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리 캠페인
넓은 초원에 소를 방목하는 아프리카에서는 사자나 표범 등의 맹수가 소를 잡아먹는 일이 항상 걱정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축을 맹수로부터 지키는 방법을 연구했다. 여느 때처럼 사자가 초원의 소들을 향해 슬그머니 다가가고 있었다. 고양잇과 동물은 사냥감이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은밀히 다가가 단숨에 기습하는 방식으로 사냥한다. 들키지 않고 소의 등 뒤에 접근한 사자는 소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그 순간 커다란 눈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기습에 실패한 사자는 미련 없이 사냥을 포기하고 돌아갔다. 하지만 실제로 소는 사자가 다가온 것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사자가 마주친 그 커다란 눈은 실제 눈이 아니라, 사람들이 소 엉덩이에 그려 넣은 눈이었다. 아프리카 보츠와나 북서부 오카방고 삼각주 지역은 풍요로운 생태계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돼 야생동물 보호지역이지만, 사자와 표범 등이 주변의 가축을 공격하는 일이 잦아 주민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곳이었다. 이를 위해 호주 뉴사우스 웨일스 대학(UNSW)의 연구진은 가축을 공격하는 사자나 표범 등이 사냥할 때, 목표물과 눈을 마주칠 때 포기하는 사례가 있어서 소 양쪽 엉덩이에 눈 그림을 그려 놓고 실험해보았다. 결과는 놀랍게도 4년 동안 엉덩이에 눈 그림을 그려 놓은 소는 사자의 습격이 거의 없었고 또한 눈 대신에 커다랗게 'X' 표시해 놓은 소들도 습격이 적었다고 한다.
초대 기독교의 표식은 물고기였다. 물고기가 기독교의 상징적인 존재로 여겨진 것은 그리스어로 물고기를 의미하는 익투스(ichthys)에서 비롯되는데, 그 첫 글자를 모아보면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를 뜻하는 단어들의 머리글자를 나열한 것이다. 기독교가 말하는 핵심적인 예수님에 대한 정의다. 박해받았던 초대 기독교인들은 상대방이 기독교인인가를 알기 위해 물고기 그림을 암호처럼 그리면서 신앙인인지 확인했고, 물고기를 그린 사람의 뒤를 따라가면 기독교인들이 숨어 사는 카타콤을 찾아갈 수 있었다. 즉 익투스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또는 "주(主)는 나의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라는 신앙의 내용이었다. 이때는 로마의 황제 10명이 기독교를 박해했던 시절이다. 그들의 핍박은 가혹해서 잡히면 비참하게 죽게 되므로 시체가 들어있는 굴속에 들어가 살았다. 그들 무덤은 한국의 무덤처럼 흙으로 봉한 것이 아니고 땅굴 같은 통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거기서 이 강한 신앙으로 무려 300년을 살면서 신앙을 지켰다. 올바르게 믿은 진리의 삶으로 로마의 박해도 거뜬히 극복할 수 있었다. 진리 그대로를 믿으라. 지옥을 그냥 통과하고 천국을 얻는 비결이며 세상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비의 약이다.
300년 이후부터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로 바뀌었다. 십자가와 부활을 중요시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구원의 표시가 되고 힘이 된다. 그러나 예수님 이후 콘스탄틴 시대까지 십자가를 교회 안에 세우지 않았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십자가는 성도들을 처형하는 사형 도구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십자가를 사랑하고 거기서 희생하신 예수님을 사모한다. 그러나 십자가를 사용하면서부터 그들은 십자군이라는 세력을 형성했고 십자가 정신을 깡그리 잊은 채 십자가가 전쟁에 나가는 깃발이 되었고 권력에 사용된 도구가 되었다. 그래서 중세 기독교 암흑시대를 만들었다. 장식해서 꾸미고 세운 십자가, 의미가 없다.
마귀가 무서워 떨고 도망가는 것은 십자가 정신대로 살 때이다. 세상을 정복하는 것도 역시 십자가의 힘이다. 행복한 삶도 십자가에서 온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라 하셨다.(마 1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