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사랑하면서 세계를 사랑합시다
사형선고를 받은 안중근 의사에게 보낸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의 비장한 편지를 펼쳐 본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나라를 위한 일이니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함으로 받게 된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편지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나오너라.” 안중근 의사는 천국에서 만나자는 가슴 아린 답을 어머니께 보냈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답게 31세로 뤼순 옥에서 순국(殉國)한 안중근의사의 마지막 이별 장면이다. 나라 빼앗긴 슬픔과 일본의 만행에 의분을 품고 우리 민족은 한결같은 애국심으로 일어선 것이다.
복음에는 국경이 없어도 그리스도인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뼈있는 교훈을 믿음의 선배들이 가르쳐 주었다. 온 세상 끝자락까지 사랑의 가슴을 품고 복음 들고 쫓아갈 사명을 가진 사해동포(四海同胞)의 사상을 성경에서 배운 자들이다. 그러면서도 바울처럼 조국을 위해 울어야 한다(롬 9:3) 이방인선교사로 세계를 깊이 품은 선교사이면서 동시에 자기 동족 구원을 위해서 그치지 않는 고통을 품고 눈물을 쏟았다. 기미년 삼일만세 당시 기독교인은 국민의 1%인데도 33인 중 기독교인이 반절 숫자를 차지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은 나라를 끔찍하게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교회는 애국자들로 가득 찼었다. 대한민국 건설의 기초도 그리스도인들이 그 귀중한 몫을 감당했다. 성경 속의 인물이 거의 다 조국의 장래를 위해 애태웠던 자들이란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왕을 위해 기도하라 했고 세금을 바치고 권력에 복종하라고 자세히 가르쳤다.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라고 정의한다(롬 13:1).
세월호 침몰사고로 나라의 허술함과 옹골차지 못한 치부가 온 세상에 공개되었다. 빨리 빨리란 조급증과 대충 대충의 부실함이 나라 전체에 깔려있어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슬프게도 멸시를 받고 있다. 숙달된 장인(匠人)은 없고 얼치기만 판치는가 보다. 조국은 지금 국상 중이다. 비극을 일으킨 파렴치한 당사자가 이단이란 낙인은 찍혔지만, 일단 기독교의 이름이 들어간 것 역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또 하나의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기독교의 수난이 질기게도 이어진다. 기독교인까지도 악의 대열에 같이 빨려가고 있다는 슬픔이다.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들이 곳곳에 깔려 있었다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만 쌓이게 된다.
비느하스의 창(민 25장)이 필요한 시점 같다. 죄악의 행위를 중단시킨 용감한 한 청년의 용기가 위기에 몰린 나라를 구했다. 모압 여인들의 간교한 미인계에 걸려 신전에 가서 절하고 음행에 도취되어 그 악행으로 염병에 걸려 죽어가는 무서운 수렁에 빠졌을 때 비느하스가 용기 있게 일어나 모압 여인을 끌고 진으로 들어오는 파렴치한 남녀를 창으로 찔러 죽임으로 음란의 바람을 차단시켰고 그 공동체를 살렸다. 풍전등화 같은 위기의 나라를 가까스로 구출한 정의의 사람들로 기독교인은 새롭게 무장해야 한다. 기독교인라면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당당한”(아 6:10) 기품을 가져야 한다. 나라도, 교회도 성경의 기초 위에 꼼꼼히 정비하지 않으면 안 될 숨 막히는 순간에 서있다. 나라를 구하자. 교회를 회생시키자. 민족의 가슴에 모두 예수님을 품게 하자.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