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
이동휘 목사(전주안디옥교회 선교목사, 사단법인 바울선교회 대표이사)
애굽의 속박에서 빠져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그의 지파 중에 비틀거리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시 105:37)란 당찬 기백이다. 혹독한 400년의 시달림 속에서도 애굽 여인과는 다르게 이스라엘 임산부들은 산파가 도달하기 전에 출산하는 기염을 토했다(출 1:19).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는(출 1:12) 칠전팔기(七顚八起)의 기상을 품은 종족이다. 하늘 양식 만나를 삼켰던 저들은 40년간 옷이 닳지 않았고, 걷고 또 걸었어도 발이 부르트지 않았다(신 8:4). 생명을 펌프질 하는, 만나와는 견줄 수 없는 예수 생명을 받아먹은 오늘날의 그 나라 백성들은 더 강해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약골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두 가지 이유, 못 먹어서 그럴 것이고, 아니면 비곗살이 찌도록 과다하게 먹어서일 것이다.
무엇을 그리 많이 먹었나. 너무 보아서 그리고 너무 세상 것만 들어서다. 선악과의 지혜 때문에 잡다한 상식들이 영혼을 쇠약하게 만들고 피곤케 한 것이다.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다고 하시면서 차라리 맹인이 되었다면 죄가 없었을 터인데! 말씀하신 예수님의 한탄대로다(요 9:41). “오! 주님 나로 하여금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 주님과 주님의 십자가 밖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불구자로 만들어 주옵소서. 참 병.신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이용도 목사는 자기 굽힘, 꺾임을 이뤘을 때 세례요한처럼 외쳤다. "나를 극복하는 순간, 나는 칭기즈칸이 되었다." 역시 장엄한 고백이다.
그럼 또 왜 먹지 않았나. 부요하신 아버지를 모신 자녀로서 없어서 먹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요셉의 곡식 창고에서 굶어 죽는 쥐는 없는 법이다. 분명히 맛의 진미를 느끼지 못하는 병든 상태일 것이다. 성경이 그리 밋밋하고 꿀맛의 달콤함도 느끼지 못하는 미각상실이 된 것은 다윗의 혀와 다른 까닭일까(시 19:10).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시 139:17) “나 무슨 말로 주께 다 감사드리랴. 끝없는 주의 사랑 한 없이 고마워. 보잘 것 없는 나를 주의 것 삼으사. 주님만 사랑하며 나 살게 하소서!”(찬송가 145) 이 황홀함이 없다는 말이다. 감람산에서 무릎 꿇으셨던 예수님의 그 애절함까지도 버린 것 같다. 기도에 혼을 바쳐야 할 긴박함이 없어서일까. 영적 생명이 녹슬어서 총기를 잃었는가. 지옥을 도려내서라도 당신을 구원하시려는 그 사랑의 아버지에게(사무엘 리더포드) 왜 그리 시무룩한가. 꿇은 무릎과, 젖은 눈과, 깨어진 심장이 바로 리더십이라는데(콜럼비아, 스티븐 올리브) 책임져야 할 양떼들과 그 영토를 방치할 계획인가.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음에서는 지체 없이 벗어나야 한다.
주님은 울먹이며 간곡히 말씀하신다.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 10:38)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히 10:35)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라!(히 12:12) 고통이 너무 심해서 탈진상태가 되었는가? 시간이 지나면 고난은 알아서 물러가는 법이다. 다급하여도 당황해서는 안 된다. 원기회복을 위한 대잔치를 마련하신 왕의 초대장을 받았다. 새 옷 갈아입고 마차 타고 달려가 참례하자.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인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사 25:6)
성큼 다가선 신비한 2014년! 새로운 해! 선물로 받았다. 쟁기 잡고 뒤돌아보지 말자(눅 9:62) 탄성 지르며 출발하자. 재림 준비를 서두르고 계시는 예수님은 다급하시다. 마지막 하나님의 출동사인만 남았다. 이제는 지체할 수 없는 최후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