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리 캠페인
가나안 정탐 결과를 보고하는 날이었다. 포도가 달린 포도나무 가지를 두 사람이 막대기에 걸고 탐스런 열매를 보여주었을 때는 희망적이었다.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민 13:27) 그러나 공기는 싸늘하다. 아름다운 땅이지만 들어갈 수 없다는 살벌한 소식을 전한다. 정탐꾼 열둘 중에 대다수인 열 명이 판단한 것이니 그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40년 동안 기다린 소망이 이렇게 물거품이 될 수 있을까? 갈 수 없다는 조건은 매우 합리적이다. 그 주민은 강하다는 것, 성읍은 견고하고 크다는 것, 살고 있는 아낙 자손은 네피림 후손으로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같이 왜소하고 그들은 장대하다는 것, 이미 산지와 해변과 남방에 이름난 민족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 그들은 철 병거를 가졌다는 것 등이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민 14:1) 원망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애굽이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우리 처자가 사로잡힐 것이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은 옷을 찢고 몸부림치며 들어갈 수 있는 땅이라고 강력히 주장하지만 벌써 대세는 마귀 편이 되었다. “그곳은 아름다운 땅이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여호와 하나님이 인도하시리라.”(민 14:9) 외쳤어도 오히려 돌로 치려했다. 강한 적들만 보았지 더 강한 하나님을 잊어버린 불신의 순간이다. 믿음의 눈을 감으면 온 세상은 절망만 보인다. 믿음을 의심하지 말고, 의심을 믿지 말라.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민 14:11) 종의 굴레를 벗겨 해방시키신 하나님을 10번이나 반역했던 저들이었다. 마음이 정갈한 자들의 은혜에 대한 탄성과,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의 탄식은 스스로가 결정한다. 달리는 기차는 중립이 없듯이 신앙에도 중립이 없다. 수많은 기적을 똑똑히 보았음에도 이럴 수가 있을까?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자신이 변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드디어 하나님의 공의의 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8) 광야에서 죽었으면 하고 악을 쓰던 저들은 그들의 말대로 다 죽었다. 강한 족속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한 그들의 말대로 죽음에 굴복하고 말았다. 저들이 걱정했던 젊은이들만 새 땅에 들어갔다.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민 14:34)
하나님의 심판의 장면을 보자.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한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6-37) 당신 입에서 지금 무슨 말을 하는가? 그 말대로 된다. 회개의 고백을 지금 하라. 죄와 연결된 모든 것을 잘라내라.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고 외쳐라.
“회개하겠다고 결심했지만 때를 놓쳐서 사람들이 지옥에 있다. 미루다가 죽음에 붙잡힌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흰 깃발을 내걸고 죄인들과 평화교섭에 임하려 하신다. 사면을 선포하시려고 오셨다. 때를 잡을 줄 알아야 지혜롭다.”(토마스 왓슨)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도전받았는가가 아니라 변화되었는가이다."(레너드 레이븐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