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리 캠페인
예수님의 자비의 계산법을 따르라
7에다 8을 곱하면 얼마인가의 시험에 대부분 학생이 정답인 56으로 썼으나(7×8=56) 한 학생의 답은 54로, 또 다른 학생은 47로 적었다. 물론 틀린 답으로 0점 처리했다. 그때 54로 쓴 아이가 항의를 했다. 선생님 저는 54로 적었기 때문에 정답에서 두개 밖에 틀리지 않았는데 47로 적은 아이는 9나 틀렸는데도 어떻게 똑같이 0점을 주었느냐의 항의였다. 현재 그 나이의 지각으로서는 정당한 항의일수도 있다. 그러나 수학의 법칙에서 이는 절대 용납이 되지 않는다. 정밀한 법칙대로 판단하는 사람과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들과의 충돌이다. 불의와 싸우는 경우도 있으나 자기 나름대로의 또 다른 정의 때문에 세상은 시끌벅적하다.
수학의 법칙만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하나 보태기 하나는 2라는(1+1=2) 수학법칙을 따르지 않고 1이란 답변을 말한 에디슨에 대해 교사는 당황했다. 진흙 한 덩이와 또 다른 진흙덩이를 합하면 하나가 아니냐의 설명에 충분한 이해가 되는 것 같으면서도 기존 법칙을 깨뜨릴 수 없어서 비정상적인 아이로 취급했다. 그러나 세상은 법칙도 수정되고 얼마든지 깨지기도 한다. 절대구원이신 예수님의 진리를 제외하고는 다양한 방법을 용납해야만 하는 세상살이다.
가장 고상한 법칙이 있다. 자비의 법칙이다.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약속하고 포도원에 들어가 일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깊은 진리를 담는다.(마 20장) 아침 7시에 와서 일한 사람, 9시에 온 사람, 12시에 온 사람, 마감시간 1시간 전 오후 5시에 온 사람, 제 각기다. 늦게 온 사람부터 품삯을 주었다. 물론 약속한대로 1데나리온이다. 아침 일찍 들어와 일한 사람은 더 받을 줄로 기대를 했다. 그런데 똑같이 1데나리온 씩 받았다. 불평이 터져 나왔다. 일찍부터 종일 더위와 노동으로 시달린 사람을 1시간 일한 사람과 똑같이 취급했다고 공평의 저울을 들이 댄 것이다. 훌륭한 논리다. 그러나 주인의 입장은 떳떳하다. 모든 사람에게 1데나리온을 주어 약속을 지켰기 때문이다. 한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으로 하루살기에 적합한 보수이다.
주인의 자비심을 품으라. 8시간 일한 사람이나, 1시간 일한 사람이나 가족 수는 비슷하다. 생활비도 거의 같이 든다. 너그러운 주인의 따뜻한 마음을 품을 수 없었던 저들은 노동의 대가에만 기준을 두었다. 일찍 먼저 온 사람이라는 오만함으로 포도원 주인에게 오히려 감정을 깊이 가졌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불행을 가지고 말았다. 포도원 주인이신 예수님은 노동력을 사서 부자 됨에는 관심이 없다. 빈곤한 저들에게 돈을 주고 풍요롭게 해주고 싶은 동기로 노동자를 불러들였다. 주는 기쁨만을 가졌다.
취로사업(就勞事業. 영세 근로자를 위해서 정부에서 실시하는 사업)이라는 것이 있다. 도로나 하천 등에서 일을 시키고 품삯을 주는 제도다. 생활이 어려운 자들을 위해 만든 국가 자선정책이다. 그냥 줄 수는 없고 약간의 노동을 제공하면 돈을 주는 것이 원래 취지다. 하나님의 나라일은 다 그렇다. 하늘의 큰 상을 주고 싶으셔서 이것저것 맡기셨다. 사마리아 여자에게 가서 말하듯 물 좀 달라고 하신다. 네 것을 내 놓으라 하신다. 풍요를 안겨주시고 싶으신 분이다.
인생여정이 끝난 후 하늘나라에 가서 채점장(採點場)에 서게 된다. 성경교과서에 어긋난 계산과 판단은 모두 형벌로 처리될 것이다. 당신의 판단을 점검하고 과감히 수정하라. 시간이 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