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선교회 캠페인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니까요
어릴 적, 시각 장애를 입은 한 남자가 병원으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검사 결과, 수술하면 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설렘이다. 당장 수술실로 가고 싶었지만 남자는 밤새 한숨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수술을 포기하겠다고 결론을 내린다. 의사는 묻는다. “도대체 왜 수술을 거부하는 건가요?” “저에겐 온몸에 깊은 화상을 입은 아내가 있습니다. 제가 두 눈을 뜨게 되면 분명 아내의 마음은 편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수술을 포기하는 겁니다.”
대학 입학식이 끝나고 나오던 날, 눈앞에 긴박한 상황이 벌어졌다. 한 꼬마가 차도로 뛰어들었다. 그때 아빠가 늘 짚고 다니시던 목발도 없이 전속력으로 달려가 안고 나오는 것이다. “아빠?” 너무 놀라 소리쳤지만, 아빠는 못 들은 척 보조 다리를 양팔에 끼고는 가버리셨다. “엄마? 엄마도 봤지? 아빠 걷는 거.” 하지만 엄마는 담담하다. “놀라지 말고 들어라. 아빠는 목발이 필요 없는 정상인이야. 그때 팔만 다치셨어. 4년 동안 목발을 짚고 다닌 것은 너와 같은 아픔을 가져야 너를 위로 할 수 있다고 해서야.” “왜 그랬어? 왜 아빠까지….”
가족이니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다. 분명 그렇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를 따르는 자들을 가족이라고 하셨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막 3:35) 천국 같은 교회, 천국 같은 가정을 이루는 하늘나라 가족들이다. 교회는 어머니 품 같아야 한다. 날 사랑하는 부모의 사랑이 진하고 뜨거워 희생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가정이라면, 천국 가족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죽으심으로 이룬, 예수님의 피의 가족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가 왜 이다지도 살벌한가? 작은 의견에도 왜 서로 각을 세우는가? 한 번 벌어진 감정을 천국 갈 때까지 그 원한을 품고 갈 각오인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을 멸시할 생각인가? 정말 당신은 하나님의 가족인가?
오늘 당장 매듭을 풀어라. 그래야만 산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으면, 화목하고 와서 드리라는 예수님의 교훈을(마 5:24) 거절하고 마음을 닫아버린다면, 심판 날에 당신에게 천국의 문을 닫아버릴 것이다. 예수님은 따지지 않고 묵묵히 죽으셨는데, 왜 우리는 이리 조목조목 밝히는가? 최용덕 님의 복음성가는 우리의 마음을 고발한다.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 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그가 먼저 손 내밀기 원했고, 그가 먼저 용서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웃어 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 된 사람인가
오 간교한 나의 입술이여, 오 교만한 나의 마음이여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마음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저 줄 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 볼 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