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이야기  / Mission Story
[칼럼]혼돈의 시대에 사역의 재충전을 준비한다 | 엄00 선교사
BY 관리자2023.04.25 21:4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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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혼돈의 시대에 사역의 재충전을 준비한다

글. 엄00/최00 선교사(서남아 N국)

 

혼돈과 환난의 현실

지금과 같은 혼돈과 환난의 상황에서 많은 영적 대안이 나타나고 ‘이것이다, 저것이다’며 정답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물론 우리 시선을,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대안들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답을 행할 힘이 우리 안에 없다는 현실과 이 세대를 향한 주님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한 채 내보내는 많은 대안이 우리 짐을 더 무겁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을 숨기심이 하나님의 영광”(잠 25:2)임을 안다면 우리는 누구도 쉽게 대안을 제시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겸손히 솔로몬처럼 주의 뜻을 간청할 것이다. 그러면 혼돈과 혼란 가운데 예비하신 숨은 보화를 얻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많은 불편과 어려움과 답답함이 우리를 엄습하고 있다는 현실은 누구나 직시하지만 세상 임금들이 방자해지고 교회들이 배도하는 일과 연약함에 빠진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를 물어야겠다. 만약에 우리 주께서 이 모든 현실을 통해 ‘누가 나의 마음을 품고 있는지’ 찾으신다면 우리가 발견되어질까? 그러나 분명히 아는 것은 지금도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고 마지막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도처에서 보고 들을 수는 있다. 

 

왜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는가?

인간은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다가가 닮아가는 피조물이다. ‘우리 영혼의 가치와 탁월함은 그 영혼이 사랑하는 대상에 의해 측정된다’(헨리 스코우갈)고 했다. 즉 누구든 자기가 경배하는 대상을 닮아가게 되어 있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또 닮은 만큼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안에 거한다. 


아이를 보면서 ‘누구를 닮았다’ 그러는데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고 말하지 못하는 세대가 되었다.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처럼 되는 일에 마음을 쏟았고, 주님이 가르치시고 실천하신 것을 행하며 살았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  바울이 믿음의 삶을 살도록 외칠 수 있게 된 것은 그 길에 대한 확신,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풍성한 연합에서 흘러나오는 지혜와 믿음이었다. 연합이 없는데 어찌 닮을 수 있겠는가? 주님을 닮지 못한 것은 죄의 결과이다. 성경 전체가 나타내는 죄의 의미는 주와 상관없이 육신의 몸을 통해서 들어오는 정보를 따라 판단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의 모든 구조이다. 몸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빼앗겨 판단과 생각의 자급자족이 이루어지고 받은 정보를 기준으로 나 스스로가 판단의 주체가 되고 자기 몸의 통치자가 되어버린 상태가 바로 죄이다. 

 

사역자의 영성을 방해하는 요소들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뜻이 있는데, 죄란 우리 뜻을 고집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계획을 굽히지 않으신다. 비유를 들어 설명하자면 우리의 생각은 자주,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두 마리의 말을 동시에 올라타려는 것과 성령으로 충만한 것과 세상에 충만한 것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불가한데도 오늘까지 이 패러다임은 늘 인기가 있어 사람이 몰리는 경우이다. 

 

지금은 모두가 힘든 때이다

우리의 모범이신 주님은 십자가에서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옆에 있던 강도를 돌아보시고 축복하셨다. 내 고통만 돌아보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고통 가운데서도 이웃을 향한 주님의 숨은 뜻을 보고서 상대를 살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이 세대와 오고 오는 세대의 사명이다. 바울은 믿음으로 장성하는 것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풍성해지는 것을 연결하고 있다.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살후 1:3)  

 

우리의 영성은 우리와 우리 이웃을 향하도록 되어 있다. 성령님은 바로 이 일을 위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사실 믿는 자에게 있어서 매일의 삶은 주 안에서 홀로 있는 작은 순간들이 모인 것이요, 주 안에서 함께 있는 사람들과의 작은 순간들의 모임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혼자 있는 시공간이 소중한 만큼 상대와 더불어 있어야 할 시공간도 매우 소중함을 가르쳐 준다. 그 시간과 공간을 통해 연합과 임재, 치유와 위로, 도전과 죄를 회개하는 일들이 일어나는데, 만일 우리가 이것을 잊고 있다면, 그리고 다른 정의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우리의 영성은 매우 사유화되고, 개인주의화 되고, 자기실현을 영성화한 변질된 괴물과 같은 형태가 되고 만다. 

 

자기중심적 영성이 주는 불편함

오순절 성령이 임하시기 전에 제자들 역시 주님의 말씀을 듣는 대신 그들이 듣고자 하는 것과 되고자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막 10:37, 45; 눅 22:27) 


야구 선수인 피트 로즈(Pete Rose)는 선수로서의 성공담을 말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잘하지 못하는 부분을 연습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잘하는 것을 연습하지요.” 


자기에게 길들어 익숙해 있고 자기가 선호하는 영성 유형에서 여유를 가지고 자기에게 부족한 영성의 반대편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정서적, 실천적 두 유형에서 불균형이 드러나게 되어 성장이 지체되거나 이중인격이 되고,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며, 몸을 불사르고 시간을 바쳐도 결국 열매 없는 일에 참여하게 된다. 


사실 우리의 독특한 개성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내어놓는 좋은 선물들 중의 하나다. 그리고 우리의 기질이 다양한 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영광스러운 다양성의 일부이다. 하나님은 이 다양성 안에서 우리를 양육하셔서 전인성에 이르도록 계획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이를 도우신다. 문제는 서로가 자신의 독특성으로 그리스도의 몸에 기여하고 그리스도 안의 전인성을 향한 우리 자신의 성장에 기여한다는 것을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을 틀 속에 서로를 집어넣으려고 하고, 자신의 안경으로 상대를 보고 자신의 성향에 적합한 자와만 교제를 누리려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존재의 깊은 왜곡(인본주의화 되고 사유화된 것들)을 다루시기 위하여 여러 사람에게 여러 은사를 주시고, 여러 개성을 주셨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균형 잡힌 성장을 위해 서로를 위한 기도와 서로의 짐을 지는 것과 배려하는 믿음을 필요로 한다.

 

지금 그리고 미래, 모두 회개의 때이다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겔 9:4)  


타락한 문화 속에 살면서 비애와 고뇌를 심각하게 느끼지 못한 채 자기 일에만 집중한다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자이다. 바깥 공기가 심하게 오염되어 있는데 경건한 자를 볼 수 있겠는가? 만약 우리가 그러한 자를 발견한다면 그는 회개의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옷을 씻어야만 하는 시대 중심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 세대는 회개해야 사는 세대라 불러야 한다. 불행하게도 이 세대에 주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자가 적은 것은 회개하는 자 보기가 희귀해졌기 때문이다. 

 

혼돈과 환난의 때 헌신자에게 주시는 은혜

지금과 같은 세대는 이전도 있어 왔고,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믿음을 따라 이기기도 하며, 더 깊은 헌신으로 발을 내디딜 때마다 하나님은 그분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점차 증가시키시고 다음 세대가 이어받아 더 큰 역사를 나타내도록 새롭게 준비시키신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각각의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은 시대마다 자신을 위해 큰일을 할 신실한 헌신자를 찾으시기 때문이다. 더 나은 언약으로 인해 더 나은 일을 기대함, 더 많은 것을 기대하며 더 깊은 데로 밀치고 들어갈 수 있는 자에게 주님은 자신의 영으로 기름 부으신다. 그래서 여전히 이전 시대의 축복을 가르치고 만족하며 사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요 14:12-16)  지금이야말로 참된 헌신을 주께 드릴 때이다. 

 

재충전의 중심을 이루는 십자가

우리의 영안이 어두워져 가는 순간 하나님은 숨으시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마음을 채울 수가 없다. 영안이 어두워지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 피조물을 통해 마음의 공백을 채우려 한다. 본대로, 들은 대로, 느낀 대로 행하려 한다. 뿐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십자가는 우리 마음을 세상으로 채우려는 모든 욕망을 죽이는 통로이다. 


앞에서 언급한 상황들이 이루어지도록 이어주는 도킹 지점이 바로 십자가이다. 올바른 영성과 방향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십자가를 거쳐 나오기 때문이다. 


베드로 역시 자신의 생명을 잃어버려야만 예수님의 생명으로 채워지고 주와 동일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준비하는 것임을 나중에야 깨닫는다. 지금도 주님은 베드로에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자주 넘어질 것을 아시면서도 기도하시고 기다려 주신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1-32)

 

불행하게도 이 세대는 죽는 것 외에, 자존심을 버리지 않는 것 외에 다 잘하는 세대가 되었다. 선교사조차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왔어도 자존심은 기내용 캐리어에 담긴 채 여정을 시작한다. 그래서 “자기 십자가를 지라(마 16:24)”고 할 때마다 이 자존심이 우리를 넘어뜨린다.

 

글을 마무리하며

이 혼돈과 환난의 때 그러나 숨은 축복이 있는 때에 무지한 인간에 대한 가장 잘 어울리는 정의 중 하나는 하나님과 멀어져 기쁨과 감사, 믿음도 없이, 기도를 모른 채 두 발로 비틀거리며 걷는 짐승일 것이다. 


지금이 헌신의 때이고 믿음의 보화를 캐낼 때이다. 이제 일어나 이 시대를 향해 탄식하자. 우리와 우리가 머무는 이 땅은 주의 몸 된 교회도, 목자도, 양무리도 위험에 처해 있다. 우리는 주신 말씀을 따라 위정자와 배도하는 교회와 길 잃은 양무리를 위해 저주 대신 축복하고 기도함이 큰 믿음이다. 허물은 덮어주고 참 믿음의 사람을 일으키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다. 


주님은 이 세대 가운데 “누가 나의 마음을 품고 울며 기도하는지” 더 관심을 두신다는 사실이다. 판단은 우리의 영역이 아닐 뿐 아니라 모두를 불편하게 하고 힘들게 한다. 이 시대를 위해서 믿음 있는 적은 무리가 필요하다. 사역자가 적어지고 있음을 걱정해야 하겠지만 한 사역자가 30, 60, 100배의 열매를 맺도록 ‘가서 가르쳐 지키게’ 하지 못하고 있음이 더 큰 문제이다. 

 

바우리 가족으로 초대받은 자가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 새롭게 주어졌다. 새만금으로 옮긴 것은 본부 건물과 가족만은 아니다. 새 시대에 새 일을 하도록 적합한 무리를 불러내어 옮기신 것이다. 이 세대 가운데 우리가 믿음을 잃지 않기만 한다면 우리는 먼저 받은 믿음의 역사를 이웃에게 넉넉히 나누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무엇보다 숨은 기회와 축복의 때이다. 알곡과 가라지가 나누어지고, 알곡끼리 넉넉히 사랑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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