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리 칼럼
글·김문영 선교사(캐나다, 아메리카 권역장)
북미! 이름만 들어도 부유하고 풍요로운 대륙, 그중에 캐나다는 다수가 이유도 모른 채 덩달아 부러워하는 나라 중 하나다. 이곳에 '철의 장막'은 없다. 그러나 우울한 '암막 커튼'이 있다. 세상에 알려진 역사의 뒤 페이지에 가려진 커튼이다.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그러나 역사의 책장을 넘기면 여지없이 깊은 심호흡을 뿜어내며 명확하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실체가 있다. 그들은 관광객들의 이미지 속에 포장된 채 아픔을 씹고 현실의 무기력함을 매일 경험하며 살고 있다. 개인주의와 공격성이 강한 북미인들의 사회 속에서 그들과 하나 되기가 거의 불가능한 자신들만의 DNA를 가지고 산다. 이들은 역사의 종말 때까지 캐나다인들과 동행해야 하는 원주민들이다.
산과 들을 달리면서 버팔로와 사슴을 사냥하고 해안가에서는 연어를 잡아 생활하던 사람들, 땅과 자연이 삶의 양식을 공급해주는 것으로 믿고 자연을 존중하며, 사냥한 짐승들에게조차 도륙하기 전과 후에도 자신들의 식량이 되어준 것에 감사한 표를 하는 사람들이다. 땅은 생명의 젖줄인 어머니로 인식하여 개인이 소유할 수 없다고 여겼던 사람들, 어느 날 느닷없이 유럽인들이 들어오면서 그 땅을 국가와 개인의 소유로 차지하던 날, 그들의 힘 아래 굴복당하면서 혼란을 겪었던 그들, 짓밟히는 과정에서 눈과 피부에 보이고 다가온 것은 정복자들의 문화에 포함되었던 기독교라는 종교였다. 그건 당대 최고의 트렌드였을까? 그 기독교 국가(?)에서 온 자들은 막강한 힘을 앞세워 이 땅에 자신들만의 나라를 건설하고 원주민들의 정체성을 지우기 위해 '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기독교의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강요했다. 원주민들의 삶을 미개함으로만 해석했고 서구화를 위한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했던 실수로, 그들에게 싹튼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은 후대의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물려받았다.
선교사! 바우리 선교사!
첫걸음이 '믿음 선교'였고, 주님의 부르심만 따르는 ‘소명’을 우선으로 삼는 믿음의 식구들이다. 주께서 원하시는 곳을 따라 살며 그것이 옳다고 동의한 사람들이 문을 두드렸던 바울선교회는 두근거리며 기다리다 영입 통지를 받고 일생일대의 전환점을 갖게 하는 곳이었다. 남들이 꺼리는 곳으로 파송하면 아무 말 없이 그곳으로 향했고, 외면당하고 잊히는 곳에서 무명의 선교사로 남기를 자청하는 바우리! 하나님의 은혜로 그 일원이 된 나는 가족을 이끌고 애초 계획과 다르게 남아공 그리고 캐나다를 선교지로 부름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나라는 기독교의 이름하에 번창했고, 당시 그들에 의해서 고난당했던 원주민들이 있다. 세상의 무관심 속에서 커튼 뒤에 가려진 채 혼쭐난 강아지들처럼 구석에 몰려있듯이 살고 있는 그들이 우리 부부의 선교 대상자들이었고 지금도 우리 섬김의 대상자들이다.
현대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그 암막의 커튼을 열면, 서부개척 영화 속의 모래바람 부는 적막한 작은 마을에서 넋 나간 듯이 앉아있는 노인의 표정 같은 사람들, 그들은 불려지는 이름조차 왜곡된 일명 ‘인디언’들이다. 머리에 깃털을 꽂고 긴 가죽 바지를 입은 채 말을 타고 용맹하게 사냥했던 사람들, 모든 사람이 길을 잃어버려도 이들만 있으면 정글도 안전하다는 그들이었는데 ‘아 ~ 옛말이여~!’ 지금 그들의 눈동자는 풀어졌고 광활한 대지는커녕 그들의 관점으로 손바닥만 한 “원주민 보호구역”에 갇힌 채 비틀거리고 있다. 속에서 끓어 나오는 삶의 열정이 오랜 세월 묶여있어서일까? 마약과 알코올 중독자로 득실거린다. 자살률은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봐 거론하지 않겠다. 집집마다 가축우리에 방치된 것처럼 아이들이 넘쳐난다. 필요할 때만 사용하는 공동체 개념은 있지만, 정과 돌봄은 없다. 독수리와 사자가 약한 새끼를 버린다고 했나? 자연과 동물을 신성시하며 숭배하기까지 하는 이들이 그들의 습성을 닮는다. 자녀를 사랑하는 듯하면서도 그냥 내버려 둔다. 문화라고 치부하기에 잔인할 지경이다. 우리는 북미 원주민들에 대한 상황을 듣고 즉시,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였다.
2014년에 새로운 선교지에 첫발을 딛는 설렘은 1993년의 첫 선교지 남아공 공항에 도착했을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수달”, “왼팔”, “구르는 진흙 덩어리”, “귀”, “곰 발톱”, “타는 사람”, “불쌍한 독수리”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들, 우리처럼 몽고반점을 가졌고 이 광활한 대지의 원래 주인이라는 자부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을 향했다.
“혹시 이들이 ‘부푼 꿈을 가지고 삶을 개척해 나가는 정착민들’을 위협하고, 괴성을 지르며 말 타고 달려와 손도끼를 휘두르면서 백인 병사들의 머리 가죽을 벗겨 버리는 무서운 사람들의 후손인가? 아니면 긴 머리에 늑대 가죽을 뒤집어쓰고 몇 주 동안 광야의 바위에 홀로 앉아, 자연의 신에게 도취되어 혼자 춤추는 신비한 정신세계의 사람들인가?”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든밸리 마을에 처음 들어서는 순간, 선교사가 그러면 안 된다고 다짐했건만, 긍정적이지 못한 선입 관념이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잠시 심호흡하고 주님께 기도한다. “내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 주세요.”
마을 입구에는 작은 강이 흐르고 그 다리를 건너면 원주민 마을이다. 평소에는 기억력이 좋지 않던 내가, 하필이면 이때에 수십 년 전 봤던 영화의 한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방향을 탐지할 수 없는 숲 속에서 독침이 쀼용~!!, 날렵하게 고개를 흔들어 현실로 돌아왔다. 긴장했었나 보다.
영화와 상상 속의 원주민들은 수백 년 전의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든밸리의 비포장 길에서 만나고 지나치는 분들에게 우리는 보내졌다. 외부인인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지만 별 관심 없어 보인다. 한 곳에 주차한 차에 다가가서 “내가 이곳에서 목회하려고 왔는데 당신 이름이 뭐예요?” 물었더니, 운전석에 있던 남자가 고개를 쓰윽 드는데, 으~매!! ‘하~~필!!’ 첫 번에 이런 사람을 만나다니… 진짜 무섭게 생겼다. 벌리지도 않는 입속에서 뭐라고 웅얼웅얼하는데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고, 내가 멍 때리는 사이에 쌩~ 가버렸다. 그가 지금은 만사를 제쳐놓고 주일마다 같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체스터이다.
어쨌든, 나를 환영하는지 거부하는지 감도 잡지도 못하고 어물쩍하게 서 있는데, 저만치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차가 있어 손을 흔들어 줬더니, 살짝 째려보는 듯하더니만 자기도 손을 흔들어주고 지나간다. 오호라~ 여기와도 죽지는 않겠구나… 이 상황을 보고 계셨던 하나님이 얼마나 한심 하셨겠나… 주께 송구스러울 뿐이다.
힘없이 예배당 건물로 갔다. 폐허다. 전설 따라 삼천리, 달걀귀신, 처녀귀신, 만득이, 몽땅 여기서 나올 것 같다. 동네 처녀와 총각 데이트 장소, 싸움박질하여 부서질 대로 부서지고 예배와 경배 없이 수십 년 방치된 예배당!! 하늘을 보며 가슴을 치랴 마을을 향해 울부짖을까? 생명수가 공급되는 곳! 하늘의 메시지가 선포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성전이 폐허가 되어있다.
솔로몬 성전이 바벨론에게 파괴되었고, 70년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백성들이 힘을 다해 재건축한 성전은 헬라의 군화 발아래 치욕스럽게 농락당했으며, 웅장하게 증축되었던 예루살렘 성전도 로마에 의해 또다시 무너진 가슴 아픈 역사를 지닌 이스라엘은 72년 전에 다시 건국을 선언하고, 오늘은 겨우 남아있는 성전의 서쪽 벽에서 통곡하며 기도한다. 그 성전의 슬픈 역사! 하나님을 대적했던 힘의 역사가, 이곳 이든밸리에서도 목도되고 있다.
사탄아~ 너냐? 성전을 더럽히고 황폐하게 만든 자가!! 네가 이곳에 판을 깔았다면 내가 팔 걷어붙이고 맞짱 떠주마!! 네가 공중 권세 잡고 날뛰어도 그 싸움… 만만치 않을 거다! 아주 오래갈 거다! 나 죽는 날까지 이 싸움 지속되어도 지지 않으마! 사람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는 것이… 네가 성전 문에 못질을 해놓고, 세상의 웅성거리는 소리만 듣게 하여, 우왕좌왕하게 만든 너의 작품이구나.
주님, 이 성전을 재건하도록 도우소서! 성전의 문이 다시 활짝 열리도록 모으소서! 당신의 일꾼들을! 이 땅 이든밸리를 살리는 역사를 시작하소서! 자격 없고 절대 부족한 우리 부부이지만, 허락해 주신다면 묵묵히 그 길 가겠습니다. 당신의 손 꼭 잡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