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간 탕자가 있어 아버지를 괴롭혔다.(눅15장) 숱한 고통을 겪은 이 둘째 아들은 드디어 는 수치를 무릅쓰고 돌아와 아버지 집에 큰 잔치를 배설하는 기쁨도 드렸다. 반면 큰아들은 아버지 집을 뛰쳐나간 일이 없는 얌전한 아들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께 대들면서 염소새끼 하 나라도 잡아 나를 위해 잔치해 준 일이 있느냐고 아버지의 기쁨을 빼앗아 갔다. 동생의 귀가 를 기뻐하는 잔치에 시비 걸고 나온 것이다. 집나간 탕자도 문제되려니와 집안에 있는 탕자 가 아버지를 괴롭히는 데는 한수 위이다.
"한국교회의 현실과 전망" 이란 표제로 (한국 선교신문 243-246호) 이원규 교수의 갤럽조사에 의한 종교분석이 나왔다. 이것을 보는 순간 벽에 쓰인 글자를 보고 "넓적다리가 녹는 듯하고 무릎이 서로 부딪치는"(단5 :6) 벨사살왕의 떨림이 왔다. 이렇게도 오늘의 기독교가 처참해 졌 단 말인가. 종교별 이미지 평가를 유심히 바라보자.
(표 10) 종교별 이미지 평가 (단위 : %)
이미지 내용 개신교 천주교 불 교
구제/봉사활동 등 대사회적 역할 잘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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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 |
44.8 |
25.3 |
시대의 변화에 빠르게 적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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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 |
32.7 |
21.6 |
종교지도자 자질의 우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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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
40.8 |
26.7 |
개인적인 영적문제 해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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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
19.0 |
20.5 |
참 진리 추구하기 보다는 교세확장에 |
더 |
관심 |
76.0 |
35.1 |
36.6 |
지나치게 헌금/시주 강요 경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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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 |
28.7 |
33.6 |
믿지 않는 사람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음 |
33.2 |
18.5 |
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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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 할 규율 너무 엄격하게 강조 |
38.4 |
29.2 |
23.8 |
개신교는 나쁜 것은 으뜸이고 좋은 것은 모두 꼴찌다. 단하나 시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한다는 것만이 첫째다. 그러나 이 말 역시 세속화에 가장 빠르다는 것이므로 기뻐할 것이 못된다. 종 교가 이 땅에서 계속 실망을 주다보니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도 거세어졌다. 종교에 관한 무 관심이 9.1%(1984년)이던 것이 26. 4%로(1997년) 껑충 뛰었고 종교에 대한 불신과 실망은 9.6% 이던 것이(1984년) 22.8%로(1997년) 종교에 등 돌리는 국민이 많아졌다. 종교를 가진다 면 개신교로 개종하겠다는 사람은 21.4%(불교의 41.8% 가톨릭의 36.7% 보다 훨씬 낮다)로 개신교의 전망은 심히 어둡기만 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대체 무엇 때문일까? 집나간 탕자는 배곯으면 돌아올 줄 아는데 집안 의 탕자는 계속해서 골치 썩이는 일만 되풀이하고 있다. 어찌하면 좋을까? 초대 교회 신앙으 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 하게 하시니라"(행 2:47) 존경받는 종교였고 모여드는 종교였다. 어떻게 믿었기에 추앙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을까?
그들은 철저히 회개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 할꼬!"(행 2 : 37) 가슴 두드렸다. 죄와 인연 을 끊었다. 회개 없는 구원은 헛짓이다. 옛사람을 땅속에 묻어라. 죄 짓지 않고도 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철저히 기도했고 따라서 성령으로 충만했다. "기도에 전혀 힘쓰니라"(행 1 : 14) 미지근하게 믿지 않았고 화끈하게 믿었다. 생명 내놓고 바르게 믿었다. 더 나아가서 이웃 사 랑에 철저했다. 물건을 서로 나누어 사용했다. 핍절한 사람을 위해서는 재산까지 떼어 주었다. 예수 말씀대로 이웃사랑을 내 몸처럼 실천했다. 칭찬 받는 집단을 이루었다.
기독교는 이 민족의 구원을 책임지는 생명의 종교로 기필코 거듭나야 한다. 반드시 한국의 종 교개혁이 일어나야만 한다. 오! 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