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선교회 캠페인
함부로 이름 짓지 말라, 창조적인 이름을 지어라
현장에서 끌려온 간음한 여자는, 잔인한 군중들의 돌에 맞아 죽을 절박한 순간이 되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 는 예수님의 단호한 말씀 한마디로 폭도들은 해산되었다. 오돌오돌 떨고 있는 그 여자 앞에 예수님은 다가가셔서 말씀하신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다시는 가서 죄를 짓지 말라.” 살길을 열어 주셨다. “음탕한 여인”이라던가, “몹쓸 쓰레기 인간”이라던가 어떤 이름도 붙이지 아니했다. 자기 자신을 팔아넘기는 배신자 가룟 유다가 적군의 앞잡이로 스승을 체포하려고 입맞춤을 할 때에도, “이 배신자여!” “스승을 반역하는 사탄의 앞잡이여” 하지 않으시고, “친구여”라고 말했다. 어떤 저주스러운 이름도 사람에게 달지 아니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한번 실수로 남편이 외도하고 얼마 후, 진심으로 뉘우쳐 성실한 남편이 되었음에도 ‘바람둥이’라는 이름을 짓고 평생 어두운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자녀가 실수했을 때 “너 잘하는 것이 뭐냐?” 하면서 모처럼의 실수에도 기를 꺾고 몰아치는 경우도 있다. 목사에게 “요새 제대로 된 목사가 없다.” 함부로 성직자를 무더기로 정죄하는 심판자가 되기도 한다. 자기가 손해를 보거나 섭섭한 일을 당하거나 마음에 맞지 않으면, 제멋대로 이름 붙여 거짓 작명가가 되고 명예 사살의 죄를 얼마나 많이 지었는가?
예수님께서는 창조적인 작명가로 인간을 성숙시키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을 부르시고 ‘베드로’란 이름으로 개명하셨다. 반석이란 뜻 그대로 교회의 든든한 바위가 되었다. 별 볼 일 없는 뱃사람이 역사의 걸출한 인물이 되는 기적이다. 아브람을 택하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려고 언약을 맺으실 때 열국의 아비란 뜻으로 ‘아브라함’이란 이름을 내리셨다. 과연 그는 인류의 아버지로 복의 근원이 되고 복의 조상이 되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계셨다. 3월에 새로운 아이들을 담임으로 맡으면 학생들의 이름 앞에 호처럼 칭찬을 붙여 1년 동안 불러주셨다. ‘착한 동건’, ‘성실한 준기’, ‘똑똑한 영희’ 이런 식이다. 그런데 말썽꾸러기 창식이 이름 앞에 모범생이라는 호를 적으셨다. 숙제도, 준비물도 챙겨오지도 않고, 매일 친구들을 툭툭 치는 창식이를 '모범생 창식'이라고 일 년을 부르신 것이다. 처음에 ‘모범생 창식’이라고 불렸을 때 창식이 자신도 얼음이 된 것처럼 놀랐다. 반 친구들은 모두 웃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확신하듯 말했다. “창식이가 모범생이 될 것을 믿어. 일 년 동안 창식이는 꼭 모범생이 될 거야! 창식아 약속할 수 있지?” 어느덧 1년이 지나, 다음 학년으로 올라갈 때 창식이는 새로 태어난 학생이 되었다. 일 년 동안 창식이가 잘못한 일만 계속 지적했다면 창식이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아라고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선생님 덕분에 창식이는 6학년 때 반장이 되었고, 중고등학교 때는 우등생이 되었다. 말의 권세다. 언어의 힘이다. 참으로 현명한 스승이시다. 원래부터 문제아는 없다. 문제아를 이해해주는 선생님과 부모가 있으면 모범생이 될 수 있다.
“오! 나의 입술아 너는 삼가 자중하라. 가벼이 사람을 이름 짓지 말자. 주 일찍이 누구를 헤아려 이름 짓지 아니하였느니라. 오! 나의 혼아, 네 누구인데 사람을 판단하느냐. 완전한 판단자는 다만 한 분이 계실뿐이니라” - 이용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