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리 칼럼
최도영 아프리카 권역장
우리에게는 너무나 머나먼 미지의 땅 아프리카는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문화와 자연환경, 역사적 유산을 가지고 있는 대륙이다. 전통과 현대가 함께 하고,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며, 최첨단 기술과 석기 시대의 모습이 함께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프리카를 떠올릴 때 우리에게는 막연한 두려움과 호기심 그리고 연민의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가난과 기근, 질병과 내전 등이 이 대륙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에 대한 모든 부정적인 선입견은 다분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아프리카의 어느 한 부분을 확대하고 강조한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물론 이러한 어려움들과 문제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프리카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아프리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프리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상황과 환경 그리고 역사적 배경과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 가운데 짧지 않은 세월을 보냄 받은 땅 아프리카에 와서 선교사로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사실을 날마다 뼈저리게 느끼며 경험하며 깨닫게 된다.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게 된다는 말로 나의 무지와 부족과 미숙함을 정당화할 수 없음을 나는 잘 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많은 학생이며 아프리카는 나의 스승이고 하나님 나라 선교를 위한 배움의 땅이요 도전의 땅이며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아프리카는 아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면적이 넓고 인구가 많은 대륙이다. 유엔의 ‘세계 인구추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아프리카 대륙의 총인구는 약 13억 명 이상이며 이는 전 세계 인구의 약 17%에 해당한다. 또한 아프리카 대륙은 인구의 감소 문제로 심각한 우리 나라와는 달리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지역이다. 특히 2086년으로 예상되는 인구 정점 시기까지 늘어날 전 세계 인구 24억 명의 대부분은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서 태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현재 아프리카 연합(African Union-2002년에 아프리카 경제 공동체와 아프리카 통일기구를 통합하여 창설한 아프리카 대륙의 국제 정부 간 연합체)에서는 서사하라를 정식으로 국가로 인정하여 아프리카 전체 국가(북아프리카 포함)를 55개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나라들은 저마다의 독특하고 다양한 인종, 관습, 문화, 기후, 역사 등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중 면적이 가장 넓은 나라는 알제리이며 가장 작은 나라는 감비아이다.
아프리카 대륙은 19세기 유럽 제국주의 열강들이 영토 쟁탈전을 벌이며 아프리카 대륙의 대부분을 식민지로 삼았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때 미국에서 해방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일부 정착하여 세운 나라 라이베리아와 많은 피를 흘리며 이탈리아와 싸웠던 에티오피아가 유일한 독립국으로 유지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점차 여러 나라들이 독립을 얻게 되었지만, 아프리카에서의 제국주의 식민지 역사는 그 이후 아프리카 내에 발생하는 수많은 분쟁과 부족 간의 갈등과 내전의 씨앗이 되었다. 수많은 다양한 부족이 살아가는 아프리카에는 수많은 부족 언어가 존재한다. 이중 프랑스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한 국가가 가장 많으며 그 이외에 나라별로 아프리칸스어, 아랍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그리고 스와힐리어 등이 사용되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의 종교는 크게 기독교, 이슬람, 전통 종교로 나뉜다. 무슬림 인구는 2009년 통계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전체 인구 중 15%에 해당하는 2억 4,100만 명으로 추산되며 이러한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현재 기독교인이 가장 많은 대륙은 아프리카이다. 아프리카의 기독교인 수는 2018년 통계 기준으로 6억 3,100만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1900년도에 약 8~9백만(전체 인구의 8~9%)이던 기독교인은 100년이 지난 2000년도에는 3억 3,500만 명으로 가파르게 증가하였다. 이는 전체 인구의 45%에 해당한다. 이런 기독교의 성장은 기독교의 무게 중심을 서구 사회에서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등 비서구 사회로 이동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또한 기독교가 불모지였던 아프리카가 이제는 기독교가 주류 신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교회 역사적으로 보면 1~3세기 초대 교회의 중심 무대는 북아프리카였다. 예를 들어 교부 오리겐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출신이었고 교부 터툴리안과 어거스틴은 북아프리카 카르타고 출신이었다. 7세기 초 이슬람의 발흥과 더불어 이 지역의 기독교가 거의 소멸되었지만 이집트의 콥틱 교회와 에티오피아의 에티오피아 정교회를 통하여 그 깊은 뿌리가 아직까지 살아서 내려오고 있다. 그러다가 18세기 말에 영국과 미국의 개신교의 부흥이 일어나면서 아프리카에 영미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오늘날 사하라 남쪽 아프리카 기독교의 부흥은 이들 초기 선교사들의 희생과 헌신과 수고의 열매들이다. 그러나 순수한 해외선교의 열정과 더불어 아프리카의 풍부한 지하자원과 노예 인력을 탐낸 서구 열강들의 침략과 착취가 순수 선교와 동시에 이루어진 점은 뼈아픈 흠이다, 그래서 순수 기독교를 사하라 남쪽 아프리카 토양에 심고 뿌리내리고자 했던 초기 선교사들은 선교 활동 이외에도 이런 제국주의적 착취와 침략에 맞서 싸워야 했다. 19세기에 아프리카에 본격적인 서구의 선교가 시작되었지만, 그 후 두 세기 동안 아프리카 교회는 인종차별주의와 서구 교회의 종교 식민주의와 맞서 싸워야 했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아프리카에는 오순절 운동을 통해 교회가 급속히 성장하였다. 사하라 남쪽 아프리카에 서구 선교사들에 의해 복음의 씨가 뿌려진 이후 이 복음의 씨앗은 아프리카 전역으로 점점 퍼져 나가면서 아프리카 교인들은 스스로 자기 문화에 맞게 기독교에 적응해 나가고 있다. 특히 오순절 운동의 특징인 열정적이고 뜨거운 찬양과 기도, 치유와 기적 등이 이들 아프리카 문화에 잘 맞고 있다. 서구 선교사들에 세워진 제도권적 교회는 변화를 모색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아프리카인들이 주도하는 교회 운동(African Initiated Churches)을 통해 아프리카식 교회를 개척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에 많은 문제점과 비 성경적인 요소들이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프리카 기독교 인구의 급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아프리카 교회에 대한 한국 선교사들의 역할과 책임이 분명히 상존한다고 본다. 정확한 역할과 책임을 알기 위해서는 아프리카 교회를 이해하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문제는 무엇인지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필요와 문제를 정확히 이해할 때 그 필요를 채우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과 책임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몇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아프리카 교회 내에서 선교사를 발굴하고 훈련하고 자신들의 힘으로 파송하는 것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수준은 아직까지 낮은 편으로 보인다. 한 예로 우간다 성공회(Church of Uganda)는 복음적인 교단이고 우리나라보다 선교의 역사가 오래되고 현재 등록 교인 약 천이백만 명을 가지고 있는 거대 교단이다. 그럼에도 선교사 훈련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서구 선교사에 익숙한 아프리카 교회와 지도자들에게 자신들의 선교사를 열방 가운데 파송한다는 것은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안타깝지만 아프리카 선교사 후보생들이 헌신과 희생과 섬김의 마음으로 선교사로 드려지기보다는 물질적 풍요와 특권과 신분 상승의 기회로 삼으려는 잘못된 숨은 동기가 발견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 선교의 동반자로서 인정하고 더불어 아프리카 교회 내에 존재하는 선교에 대한 왜곡되고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함께 노력하며 선교를 받는 교회에서 선교하는 교회로서 이 시대 하나님의 나라 선교의 준비된 자원으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경적인 세계선교의 비전을 심어주고 도전하며 함께 협력하며 나아가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본다. 감사하게도 현지인 교단과 단체에 의해 선교사 숫자가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이지리아의 경우 30여 교단 및 선교단체에 소속된 2,900명의 현지인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는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이 쓰시는 귀한 선교의 자원들이다.
앞서 언급한 아프리카 기독교 인구 급성장의 이면에는 어두운 면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 혼합주의와 선교사에 대한 의존심 등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제도권적 교회의 성장이 정체되거나 후퇴하고 있는 반면, 아프리카인들이 주도하는 교회 운동(African Initiated Churches)과 아프리카 문화적 토양에 맞는 오순절 운동의 영향으로 뜨거운 기도와 찬양, 기복 신앙과 치유와 기적을 강조하는 가운데 비성경적이고 이단적인 가르침들이 여과 없이 교회 안팎밖에서 전해지고 가르쳐지고 있다. 이로 인하여 기독교와 아프리카 전통 종교의 요소들이 혼합되고 혼재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더불어 선교사에게 지나치게 의지하려는 태도도 극복하고 넘어야 할 커다란 장애물이다. 아프리카 교회 안의 물질적, 영적으로 선교사에게 의존하려는 마음을 키운 것에는 서구 선교사들과 후발 주자인 한국 선교사들의 책임도 있다고 본다. 이러한 기독교 혼합주의와 선교사에 대한 의존심의 원인은 다분히 신실한 현지 기독교 지도자들의 부족, 성경적 신학의 부재, 교회 안에서의 교육과 훈련의 부재 등을 들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선교사들은 현지 교단과 교회 연합체와의 연합 사역을 통해 목회자와 지도자들을 위한 지속적인 성경 교육과 훈련과 성경적 신학을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다.
이슬람의 지속적인 팽창 속에서 아프리카 교회들이 보이는 무관심한 태도와 위기의식의 부재 또는 부족은 선교사들에게 커다란 도전과제이다. 아프리카 내에 이슬람의 성장은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우간다의 경우 지난 몇 년간 7%의 가파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간다 교회의 무술림에 대한 선교에 대한 관심은 미비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전체적으로 볼 대 아프리카 전통 종교들과 기독교 색채를 띤 각종 이단들의 발흥과 팽창도 큰 도전 과제이다. 그럼에도 아프리카 교회들이 이러한 도전에 대처할 수 있는 영적인 분별력과 성경적인 이해가 부족하고 이슬람과 이단에 대하여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선교사들이 아프리카 교회들을 도전하고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교회가 이슬람에 대한 선교 전략을 세우고 이단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언급해야 할 부분은 바로 아프리카에서의 14세 미만의 젊은 세대 인구의 폭발적 증가이다. 이는 헌신된 선교사들에 의해 이 아프리카의 미래를 짊어질 다음 어린 세대들과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프리카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장기적 선교 전략을 현지 교단, 교회들과 협력과 동역을 통해 함께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아프리카의 수많은 선교적 필요성과 가능성을 제대로 이해하며 아프리카 문화, 세계관, 역사, 환경과 상황의 다양성과 복잡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하며 현지의 특성에 맞게 적절하고 효과적이며 실질적인 선교 전략을 가지고 아프리카 선교를 접근하려는 배움과 노력과 실천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는 지금 더 많은 헌신 되고 신실한 한국 선교사들을 요청하고 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
* 이 글에 기록된 여러 통계 수치들은 정확히 일치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는 참고한 자료마다 조금씩 다른 통계 수치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 문화, 역사, 환경이 다름에도 이 글에서 언급한 아프리카는
사하라 사막 북쪽에 위치한 북아프리카 나라들을 포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