자는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삭이 광야를 배회하며 묵상하다 40세에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했다. 모세는 40년간 미디안 광야에서 목동 생활을 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40일간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새를 못 기다려 범죄했다. 정탐꾼들은 40일간 가나안 땅을 정탐했고 불순종으로 인하여 40년간 광야 생활을 했다. 엘리야는 40일간 광야를 걸어 호렙산에 도착했다. 예수님은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하신 후에 사단의 시험을 물리치고 복음 사역을 시작했다.
이렇듯 광야는 밋밋한 것 같지만 다양한 역설의 진리를 배우는 곳이다. 그런 면에서 광야는 우리 선교사들의 삶을 잘 표현해준다. 선교사의 삶의 현장은 광야처럼 녹록치 않다. 선교사 초임 시절은 문화가 다른 곳에서 적응하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또 다른 언어를 익히기 위해 인고(忍苦)의 시간을 보내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다. 선교사 자녀도 새로운 현지 학교에서 적응하고 견디며 살아간다. 넉넉치 않는 물질을 벗 삼아 아껴가며 빠듯하게 생활한다. 선교사 사이에서의 관계 갈등으로 인하여 많은 스트레스가 동반되기도 한다. 원치 않는 질병의 훈장을 주렁주렁 달기도 한다.
그런데 황무지와 같은 광야를 우리 선교사들만 걸어가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먼저 그 길을 올곧게 사모하며 걸어갔다. 척박한 광야에서도 꽃이 피고 향기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갔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특권으로 광야에 샘솟는 역사를 맛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은혜의 강물을 맛보며 살아가는 것이 참된 기쁨이 아닌가!
우리는 현재 코로나 19의 현장에 살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에 확진되어 생명의 위협에 놓여진 선교사들도 있다. 우리가 함께 극복해야 할 또 다른 광야이다. 이럴 때일수록 척박한 환경의 절망을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 너머에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더 나아가기를 소원한다. 그 광야에 서면 주님으로부터 오는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다. 하나님은 믿음의 시험장인 광야로 우리를 부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