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글. 송00 선교사(동남아 M국)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2022년 3월 22일 오전 11시 셍오이 연회본부 이전 예배’에 참석해 달라는 내용입니다. 코로나19 시대에 안전을 생각하면 많은 인원이 모이는 대면 모임에 ‘꼭 참석해야 하는 자리인가?’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사한 일이기도 합니다. 종전 같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인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인물 중심으로 초대하기 때문입니다. 교단에서 최고 높은 지위에 계신 감독 회장님, 연회 감독님 그리고 기관장들만 참석하는 자리에 제가 선교사로서 어떻게 초대장을 받게 되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현지 감리교단과 파트너십을 가지고 사역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시대가 종식되어 가고 있습니다. 정부는 4월 1일부터 국경 폐쇄에서 개방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2020년 3월 16일 국경 폐쇄 이후 24개월 15일 만에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본격적인 위드코로나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이런 고민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현지 교단과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는 선교사역의 방향성입니다.
지난 10년간 제가 속한 M국 선교사회를 통해 많이 성장하고 있는 사역을 집중 관찰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역을 열어가고 계시는가?’ 바로 그 흐름에 저의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전반기에 난민학교가 수도 K를 중심으로 많이 생겨났고 이와 관련해서 선교사들도 교사로 협력하면서 쏠림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중반기에 중국인과 인도인을 위한 사역도 늘었습니다. 그 영향은 비자발적 철수로 인한 선교지 변경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반기에는 이곳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하여 유튜브나 줌을 통한 비대면 사역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모두가 공감하실 것입니다.
1) 현지 교단에서 줌과 유튜브를 사용하여 한 달에도 몇 번씩 펜데믹 극복을 위한 기도회를 주관했고 현지 교회와 성도들, 선교사도 함께 참여했습니다. 교단이 유례없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2)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많은 교회들이 대면 모임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특별히 한인교회들이 더 문을 열지 못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위치를 알 수 있도록 QR코드를 정부에서 부여했고 이 코드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발 빠르게 현지교단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현지 교단 산하에 있는 교회처럼 서류를 작성해서 한고비를 넘겼습니다.
3)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교민들이 고국으로 대거 철수하게 되었고 교회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는 실정에 부딪혔습니다. 교회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 시선을 돌린 곳이 현지교회 건물 이용입니다. 이 또한 현지 교단에서 연결해 주어 이전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한인 목회만 하시던 분들이 현지 교회에서 한 달에 한 번씩 현지인과 한인들이 함께 예배했고 한국 목회자들도 설교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현지교단과 MOU를 체결했던 감리교 선교사들에게만 주어진 혜택이었습니다. 코로나19 펜데믹은 누군가에게 위기가 되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가 바우리로써 초임 1년 차를 지냈을 때 저희 지부원들은 사역하는 나라가 제각각 달라서 항공을 이용해야 하는 특별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부 모임이 제가 있는 이곳에서 2박 3일간 열렸습니다. 당시 권역장님과 지부장님 부부가 오셨었습니다. 이곳에 먼저 오셨던 선임에게는 나라의 상황과 사역이 커가지 못하는 이유들을 중심으로 집중 점검과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두 분은 이미 오래된 경험을 가지고 계신 시니어로서 각국에서 돌파를 이루었지만, 저희가 있는 나라는 어떤 시도를 해야 하는지조차 몰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희 가정을 위한 처방전으로는
1)공용어인 영어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영어말고 현지어를 먼저 공부하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규정이라는 말에 즉시로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지내고 보니 아쉬운 것은 다인종, 다문화, 다종교, 다언어가 있는 국가에서 현지어, 공용어, 사역언어는 깊이 다루어져야할 가치가 있으며 규정으로 다루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고 의견을 드리고 싶습니다. 현지어와 사역 언어가 같은 국가에서는 규정이 준수되어야 하지만 다언어가 존재하는 국가는 현지어가 곧 사역 언어라는 공식이 성립되지 않으며 사역 언어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일 언어권인 한국은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제가 협력하는 교단은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지 않고, 영어연회, 중국어연회, 타밀어연회, 이반연회 그리고 현지어는 전체국민의 60%를 차지하지만 국교가 이슬람교인 무슬림들이 사용하는 가장 복음화율이 낮은 언어이며, 원주민이라고 불리는 소수 부족들에게 공용어처럼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현지어는 무슬림들에게 전도할 수 없도록 헌법에 명시된 것처럼 예배의 언어로 제한받는 언어이기도 합니다. 복음화율이 가장 낮은 현지어를 배워 언어로 나누어진 현지교단과 협력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감독회장님은 공용어인 영어연회에서 선출되는 것을 보면서 깊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2) 학교 사역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그 비전만 붙잡고 있지 말고 그릇이 준비되어야 하고, 경험도 싸여야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며, 현재 할 수 있고 열려져 있는 사역을 언어의 수준에 따라 10%, 30%, 50% 차츰차츰 늘려가며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조언의 뒷배경에는 학교 사역에만 꽂혀 있어 제 고집만 부렸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바울사도는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을 때 즉시 로마로 향하지 못했습니다. 1차, 2차, 3차 선교여행을 통해 로마가 아닌 다른 지역에 복음을 먼저 전하게 되었고, 이때 남겼던 서신서는 우리에게 귀한 가르침을 제공합니다. 제가 기존의 사고방식대로 계속해서 생활했다면 지금의 현지 교단과 협력은 없었을 것입니다.
3) 현지 교단에 찾아가서 관계의 물꼬를 트는 만남의 인사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권역장님 자신이 한국 교단에서 현지 교단으로 이적하여 사역을 하셨고, 저 또한 나라는 달랐지만 제가 파송 받은 나라에서 제일 큰 교단과 제가 속한 한국 교단이 같았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 조언을 당시에 따르기 어려웠습니다. 언어도 어눌하고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높은 지위에 계신 분들을 만나는 것이 부끄러워서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초임과 시니어의 현격한 차이를 느낍니다. 지금 그 당시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망설임 없이 현지 교단을 찾아갔을 것입니다.
좀 더 말씀드리자면, 어학원에서 공부를 끝낼 무렵 사역 언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루터교단 원주민 사역을 하는 현지 목사님을 소개받아 도시에서 산골 중에 산골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 기간을 통해서 현지 목사님으로부터 사역 언어, 사역 현장, 문화 등 현장을 중심으로 배웠습니다. 한 번은 원주민 후원을 위한 공연을 해야 한다며 루터교단 본부에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도착해서 감독님께 인사하게 되었습니다. 현지 목사님이 저를 파트너로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화답을 들었습니다. ‘네! 보고서를 통해 알고 있어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저에 관한 보고서가 현지 목사님을 통해서 보고 되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만일 알았더라면 좀 더 일찍 인사드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죄송함과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2015년 선교사회 서기로 있을 때 여러 노력 끝에 현지 교단과 MOU를 체결했습니다. 이 일이 있기 몇 년 전 MOU를 위한 첫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데요. 그때 받은 질문이 ‘몇 명이나 이곳에 있습니까?’, ‘연회본부에 찾아와 인사한 사람은 단 한 명이었는데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인사한 그 한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그 한 사람은 저보다 일 년 늦게 입국한 분입니다. 그분은 한국에 있을 때 대형교회에 있었고, 교회는 각국에 있는 교단 인사들을 초청하여 한국 부흥에 관한 세미나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후에 이곳에 파송 받았고 세미나에 참석한 현지인들에게 찾아가 인사를 했던 것입니다. 만일 제가 권역장님의 조언을 듣고 바로 행동에 옮겼더라면 어땠을까요? 부끄러움이 밀려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제가 현지 교단과 어떻게 협력하고 있는지 궁금하실 텐데요. 교단 신학교 교수 사역을 하고 있지만 이 부분에 관해서 ‘나는 마중물 사역자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펌프로 물을 끌어 올리려면 통 안에 물을 넣고 펌프질해야 압력을 발생시켜 땅속에 있는 물을 끌어 올릴 수 있는데 이때 통 안에 넣는 물을 마중물이라 합니다. 왜냐하면 현지 교단과 MOU를 진행해 갈 때 교단에서 요구한 몇 가지 사항들이 있었는데요. “현지 사역자들을 무시하지 말고 존중해 달라, 건축비 또는 현지 사역자에게 수고비를 줄 때는 교단 본부에 입금하여 교단이 지급하게 해 달라, 현지인들을 한국에 데려갈 때는 사전에 반드시 교단의 허락을 받아 달라, 종교적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과격한 전도행위를 하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현장에 있는 분이라면 이런 요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계실 줄 압니다. 이런 요구에 대해 선교사회는 회의를 열었고 많은 회원들이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입장이 달랐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루터교단 현지 목사님으로부터 사역을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 요구는 지극히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회원들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다시 현지 교단 관계자를 만났을 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를 샘플로 세워 달라고, 경험해 보면 답이 나오지 않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가장 반대가 심했던 부분을 한 예로 들면, 건축비용 전액을 교단에 입금하고 그 영수증을 받아 건축을 후원한 한국에 보냈더니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모릅니다. 교단은 건축업자를 선정했고 추가 금액이 발생할 때 교단에서 책임졌기 때문에 더 효과적이고, 더 빠르게 건축할 수 있었습니다. 기공 예배와 봉헌 예배에 한국 후원교회와 현지 교단 관계자가 참석했기 때문에 후원교회에서 좋아하셨고 이것은 저에게 사례와 후원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국 사역자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감당했던 과거보다 더 큰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결과를 이룰 수 있었던 뒷배경에는 루터교단 지역에 교회를 건축할 당시 제가 건축헌금을 현지 사역자에게 주었습니다. 현지 사역자는 교단 본부로 보냈고 이에 대한 본부의 영수증을 제가 받게 되었을 때 너무나 기뻤던 기억 때문입니다.
신학교 교수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은 4년 전 일입니다. 영어연회는 아주 힘없고 작은 현지 언어를 사용하는 원주민 파트를 2030년까지 분리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재정적 독립과 분리할 만큼의 현지 목회자가 부족하다는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해 운영되던 SWTC 명칭은 있었지만 지난 10년간 기능이 멈추었습니다. 10년간 한 명이 목사 안수를 받았는데 그 이전에 공부하던 분으로 실습 과정이 늦어지면서 뒤늦게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 명의 시니어가 은퇴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 명의 목회자가 다섯 마을에서 많게는 열 개의 마을까지 순회하며 관리했기 때문에 목회자 수급은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도 대략 800개 정도의 원주민 마을 중 60개 마을 정도 현지 감리교가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목회자가 더 많아지면 더 많은 마을에 진출할 수 있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협력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지만 마중물의 역할을 잘 감당하여 펑펑 쏟아지는 물줄기를 만들어 내기 원하시는 성령님과 힘차게 동역하고자 합니다.
이론적 측면에서 “하나님의 구속적 선교의 두 조직체 즉 모달리티(Modality)는 제도적이고 양육 중심적 구조로 된 조직체 즉 교회가 이에 해당됩니다. 소달리티(Sodality)는 ‘헌신과 결단’을 한 사람들이 과업 중심적 구조로 된 조직체로써 선교회를 뜻합니다.” 랄프 윈터는 두 조직체가 유기적인 공생관계를 유지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유기적인 공생관계에 있어 소달리티의 구성원인 선교사가 선교지의 모달리티와 유기적인 관계성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고 하는 공동의 비전을 가질 때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선교가 이루어지며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것이기에 한국 선교사와 교회 조직체인 교단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할 당위성이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역사적 측면에서 제가 속해 있는 나라는 교단이 이미 세워진 나라입니다. 루터 교단은 1952년에 시작되어 2022년 현재 70주년 되었고, 감리교단은 1885년 미 감리교회 선교사 윌리암 올드함과 제임스 토번 목사에 의해 선교 착수되어 2022년 현재 137년의 역사가 있는 교단으로 성장하였습니다. 한국은 1884~85년 맥클레이와 아펜젤러, 스크랜턴의 내한으로 한국 선교가 시작된 역사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 교단의 역사를 뒤로하고 한국 선교사 홀로 선교하겠다는 일념은 그동안 노력해온 현지 교단의 노력을 무시하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현지 교단으로서 자신의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해 왔는지 교단이 형성된 것만 보아도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전략적 측면에서 2021년 9월 기준 바우리는 92개국 504명을 파송했습니다. 1986년 3월 11일 창립되어 2022년 현재 36년을 선교에 전념한 성과입니다. 92개국 가운데 교단이 없는 나라가 몇 개국이나 될까요? 일부 몇 나라를 빼고는 전부 교회가 있고 교단이 있습니다. 바우리는 초교파 연합체이고, 연합을 합숙 훈련을 통해 배웠습니다. 교단도, 교리도, 나이도 뛰어넘었습니다. 바우리는 연합할 수 있는 최적의 성향을 소유했다고 믿습니다.
지난 2월 21일과 22일에 조동진 선교학 연구소에서 주관한 ‘교회 개척 너머의 미션 플랜팅과 미션 파트너링’ 이란 주제로 바우리 현지인 선교본부팀장의 강좌가 줌으로 있었습니다. 한국인만 훈련시키던 훈련원이 시선을 돌려 2005년 8월 3일 필리핀 현지인 훈련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11기를 훈련하여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일부는 약속한 선교사역 기간을 마치고 선교적 마인드를 가지고 현지 교단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일부는 선교사역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현지 교단과 미션 파트너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언어권별로 훈련원을 세워 열악한 환경을 가진 나라에서 위탁을 받은 현지인들을 돕는 영어권 저 너머의 미션 플랜팅을 실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심장이 뛰는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우리의 시선을 조금 돌리고, 우리의 생각을 조금 바꾼다면 우리들이 사역하는 나라에서도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교단과의 협력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가 현지 사역자를 한 명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에게 교단과 관계를 갖도록 소개해 달라고 해 보세요. 교단을 찾아가 인사하며 교제하는 것으로 신뢰를 쌓아 가시면 됩니다. 내가 하는 사역을 나누어 주고 싶다고 말하기 전에 교단에서 제안해 올 것입니다.
마무리를 제가 2021년 8월 17일 새벽에 꾼 꿈 이야기로 하려고 합니다. 꿈 내용은 깨고 보니 잘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꿈속에서 ‘비욘느’라는 단어를 애써 외우려고 노력했고, 꿈의 느낌은 '현실 세계를 뛰어넘어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비욘느를 구글에서 찾아보니 비욘드(beyond)라는 단어가 검색되었습니다. 발음이 비슷하여 계속 그 의미를 찾아보았는데요. 사전에서는 beyond ‘~넘어’, ‘~저편’ 이란 뜻으로 쓰이고, go beyond는 ‘~범위를 넘다’ 로 쓰입니다. get beyond는(장소, 단계 등을) ‘뛰어 넘다’ 로 쓰입니다.
성경에서는 73구절에서 beyond 라는 단어가 검색되었고 대부분 ‘요단 저편’ 으로 할 때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구절들을 주석에서 찾아보았는데 구약에서는 ‘라아보르’ 건너편, 맞은편의 뜻으로 원형은 ‘아바르’이며 민 22:18 등 550회 사용되었습니다. 신약에서는 ‘휘페르바이네인’ 으로 그 기본형은 ‘휘페르(~넘어서)+바이노(걷다)’ 살전 4:6(KJV)등 구절에서 쓰였습니다. 곧 ‘금지되어 있는 선을 넘어가다’ 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했습니다.
아내와 대화하는 가운데 설교가들은 ‘look beyond’(뛰어넘어 보다) 또는 ‘look over’(민 32:8, 수2:1 NIV)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고 알려 주었는데요. 아내는 모임에 참석했다가 현지 설교가를 통해 look beyond 를 알게 되었고 감동이 되어 오래전에 작은 조약돌에 페인트로 글씨를 써넣었던 조약돌도 보여주었습니다. 이렇게 알게 된 beyond라는 단어는 집안에서 화장품 이름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막 4:35)라고 했을 때 감동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고, 잘 알지 못했던 단어가 저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교단과의 협력’이라는 단어가 가슴 뛰게 하는 ‘look beyond’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