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에즈마이아 공동체를 향한 회복과 부흥의 말씀
권대호 목사(목원교회 담임, 바울선교회 이사)
왜 에스라 말씀인가?
필자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우리 목원 교회 공동체와 함께 에스라와 느헤미야서 말씀을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목원 공동체가 에스라와 느헤미야 공동체를 이루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 공동체는 느헤미야 8장 이하에 나오는 놀라운 부흥을 경험한 공동체이다. 이렇게 느헤미야 8장 이하의 부흥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회복이 일어나야 했다. 그래서 1차 포로 귀환한 스룹바벨 공동체는 성전을 건축하면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고, 3차 포로 귀환한 느헤미야 공동체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함으로 나와 너, 우리라는 공동체가 회복되었다. 성전을 건축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성벽을 건축함으로 나와 너, 우리라는 공동체가 회복된 것이다. 이제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 나와 너 우리의 관계가 회복되자 느헤미야 8장 이하를 보면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통하여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 나는 이번 코로나 상황을 보면서 우리 안에 영적 부흥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관계가 회복되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에스라 설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스가랴 1장은 “하나님의 남은 자가 누구인가?” 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에스라서에서 말하는 남은 자는 누구인가? 스 1:5절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사람이 남은 자이다.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았다는 말은 하나님이 그 마음을 움직인 사람을 말한다. 그렇다면 그 마음을 하나님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가?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그 말씀을 통하여 그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1차 포로 귀환에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함께 했던 이유는 이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말씀 교육이 이루어졌고 그 말씀 교육을 통하여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에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이다. 그 남은 자 1차 귀환에 동참한 49,897명을 마치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수고한 사람들의 수고를 하나님이 반드시 기억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 사람의 위인이 아니라 무명의 남은 자 49,897명과 함께 일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스 3:1절 “이스라엘 자손이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들은 포로에서 귀환한 다음에 가장 먼저 한 일이 일곱째 달 초 하루에 모여 나팔절 절기를 지킨 일이다. 이들 남은 자에게는 예배가 가장 우선이었다. 그래서 예배를 멈추지 않았다. 스 3:8절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공사를 시작하고” 그래서 이들 남은 자들이 예배를 사모함으로 성전 건축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사마리아인들이 성전 건축에 참여하고 싶다고 하였다. 스 4:3절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라고 하면서 스룹바벨 일행은 사마리아인 참여를 거부하게 된다. 왜일까? 지금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한데 그리고 이들을 거부하면 엄청난 방해가 있을 것을 알면서도 왜 이들 사마리아인들의 참여를 거부한 것인가? 그것은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섞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이 남 유다가 왜 망했는가? 죄와 우상과 섞였기 때문에 망한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남은 자들은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섞이지 않겠다. 타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죄에 대한 단호한 자세가 있었기에 회복이 부흥이 일어난 것이다.
타협하지 않은 대가로 BC 536–BC520년까지 16년 동안 성전 건축이 중단된다. 그리고 하나님이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를 보내 다시 성전 건축을 독려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 성전을 건축하게 된다. 그러자 다시 반대가 시작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이들이 정체성을 회복하여 이렇게 고백한다. 스 5:11절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예전에 건축되었던 성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 이제 이스라엘이 정체성을 회복하게 되어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이기에 누구의 반대든, 어떤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한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어떤 반대에도 불구하고 건축을 강행하게 되고 결국은 고레스 왕의 조서를 발견하고 경비를 왕실에서 내리겠다는 조서까지 받게 된다. 그래서 BC 520에서 성전 건축이 다시 시작하게 되고 BC 516년에 스룹바벨 성전 건축을 완공하게 된다. 그래서 성전 건축을 완공하고 즐거이 봉헌식을 하는 것으로 스가랴 6장이 마친다.
스가랴 7장부터는 에스라가 주도하는 2차 포로 귀환이 일어난다. 에스라는 학자 겸 제사장으로 말씀 운동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돌아와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예루살렘 상황은 더 심각했다. 말씀 운동을 일으켜야 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부터 이방 여인과 섞임의 죄 가운데 있었다. 스 9:3절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이러한 섞임의 상황 가운데 에스라가 기가 막혀 앉아 있다. 기가 막혔다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메쇼맴”이다. 이 말은 모든 희망의 문이 다 닫혔다는 말이다. 지금 예루살렘의 영적 상황은 모든 희망의 문이 닫힌 메쇼맴의 상황이다. 그래서 에스라는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고 앉아 있다. 이때 스가냐가 이렇게 말한다. 스 10:2절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라고 하면서 절망 가운데 통곡하며 기도하는 에스라에게 아직도 이스라엘에게 소망이 있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왜 소망이 있는가를 말한다. 스 10:3절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하나님의 명령을 떨고 준행하는 자 남은 자들이 있기에 아직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스 10:4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라고 말한다. 소망이 있다고 말할 뿐만 아니라 일어나소서 우리가 힘써 돕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에스라는 다시 일어나 개혁하게 되고 다시 회복하게 되는 역사를 이루게 된다. 회복은 부흥은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라고 말하며 남은 자로 사는 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이 시대의 남은 자들인 우리에게 이번 에스라 강해를 통하여 우리 목원교회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영적 회복과 부흥을 경험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 시대의 남은 자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말씀을 마음에 두고 배우는 일에 열심히 하였다. 때때로 우리 앞에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상황들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우리의 정체성을 기억하며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다”라는 고백으로 상황이 아니라, 환경이 아니라,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생각하며 예배를 멈추지 않고 드리게 되었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예배는 멈추지 않겠다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하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결코 타협하지 않으며 예배의 자리를 지켜 나갈 때, 예배 때마다 주시는 예배의 감격과 은혜는 참으로 놀라웠다. 코로나 상황 가운데서 우리가 때때로 절망하고 낙담할 때에도 스가랴가 한 “아직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나니”라는 말을 기억하며 상황이나 환경이 아니라 눈을 들어 주를 소망을 보려고 했다. 그랬더니 낙담할 상황에서도 소망을 보게 하시고 낙담하지 않으며 공동체 가족들이 서로를 향하여 “일어나소서 우리가 힘써 도우리니”라고 고백하며 서로서로 힘이 되어 주었다. 이번 코로나 상황에 에스라를 나누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말씀으로 역사하신다. 우리 목원 공동체가 그리고 이 땅의 모든 교회 공동체들이 에즈마이야 공동체가 되어 회복과 부흥을 경험해 가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