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단상
김성기 목사(이리동부교회 담임, 바울선교회 이사)
나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목사인 아버지께서 교회의 사역뿐 아니라 교인들의 어려운 일을 맡아서 처리하시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목사가 되면 ‘사람들을 도우면서 사는 보람된 삶이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나도 나중에 목사가 되어야지’라는 생각과 목회에 대한 꿈을 갖게 되었다.
신학 공부를 마치고 1989년 3월 익산에 있는 어느 시골의 아담하고 정겨운 교회의 담임 전도사로 부임하여 3년을 사역하고 목사 임직을 받았다. 그 후 전주안디옥교회에서 5년, 영국에서 언어 공부와 선교사 훈련원(New Tribes Mission)에서 5년, 경기도 원당제일교회에서 16년, 그리고 지금은 이리동부교회에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 받은 것도 감사한데, 목사로 부름 받고 지금까지 온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삶을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감사할 뿐이다.
안디옥교회 부목사로 부임한 후 대학부와 청년부를 데리고 해외 비전트립을 다녀올 때마다 부딪히는 문제는 외국어의 한계였다. 그러나 비전트립이 끝나고 돌아온 뒤 교회 사역을 감당하면서 언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물론 핑계일 수 있지만) 하지만 언젠가는 외국어를 공부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995년 4월 남원제일교회를 섬기며 신학대학에 편입하여 다니던 동생 내외가 두 아들을 남겨둔 채 먼저 하나님 곁으로 떠났다. 동생 가족은 토요일에 군산의 부모님 댁에서 가족 모임을 하고, 주일 아침 일찍 남원의 섬기던 교회 사역을 위해 가던 중이었다.(동생은 고등부 교사, 제수弟嫂는 성가대 반주자) 동생 부부는 반대 차선에서 졸음운전으로 중앙선을 침범한 차량에 받혀 세상을 떠났다.
그 후 남겨진 동생의 두 아들을 입양하여 키우는 시간은 매우 힘들었다. 갑자기 바뀐 집안의 상황을 나의 두 딸(당시 8살, 6살)은 이해하지 못했다. 두 딸들은 “우리는 엄마와 아빠를 사촌 동생들에게 빼앗겼다”는 말을 자주 했다. 나의 부모님께서는 월요일마다 우리 집에 오셨는데, 손자와 손녀를 편애하셔서 우리 가정을 평안하지 못하게 했다.
이에 “하나님, 이 환경을 변화시켜 주옵소서”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시작했다. 그렇게 2년을 지내면서 부모님과 잠시 떨어져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외국어를 공부할 수 있겠다는 생각과 맞물려 영국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렇게 떨어져 살게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편애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었다. 영국에서의 생활을 통해 아이들이 사촌이 아니라 형제가 되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환경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은 그 택함 받은 자녀들을 방치하지 않으시고 늘 선한 길로 인도하셨음을 확신한다.
나는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중학
교 1학년 여름 방학을 남원에서 사역하시던 부모님의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쯤 교회 앞에 있는 학교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누군가 내게 “너는 내 것이라”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었다. 당시에는 너무 겁이 나서 집으로 뛰어 들어가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 아들의 삶을 택하시고 언제나 함께하신다는 음성일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장 1절)라는 말씀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후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며 내가 하나님의 것으로 인침 받았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다! 어린 나에게 음성으로 약속하신 하나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셨다. 비록 내가 깨닫지 못할지라도 언제나 함께하셨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목사가 된 나는 전주안디옥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면서, 이동휘 목사님으
로부터 나의 목회 방향에 관한 생각을 정립하게 되었다. 그 후 영국에서 선교사 훈련을 마치고 버밍험에 있는 샐리옥칼리지의 선교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을 때 고양 원당제일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았다. 당시 28명의 교인들이 있었고, 회계 보고를 받았을 때 약 5억 원의 은행 빚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기도하게 되었다. “하나님 나의 성품을 아시잖아요. 단돈 만 원도 빌리지 못하는 저에게 5억 원의 빚이 있는 교회에 오게 하시나요?” 약 한 달이 지날 때쯤 ‘김 목사, 이것은 너의 빚이 아니다. 내가 너를 이곳에 보낸 것은 목양을 하게 하기 위함이다’라는 확신이 왔다.
그 후 교인들을 모아 놓고 ‘전주 안디옥교회를 모델로 목회하겠다’라고 목회 비전을 나누었다. 전주안디옥교회에서 매년 두 차례(봄, 가을) 진행하는 선교바자회에 교인들을 데리고 갔다. 3년 동안 설거지도 시키고 선교바자회를 직접 체험하게 했다. 이에 교인들이 ‘우리도 해보자’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매년 두 차례 선교바자회를 열어 선교 사역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갔다. 선교바자회를 통해 해외에 교회도 짓고, 신학대학에 장학금도 전달하고, 농촌에 있는 어려운 교회의 예배당도 수리해 주는 등 여러 사역들을 보람차고 재미있게 감당했다.
2018년 11월에 이리동부교회로 부임하게 되었다. 2019년도 정책 당회에서 “매년 우리 교회 예산의 1%씩을 선교비로 올려 책정해 주세요”라고 부탁을 드렸다. 장로님들께서 마음을 모아 주셔서 조금씩 선교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와같이 선교의 비전을 통해 이동휘 목사님은 나의 목회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선교에 뜻을 세우고 미약하게나마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감당하며 목회에 전념하고 있다. 그저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고 계심에 감사할 뿐이다.
임마누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