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살이
이동휘 목사(전주안디옥교회 선교목사, 사단법인 바울선교회 대표이사)
친정부모 집을 떠나서 신랑을 따라 시댁에 가서 사는 생활을 시집살이라 한다. 개인의 자유가 극도로 보장된 서구 사회에서는 새댁은 금방 사랑에 푹 빠져 꿈같은 밀월(蜜月)을 즐길 것이 고 유교 전통에 눌린 가부장적 가족과 사는 신부는 고추맛 보다 더 매운 설움 섞인 시집살이 를 해야 했다. 그러나 그 열매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진주였다. 남편의 진한 사랑 을 얻게 되었으며 귀중한 보화인 자식을 생산한다. 가정이란 아늑한 에덴동산이 시작되고 억 조창생의 조상 아브라함 같은 선조가 될 수 있다. 인생은 이때부터라고 가히 말할 수 있으리 라. 어머니가 되고 할머니가 되고 현처가 되고 장차는 대가족의 어른이 된다. 고통스런 이생 도 훗날 화사한 이야기 속에 섞여 지혜와 인내로써 가시밭길 인생을 성공적으로 헤쳐 살아온 감동적인 인생 회고록을 세상에 내놓게 될 때에는 사람들은 우렁찬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러 나 고통스런 과정을 견디지 못해 집을 뛰쳐나갔을 때는 타향살이가 시작된다.
사도 바울은 예수 믿는 생활을 예수 살이로 비유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 서(결혼) 우리도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롬7:4)” 따라서 그의 전도는 바로 예수님과의 결혼을 의미했고 자기는 중매자라고 했다.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
시집가는 여자는 결혼 신고를 하는 순간 친정 호적에도 무참히도 삭제된다. 친정과는 단절 선 언이다. 그리고 당당한 시집 가문에 등록된다. 서양 사회에서는 성(姓.SURNAME)까지 박탈한 다. 남편 성으로 바꾼다. 제 몸에서 생산되는 자녀까지 남편 것이 된다. 옛날 어른들은 “시집
귀신이 되라”고 까지 말했다. 시집에서의 “귀머거리 삼 년, 벙어리 삼 년” 생활을 가르쳤다. 남편 가족 속에 용해되는 작업이다. 그는 시집식구를 위하여 일생을 살게 된다. “우리가 살아 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롬 14:8)”,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자기는 허수아비요 박제다. 실제는 예수가 살아 주는 생활이다. 예수 살이를 한다는 말이다.
설교는 많으나 말씀은 없고, 감동과 자극은 많으나 삶의 변화는 없고, 군중은 많으나 제자는 적고, 예수 믿는 자는 많으나 예수 살이 하는 자는 적다는 탄식을 한다. 마치 오늘날 선진 퇴 폐 사회에서 결혼한 부부가 독신 주택에서 각기 따로 살면서 필요한 때만 서로 만나는 경우와 흡사한 생활이다.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동거생활을 거부하는 신세대와 같다. 필요한 때만 예수 를 함께 하는 삶이 종살이 머슴살이 더부살이하는 격은 아닐텐데 이상스럽게 “예수와 함께 하 는 삶(예수 살이)”을 싫어한다.
주저하지 말자. 의심하지 말자. 예수와 함께 하는 예수 살이를 바로 시작하자. 그 행복은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