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간중
김경현 선교사(우크라이나)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저는 저의 믿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고 사실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나기 전의 저의 모습을 돌아보았습니다. 전쟁이 나기 전에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는지요.
전쟁이 시작되고 '우크라이나'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쏟아져 내려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삶을 한동안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 옆에 여전히 구원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는 부모님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루하루 먹고사느라 바쁘고 지쳐있는 오빠의 가정도 보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현재 지내고 있는 태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불이 나서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많은 이웃들의 눈물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위한 눈물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쏟아내면서 여전히 구원받지 못한 내 부모와 가족들을 향한 애통함의 깊이는 왜 이리도 얕은지...
미얀마 사태로 고통당하는 그들을 위해서는...
탈레반 정권이 장악하면서 고통과 두려움 속에 떨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수많은 사람을 위해서는...
가난과 전쟁, 기아로 홍수로 지금도 고통당하는 또 다른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는...
그렇게까지 마음 아파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지 못했고, 또 간구하지 않았던 저의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리고 남동생이 어느 날 제게 전화를 해서 딱 한 가지만 부탁하겠다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부모님이 저희가 있는 동안 꼭 예수님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도를 많이 많이 해서 부모님이 교회를 다니시는 거, 그거 외에 부모님께 바랄 것도 없고 누나인 저에게도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선교사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저보다 한 영혼의 구원을 향한 열정과 진실한 소원이 남동생의 마음에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동생과의 전화 통화를 마치고 내가 무엇 때문에 우크라이나를 위해 이토록 슬퍼하기만 하고 울고 있는 것인지 돌아봤습니다. 순간,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우는 마르다가 마치 지금의 저처럼 보였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을 믿지만 그러나..하면서 울고 슬퍼하던 마르다의 모습이 딱 제 모습 같았습니다. 믿지만 그러나....의 신앙이 제 안에 있었음을 인정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살아 있을 때에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 앞에 다시 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제는 우크라이나만을 위해서 울지 않고, 주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회복하고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 요즘 자주 듣고 부르는 찬양이 하나 있습니다. 일상이라는 제목의 찬양인데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나를 보내사 서게 하신 곳 가장 귀한 곳이 바로 이곳이라. 내게 주신 곳 광야와 같아도 믿음과 소망 가지고 최선을 다하리. 나의 작은 삶 주께 드릴 때 나의 삶을 통해 주 영광 받으리. 내게 맡기신 가장 귀한 이곳 감사와 순종으로 오늘을 살리라.”
지금 당장 우크라이나를 향해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지금 저희의 발걸음을 머물게 하신 이곳에서의 하루하루도 참 귀하고 소중하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저희 가정을 머물게 하신 장소를 가장 귀한 곳임을 믿고 어느 곳에 있던지 오직 감사와 순종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머무는 곳마다, 저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오직 생명의 복음이 증거되어지기를 바라고 또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