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씸한 놈
이동휘 목사(전주안디옥교회 선교목사, 사단법인 바울선교회 대표이사)
남달리 사랑과 은덕을 흡족히 입었음에도 그 주인을 배신하고 실망시킬 경우 ‘괘씸한 놈’이란 말을 듣는다. 하나님의 허락도 없이 갑자기 인구조사를 실시란 다윗이 그 경우다. 양치기 코 흘리개 소년을 불러내어 천하제일의 대왕으로 드높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깡그리 잊는 순간 이었다. 부국강병을 뽐내고 싶었던 그는 요압장군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위세를 세계에 알렸다. 드디어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다. “하나님이 이 일을 괘심히 여기사”(대상 21:7) 온역으로 이스라엘 백성 7만 명이 죽임 당했고, 주의 노여움을 받은 다윗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허망한 꿈에서 겨우 깨어났다.
선배 스승들이 보석같이 남겨주신 세 가지 조심사항을 목회자들은 간직하고 산다. 돈과 이성 과 명예를 경계하고 버리라는 것이다. 이것에 잡히면 사람이 추해진다. 그러나 원통스럽게도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이 올무에 걸려 있는 것 같다. 이 그물이 얼마나 질기고 매력적인 것인 지 도무지 빠져 나오지 못한다. 허우적거리면서도 마냥 즐기고 있다. 가짜 박사 가운은 그 수 량이 점점 더해가고 “바리새인은 돈을 좋아하는지라”라는 말대로 돈독에 마취되었다. 간음죄 는 유행으로 바꾸어져 전체 성폭행의 10분의 1이 누구(?)의 음행이란다. 한국각종 초특급 비 리사건에는 반드시 기독교인이 주모 역할을 하였고, 금년은 조국통일을 갈망하는 의년 광복절 모임인데도 여의도와 임진각에서 각각 패를 갈라 등을 돌리고 앉았다. 조국통일은 윗입술에만 붙어 있는 것 같다. 떡 부스러기 주어먹는 재미가 그렇게도 좋은가 보다. 기독교 성직자의 존 경도가 중보다도 신부보다도 밑에 깔려 있는데도 무엇이 좋은지 히죽거리고만 있다. 하나님의 뜻은 실종되고 인간 계략이 기독교를 끌고 산다. 우리 주님은 목사에게 선교사에게 장로에게 집사에게 권사에게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다.
“괘씸한 놈들”.
금년에 하나님이 화나셨다. 이방인 앞에 기독교를 여지없이 망신시키신다. 사정 두지 않으시고 비리를 폭로시키신다. 하나님을 상징하는 예루살렘 성전을 불 질러 버리시던 하나님이 한국교 회도 허물어뜨리실 것 같은 분노이시다. 축복을 회수하실 것 같다. 은혜를 그렇게도 모르는 못된 것들이라고 심해도 섭섭해 하시며 애달파 하시는 모습이다.
모세같이 엎드려 통곡하자. 옷을 찢고 머리털을 뜯자. 아간을 공개 처형하여 성결한 집단을 다시 편성하자. 간음현장에서 붙잡힌 그 여인같이 되기 전에 성령 속이고 물질 도적한 아나 니아, 삽비라의 최후와 같이 되기 전에 허세 부리다가 벌레에 물려 죽은 헤롯같이 되기 전에 미스바 성결총회에 참례하자. 죄에 대하여는 극렬한 분노를 가지신 (수7:26)하나님께 맞서지 마라. 죄의 현장을 과감히 떠나 회개 눈물 쏟고 쏟아 주의 노여움을 풀어드리자.
순결! 순결! 순결! 예수의 피로 또 순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