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말리엘의 현명한 판단
이동휘 목사(전주안디옥교회 선교목사, 사단법인 바울선교회 대표이사)
증오에 불타던 대제사장 집단이 드디어 베드로와 사도들을 진멸시키려는 순간이었다. 뜻밖에도 바리새인 편에서 사도들을 옹호하는 음성이 잔잔하면서도 힘있게 흘러나왔다. “이 사람들에게서 손을 떼고 그대로 내버려 주자는 것입니다. 만일 이 사람들의 계획이나 행동이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면 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온 것이라면 여러분들은 그들을 없앨 수 없을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지도 모릅니다”(행 5:38-39). 존경받는 율법사 가말리엘의 명안에 숨막히는 재판은 사도들의 석방을, 그리고 온 교회에 기쁨을 선물했다. 적대 관계인 바리새파인데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그의 용기 있는 발언은 판정 기준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꼭 배워야 할 실화이다.
그릇된 판결은 세상을 계속 어둡게 해왔다. 죄 없는 줄 뻔히 알았으면서도 자기 정치 생명의 보존을 위해 예수님께 사형 언도를 내린 빌라도 총독의 비겁한 재판이 그 대표적 예이다. 나봇의 포도원을 소유하고 싶은 아합 왕의 의도를 안 이세벨 황후는 영부인의 위력을 과시했다. 성읍 장로들에게 압력을 가한다.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증인까지 세워서 돌로 쳐 죽이라는 암살 지령이었다. 항명할 수 없는 장로들은 선량한 시민을 살인해야만 했다.
얼마나 가슴들이 아팠을까? 머나먼 외국 땅에서 오느라고 옷이 헤어지고 낡아 기운 신발이 되어 이스라엘과 화친하러 왔다고 애원한다. 출발할 때 더운 떡이 곰팡이 난 것을 보더라도 과연 아득한 곳에서 온 것으로 착각했고 두령들은 우쭐한 마음이 되었다. 이젠 강국이 되어 모든 나라들이 벌벌 떠는구나 자만심까지 생겼다. 즉각 화친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속임수였음이 곧장 드러났다. 지도자들은 백성의 원망을 들었다. 이유는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수 9:14)였다. 좀더 신중히 하나님께 물어 보았더라면 기브온 족속에게 속지 않았을 것이다. 현명한 늙은 모사들은 르호보암 왕에게 부드러운 정치를 하고 백성의 종이 되는 인자한 왕이 되라고 간곡히 권했다. 그러나 젊은 모사들의 패기 넘친 제안에 왕은 수렁에 빠졌다. “내 부친은 채찍으로 다스렸으나 나는 전갈로 다스리리라”고 위협했다. 자기 새끼손가락이 부친의 허리보다 굵다고 허풍을 친다. 굴종을 요구했다. 그 순간 나라는 두 조각으로 나뉘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분단국가의 비극을 초래하고야 말았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고 했는데.
좀더 부드러웠다면 현자가 되었을 텐데. 분열만큼은 막았을 텐데. 솔로몬의 지혜와 명철한 판단력을 흠모하자. 10대 젊은 왕이 생모와 가짜 엄마를 명쾌하게 판결해 낸 그 지혜가 어디서 나왔을까? 전혀 하나님이 주신 지혜라고 했다. “천하 열 왕이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며 그 얼굴을 보기 위하여...”(대하 9:23). 거듭거듭 허리 굽혀 일천 번 제사 드린 후의 소득이었다. 모든 판단은 입술로 선언한다. 덕도 실수도 혀가 내린다.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잠 12:18).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을 그리고 입을 장악하여 쓰시도록 하자. 명철한 판단력을 주시라고 기도하고 그 다음에 천천히 입 문을 열자. 더 이상 성급하여 실수하고 후회하는 일을 되풀이 않도록 하자.“야훼를 두려워하여 섬기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이를 깊이 아는 것이 슬기다(공동, 잠9:10). 할렐루야!