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이야기  / Mission Story
[칼럼]25년을 돌아보며 | 정용택 선교사
BY 관리자2022.04.29 1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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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리 칼럼

-25년을 돌아보며-

푯대를 향하여

글·정용택 선교사(스리랑카, 서남아권역장)


1997년 10월 전주안디옥교회서 바울선교회 15기 파송 예배가 있었다. 그때 눈시울을 적시면서 주님의 부르심에 “죽기까지 충성하리라” 기도하며 다짐한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언 25년의 세월이 훌쩍 흘러가고 있다. 아직도 모든 면에서 말할 수 없이 무능하고 부족하기만 한 나에게 사람들은 “시니어” “잘하고 있다”, “수고 많았다” “고생 얼마나 했느냐?” 등 고마운 말들을 해 주시지만 나는 듣기에 부담되고 부끄럽기만 하다.

 

어린 세 자녀를 데리고(스리랑카에서 넷째를 득남하여 1녀 3남의 자녀가 있다) 초라하게 스리랑카 공항에 내렸다. 무덥고 카레 냄새 진하게 풍기고 사람들은 검고 거리와 모든 관공서와 큰 건물들과 집안에 불상들이 즐비한 땅, 불상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고 승려들이 기득권을 누리며 큰 행세 하며 사는 땅이다. 스리랑카는 종교의 나라이다. 종교가 없는 자가 없는 나라이다. 약 70%의 불교와 함께 힌두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로마가톨릭과 개신교가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는 종교의 나라이다. 


스리랑카에 도착한 선교사의 눈에 비친 이들의 모습은 대부분 사람들의 삶이 녹록지 않고 삶의 고통 가운데 찌들어 살고 있음이 그냥 보이는 땅이었다. 전 국토가 우상으로 덥힌 땅에서 살아가는 2천만 명의 사람들이 육신의 삶만 고달픈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의 고통은 그보다 훨씬 더 한 것이 내 눈에는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 


루시퍼가 우상의 땅으로 만들어 노예로 사로잡고 있는 백성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름답고 천혜의 보물들이 있는 땅으로 주셨건만, 에덴에 들어와서 인류를 죄악 가운데 빠뜨린 그 사탄 루시퍼가 이 아름답고 좋은 섬에도 들어와서 사람들이 하나님 대신 우상 숭배에 빠져 살게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영육 간에 고통 가운데 살다가 결국에는 지옥으로 떨어지도록 판을 깔아 놓았다. 

 

복음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다. 주님께서 지상 사역에서 행하신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이 복음의 능력이 필요한 백성들이다. 이제 나의 영적 쟁투는 이 우상의 땅에서 시작이 되는 것이다. 

 

사탄이 영원히 자신의 왕국이 될 것같이 만들어 놓은 이 땅 백성들을 하나님은 심히 불쌍히 여기시며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신다. “너 멸망의 사탄아! 내 백성들을 내놓고 꺼져라.” 
사탄이 철옹성같이 견고한 진을 친 이 땅에서 350년 동안 그리스도의 복음은 치열하게 피 흘리며 쟁투를 벌이고 있었다. 네덜란드에 의해서 개신교 복음이 뿌려진 지 350년이 되었으나 1%가 채 되지 않는 저조하기 이를 데 없는 복음화율인 것을 보면 참으로 사탄의 진이 견고한 땅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한 우상들은 복음을 억압하고 핍박하고 죽이려고 한다. 누군가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으려고 하면 사탄은 결코 가만두질 않는다.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사탄은 여러 모양으로 괴롭히고 압제를 가한다. 영적 쟁투가 참으로 치열한 땅이다. 복음을 든 종들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피를 흘리는 것이 일상인 나라다. 비록 극소수이나 이런 가운데서도 0.8%, 16만여 명의 하나님의 백성이 있으니 희망이 있는 나라임이 분명하다. 핍박을 참고 견디고 있는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 말씀을 붙잡고 사는 자들이 있다. 지금 우상이 활개를 펴고 있지만 희망이 있는 나라이다. 

 

어서 말을 알아야 한다. 나는 말씀을 설교하고 가르치고 전하려고 이 땅에 왔다. 말이 되어야 한다. 밥 먹고 남는 시간에는 현지어 습득에 힘을 쏟았다. 이 달팽이처럼 생긴 꼬불꼬불한 이 말을 하지 못하면 나는 끝장이다. 이 사람들의 말을 습득하지 못하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나는 말씀을 전할 수가 없다. 이 땅에 살아남을 수조차 없다. 강한 강박감이 내 맘을 눌렸다. 그래서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 열심히 했다. 생소한 이국에서 젖먹이까지 있는 어린 3자녀를 아내 혼자서는 돌보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나도 아이 키우는 일을 거들어야 했다. 언어도 열심히, 애들도 열심히 키웠다. 

 

주님은 애들도 잘 적응하고 잘 자라게 해 주셨고, 1년 만에 현지어로 설교할 수 있도록 언어의 진전을 주님이 주셨다. 1년 반 만에 교회 개척을 하고 동네 가가호호를 다니며 전도 활동을 할 수가 있었다. 다행히 승려들의 핍박을 만나지 않도록 맘과 성품이 약하고 겁 많은 나를 하나님은 특별히 지켜 주셨다. 
 
1년의 교회 개척 활동을 통하여 언어가 늘어나니 하나님은 나를 신학교로 인도해 주셔서 주의 종들을 가르치며 양성하는 귀중한 일을 맡겨 주셨다. 나는 이 종들에게 “그대는 이 나라의 소망이며 복이다” 하며 성심을 다하여 가르치고 섬기고 위로 격려하며 사랑했다. 어느 때는 승려들로부터 핍박받아서 교회가 부서지고 충격받고 몸과 맘이 깨어져서 낙담하여 신학교에 공부하러 온 그들의 손을 잡고 함께 울었다. 핍박받아 교회당이 부서지고 몸을 다쳐도 이 땅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하소연하거나 도움을 받을 곳이 없는 이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진정한 친구가 되려고 맘을 다했다. 

 

비자도 교수 비자로 해결이 되었다. 신학교 사역은 나를 이 나라 전역에서 선교사역을 펼치는 길로 나아가게 해 주었다. 이 신학교 학생들은 신학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목회하는 현직 목회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핍박과 배고픔과 싸우면서 여러모로 열악한 가운데서 척박한 땅에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들이었기에 자연히 이들 목회를 돕는 일을 하게 되었다. 

 

신학교 사역 외에 또 다른 황금을 낚는 복음의 어장을 주님은 나에게 주셨다. 마약중독자들을 치유하는 기독교 NGO 단체인 마약센터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거리를 주신 것이다. 이 마약센터는 매년 백여명의 침례(세례) 자를 태생하는 천국의 문이다. 마약중독은 치유나 완치되기가 참으로 어려운 사탄이 주는 중독이다. 세상 약이나 치료 방법으론 치유되는 것을 보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병이다. 그러나 저희 마약센터는 치유되는 경우가 무수히 많다 마약으로 패인이 된 자들이 와서 정상인이 되고 마약중독자 치유사역자가 되고 전도사 목사가 되어 일선의 복음 전도자가 된 형제들이 많다. 신약과 구약은 능력이 있다 세상 약으로 못 고치는 병을 신약 구약은 능히 고친다. 전국 어디를 가도 나를 알고 사랑해 주는 목회자들과 복음 사역자들이 있다.

 

선교지 나갈 때 “목사이니 그저 교회 개척이나 하나 하겠지”라고 생각했을 뿐인데, 한없이 부족한 나에게 현지어 습득과 사역들, 지금 돌아보니 “이 부족한 내가 어떻게...” 꿈만 같다. 다 주님께서 해 주신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승려들이 쳐들어왔다. “당신 복음주의 목사지? 이 나라는 불교 나라인데 왜 와서 기독교 복음을 전하느냐? 왜 이 나라를 도덕 질 하느냐?(승려들은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을 나라를 도덕 질 하는 놈들이라고 함)  이 나라를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죽일 수도 있다”며 3시간여 동안 협박을 받았다. 


한국 대사관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스리랑카 정부는 경찰을 보내주었다. 3개월 동안 총을 든 2명의 경찰이 24시간 3교대로 우리 집을 지켜주었다. 24시간 나를 지키므로 나의 하는 일을 다 보고 있는 경찰들에게 나는 말했다. “내가 이 나라에서 뭐 나쁜 일을 하더냐? 뭐 잘못한 일을 하더냐? 만일 당신들이 볼 때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이 나라를 떠나겠다” 하였더니 경찰들은 “목사님! 당신은 너무 좋은 일만 합니다. 당신은 우리나라에 꼭 필요합니다. 절대로 떠나지 마십시오” 했다. 

 

지난 25년간에 스리랑카 복음화율은 0.8%에서 2%를 넘어섰다. 스리랑카 선교 역사 이래 최고의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스리랑카는 지금은 어렵지만 장래가 밝은 나라이다. 그 첫 번째 이유가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잘 사는 나라들이 인구감소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그래서 나라가 쇠퇴해져 가는 데 비해 스리랑카는 자국민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더 큰 희망이 복음화 인구 또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리랑카 교회는 기도의 열기가 뜨겁다. 스리랑카 교회는 소망이 넘친다. 모진 핍박 가운데 계속 부흥이 될 것이다. 

 

나는 주님과 한국교회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로서 25년간 이 땅에서의 치열한 영적 전투 가운데 서 있었다. 이 땅의 구원을 위하여 힘을 다해 애써 왔다. 물론 주님 앞에선 부끄럽기만 하다. 내놓을 것이 없다. 항상 주님 앞에서 고백하며 나는 운다. “주님! 너무도 하는 일이 적습니다. 주께서 제게 복은 한없이 주시건만….” 25년간 하고 있는 언어지만 아직도 할 말을 시원스럽게 다 못하는 답답함이 있다. 속의 것을 다 말과 글로 나타내지 못하는 답답함이 때로는 고국에 가서 내 말로 실컷 설교하고 전도 좀 하면 속이 후련해질 것 같은 맘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한국어도 이젠 잘 못한다. 1, 2년에 한 번 방문하는 고국에서 말을 할 때 단어가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하다. 누군가 말했다. 선교사는 평생 언어와의 싸움이라고…. “왜 그때 바벨탑 사건이 일어났던고... 그 사건만 없었더라면 이 고생은 없었을 텐데...” 그때 조상들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세월이 지나 꽤 오래됐음에도 언어는 더 어려워 보인다. 25년이 넘는데 10년 전보다도 지금이 더 어렵기만 하다. 

 

가족처럼 친밀하고 사랑하고 나를 존경하고 아껴주는 현지 목회자들, 제자들, 교인들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아직 정서적, 문화적, 관습적인 차이는 여전하다. 이로 인해서 내 맘을 몰라주고 다른 결과나 반응이 나올 때에 나는 맘이 상할 때가 있다. 아직도 주님을 닮지 못한 나의 품성의 부족함 때문이리라. 


선교사는 참고 참고 견디고 견디는 사람이다. 그리고 속고 속임을 당해주는 사람이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 역시 우리에게 참고 견디고 속임을 당해 주시는 분이지 않은가. 선교사가 현지에서 참은들, 속은들, 우리 주님께서 당하신 만큼이야 하겠는가? 어림도 없지... 주여 저를 붙들어 주소서! 

 

이제 이 나라는 나의 나라가 되어 버렸다. 다른 또 하나의 나의 조국이 생긴 셈이다. 선교사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스리랑카는 평생 내 맘과 생각 속에서 죽을 때까지 지울 수 없는 나의 나라가 되었다. 아마 이후에 천국 가서도 나는 이 사람들과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될 것 같다. 이제 보냄을 받은 이 땅에서 나의 달려갈 길이 제도적인 연령으로는 채 10년이 안 남았다.

 

아직도 이 땅에서의 그리스도의 복음은 피를 철철 흘리며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이 대 영적 전투 속에 뛰어든 나의 영적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사탄의 진은 견고하기만 하다. 그러나 무너지리라. 푯대를 향하여 내 주님께서 나를 이끌어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내 주님께 의뢰하며 나의 남은 길을 달음박질 하련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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