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사역을 하라 그러나 초라한 은퇴로 마치라
디모데후서를 읽다 보면 노 사도의 모습이 쓸쓸히 비친다. 손수건 한번 휘두르면 병자가 치료받고 귀신이 벌컥 소리 지르며 나가던(행 19:12) 왕년의 바울 사도의 영광스러움은 찾을 수 없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딤후 4:10)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4:14)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4:16) 처량한 늙은이로 남는다. 근속기념식이나 공로패 하나 없이 가족도 두지 못한 채 순교로 하늘의 부름을 받은 자다. 예수님께서 자국 낸 길을 그대로 밟아간 성인이었다. 알몸으로 땅에 뉘인 채 찬양하면서 마지막 숨을 거둔 프랜시스의 임종도 청빈(淸貧)의 아름다움이었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어마어마한 벼슬자리) 박봉에 참다못한 판사의 하소연에 "나도 죽을 먹고 살고 있소. 조금만 참고 고생합시다." 의로운 자의 공통된 길인 것 같다.
눈부시게 이룬 찬란한 사역! 건강이 허락되고 주님의 뜻에 일치한다면 머뭇거릴 필요 없이 과감히 펼쳐 나가라. 잔인한 악의 진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세워 가르쳐야 할 아프리카나 세계의 그늘진 구석들,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처참한 영혼들. 동물처럼 학대 받는 인간들이 떼 지어 도와 달라고 외치기 때문이다.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 통 크게 일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넘치는 활력을 주를 위해 과감히 소진하라. 천국의 일꾼들은 시시하게 고용되어서는 안 된다. 성령님은 기름 준비한(마 25:4) 영민한 영혼에게 날아와 일하기를 좋아하신다.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장사같이 달리는(시 19:5) 정열적인 태양처럼, 복음의 날쌘 파발꾼이 되어야 한다. 충성된 자의 명단에 들어가야 한다. 질펀하게 게으름 피우는 자를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악한자라 하셨다(마 25:26, 30).
화려하게 이룬 업적에 하늘의 대가를 고스란히 받고 싶은가. 바울의 지혜를 배워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고전 9:18) 백개 천개의 교회를 세워도 바울선교회에 속한 교회는 하나도 없게 하라고 타일렀다. 땀 흘린 응분의 대가를 만년에 톡톡히 누릴 속셈을 가졌는가. 다툼이 불거질까 두렵다(딤전 6:5). 마치 나 혼자 세운 공적처럼 우쭐거려 거드름을 피우는 순간 하늘에 쌓인 업적이 와르르 무너져 소멸됨을 알아야 한다. 걸출한 업적도 십자가 사랑으로 하지 않았을 때 헛짓했다고(고전 13:3) 노여워하신다. 건강을 지킨다는 신념으로 취미생활을 예수님보다, 선교보다, 봉사보다, 믿음생활보다 우선순위로 두는 착오 때문에 복음의 본질을 잃은 맥 빠진 종교인으로 홍수를 이루었다. 예수님 안에서는 직분의 은퇴는 있으나 사명의 은퇴는 없다. 늙어가나 낡지는 말아야 한다.
고독하라. 그래야 부끄러운 허물과 죄를 용서받는 시간을 가진다. 기도를 난파시키는 환경과 잡스러운 생각에서 훌쩍 벗어나야만 한다. 주님 앞에 입고 갈 예복 두루마기를 깨끗이 빨아야 하기 때문이다(계 22:14). 줄리아 성녀가 환상 중에(1373년) 주님을 뵌 일이 있었다.
"피가 철철 흐르는 몸, 깨끗한 맨살, 사정없이 떨어지는 채찍이 주님의 부드러운 몸속으로 파고든다. 뜨거운 피가 콸콸 흘러내려 살갗도 상처도 보이지 않는다. 눈에 띄는 것이라고 온통 피뿐!"
몽땅 내주시며 피 쏟고 죽으신 주님의 면전에 그래도 내 몫을 기어코 챙기려는가. 세상에서 다 받으면 천국상급이 없다는데!
오! 주님!
이동휘 목사(전주안디옥교회 선교목사, 사단법인 바울선교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