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이야기  / Mission Story
[간증]어머님 회상... | 맹재관 선교사
BY 관리자2022.04.29 1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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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간증

어머님 회상...

맹재관 선교사(가나)

 

저의 어머님께서는 19세 나이에 6.25를 겪으셨습니다. 그 트라우마가 있으셨는지 비행기 소리만 들리면 "전쟁이 났는가 보다"하시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시곤 하셨습니다.


그 어렵던 시대에 강원도 산골 오지의 화전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배우지 못하셔서 한 달 야학을 다니시며 글을 깨우쳐 평생 성경을 읽으셨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참 가난한 세월을 사셨습니다. 그 고된 가난과 굶주림의 시간에 어머님의 평생 삶에서 놓지 않은 것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새벽 기도, 새벽종, 말씀 읽기, 교회 청소였습니다.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밑바닥이 보이는 교회 마룻바닥을 깨끗이 쓸고 물걸레질하셨습니다. 어린 제 눈에 어머님은 교회를 참 많이 사랑하셨습니다.

 

오지이다 보니 교회 전도사님이 튼튼한 차가 필요했습니다. 
쌍용자동차에서 처음 코란도가 출시되었을 때 주로 관용차로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차였습니다.
교회의 재정이 그리 비싼 차를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비포장도로에 버텨낼 차는 코란도가 유일했습니다. 기도하시던 어머님은 장성한 자식들 생각조차 묻지 않으시고 제일 좋은 땅문서를 들고 담임으로 계시던 전도사님 앞에 내려놓으며 "이것 팔아 차 사세유” 하시더랍니다. 이를 접한 전도사님도 덥석 받을 수 없는 것이라 또한 기도하셨답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권사님, 땅은 하나님의 유업입니다. 제가 이것 팔아 교회 차를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올 한 해 이 땅에서 나오는 소출을 주님께 드리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그렇게 소출로 드려진 헌금으로 그해 겨울에 차를 구입하게 됩니다.

 

어머님께서는 크나큰 믿음의 유산을 저희에게 물려주셨습니다. 다른 것은 다 봐주셨는데 주일날 교회에 가지 않는 것, 그것만큼은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것은 다 그러려니 하셔도 십일조, 감사헌금 이 두 가지는 꼭 하도록 늘 가르치셨습니다. 교회 다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몸소 삶으로 보이셨습니다.

 

2002년 2월에 그토록 그리던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시던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시는 분이 계시지 않게 되었구나... 큰 믿음의 지원군을 잃는 슬픔이 더해졌습니다.

 

어머니께서 그토록 원하시던 목회자의 길을 걷지 않고 제 나름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외면하고자 했던 길 위에 지금 아버지의 은혜로 서 있습니다. 어머님의 기도 빈자리가 수십, 수백 분의 중보 기도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선교지의 아픔을, 저들의 필요를 그저 가슴 아파 아버지께 아룁니다. 

 

참 신기합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어찌 그리 귀가 밝으신지 그저 마음만 드렸는데 척 알아들으시고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마음을 더 잘 알아 부르심에 응답하시는 고국의 동역자님들이 더 대단하십니다. 저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으니 현장에서 눈으로, 피부로 겪으며 현실이니 구하라 하시고 더 믿음 좋은 분들은 그저 싸인만 보내셔도 알아서 하시도록 고국에 두셔서 동역하여 선교 완성을 이루어 가게 하시나 봅니다.

 

문짝이 없어지고 창문이 날아가, 버려진 창고처럼 변해 버린 몽꿀라 교회를 보수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이미 재정을 다 준비해 두셔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빗자루 들면 빼앗아 들고, 망치 들면 받아 들고, 삽 뜨면 언제냐 싶게 손 내미는 몽꿀라 젊은이들을 보며 다시 부흥을 꿈꾸게 됩니다. 

 

어머니 김채환 권사님이 하나님 사랑하여 기도하고 말씀 보고 교회 사랑하였듯이 
이 땅 사람들이 영혼 살리는 생명의 기쁜 소식,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임을 믿어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를 살며 하나님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웃고 울다가 재림하시는 우리 예수님 함께 만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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