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을 잊었는가?
이동휘 목사(전주안디옥교회 선교목사, 사단법인 바울선교회 대표이사)
바울을 잊었는가? 바울과 같은 선교사가 되고자 하는 갈망으로 바울선교회라고 이름 붙이고 하나님의 호각 소리에 출발한 바울의 사람들이여! 이 선교회에 소속된 선교사를 "바울선교사" 라 부르기를 기뻐했고 후원교회들 역시 바울의 마음 가지고 협력 후원단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떼를 이룬 바울의 가족들이여! 선교사 바울사도의 마음을 지금도 가졌는가? 선교사로 지원할 때의 두근거렸던 초심(初心), 훈련받을 때의 중심(中心), 이제 선교지에서 사역에 시달리는 현 재의 본심(本心) - 일치한가! 후원교회도 주님의 선교정신 무장이 변함이 없는가? 첫사랑을 잊고 후퇴하는 길목에 있지는 않은가? 다행히 시종 여일한가? 아니 날로 새로움으로 뜨거워 지는가?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모습이 등장하며 주님의 평가가 나 온다. 세 종류로 분류하신다. 칭찬만 있는 교회(서마나, 빌라델비아), 칭찬과 책망이 같이 있는 교회(에베소, 두아디라, 사데, 버가모), 칭찬은 없고 책망만 있는 교회(라오디게아) 모습들이다. 주님의 평점이니 정확할 뿐 아니라 교회의 모델, 성도의 실상이라고 본다. 칭찬만 있는 선교 사 그리고 성도가 있을 수 있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고. 우리 바울선교사는 모두 이렇게 되기 를 바란다. 당연히 이렇게 되어야 할텐데! 주님의 소원대로 흠없는 선교사의 자태로 우리 주 님 앞에 우뚝 서기를 바란다. 그러나 대부분은 칭찬 받을 일도 책망 받을 일도 동시에 같이하 는 선교사와 성도가 제일 많은 것 같다. 숫자적으로 그렇다. 한편 통탄스럽게도 칭찬이 전혀 없는 질책만 받는 선교사, 성도, 교회 도 있다는 경고다. 선교자원만 허비하는 선교사, 말씀만 듣고 실천이 없는 가라지 같은 신도가 있을 수 있다는 주님의 울음이시다. 어찌할꼬?
바울정 신은 무엇일까? 바울선교사 파송패에 언제나 사도행전 20장 24절을 적어 주었다.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노라." 주님을 위해 장렬한 죽음을 죽겠다는 선언 이다. 바울은 먼저 자신을 죽이는데 철저히 했다. 자기를 순교시켰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전 15:31). "내 몸을 쳐 복종케 함은..."(고전 9:27). 자신을 죽이니 남을 살릴 수 있었고 자기 단속에 능숙하니 남을 높일 수 있는 겸손을 가졌다. 자기를 부정하니 예수님이 살았고 복음은 번창해갔다. 외식을 죽이자. 거짓을 죽이고 오만을 죽이자. 게으름을 죽이고 불평을 죽이자. 속임수를 죽이고 미움을 죽이자. 자기순교는 자신만이 할 수 있다. 그래야 예수가 살고 선교 가 산다. 바울이 나와야 한다. 바울을 잊으면 복음도 선교도 빛을 잃는다. 바울을 가슴에 새기 자. 뚝심가지고 바울 같은 선교사가 되자.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