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리 캠페인
목화밭 농장을 경영하는 백인 주인은 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중에 모세라는 노예는 날마다의 생활이 경건하고 의로워서 사람들이 모세 목사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하루는 모세 목사가 매우 심각한 모습으로 주인 앞에 우뚝 서 있다. 주인은 어디에 아프냐고? 왜 그리 심각한 얼굴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내일 날이 밝기 전에 이 집에서 제일 큰 부자가 죽을 것이라는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다. 농장주인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집에서 제일 큰 부자는 나인데, 내가 죽는다는 말인가? 그때부터 그는 불안하기 시작했고 밤이 되었지만 잠잘 수가 없었다. 밤 2시가 되었을 때 한 종이 주인에게 와서 급히 아뢴다. “주인님! 모세 목사가 죽었습니다.” 그는 안도와 함께, 다시 충격에 빠졌다. 이 집에서 제일 큰 부자는 모세였어! 천국과 그 영광이 모조리 그의 것이 되었으니 과연 부자였다.
학슬레이는 이름 있는 유명한 교수였으나 불신자였다. 어느 날 그의 조수가 교회에 가려고 준비를 한다. “자네 오늘도 교회에 가는가?” 묻는다. 예! 하고 대답하자, 오늘 나에게 신앙에 대하여 이야기해 줄 수 있는가 묻는다. “그것은 못 합니다. 교수님과 토의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대답하자, “토의하자는 것이 아닐세. 단 자네가 믿어서 유익 된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란 말일세.” 이 말에 그는 은혜받은 간증을 했다. 그 말을 들은 교수는 감탄한다. “내가 자네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오른손이라도 기쁘게 자르겠네.” 우리가 받은 은혜는 세상에서는 발견하지 못하는 신기한 은총이다.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충격들이다.
세계공황이 왔을 때의 일이다. 사람들은 거의 다 파산상태다. 알거지가 된 두 사람이 건물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자네 저 건너편 교회당 지었을 때 헌금 많이 했지?” 한다. 4,000불 정도 했다니까 “만일 헌금하지 않았다면 그 돈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을 텐데... 이제는 무일푼이 되었구먼” 한다. 그리스도인은 답을 한다. “그때 당신은 나보다 훨씬 부자였지요. 그때 나는 교회에 헌금을, 당신은 주머니에 넣었지요. 그런데도 무일푼이지요. 우리 똑같이 파산당했지만, 저 교회가 우뚝 서 있어 나는 공적을 남겼지만, 당신은 무엇을 남겼소?”
그리스도인의 신분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우리가 살아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우리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10)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죽음 앞에 노출된 위태한 사람이었으나 죽음을 오히려 비웃었다. “죽음이여, 자만하지 말거라. 한 줌 잠을 자고 나면, 죽음아! 네가 죽으리라.” 그들은 특별한 기쁨을 끌어낼 줄 알았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이시오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